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란척촉회(月瀾躑躅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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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7회 작성일 21-11-01 10:03본문
월란정사(月瀾精舍)는 내살미마을에서 싹시골(삵실)가는 길 왼족 언덕위에
위치하고 도로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20여분 오르면 의성 사촌의 만취당 김사원과
간재 이덕홍이 도산에 입문하여 10년간 수학하던 월란암(月瀾菴) 옛터에 1860년
사촌김씨 문중에서 지은정자로 동재를 은구재(隱求齋), 서재는 선생이 손수
고정(考亭)의 관선시(觀善詩)를 써 주시어 관선재(觀善齋), 마루는 선생의
서림화운시 연산월영(憐山月映)의 '선생을 비춘 저달 나를 어여삐 여겨 밝게
비추어다오'라는 뜻을 취하여 월영헌(月暎軒)이라 하였다고 한다
퇴계선생은 1546년 하계마을 양진암에 거쳐할때 농암선생을 모시고 제자들과
월란대에 올라 상화유산(賞花遊山)하기도 하였고 1547년 3월 월란사에서
주자의 서림원사를 화운해 시를 짓고 그후 매년 철쭉이 만발하는 시기에
월란척촉회(月瀾躑躅會) 가졌으며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고 한다.
월란칠대(月瀾七臺) 삼곡(三曲)은 월란정사앞에 위치하고 퇴계선생이 朱子의
西林院詩를 화운하고 처음으로 주자를 스승으로 삼아 도학을 이어가고자 선언한
陶山 道學의 발상지로 많은 선현들이 시를 읊고 도학을 講磨하며 性情을
治養하던 곳으로 도산구곡중 제6곡(川沙曲) 위에 자리하여 예안오악(청량산,
축육봉, 국망봉, 용두산, 영지산)과 도산구곡및 청하(靑霞), 자하(紫霞)등
도산의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할수 있는곳이라 1986년 포항공대 권오봉 박사가
고증을 거쳐 월란칠대기적비를 세웠다고 한다.
#18,821.①금당암에서 ②무릉의 시에 차운하다(金堂菴次武陵韻).
-黃俊良(황준량)::朝鮮-
홀로 세 칸 집에 기대어 섰더니 / 獨倚三間屋(독의삼간옥)
눈 아래 만리의 하늘이 펼쳐졌네 / 平看萬里天(평간만리천)
눈썹이 눈과 같은 외로운 스님이 / 孤僧眉似雪(고승미사설)
털옷 안고 작은 창가에서 잠이 드셨네 / 擁褐小窓眠(옹갈소창면)
-古譯院(譯)-
①금당암(金堂菴) : 소백산에 있던 암자 이름이다. 현재는 없고, 위치 또한 미상이다.
②무릉(武陵) : 주세붕(周世鵬, 1495~1554)으로,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ㆍ손옹(巽翁)ㆍ남고(南皐)ㆍ무릉도인(武陵道人),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1541년(중종36) 향리인 풍기 군수로 부임하여 풍기향교를 이건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워 유생들을 교육하고 향촌의 교화에 힘썼다. 황준량과는 주고받은 시문이 수십 편 있다.
#18,822.선성의 ①쌍벽정에서 조원과 경호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宣城雙碧亭次調元景浩先生).
-黃俊良(황준량):朝鮮-
붉은 용마루 그림자가 푸른 강가에 떨어지니 / 朱甍影落碧江濱(주맹영락벽강빈)
천고에 아름다운 이름이라 기쁨 더욱 새롭네 / 千古佳名喜更新(천고가명희경신)
그림 같은 강가 성에는 풍광이 넉넉하고 / 畫裏江城餘物色(화리강성여물색)
바람 앞 ②옥 같은 나무는 옛날의 시인이라네 / 風前玉樹舊詩人(풍전옥수구시인)
기심 잊어 강변 갈매기와 날마다 친하고 / 忘機日狎翹沙雪(망기일압교사설)
그물 던져 이따금 회 뜰 물고기 잡아올리네 / 擧網時看入膾銀(거망시간입회은)
푸른 대나무 소나무가 늦은 철 푸르름 더하니 / 翠竹蒼松添晩碧(취죽창송첨만벽)
벼슬 살면서도 ③갈천씨의 백성 가진 것이네 / 官居還有葛天民(관거환유갈천민)
강성화리(江城畫裏)는 사조(謝脁)의 일을 쓴 것이고 옥수풍전(王樹風前)은 사씨(謝氏) 집안의 일을 쓴 것이다.
-古譯院(譯)-
①쌍벽정(雙碧亭) : 예안현 남쪽에 현감 임내신(任鼐臣)이 지은 것을 농암 이현보가 중수했는데 청산(靑山)을 등지고 벽수(碧水)를 마주보고 있어 ‘쌍벽(雙碧)’이라 했다 한다.
②옥 같은 나무 : 아래에 나오는 황준량의 자주(自注)로 보아 눈을 쓰고 있는 나무를 비유적으로 칭한 것으로 보인다.
③갈천씨(葛天氏)의 백성 : 아무 욕심도 없는 천진한 사람을 말한다. 갈천씨는 상고(上古) 시대 전설상의 제왕으로 무위(無爲)의 정치로 나라를 잘 다스렸다 한다.
#18,823.또 이퇴계의 시에 차운하다(又次李退溪韻).
-黃俊良(황준량):朝鮮-
헛된 명성이 한 몸 도모에 무슨 도움이 되랴 / 虛名何益爲身謀(허명하익위신모)
①옻에 머리 감으며 그만 둘 길 없어 한탄하네 / 沐漆還嗟解末由(목칠환차해말유)
거울 속 얼굴과 머리카락은 옛 모습이 아니니 / 容髮鏡中非舊面(용발경중비구면)
단풍과 꽃이 서리 내린 뒤에 시드어가는 가을 / 楓花霜後已殘秋(풍화상후이잔추)
흐르는 세월이란 시위를 떠난 화살이고 / 流光未繫辭弦矢(유광미계사현시)
알량한 학문은 거슬러 오르는 배에 탄 것인 듯 / 末學如登上瀨舟(말학여등상뢰주)
언제나 벼슬 내던지고 갈매기와 친구 되어 / 何日焚魚歸結社(하일분어귀결사)
고요한 생활 속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을까 / 爲將眞樂靜中求(위장진악정중구)
-古譯院(譯)-
①옻에 머리 감으며:생계를 위해 미관말직에 붙어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진관(秦觀)이 가족을 위해 관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여 “옻으로 머리를 감으면서 머리를 펴려고 하는 것과 같다.〔如沐漆而求解〕” 하였다고 한다.
#18,824.이퇴계가 부쳐준〈①월란암에서 놀며〉 시에 차운하다(次李退溪遊月瀾菴見寄之作).
-黃俊良(황준량):朝鮮-
평생 초야의 삶에 풍류가 넉넉하나니 / 平生丘壑足風流(평생구학족풍류)
나막신 신고 다시 오니 절간 그윽하구나 / 理屣重來蕭寺幽(이사중래소사유)
난간 앞 문화산은 말쑥이 하늘에 닿아 있고 / 當檻文華晴接昊(당함문화청접호)
처마 곁 맑은 낙동강은 맑게 가을 기운 머금었네 / 傍簷淸洛凈涵秋(방첨청락정함추)
약초 캐며 살아가니 선계의 흥취 느끼고 / 挑芝采朮尋眞興(도지채출심진흥)
풍월 시 읊으며 흐뭇하게 유람하시리라 / 弄月吟風得意遊(농월음풍득의유)
병든 몸 관직 생활을 부질없이 부끄러워하며 / 空愧病腰饞斗粟(공괴병요참두속)
운천으로 고개 돌리니 뜻 더욱 아득하네 / 雲泉回首意悠悠(운천회수의유유)
-古譯院(譯)-
①월란암(月瀾菴) :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단천리 자하봉(紫霞峯) 아래에 있었던 사찰이다. 이황(李滉)ㆍ이현보(李賢輔) 등이 이곳에서 ‘월란척촉회(月瀾躑躅會)’를 열어 경치를 즐기며 강학(講學)하였던 곳이다.
#18,825.이퇴계가 서울에서 ①‘월하장음구불귀’를 운으로 하여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次李退溪在洛寄詩以月下長吟久不歸爲韻).
黃俊良(황준량):朝鮮-
도성에서 보내온 편지 삼가 받들어 / 恭承日邊書(공승일변서)
바위 머리 달빛 아래서 펼쳐 읽었네 / 披讀巖頭月(피독암두월)
②땅에 던지니 금석 소리 울리고 / 擲地作金聲(척지작금성)
서릿바람이 숲속 나무를 진동하였네 / 霜風震林樾(상풍진림월)
드높은 가을날 객창은 서늘하고 / 秋高客窓涼(추고객창량)
달 밝은 밤 바람결에 이슬이 내렸네 / 月明風露下(월명풍로하)
한묵의 마당에서 정신 놀게 하였더니 / 遊神翰墨場(유신한묵장)
마침 ③자귀 휘두르는 자 있었네 / 會有揮斤者(회유휘근자)
선학의 하얀 깃털 가지런하고 / 仙鶴霜毛整(선학상모정)
가을 하늘은 만 리 아득히 펼쳐졌네 / 秋霄萬里長(추소만리장)
어찌 장막에 둥지 튼 제비가 / 寧同巢幕燕(영동소막연)
뜻대로 염량을 점치는 것과 같으랴 / 隨意占炎涼(수의점염량)
서리에 갈리고 바람과 이슬에 씻겨 / 霜磨風露洗(상마풍로세)
고고한 사람의 마음처럼 빛나는데 / 烱似高人心(경사고인심)
서재 휘장에 기대어 우두커니 앉아 / 突兀憑書幌(돌올빙서황)
회포 다 읊지 못하였으리라 / 應懷不盡吟(응회부진음)
계수나무 숲에 기대어 길게 읊건만 / 長吟倚桂叢(장음의계총)
④적선은 못 본 지 오래이네 / 不見謫仙久(불견적선구)
구슬 같은 시구 하늘에서 떨어지니 / 珠璣落九天(주기락구천)
⑤무하유의 세계에서 온 것이리라 / 來自無何有(내자무하유)
시냇물 속의 달빛 가슴을 해맑게 하고 / 澗月凈氷襟(간월정빙금)
바위께 바람 뼛속까지 시원하게 하네 / 巖風淸刮骨(암풍청괄골)
푸른 산이 아직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 碧山未負吾(벽산미부오)
은어대 태운 일이 이른 것을 후회하랴 / 焚魚悔早不(분어회조불)
-古譯院(譯)-
①월하장음구불귀(月下長吟久不歸) : 이백(李白)의 〈금릉 성 서쪽 누각의 달 아래서 읊다〔今陵城西樓月下吟〕〉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②땅에 …… 울리고 : 훌륭한 시문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짓고 벗 범영기(范榮期)에게 “이 글을 땅에 던져 보았더니 금석 악기 소리가 나더라.” 하기에, 범영기가 읽어 보고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③자귀 휘두르는 자 : 시문(詩文) 같은 것의 능숙한 솜씨를 비유한 말이다. 초(楚) 나라 영인(郢人)이 자기 코끝에다 파리 날개만 한 흙을 바르고 장석(匠石)을 시켜 그를 깎아내라 하자, 장석이 자귀를 휘둘러 그 흙을 완전히 깎아냈는데도 코는 아무렇지 않았다 한다.
④적선(謫仙) : 인간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뛰어난 문사를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의 글을 보고 감탄하며 “그대는 인간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⑤무하유(無何有) :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말로, 이 세상 밖 이상향을 비유한 말로 쓴다.
위치하고 도로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20여분 오르면 의성 사촌의 만취당 김사원과
간재 이덕홍이 도산에 입문하여 10년간 수학하던 월란암(月瀾菴) 옛터에 1860년
사촌김씨 문중에서 지은정자로 동재를 은구재(隱求齋), 서재는 선생이 손수
고정(考亭)의 관선시(觀善詩)를 써 주시어 관선재(觀善齋), 마루는 선생의
서림화운시 연산월영(憐山月映)의 '선생을 비춘 저달 나를 어여삐 여겨 밝게
비추어다오'라는 뜻을 취하여 월영헌(月暎軒)이라 하였다고 한다
퇴계선생은 1546년 하계마을 양진암에 거쳐할때 농암선생을 모시고 제자들과
월란대에 올라 상화유산(賞花遊山)하기도 하였고 1547년 3월 월란사에서
주자의 서림원사를 화운해 시를 짓고 그후 매년 철쭉이 만발하는 시기에
월란척촉회(月瀾躑躅會) 가졌으며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고 한다.
월란칠대(月瀾七臺) 삼곡(三曲)은 월란정사앞에 위치하고 퇴계선생이 朱子의
西林院詩를 화운하고 처음으로 주자를 스승으로 삼아 도학을 이어가고자 선언한
陶山 道學의 발상지로 많은 선현들이 시를 읊고 도학을 講磨하며 性情을
治養하던 곳으로 도산구곡중 제6곡(川沙曲) 위에 자리하여 예안오악(청량산,
축육봉, 국망봉, 용두산, 영지산)과 도산구곡및 청하(靑霞), 자하(紫霞)등
도산의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할수 있는곳이라 1986년 포항공대 권오봉 박사가
고증을 거쳐 월란칠대기적비를 세웠다고 한다.
#18,821.①금당암에서 ②무릉의 시에 차운하다(金堂菴次武陵韻).
-黃俊良(황준량)::朝鮮-
홀로 세 칸 집에 기대어 섰더니 / 獨倚三間屋(독의삼간옥)
눈 아래 만리의 하늘이 펼쳐졌네 / 平看萬里天(평간만리천)
눈썹이 눈과 같은 외로운 스님이 / 孤僧眉似雪(고승미사설)
털옷 안고 작은 창가에서 잠이 드셨네 / 擁褐小窓眠(옹갈소창면)
-古譯院(譯)-
①금당암(金堂菴) : 소백산에 있던 암자 이름이다. 현재는 없고, 위치 또한 미상이다.
②무릉(武陵) : 주세붕(周世鵬, 1495~1554)으로,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ㆍ손옹(巽翁)ㆍ남고(南皐)ㆍ무릉도인(武陵道人),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1541년(중종36) 향리인 풍기 군수로 부임하여 풍기향교를 이건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워 유생들을 교육하고 향촌의 교화에 힘썼다. 황준량과는 주고받은 시문이 수십 편 있다.
#18,822.선성의 ①쌍벽정에서 조원과 경호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宣城雙碧亭次調元景浩先生).
-黃俊良(황준량):朝鮮-
붉은 용마루 그림자가 푸른 강가에 떨어지니 / 朱甍影落碧江濱(주맹영락벽강빈)
천고에 아름다운 이름이라 기쁨 더욱 새롭네 / 千古佳名喜更新(천고가명희경신)
그림 같은 강가 성에는 풍광이 넉넉하고 / 畫裏江城餘物色(화리강성여물색)
바람 앞 ②옥 같은 나무는 옛날의 시인이라네 / 風前玉樹舊詩人(풍전옥수구시인)
기심 잊어 강변 갈매기와 날마다 친하고 / 忘機日狎翹沙雪(망기일압교사설)
그물 던져 이따금 회 뜰 물고기 잡아올리네 / 擧網時看入膾銀(거망시간입회은)
푸른 대나무 소나무가 늦은 철 푸르름 더하니 / 翠竹蒼松添晩碧(취죽창송첨만벽)
벼슬 살면서도 ③갈천씨의 백성 가진 것이네 / 官居還有葛天民(관거환유갈천민)
강성화리(江城畫裏)는 사조(謝脁)의 일을 쓴 것이고 옥수풍전(王樹風前)은 사씨(謝氏) 집안의 일을 쓴 것이다.
-古譯院(譯)-
①쌍벽정(雙碧亭) : 예안현 남쪽에 현감 임내신(任鼐臣)이 지은 것을 농암 이현보가 중수했는데 청산(靑山)을 등지고 벽수(碧水)를 마주보고 있어 ‘쌍벽(雙碧)’이라 했다 한다.
②옥 같은 나무 : 아래에 나오는 황준량의 자주(自注)로 보아 눈을 쓰고 있는 나무를 비유적으로 칭한 것으로 보인다.
③갈천씨(葛天氏)의 백성 : 아무 욕심도 없는 천진한 사람을 말한다. 갈천씨는 상고(上古) 시대 전설상의 제왕으로 무위(無爲)의 정치로 나라를 잘 다스렸다 한다.
#18,823.또 이퇴계의 시에 차운하다(又次李退溪韻).
-黃俊良(황준량):朝鮮-
헛된 명성이 한 몸 도모에 무슨 도움이 되랴 / 虛名何益爲身謀(허명하익위신모)
①옻에 머리 감으며 그만 둘 길 없어 한탄하네 / 沐漆還嗟解末由(목칠환차해말유)
거울 속 얼굴과 머리카락은 옛 모습이 아니니 / 容髮鏡中非舊面(용발경중비구면)
단풍과 꽃이 서리 내린 뒤에 시드어가는 가을 / 楓花霜後已殘秋(풍화상후이잔추)
흐르는 세월이란 시위를 떠난 화살이고 / 流光未繫辭弦矢(유광미계사현시)
알량한 학문은 거슬러 오르는 배에 탄 것인 듯 / 末學如登上瀨舟(말학여등상뢰주)
언제나 벼슬 내던지고 갈매기와 친구 되어 / 何日焚魚歸結社(하일분어귀결사)
고요한 생활 속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을까 / 爲將眞樂靜中求(위장진악정중구)
-古譯院(譯)-
①옻에 머리 감으며:생계를 위해 미관말직에 붙어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송(宋)나라 진관(秦觀)이 가족을 위해 관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여 “옻으로 머리를 감으면서 머리를 펴려고 하는 것과 같다.〔如沐漆而求解〕” 하였다고 한다.
#18,824.이퇴계가 부쳐준〈①월란암에서 놀며〉 시에 차운하다(次李退溪遊月瀾菴見寄之作).
-黃俊良(황준량):朝鮮-
평생 초야의 삶에 풍류가 넉넉하나니 / 平生丘壑足風流(평생구학족풍류)
나막신 신고 다시 오니 절간 그윽하구나 / 理屣重來蕭寺幽(이사중래소사유)
난간 앞 문화산은 말쑥이 하늘에 닿아 있고 / 當檻文華晴接昊(당함문화청접호)
처마 곁 맑은 낙동강은 맑게 가을 기운 머금었네 / 傍簷淸洛凈涵秋(방첨청락정함추)
약초 캐며 살아가니 선계의 흥취 느끼고 / 挑芝采朮尋眞興(도지채출심진흥)
풍월 시 읊으며 흐뭇하게 유람하시리라 / 弄月吟風得意遊(농월음풍득의유)
병든 몸 관직 생활을 부질없이 부끄러워하며 / 空愧病腰饞斗粟(공괴병요참두속)
운천으로 고개 돌리니 뜻 더욱 아득하네 / 雲泉回首意悠悠(운천회수의유유)
-古譯院(譯)-
①월란암(月瀾菴) :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단천리 자하봉(紫霞峯) 아래에 있었던 사찰이다. 이황(李滉)ㆍ이현보(李賢輔) 등이 이곳에서 ‘월란척촉회(月瀾躑躅會)’를 열어 경치를 즐기며 강학(講學)하였던 곳이다.
#18,825.이퇴계가 서울에서 ①‘월하장음구불귀’를 운으로 하여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次李退溪在洛寄詩以月下長吟久不歸爲韻).
黃俊良(황준량):朝鮮-
도성에서 보내온 편지 삼가 받들어 / 恭承日邊書(공승일변서)
바위 머리 달빛 아래서 펼쳐 읽었네 / 披讀巖頭月(피독암두월)
②땅에 던지니 금석 소리 울리고 / 擲地作金聲(척지작금성)
서릿바람이 숲속 나무를 진동하였네 / 霜風震林樾(상풍진림월)
드높은 가을날 객창은 서늘하고 / 秋高客窓涼(추고객창량)
달 밝은 밤 바람결에 이슬이 내렸네 / 月明風露下(월명풍로하)
한묵의 마당에서 정신 놀게 하였더니 / 遊神翰墨場(유신한묵장)
마침 ③자귀 휘두르는 자 있었네 / 會有揮斤者(회유휘근자)
선학의 하얀 깃털 가지런하고 / 仙鶴霜毛整(선학상모정)
가을 하늘은 만 리 아득히 펼쳐졌네 / 秋霄萬里長(추소만리장)
어찌 장막에 둥지 튼 제비가 / 寧同巢幕燕(영동소막연)
뜻대로 염량을 점치는 것과 같으랴 / 隨意占炎涼(수의점염량)
서리에 갈리고 바람과 이슬에 씻겨 / 霜磨風露洗(상마풍로세)
고고한 사람의 마음처럼 빛나는데 / 烱似高人心(경사고인심)
서재 휘장에 기대어 우두커니 앉아 / 突兀憑書幌(돌올빙서황)
회포 다 읊지 못하였으리라 / 應懷不盡吟(응회부진음)
계수나무 숲에 기대어 길게 읊건만 / 長吟倚桂叢(장음의계총)
④적선은 못 본 지 오래이네 / 不見謫仙久(불견적선구)
구슬 같은 시구 하늘에서 떨어지니 / 珠璣落九天(주기락구천)
⑤무하유의 세계에서 온 것이리라 / 來自無何有(내자무하유)
시냇물 속의 달빛 가슴을 해맑게 하고 / 澗月凈氷襟(간월정빙금)
바위께 바람 뼛속까지 시원하게 하네 / 巖風淸刮骨(암풍청괄골)
푸른 산이 아직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 碧山未負吾(벽산미부오)
은어대 태운 일이 이른 것을 후회하랴 / 焚魚悔早不(분어회조불)
-古譯院(譯)-
①월하장음구불귀(月下長吟久不歸) : 이백(李白)의 〈금릉 성 서쪽 누각의 달 아래서 읊다〔今陵城西樓月下吟〕〉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②땅에 …… 울리고 : 훌륭한 시문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짓고 벗 범영기(范榮期)에게 “이 글을 땅에 던져 보았더니 금석 악기 소리가 나더라.” 하기에, 범영기가 읽어 보고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한다.
③자귀 휘두르는 자 : 시문(詩文) 같은 것의 능숙한 솜씨를 비유한 말이다. 초(楚) 나라 영인(郢人)이 자기 코끝에다 파리 날개만 한 흙을 바르고 장석(匠石)을 시켜 그를 깎아내라 하자, 장석이 자귀를 휘둘러 그 흙을 완전히 깎아냈는데도 코는 아무렇지 않았다 한다.
④적선(謫仙) : 인간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뛰어난 문사를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의 글을 보고 감탄하며 “그대는 인간 세상에 귀양 온 신선이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⑤무하유(無何有) :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말로, 이 세상 밖 이상향을 비유한 말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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