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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운경1)은 봉화현(奉化縣 :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사람이다. 충숙왕대에 과거에 급제2)하여 상주사록(尙州司錄)3)이 되었다. 용궁감무(龍宮監務)가 뇌물을 받았다는 무고가 들어와 안렴사(按廉使)가 정운경을 보내어 국문하게 했다. 정운경이 용궁에 가서 감무(監務)4)를 본 후 조사도 하지 않고 돌아와 말했다. > > “탐관오리짓을 하는 것은 분명 나쁜 일이지만 법을 농락할 만한 재주가 없거나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위세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 감무는 늙어서 제 임무도 제대로 못하는 판에 누가 뇌물을 바치려고 하겠습니까?” > > 안렴사가 과연 그것이 무고임을 알고, > > “요즘 관리들은 가혹한 짓을 자랑삼아 하는데 사록은 정말 덕이 있는 사람이다.” > 라고 탄복했다. 상주 출신의 환관이 원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사신으로 상주에 들어와 선생에게 방자하게 굴었다. 이에 선생이 즉시 벼슬을 버리고 떠나니 부끄러움을 느낀 환관은 밤에 용궁(龍宮) 고을까지 선생을 따라가 사과하므로 선생이 다시 돌아왔다. 내직에 들어와서 전교교감(典校校勘)이 되고, 거듭 승진해 홍복도감(弘福都監)5)의 판관이 되었다. > > 충혜왕대에 지밀성군사(知密城郡事)로 나갔는데 당시 어떤 밀성군 사람이 재상 조영휘(趙永暉)에게 베를 빌렸다. 조영휘가 어향사(御香使)6) 안우(安祐)에게 청탁해 밀성군에 공문을 보내 이를 징수하게 했지만 정운경은 묵살하고 집행하지 않았다. 안우(安祐)가 김해부(金海府)로 급히 들어가서는 교외(郊外)로 영접하러 나오지 않았다는 트집을 잡아 부사(府使)에게 태형을 가했다. 동정을 살피러 갔던 밀성 서리가 급히 달려와 보고하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졸였다. > > 안우가 밀성부에 도착해 전에 보낸 공문의 이행 여부를 묻자 정운경은 “밀성 사람에게 베를 빌려 준 사람은 조영휘이니 자신이 징수할 일이지 공께서 상관할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안우가 노하여 측근에게 명령해 그를 욕보이려 하자 정운경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 > “지금 천자의 명령을 교외에서 영접한 터에 장차 무슨 죄목으로 나를 처벌할 것이오? 공은 천자의 명령을 널리 펴 원방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지는 않고서 어떻게 감히 이런 짓을 하는 것이요?” > > 이에 안우가 굴복하고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 뒤에 복주판관(福州判官)으로 승진했는데 그 고을 서리 권원(權援)은 예전에 정운경과 함께 향학(鄕學)7)에서 공부했던 사람이었다. 정운경이 부임하자 그가 술과 안주를 마련해 와 알현을 요청했다. 정운경이 불러 함께 술을 들면서, > > “지금 자네와 함께 술자리를 하는 것은 옛 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네. 그러나 자네가 내일이라도 죄를 범한다면 판관으로서 아마 자네를 용서하지 못할 걸세.” > 라고 말했다. 복주의 어떤 승려가 옹천 역로(瓮川驛路)에서 도적에게 매를 맞아 거진 죽게 되었다. 역리(驛吏)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 > “내가 베 몇 필을 가지고 길을 가다가 밭에 거름을 주는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을 보았고 또 밭에서 김매는 사람도 보았소. 얼마 뒤에 어떤 사람이 뒤에서 ‘내가 밭에서 김을 매면서 너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불렀는데 왜 대꾸하지도 않는가.’ 하고 고함을 치고는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나를 두들겨 패고 베를 빼앗아 갔소.” > > 잠시 후 승려는 죽어버렸고, 역리가 김매던 사람을 잡아다가 관아에 알렸다. 그 자를 문초한 후 재판에 회부했는데 정운경이 마침 밖에서 돌아오더니, 승려를 죽인 범인은 그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목사(牧使)가 이미 자백했다고 하자, “어리석은 백성이 고통스런 문초를 견디지 못하고 겁에 질려 말실수를 한 것입니다.”라고 하길래 목사가 정운경을 시켜 다시 조사하게 했다. 정운경이 즉시 전주(田主)를 불러, > > “네가 밭에 거름 주던 일꾼들에게 밥을 먹일 때에 승려에 대해 말을 꺼내던 자가 있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하라.” > 고 물었다. 전주가 “한 일꾼이 중이 지닌 베가 술값이 될 만 하다고 하더이다.”라고 하기에 일꾼을 딴 데다 가둔 다음 그 처를 문초했다. > > “내가 들으니 모월 모일에 네 남편이 너에게 베 얼마를 주었다던데 어디에서 얻었다고 하던가?” > 하고 추궁하자 그 처가, “남편이 베를 가지고 집에 오더니 베를 빌려갔던 사람이 돌려 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즉시 그 남편더러 베를 빌렸던 사람이 누구냐고 다그치자 그 자가 말이 막혀 죄를 자백했다. 놀란 목사가 경위를 묻자 정운경이, > > “대개 도적은 그 행적을 숨기고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는 법인데, 그가 자신을 김매는 사람이라고 밝혔으니 이는 속임수인 것입니다.” > 라고 설명해 주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 > 충목왕대에 서운부정(書雲副正)으로 재임하던 중 하정사(賀正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되어 원나라로 갔다. 당시 기황후(奇皇后)가 황제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고 황제의 근신(近臣) 가운데도 고려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정운경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몹시 거만하게 굴자 정운경이 정색하며, “베풀어주신 대접은 옛 임금을 위한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에 근신들이 크게 놀라 “수재(秀才)가 우리를 가르쳐 주셨소.” 하고 추켜세웠다. > > 이후 양광도와 교주도의 안찰사를 역임하고 전법총랑(典法摠郞)으로 전임했다. 공민왕이 즉위한 후 정운경과 좌랑(佐郞) 서호(徐浩)가 법대로 일을 처리하며 권세가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을 보고 내전(內殿)에 불러들여 술을 하사했다. 이에 대해 상서(尙書) 현경언(玄慶言)이 이렇게 간언했다. > > “전하 내외분의 침전(寢殿)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인데도 현재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궁전의 문을 통제하는 것은 환관의 직분이온데 지금은 쿠치[忽赤]8)가 지키고 있습니다. 정무를 보실 때에는 부근을 삼엄히 호위해야 마땅한데도 지금은 좌우가 시장바닥과 같아 국사를 미처 다 아뢰기도 전에 벌써 외부로 누설되고 맙니다. 행형(行刑)을 맡은 관원은 임금이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법인데 이제 정운경과 서호에게 침전에서 술을 내리셨으니 이는 모두 옛 제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 > 왕이 옳은 말이라 여겼다. 얼마 뒤 정원경은 전주목사(全州牧使)로 나갔는데 승려 신분으로 장가들어 가정생활을 하던 자가 어느 날 외출길에 살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처가 관가에 신고했으나 아무런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여 오래도록 미결인 채로 남아 있었다. 정운경이 집무하게 되자 그 처가 다시 찾아와 호소했다. 정운경이 처더러 사통(私通)한 자가 있느냐고 묻자, > >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웃에 사는 한 사내가 저더러 ‘늙은 중이 죽으면 일이 잘 될텐데.’라고 늘 희롱하더이다.” > 라고 말했다. 이에 그 사내를 잡아다가 따로 수감해 두고 먼저 그 어미에게, “모월 모일에 네 아들이 집에 있었느냐? 아니면 외출하였느냐?”고 문초했다. 그 어미가 “그 날 아들이 외출했다가 들어오면서 친구와 술을 취하도록 마셔 피곤하다고 하더이다.”는 말을 듣고 그 사내에게 같이 마신 자가 누구냐고 다그쳤더니 곧 범행을 자백했다. > > 당시 원나라 사신 노(盧)아무개가 횡포를 부리며 가는 곳마다 수령을 능욕했다. 이 자가 급히 전주에 오더니 자신을 교외에서 영접하지 않은 것을 트집잡아 형벌을 가하려 했다. 정운경이 예법을 인용하면서 조금도 굽히지 않고 그 날로 벼슬을 버리고 떠나 버리자 고을 원로들이 목 놓아 울었고 노아무개 또한 부끄러워하여 수긍하고 그를 말렸으나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다. > > 이후 내직으로 불러들여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 임명해 강릉(江陵)과 삭방(朔方)의 존무사(存撫使)로 삼았으며, 다시 들어와서는 지형부(知刑部)가 되었다. 도당(都堂)으로부터 송사 한 건이 내려오자 정운경은 재상들에게, > > “공로에 따라 백관(百官)을 등용한 후 유능한 이는 승진시키고 무능한 이는 퇴출하는 것이 재상의 일입니다. 법을 시행하는 일은 각 해당 관청에서 해야 할 일인데도 일일이 모두 묘당(廟堂)을 경유하게 하면 이는 고유의 업무를 침범하는 것입니다.” > 라고 항의했다. 얼마 후에 형부상서(刑部尙書)가 되었다가 다시 검교밀직제학(檢校密直提學)이 되었는데 병으로 사직한 후 영주(榮州)로 돌아가 죽었다. 아들은 정도전(鄭道傳)·정도존(鄭道尊)·정도복(鄭道復)이며 정도전(鄭道傳)은 따로 전기가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정운경 [鄭云敬]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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