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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퇴계 선생께 답한 편지〔答退溪先生書〕 > > 승려가 와서 삼가 서찰을 받고 새해의 경사를 받으셨을 것임을 생각하니 기뻐하며 경하하는 마음이 그지 없습니다. 삼가 편지를 받자오니 광채가 온 방을 비춥니다. 공경히 읽어본 나머지 자못 경계하고 유익함이 있었으니 진실로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 > 게다가 학문을 논한 서찰 한 장을 받아보게 되었는데 정밀하고 은미한 경지에 깊이 나아가 미진한 점이 없는 듯합니다. 의리가 더욱 친절함을 보았으니, 천박한 소견에 간절하게 개시(開示)해 주신 데에 깊이 사례 드립니다. 다만 제가 논한 강자(腔子) 이외에 먼저 내면(內面)을 설정하신 것은 아마 망탕(莾蕩)한 데에 떨어져 교섭이 없을 듯합니다. 아직 발하지 않음을 의논함은 이처럼 동정(動靜)의 사이에 있으니, 어디에 귀속시켜야 합니까. 삼절(三截)로 본 것이 아니라 삼관(三關)의 새로운 견해 같습니다. > > 간절한 가르침을 받으니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죄송하고 땀이 나서 고마움을 알겠습니다. 기명언(奇明彦 기대승)이 종횡으로 논한 여러 편은 변화에 출입하며 풍력(風力)을 담당하여 쉽게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변론하여 이기기를 좋아하는 기상을 면하지 못할 듯합니다. 출발하는 처음부터 이처럼 급하게 하려는 폐단이 있으니 만일 줄을 고치지 않는다면 아마 원대한 기약을 감당하지 못할 듯합니다. > > 이일재(李一齋)는 부러워한 지가 벌써 오래이었고, 또 논한 바를 보면 은거하여 뜻을 구하니 참으로 가상하지만 아마 경약(徑約)하여 누추함을 감추려는 듯합니다. 김담재(金湛齋)는 반드시 후지(厚之)의 시주(詩酒) 수단이니, 또한 더욱 향상할 수 있었지만 빨리 세상을 떠난 것이 안타깝습니다. > > 삼가 선생님의 답장을 보면 명백하고 통쾌하여 이기(理氣)와 성정(性情)의 동이(同異)를 이해함이 있으니, 마치 잘 드는 칼로 얼킨 것을 베어 풀이하듯 분석했습니다. 10년 동안 공부한 정밀한 뜻을 비로소 한쪽 무늬를 엿보았습니다. 저와 같이 얕은 식견으로 감탄하고 사모하며 복응(服膺)할 겨를도 없는데 어떻게 한 구절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또 고쳐서 글자를 놓은 뒤에 더욱 밝게 통함을 보겠으니 강습(講習)하며 서로 계발(啓發)하는 공이 또한 적은 보탬이 아닙니다. 다만 저들의 부석(剖析)이 너무 지나쳐서 이곳의 지적을 조금도 듣지 않으니, 저들의 꿋꿋하고 왕성한 기운으로 앉아서 기꺼이 항복의 깃발을 세우려고 하겠습니까. 호남(湖南)의 학문은 이미 대개를 보았습니다. > > 응천(凝川 밀양)에 처사 신계성(申季誠)이 있는데, 평상이 뚫어지도록 40여 년 동안 학문을 닦아 자득(自得)한 공이 많습니다. 건중(建中 曺植)이 일찍이 스승으로 삼는다고 하니, 조만간에 한 번 찾아가 그 사람됨을 보려고 합니다. 《주서(朱書)》를 교감(校勘)하는 일을 지금 시작하려고 하는데, 인간(印刊)하는 범례는 경계한 대로 하겠습니다. 다만 종이가 매우 귀하여 널리 배포하지 못할 듯합니다. 강이(剛而)와 문지(文之) 등이 좌우에서 이끌어 도와주고 있습니다. > > 사당의 위차(位次)는 그 곡절(曲折)을 자상하게 보여 주셨으니, 두 분을 온전하게 높여 서로 누름에 이르지 않게 되었으니, 삼가 말씀대로 하려 합니다. 지지(止止) 김선원(金善源)이 대대로 가천(伽川) 가에 살았습니다. 몇 이랑 전답에 몇 칸 초가를 짓고 직접 불을 지펴 부모를 효성스럽게 모시며 도를 음미하고 가난에 안주하니 점필재(佔畢齋)의 문하에 자주 장허(奬許)를 받았고, 김문경(金文敬)과 또 평소 종유(從遊)함이 있었습니다. 사론(士論)이 문충의 아래에 부치려 하니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문열(文烈)과 문충(文忠)은 모두 정남향(正南向)의 위치에 있으니, 부자(父子) 간의 자리는 차별이 없는 듯하니, 문충과 지지당(止止堂)을 동서(東西)에 배향(配享)하는 것도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 저는 한 번 가서 관리가 되어 마침 바쁜 고을를 만나 비록 다스리기 어렵다고 불리지만 가르침에 달려감을 알겠으니 조금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좌석이 겨우 따뜻해지자 공사(公私)의 일이 모여들어 분수에 따라 응접하지만, 도리어 쇠잔한 고을에서 앉아 휘파람 부는 날만 같지 못합니다. 또한 학문(學問) 상에서 분요(紛擾)한 듯하여 온전히 힘을 들이지 못하여 모색(茅塞)함이 날로 심하여 때로 간혹 송구스러우니 어찌합니까. > > 금생(琴生)이 며칠 머물며 남으로 내려왔는데 다만 하인 한 사람을 보냈는데 어찌 번거롭게 허비하십니까. 정자의 승려〔亭僧〕이 마침 송채(訟債 소송 부채)를 만나 모두 다 흩은 뒤에 자못 부름을 받을 가망도 없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 > 남은 회포가 많아 작은 종이에 자세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삼가 뵙지 못하는 사이에 동정이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 > [주-D001] 줄을 …… 듯합니다 :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면 일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줄을 바꾼다는 것은 거문고를 연주할 때 기러기 발을 다시 바꾸고 거문고 줄을 새로 매단다는 뜻이다. > > [주-D002] 이일재(李一齋) : 이항(李恒, 1499~1576)으로 , 일재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항지(恒之),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일재집》이 있다. > > [주-D003] 경약(徑約) : 박문(博文)하고서 약례(約禮)해야 하는데, 박문은 거치지 않고 바로 약례에만 치중하는 것을 말한다. > > [주-D004] 김담재(金湛齋) : 김인후(金麟厚, 1510~1560)로, 담재는 그의 호이다.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ㆍ담재(湛齋),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1531년(중종26) 성균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한 뒤 이황(李滉) 등과 교류가 두터웠다. > > [주-D005] 신계성(申季誠) : 1499~1562. 자는 중성(仲誠), 호는 송계(松溪)이다. 성리학(性理學)에 뜻을 두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박영(朴英)에게 수학(受學)하고, 김대유(金大有)ㆍ조식(曺植) 등과 종유(從遊)하여 삼고(三高)라 불렸다. > > [주-D006] 바쁜 고을 : 극로(劇路)는 업무가 복잡한 도에 속한 고을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금계가 군수로 부임했던 단양을 가리킨다. > > [주-D007] 쇠잔한 …… 부는 : 지방관이 정사를 속관(屬官)에게 맡기고 청한(淸閑)하게 지내는 것을 가리킨다. 그가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서는 잠질(岑晊)을 공조(功曹)로 삼고 그에게 공사(公事)를 다 처리하도록 맡겨 버리므로 그곳 민간에서 노래하기를 “남양 태수는 바로 잠공효이고요, 홍농 성진은 앉아 읊조리기만 하누나.〔南陽太守岑公孝 弘農成瑨但坐嘯〕”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공효(公孝)는 잠질의 자이다. 《後漢書 卷67 黨錮列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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