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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내가 생계 꾸린 것이 비둘기만 못하여 / 治生我亦拙於鳩 > 평생에 한 골짝의 계모를 이루지 못 하였네 / 未遂平生一壑謀 > 도산에서 일 마치고 남은 칼날 있거든 / 辦了陶山餘刃在 > 날 위해 가을에 금계에도 꾸며 주게나 / 爲吾粧點錦溪秋 > > > 집 짓느라 온갖 고생하는 그대 가련한데 / 憐汝經營飽險艱 > 올 적마다 차가운 눈바람 띠고 오네 / 來過正帶雪風寒 > 여장 풀자 또 계선의 시구 얻었으니 / 解裝又得溪仙句 > 생각은 벌써 구름 낀 아득한 곳으로 들어가네 / 思入雲山縹緲間 > > [주-D001] 도산(陶山) …… 스님 : 이황이 1557년(명종12) 57세 때 공조 참판에서 물러나서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그 이듬해에 친히 건축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옥사도자(屋舍圖子)를 그렸다. 당시 용수사(龍壽寺) 승려였던 법련(法蓮)이라는 스님이 공사를 시작하여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에, 정일(靜一) 스님이 뒤를 이어서 이황의 나이 61세 때인 1561년(명종16) 가을에 완성했다. 《퇴계집》 권3에 수록된 〈도산잡영(陶山雜詠)〉에 나온다. > > [주-D002] 남은 칼날 있거든 : 여력이나 솜씨를 비유한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지금 내가 칼을 잡은 지 19년이나 되고 잡은 소도 수천 마리를 헤아리는데, 칼날이 지금 숫돌에서 금방 꺼낸 것처럼 시퍼렇다. 소의 마디와 마디 사이에는 틈이 있는 공간이 있고 나의 칼날에는 두께가 없으니, 두께가 없는 것을 그 틈 사이에 밀어 넣으면 그 공간이 널찍해서 칼을 놀릴 적에 반드시 여유가 있게 마련이다.〔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彼節者有間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間 恢恢乎其於遊刃 必有餘地矣〕”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 > [주-D003] 금계(錦溪)에도 꾸며 주게나 : 황준량도 이 무렵에 고향 풍기에 정자를 짓고 은거할 계획을 했다. 그런 생각이 〈금계복정기(錦溪卜亭基)〉와 〈유금선대(遊錦仙臺)〉, 〈금계벽정사기 선점일절(錦溪闢精舍基 先占一絶)〉 등 여러 시에 드러난다. 장점(粧點)은 좋은 땅 가려 집을 짓는다는 뜻이다. > > [주-D004] 계선(溪仙)의 시구 : 토계(兎溪)에 은거한 이황이 승려에게 지어 준 시구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황이 서당을 짓다가 경주에 볼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을 때, 법련 스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소감을 적어 준 〈증사문법련 병서(贈沙門法蓮 幷序)〉라는 시가《퇴계집》 속집 권2에 수록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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