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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금계집 외집 제8권 / 제문(祭文) > > > 신재 주경유에 대한 제문〔祭周愼齋景游文〕 > > 규벽의 정기를 잉태하고 / 孕精璧奎 > 산천의 신령한 기운을 모았으니 / 鍾神川岳 > 성품은 효우가 돈독하고 / 性篤孝友 > 천품은 완전히 순박하네 / 稟全醇樸 > 학문은 스스로 터득함을 스승 삼았고 / 學自得師 > 도는 방으로 들어감을 기약했네 / 道期入室 > 많이 쌓고 깊이 나아가 / 多蓄深造 > 사업에 발휘하였네 / 發爲事業 > 일찍이 탄탄대로에서 내달려 / 早奮亨衢 > 높이 궁궐에서 거닐었네 / 高步雲霄 > 경연에서 임금의 허물 돕고 / 論思袞闕 > 맑은 조정에서 감격해 우러렀네 / 激仰淸朝 > 중년에 입직하다가 / 中年坐直 > 영남 고을 수령이 되었네 / 把麾嶺嶠 > 학문을 높이고 학교를 지었고 / 崇學設敎 > 현인을 높여 사당을 세웠네 / 尊賢立廟 > 교화는 백운동에 머물고 / 化留雲洞 > 은택이 타루비에 드러나네 / 恩著淚碑 > 몇 년 동안 넉넉히 지내다가 / 幾歲優游 > 깊은 자질 잘 기르니 / 善養深資 > 신명이 감응했네 / 神明感行 > 금석에 정성이 통하고 / 金石通誠 > 근심 깊어 도를 호위하니 / 憂深衛道 > 공이 지극하고 힘써 실행했네 / 功極力行 > 사방 벽에 서적을 두고 / 四壁書史 >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렴을 숭상했네 / 一心氷蘖 > 좌우로 규제하고 경계하여 / 右規左箴 > 밤낮으로 힘쓰고 두려워했네 / 日乾夕惕 > 강론하여 고금에 관통했고 / 講論通貫 > 흉금이 쾌활했네 / 胸襟快活 > 문장은 남은 일이니 / 餘事文章 > 두텁게 쌓아 널리 발휘했네 / 厚積博發 > 시는 호방한 이백을 추종하고 / 詩追豪李 > 문장은 기이한 한유를 따랐네 / 文襲奇韓 > 선비들이 옷자락을 치켜들고 / 士子摳衣 > 풍모를 향하여 만나 뵈었네 / 向風承顔 > 무리지어 따르며 재주를 이루니 / 群從達材 > 집안에 인재가 가득했네 / 階樹庭蘭 > 시대와 도가 형통하여 / 時與道亨 > 앞자리에서 은총 입었네 / 寵承前席 > 경연에서 충성으로 권고하고 / 忠告經幄 > 이윤처럼 경계하고 부열같이 계옥했네 / 伊戒傅沃 > 후설 맞아 언론을 출납하니 / 納言司喉 > 임금이 윤허하여 위징처럼 직간했네 / 龍允魏直 > 성균관에서 자제를 교육하니 / 國子敎胄 > 강석을 두루 펼쳤네 / 皐比周張 > 해서에서 풍속을 살폈는데 / 海西觀風 > 범방같이 세상을 정화했네 / 澄淸范滂 > 지위가 참판이었고 / 位亞地卿 > 옥당의 장관이었네 / 官長玉堂 > 재물이 넉넉했지만 검소함을 보였고 / 裕財示儉 > 불교를 저지하는 상소를 올렸네 / 觝佛抗章 > 세 조정에 백발로 섬기며 / 三朝素髮 > 나라를 근심하는 붉은 충성 바쳤네 / 憂國丹忱 > 집안을 부지하는 주춧돌이었고 / 柱石邦家 > 유림의 산두셨네 / 山斗儒林 > 임금의 은혜 보전하고 / 期保君恩 > 물러나 만년의 절개로 마쳤네 / 退終晩節 > 낙동강 가에 대가 높으니 / 洛涘臺高 > 물고기와 새들과 언약이 있었네 / 魚鳥有約 > 여력을 손상하지 않았는데 / 未愆膂力 > 갑자기 풍습에 걸리셨네 / 遽纏風濕 >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 天不憖遺 > 육순의 나이에 어찌 바삐 가셨나 / 耳順何忙 > 사문을 없애려 하니 / 將喪斯文 > 저 하늘을 믿기 어렵네 / 難諶彼蒼 > 명종께서 조회를 거두었고 / 當宁撤御 > 중외가 슬퍼했네 / 中外啣悲 > 염습할 옷감조차 없었으니 / 斂無布襲 > 은혜로운 부의를 특별히 내렸네 / 恩賻特施 > 장례치를 물품도 모자라자 / 葬缺資送 > 휼전도 넉넉하게 내렸네 / 卹典亦優 > 슬픔과 영광이 둘 다 지극하니 / 哀榮兩至 > 고향으로 반장했네 / 襯返狐丘 > 천한 사람을 문하에 올리니 / 滓賤登門 > 욕되게 이군이 맞이하여 / 辱御李君 > 나이 잊고 통가하니 / 忘年通家 > 쇠처럼 예리하고 난초같이 향기롭네 / 金利蘭薰 > 문하에 드나들며 / 許窺門牆 > 지나친 가르침을 입었네 / 過蒙湔拂 > 깊이 바다를 탐구하고 / 深探淵海 > 호탕하게 풍월을 읊었네 / 浩吟風月 > 한번 헤어져 삼년이 지났으니 / 一別三載 > 도성 남쪽이었네 / 日下天南 > 영결하는 소문도 듣지 못하고 / 訣未聞善 > 임종에 반함도 못했네 / 沒未飯含 > 죽음을 슬퍼하여 지각을 손상하니 / 怛化傷知 > 칼날이 부러지고 현이 끊어졌네 / 鍔斷絃絶 > 손수 쓰신 간독이 상자에 꽉차고 / 手簡盈箱 > 주옥같은 문장이 시축에 가득하네 / 瓊章滿軸 > 바람 맞으며 수답하려니 / 臨風欲酬 > 목이 메어 읽기도 어렵네 / 哽咽難讀 > 호해의 풍류와 / 湖海風流 > 용모가 영영 멀어졌지만 / 眉宇永隔 > 불후한 문장이 남았으니 / 不朽猶存 > 청사에 증명하리 / 可徵靑史 > 관직 때문에 구애되어 / 守官如拘 > 영전에 가서 조곡하지 못하네 / 阻哭靈几 > 은혜는 부모와 같이 여겼는데 / 恩均父視 > 조카의 예의를 다하지 못했네 / 禮缺猶子 > 멀리서 제수를 차려 놓으니 / 千里生蒭 > 아득히 전대의 현인에게 부끄럽네 / 遠愧前賢 > 술을 적셔 제문을 올리니 / 漬酒緘辭 > 눈물이 저승에 달하네 / 有淚徹泉 > 아, 애통하도다 / 嗚呼哀哉 > > [주-D001] 주경유(周景游) : 주세붕(周世鵬, 1495~1554)으로, 경유는 그의 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 호는 신재(愼齋)ㆍ남고(南皐)ㆍ무릉도인(武陵道人)ㆍ손옹(巽翁),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저서로《무릉잡고(武陵雜稿)》가 있다. 풍기 군수(豊基郡守)로 부임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설하였다. > > [주-D002] 규벽의 정기를 잉태하고 : 규벽은 규성(奎星)과 벽성(璧星)으로, 문장을 주관한다는 별이다. > > [주-D003] 임금의 허물 : 곤궐(袞闕)은 정사를 행하는 임금의 결점을 말한다. 《시경》 〈증민(烝民)〉에 “〔袞職有闕 維仲山甫補之〕”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 > [주-D004] 학교를 지었고 : 주세붕이 풍기 군수로 있으면서 풍기 지방의 교화를 위하여 향교를 이전하여 중건한 것을 말한다. > > [주-D005] 현인을 …… 세웠네 : 주세붕이 1543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한 것을 말한다. > > [주-D006] 옷자락을 치켜들고 : 윗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스승으로 예우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의 “어른이 계신 방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옷자락을 공손히 치켜들고 실내 구석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가서 자리에 앉은 다음에 응대를 반드시 조심성 있게 해야 한다.〔摳衣趨隅 必愼唯諾〕”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 [주-D007] 이윤(伊尹)처럼 경계하고 : 《서경》 〈이훈(伊訓)〉에서 이윤(伊尹)은 탕(湯) 임금의 손자 태갑(太甲)이 왕위에 오르자, 선왕(先王)의 “성스러운 방략은 원대하고, 훌륭한 교훈은 매우 분명하다.〔聖謨洋洋 嘉言孔彰〕”라고 하면서 이러한 선왕의 모훈(謨訓)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훈계하였다. > > [주-D008] 부열(傅說)같이 계옥(啓沃)했네 : 《서경》 〈열명 상(說命上)〉에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적셔라.〔啓乃心 沃朕心〕”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선도(善道)를 개진하여 임금을 인도하고 보좌한다는 뜻이다. > > [주-D009] 후설 …… 출납하니 : 승정원의 승지가 된 것을 말한다. > > [주-D010] 위징(魏徵)처럼 직간(直諫)했네 : 위징은 당 태종(唐太宗)의 직신(直臣)으로, 특히 직간(直諫)을 많이 하였다. 애교떤다는 말은 당 태종이 일찍이 대신(大臣)들과 함께 단소루(丹霄樓)에서 주연(酒宴)을 베풀고 담화(談話)하던 중에, 태종이 크게 웃으면서 이르기를 “사람들은 위징더러 등한하고 게으르다고 하는데, 나는 위징에게서 애교부리는 것만 보았을 뿐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新唐書 卷97 魏徵列傳》 > > [주-D011] 강석(講席)을 두루 펼쳤네 : 고비(皐比)는 호피(虎皮)로, 옛사람들이 호피를 깔고 앉아서 강학(講學)하였으므로, 후대에는 사석(師席)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 > [주-D012] 해서(海西)에서 풍속을 살폈는데 : 1549년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백운동서원의 예와 같이 해주에 수양서원(首陽書院)을 건립하였다. > > [주-D013] 범방(范滂)같이 세상을 정화했네 : 처음 부임하면서 난정(亂政)을 쇄신하여 세상을 맑게 하려는 뜻을 품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범방이 어지러운 기주(冀州)의 정정(政情)을 안찰하라는 명을 받고 출발할 적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손에 쥐고서는 천하를 정화시킬 뜻을 개연히 품었다.〔登車攬轡 慨然有澄淸天下之志〕”라고 하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67 范滂列傳》 > > [주-D014] 지위가 참판이었고 : 1549년에 호조 참판이 되었다. > > [주-D015] 옥당의 장관이었네 : 1546년에 홍문관 부제학이 되었다. > > [주-D016] 불교를 …… 올렸네 : 1551년(명종6) 정월에 〈상벽불소(上闢佛疏)〉를 올렸다. > > [주-D017] 술을 적셔 : 원문의 지면(漬綿)은 솜을 술에 담근 것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서치(徐穉)가 항상 솜을 술에 담갔다가 꺼내서 바싹 말리고 여기에 닭구이 한 마리를 싸 가지고 죽은 이의 무덤 곁에 가서 그 솜을 물에 적시어 술 기운이 우러나게 한 다음, 그 묘 앞에 백모(白茅)를 깔고 이것을 올려 조문(弔問)을 하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53 徐穉列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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