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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월란정사 중건기(月瀾精舍重建記) > > 도산(陶山)의 동쪽 5리에 봉우리가 있는데 강(江)을 대하고 있고 위가 평평하니, 요성대(腰成臺)이다. 대 위에는 월란암(月瀾庵) 옛터가 있는데, 그 창건은 언제인지 모르고 폐허가 된 지 33년이 되었다. 금년 가을 상락(上洛)의 후배 김석유(金奭裕)·김재유(金在裕) 등이 나아가 개축하고 편지를 써 진성(眞城) 이만각(李晩慤)에게 기(記)를 구하였다.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옛날 1560년(명종 15) 우리 할아버지 만취공(晩翠公)이 퇴계 선생을 따라 배우며 이 암자에 머문 것이 10년이란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배우고 연마한 곳이 지금 다 사라져 전하지 않아 학문을 주고받은 연원의 실체를 살필 수 없게 됐으니, 행적과 함께 폐허로 된 것이라 후손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이것이 우리 문중의 어른들께서 반드시 집 한 채를 짓되 또한 옛 제도를 잃지 않으려 한 까닭이니, 그 일을 첫째로 삼는다면 서술할 만하다. > > 이만각(李晩慤)이 가만히 생각하니, 이 산의 숲과 골짜기와 대 등은 지팡이와 신을 끌고 다니며 품평을 하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 건물을 새로 지어 유학을 다시 진작시키되 옛것을 그대로 따라 이름을 지으면 새롭게 만들고 흥기시키는 뜻이 없게 된다. > > 청컨대 동재(東齋)는 ‘은구(隱求)’, 서재(西齋)는 ‘관선(觀善)’을 했으면 하는데, 우리 퇴계 선생께서 일찍이 공에게 주자(朱子)의 무이잡영(武夷雜詠)을 써 준 적이 있으니 그 뜻이 취할 만해서이다. 또한 대청은 ‘월영(月暎)’으로 이름 지으니, 퇴계 선생께서 서림원(西林院)에 화답하여 쓴 시 “산 위의 달이 외로운 이불 비추는 것을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네.”에서 취한 것이다. 전체에 대해 편액을 달기를 ‘월란정사(月瀾精舍)’라 한다. > > 감흥을 서술한 뒤에 또 말한다. 공이 약관의 나이에 도산에서 선생을 뵙고 머무르며 수업받기를 청하였다. 그 뒤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천산(天山) 두 이공(李公) 및 조진동(趙振同) 공과 함께 연대(蓮臺)·만월(滿月)·월란(月瀾) 사이에서 노닐었는데, 월란에 머문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무릇 친절히 가르쳐 주는 후의를 받들고 전수한 뜻을 발한 것이 모두 암자에 기거하는 시간에 얻어진 것이니, 스승의 문하에서 직접 교육받는 것 같았다. 처방에 따라 약을 받는 것은 담박한 음식을 먹는 것에 오래 있었기 때문이고, 계율을 조목조목 파고들다 병이 난 것은 괴롭게 생각하는 데 빠졌기 때문이다. 담박함과 괴로움으로도 오히려 높고 맑음을 완상하는 마음과 돈독한 뜻으로 힘쓰는 뜻을 상상할 수 있다. > > 그러나 공은 저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책 상자는 자주 잿더미가 되었고, 『대학질의(大學質疑)』, 『어록해(語錄解)』 등 여러 편도 모두 이름만 있고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5조(條)의 문답은 스승 문하에서 적어 남아 있고, 2조는 조공(趙公)의 문답에 보인다. 조화(造化)의 근원을 탐색하고 성리(性理)의 오묘함을 연구한 것은 모두 유학에 도움을 주었으나 문집의 편찬은 또 주인이 바뀌었다. > > 공이 왕래하며 향기를 남긴 곳에 이르러서는 다만 풀이 무성하고 섬돌이 깨져 훌륭한 말씀과 아름다운 행적이 흩어지게 되어 찾을 수 없었다. 진실로 후인들이 모두 개탄하고 애석해하는 바이다. 그러나 또한 풀어낼 수 있는 자가 있다. 우리 호상선생(湖上先生)은 진실로 도산의 적손으로 공의 행적을 서술한 데서 가리고 숨은 것을 드러내 밝혔으니 서운함이 없다. > > 공의 6대손 천사공(川沙公)은 호상선생 문하의 뛰어난 제자로, 강론하고 저술한 것이 모두 도산(陶山)을 보좌할 수 있다. 이 또한 공의 기맥의 느낌이 없으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공의 유업(遺業)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한스러워 하겠는가? > > 난대(瀾臺) 한 굽이에 대해서도 집안에서는 용문(龍門)이나 무이(武夷)로 여겨 애호하고 가꾼 뜻이 공들에게 먼저 정성을 받은 것이 되었으니, 그것이 인효(仁孝)의 한 부분에서 나온 것임을 알겠다. 그러나 그것으로 조상을 잇고 존경하며 보호하는 도로 삼는다면 도리어 말단이 되니 어찌 생각하지 않는가? > > 옛날 공이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당에 오른 날에 응답하고 질문하는 즐거움에 맛을 두어 그것이 얕고 깊음을 꺼리지 않았으며, 오르내리고 진퇴하는 뜻에 평정함을 얻어 그것이 괴로움이 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오랫동안 한적하게 소요하는 기간에 미쳐서는 매우 순수하였고, 평소 지냈던 지역에서는 또한 남은 향기를 표창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심법(心法)의 전수를 얻었다. > > 만약 옛터에 수축만 하여 당일 왕래한 유적을 찾고 달과 물결을 감상한 뜻에서 계합함을 구한다면 또한 멀지 않겠는가! 이것이 나와 공들이 옳게 여기고 서로 권한 것이니, 잠시 이것을 적어 생각한다. > > > > - 이만각(李晩慤),『신암집(愼庵集)』- > > > > 月瀾臺 > > 高山有紀堂勝/ 處皆臨水古庵/ 自寂寞可矣幽/ 棲子長空雲乍 > > 捲碧潭風欲起/ 願從弄月人契/ 此觀瀾旨 > > 退溪先生 > > 오언율시(五言律詩)로 보이는데, 시판(詩板)에는 6자(字)씩으로 묶어 놨다. > > 시의 뜻과 구성으로 볼 때 아무래도 5자(字)씩 8구(句)로 쓰여진 아래와 같은 오언율시가 맞을 듯하다. > > 高山有紀堂/ 勝處皆臨水/ 古庵自寂寞/ 可矣幽棲子/ > > 長空雲乍捲/ 碧潭風欲起/ 願從弄月人/ 契此觀瀾旨 > > 退溪先生 > > > > -월난대에서- > > 높은 산에는 모서리도 있고 펀펀한 곳도 있는데 > > 경치도 좋은 곳은 모두 강가에 있네. > > 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 > > 그윽하게 사는 이에게 있을 수 있네. > > 넓은 하늘에 구름이 문득 걷히니 > > 짙푸른 소沼에 바람 일 것 같네. > > 바라노니 달을 즐기는 사람을 쫓아서 > > 이 물결 이는 것을 관찰하는 취지에 부합하고자 하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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