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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악의가 제나라를 정벌할 때 지은 격문〔樂毅伐齊檄〕 > > 대개 들으니, 제 환공(齊桓公)이 양공(襄公)을 복수(復讐)한 데 대해 《춘추》에서 그 장의(仗義)를 크게 여겼고, 오자서(伍子胥)가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채찍질한 것에 대해 사관은 그가 원수를 갚은 것을 가상하게 여겼다고 했다. 대개 삼강(三綱)이 우선으로 삼는 것은 한 하늘을 함께 머리에 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 전연(全燕)의 땅을 열후(列侯)의 봉토로 함께 받아 나라와 경사를 같이 하고 길이 종주(宗周)의 은택을 입어 누세(累世)에 복을 전해 감당(甘棠)의 기틀을 보장할 수 있었다. > > 지난 번 노군(老君)의 실증으로 인해 몰래 혀를 놀린 화를 불러 황제에게 주지 않고 차마 이웃을 습격하는 병사를 불렀다. 저 여(厲)의 사람이 감히 하늘에 닿을 기세로 반역을 자행하여 우리 종묘를 분탕(焚蕩)하고 우리 늙은이와 아이들을 죽이거나 노략질 하며 틈을 엿보아 침략하였다. 비록 우리나라가 틈이 있음으로 인했으나 마음을 달게 여겨 찬탈한 것은 참으로 너의 적이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군(寡君)이 어느 곳에 몸을 용납하겠는가? 외로운 신하가 하늘에 호소하여도 방법이 없으니 안타깝도다. 다행히 종팽(宗祊)이 경사를 돕고 신명이 인을 도움에 힘입어 사왕(嗣王)이 소강(少康)의 어짊이 있었고, 완민(頑民)이 성탕(成湯)의 덕을 생각했으며, 원한은 구천(句踐)의 상담(嘗膽)을 다했고, 분노는 부차(夫差)의 와신(臥薪)에 절실했다. 기어코 저 흉노를 칼로 찔러 선조에게 부끄러움을 씻고자 했다. 제단을 만들어 장수에게 절하니 효웅(梟雄)이 지팡이를 끌고 그림자가 따르며, 대(臺)를 쌓아 현인을 맞이하니 호걸이 바람을 바라보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위약(萎弱)한 기세를 이미 떨치고 추락한 정사를 다시 닦았다. 꾀를 좋아하여 이루니 바야흐로 다시 만드는 사업을 기초하고 때를 기다려 움직이니 한 번 바로잡는 공을 기약할 수 있었다. 그 기틀이 여기에 있으니 의심이 나지 않는데 무슨 점을 치겠는가? 또 흥멸(興滅)이 계속했다 끊어졌다 하는 것은 바로 천지가 만물을 만드는 인(仁)이다. 포악하고 잔인함을 제거하는 것은 참으로 패왕(伯王)이 난을 다스리던 방도이다. 더구나 소중한 천경지의(天經地義)에 있어서 어찌 예전부터 지금까지 혹시라도 차이가 있었겠는가? > > 신 악의(樂毅)가 왕영(王靈)에 아뢰어 삼가 천사(天吏)를 받들었다. 우리 군사가 지휘하니 웅비(熊羆)가 위엄을 만들고 덕과 마음을 함께하여 감격하니 바람과 구름이 빛을 움직인다. 복수할 칼날을 다투어 담금질하여 각각 나라에 보답할 마음을 가다듬으면 거꾸로 매달린 백만 명의 목숨이 채찍질에서 풀려날 수 있고 적을 받드는 70성의 나라가 날을 지적하여 도륙(屠戮)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천도는 죽이는 것을 싫어하고 살리는 것을 좋아한다. 천자의 군대는 정벌만 하고 싸우지 않으니 비록 흉역(凶逆)이 이미 지극했더라도 오히려 옥석(玉石)이 다 탈까 걱정하여 군전(軍前)에서 함벽(啣璧)을 기다리고 우선 경상(境上)에 병사를 주둔했다. 너희들은 먼저 순역(順逆)의 형세를 살피고 존망의 기미를 밝게 살펴 하늘을 감동시킨 사상보(師尙父)의 공훈을 생각하고 은혜를 판 진경중(陳敬仲)의 혜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문(轅門)에 달려가 효순(效順)하고 도적(圖籍)을 받들고 투항한다면 군신이 신수(身首)의 구분을 면하고 백성들이 안도의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혹 고집이 세고 명민하지 못해 깨닫지 못하고 가식(假息)으로 편안하여 뇌정(雷霆)의 위엄을 거절하고 감히 당랑(螗螂)처럼 분노를 떨치려고 한다면 화패(禍敗)가 길을 바르고 죄악(罪惡)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몸은 부질(斧鑕)의 기름이 되고 죽어서 흉역(凶逆)의 귀신이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 [주-D001] 악의가 …… 때 :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장수로 한(韓)ㆍ위(魏)ㆍ조(趙)ㆍ연(燕)의 연합군을 거느리고 제(齊)나라를 쳐서 70여 성을 빼앗았다. > > [주-D002] 오자서(伍子胥)가 …… 것 : 춘추 시대 사람으로, 이름은 원(員)이다. 모함으로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평왕(平王)에게 처형당하자, 오나라로 망명한 뒤 오왕 합려(闔閭)를 도와 초나라의 도읍 영(郢)으로 쳐들어가서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어 300대나 매질하고 나서야 원한을 풀었다고 한다. 후에 오왕 부차(夫差)가 월왕 구천(句踐)을 사로잡자 그를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권했으나 부차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치려하였다. 이에 강력히 만류하다가 죽임을 당하였고, 10여 년 후 오나라도 월나라에 멸망당하였다. 《史記 卷66 伍子胥列傳》 > > [주-D003] 원한은 …… 와신(臥薪) : 춘추 시대 월(越)나라의 제2대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와 싸우다가 크게 패하여 회계산(會稽山)에서 굴욕적인 화의(和議)를 체결하고 귀국한 뒤에 20년 동안 섶나무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는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끝에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망시켜 회계의 치욕을 씻은 고사를 말한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 > [주-D004] 함벽(啣璧) : 전쟁에 패한 쪽 사람이 자진해서 손을 뒤로 묶은 채 벽옥(璧玉)을 입에 물고서 폐백으로 바치는 것으로, 항복을 뜻한다. > > [주-D005] 순역(順逆)의 …… 공훈 : 사상보(師尙父)는 주(周)나라의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즉 강태공(姜太公)이 위수(渭水) 가의 반계(磻溪)에서 낚시질하며 천하에 큰 뜻을 펼 때를 기다리다가 문왕(文王)을 처음 만나 사부(師傅)로 추대되었다. 뒤에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하였다. > > [주-D006] 은혜를 …… 혜택 : 진경중(陳敬仲)은 춘추 시대 진 여공(陳厲公)의 아들로 이름은 완(完)이고, 경중은 그의 시호이다. 그는 뒤에 제(齊)나라에 망명하여 환공(桓公) 밑에서 벼슬하면서는 진(陳)을 전씨(田氏)로 바꾸어 행세하였는데, 그의 후손이 점차 창성해져서 경대부(卿大夫)가 되었고, 그의 9세손 전화(田和)에 이르러서는 끝내 강씨(姜氏)의 제(齊) 나라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이에 앞서 진경중을 낳았을 때 주(周) 나라 태사(太史)가 경중의 장래를 두고 점을 친 결과 관지비괘(觀之否卦)를 얻고는 말하기를 “나라의 빛남을 볼 것이니 왕(王)의 빈객이 되기에 이롭다. 이 사람이 진(陳)나라를 대신해서 나라를 가질 것인데, 이 나라에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창성해질 것이요, 또 자신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을 이른 말이다. 《春秋左傳氏 莊公22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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