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양서원고유문 - 1669년(현종 10년) 금계 황선생 종향시 > 욱양서원 복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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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양서원고유문 - 1669년(현종 10년) 금계 황선생 종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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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8회 작성일 22-10-03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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郁陽書院告由文[己酉○錦溪黃先生從享時]

海東一域、箕聖始臨、顯允先生、百世傳心、折衷諸儒、

 

展也大成、三千三百、炳若丹靑、樂育英才、門下軰出 粤惟黃氏、親炙最切、凡厥徽言、實該手書、一字華袞、 信筆洗誣、睠玆豊邑、南康遺化、妥靈有所、偶起其舍、 神理無間、人情自激、玆涓吉辰、設儀腏食、侍坐誾如、 餘輝彷像、䖍誠告由、永世祀享、右告退溪先生 猗歟先生、天賦淸淳、祥鸞文彩、粹玉精神、詞藻絶世、 聰識超倫、進途初闢、高才不容、專以不咸出試雷封、 條陳民瘼、感動天聰、表章先賢、賁餙儒宮、有覺陶翁、 海東考亭、一登龍門、奬許非常、惕然中悟、頂門一針、 枝葉盡刊、源流獨尋、烏頭不去、蔗境彌甘、紫陽徽言、

 

節要書成、賢師學訣、燭示昏冥、首先尊信、付諸剞劂、 旁求奧義、發揮有說、傳之四方、煥若日月、羽翼斯文、 功大後人、同聲相應、又得輔仁、孜孜矻矻、夜以繼日、 師門往復、書疏筍束、簿領妨功、藏修是急、竹嶺橫屛、 錦水鳴玉、圖書一室、將返初服、中途遽捐、老師痛惜、 設位陶山、寢門灑淚、寄文以祭、爲詞以誄、言行記載、 詩文編次、悉經師手、安預論議、甌臾止丸、炳乎信筆、 山陽隣笛、愴然手牘、一生終始、於焉可質、惟玆豊邑、 昔師所莅、遺化未沬、建院尊師、隔溪相望、精舍舊址、 揆諸神理、不遠人情、謂宜腏食、以像平生、公議猶激、

 

吉辰始涓、䖍心一誠、薦此吉蠲、神其惠我、世世無愆、 [右告錦溪先生]





출처 : 구재선생문집 (鳩齋先生文集)



『구재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계광(金啓光 ; 1621∼1675)의 시문집이다. 김계광의 자는 경겸(景謙), 호는 구재(鳩齋)이다.
이 책은 1943년 그의 8 대손인 동진(東鎭)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유동준(柳東濬), 이제상(李濟相)의 발문과 동진의 후지(後識) 등이 있다. 소 중에서 1편은 1659년(효종 10) 권벌(權?)을 봉안한 삼계서원(三溪書院)의 사액을 요청한 상소문이 있으며 서(書) 가운데에는1672년(현종13) 남중휘(南仲輝)에게 답한 편지가 있는데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의 교정을 필하여 일부는 경상도 현풍(玄風)에서 간행하였고, 일부는 전주에서 분간(分刊)하게 되었다는 내용으로서 이 편지는 『동국이상국집』의 간행처와 간행년도를 밝혀주는 서지적으로도 중요한 기록이다. 정문은 1671년에 흉년을 만나 환자(還子)를 탕감하여 줄 것을 수령에게 건의한 내용이다.
아버지는 학(學)이며, 어머니는 전주유씨(全州柳氏)로 우잠(友潛)의 딸이다. 어려서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웠고, 그 뒤 김상헌(金尙憲)·김응조(金應祖)에게도 수학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에 밝았다. 1654년(효종 5)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를 시작으로 가주서(假注書)·봉상시직장(奉常侍直長)·성균관직강 겸 춘추관편수관을 거쳐 풍기군수가 되었다. 그가 가주서로 있을 때는 경연에 입시, 강의기록을 잘 하여 왕으로부터 상을 받기도 하였으며, 풍기군수로 재직할 때는 백운서원(白雲書院)에서 선비들을 가르쳐 유학을 크게 진작시켰다. 뒤에 고을 사람들이 거사비(去思碑)를 세워 그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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