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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경유를 꿈꾸고서 감회가 있어〔夢周景遊有感〕 > > 사별하여 목이 멘 지 오 년이 흘렀건만 / 死別呑聲動五年 > 꿈속의 풍채는 오히려 의연하여라 / 夢中風彩尙依然 > 산양에서 이웃 피리소리에 이미 슬퍼졌는데 / 山陽已愴隣吹笛 > 요해에서 학으로 환생한 신선에 다시 놀랐네 / 遼海還驚鶴幻仙 > 묘소 왼쪽 푸른 풀이 적시는 술을 저버려 / 墓左靑蒭違漬酒 > 거문고 속 〈백설가〉는 애절한 현을 끊었네 / 琴中白雪斷哀絃 > 분명 내게 길이 생각하자는 뜻 표하셨음에 / 分明表我長相憶 > 시혼이 구천을 격해 있다는 것 믿지 못하겠네 / 不信詩魂隔九泉 > > [주-D001] 주경유(周景遊) : 주세붕(周世鵬, 1495~1554)으로, 경유는 그의 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 호는 신재(愼齋)ㆍ손옹(巽翁)ㆍ남고(南皐)이며,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검열, 부수찬 등의 직을 거쳐 풍기 군수에 부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즉 소수서원을 세워 유생들을 교육하고 향촌의 교화에 힘썼다. 이후 벼슬이 도승지, 대사성, 호조 참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 > [주-D002] 산양(山陽)에서 …… 슬퍼졌는데 : 진(晉)나라 때 상수(尙秀)가 친구 혜강(嵇康)이 죽은 뒤 산양(山陽)에 있는 혜강의 옛 집을 지나다가 이웃 사람이 피리 부는 소리를 듣고 옛날을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고사를 사용한 것이다. 《晉書 卷49 向秀列傳》 > > [주-D003] 요해(遼海)에서 …… 놀랐네 : 한(漢)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서 훗날 학(鶴)으로 변화하여 고향인 요동의 성문(城門)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있었더니, 어느 소년(少年)이 활로 쏘려 하기에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여! 집 떠난 지 천 년에 지금 비로소 돌아왔는데, 성곽은 예와 같건만 사람은 옛사람 아니구나. 왜 선술은 배우지 않아 무덤만 줄을 이었는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하고는 마침내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갔다는 고사를 사용한 시구이다. > > [주-D004] 백설가(白雪歌)는 …… 끊었네 : 〈백설가〉는 너무도 고상해서 따라 부르기 힘든 노래를 말한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대중가요인 〈하리(下里)〉와 〈파인(巴人)〉은 수천 명이 따라 불렀지만, 〈백설(白雪)〉과 〈양춘(陽春)〉의 노래는 너무 고상하여 겨우 수십 명밖에 따라 부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問)〉에 보인다. 《文選 卷23》 여기서는 그런 고상한 노래를 부르던 고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뜻으로 쓰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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