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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군수 한중온을 전송하는 시에 차운하다〔贈送韓地主仲溫次其韻〕 > > > 소두칭송하는 노래로 온 고을이 기뻐했는데 / 召杜歌騰闔境歡 > 누가 복자천에게 거문고를 못 타게 했나 / 誰敎宓宰罷淸彈 > 백성 근심하느라 벼슬하는 즐거움 몰라도 / 憂民不識居官樂 > 세상살이 험하다는 건 이제 알게 되었으리 / 涉世應知行路難 > 행장엔 거문고와 학뿐이니소매 썰렁하고 / 琴鶴輕裝風袂冷 > 산천의 아름다운 정취 속에도 초당은 추우리 / 湖山佳趣草堂寒 > 그리워함, 오주의 달은 떨어져 있지 않으니 / 相思不隔吳州月 > 양쪽에서 바라보며 천리 먼 회포 나누리라 / 千里襟懷兩地看 > > [주-D001] 한중온(韓仲溫)한기(韓琦)로, 중온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호는 봉곡(蓬谷)이다. 1540년(중종35) 식년시에 급제하였고, 1554년(명종9) 풍기 군수를 지냈다. > > [주-D002] 소두(召杜)소신신(召信臣)과 두시(杜詩)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신신은 전한(前漢) 때의 양리(良吏)이고 두시는 후한(後漢) 때의 양리인데 두 사람 모두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자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하고 선정(善政)을 펴, 백성들이 소신신을 사랑하여 소부(召父)라 불렀고, 두시를 소부의 대칭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漢書 卷89 循吏傳》 《漢書 卷31 郭杜孔張列傳》 > > [주-D003] 복자천(宓子賤)에게 …… 했나 선정을 더 이상 베풀지 못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복자천(宓子賤)은 선보(單父)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적에 마루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없이 거문고만 연주했는데도 잘 다스려져 교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呂氏春秋 察賢》 > > [주-D004] 행장엔 거문고와 학뿐이니 청렴한 관리를 비유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조변(趙抃)은 철면어사(鐵面御史)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지방관으로 부임하면서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만을 가지고 갔다고 한다. > > [주-D005] 오주(吳州)의 …… 나누리라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이 달을 보면서 정을 나누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강동으로 가는 장사인을 보내며〔送張舍人之江東〕〉라는 시에서 “오주에서 달을 보거든 천리 밖에서 날 생각해 주오.〔吳州如見月 千里幸相思〕”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古文眞寶前集 卷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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