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황헌(錦洲 黃 土+憲)의 낙운정기洛雲亭記(낙운정 창건기) - 낙운정은 영주 철탄산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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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0회 작성일 22-10-03 06:16본문
낙운정기(洛雲亭記)
김두혁(金斗赫)이 낙운정을 짓고서 소백산에 있는 나의 처소인 계양초당(桂陽草堂)에 방문하여 기문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놀라워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아름다운 업적이다. 궁벽한 산중에서 늙고 병든 몸으로 더구나 글 솜씨조차 변변치 못하거늘 어찌 감히 한마디 말을 하여 그 아름다움을 해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계속 청하기에 삼가 살펴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고시대에 신령하고 성스러운 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는데 황금 궤짝에서 내려와 뭇 백성들의 삶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김으로 성을 삼고, 이름을 수로라고 하였다. 임금의 덕성이 어질고 용맹하였는데 그 지혜로움이 신과 같았으므로 구간(九干) 등이 왕으로 추대하고 도읍을 김해로 하였으며 국호를 대가락(大駕洛)이라고 하였다.
인도(印度)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씨를 맞아 왕비로 삼아 모두 10명의 자식을 낳았다. 왕은 왕위에 오르자 태자 거등(居登)을 세워 적통을 잇게 하였고, 동생 5명을 봉하여 본손(本孫)과 지손(支孫)을 밝혔다. 두 아들에게 모후의 성씨인 허씨 성을 하사하였으며, 아들 7명은 모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9부를 분립하여 관직을 정하였고, 인의를 숭상하고 예악을 일으켰으며, 가족이 없는 고독한 자들을 구휼하고 홀아비와 과부를 가엽게 여기니 위엄과 덕성이 멀리까지 미치고 정치와 교화가 넘쳐났다. 삼국의 가혹한 풍속을 하나로 합쳐 교화하니 그 은택이 백세에 흐르고 선량한 자손들이 무궁하여 우리나라의 금지옥엽 같은 이들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하늘이 현명하고 걸출한 인재를 출생하는 것은 진실로 세상의 융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상서로운 기운과 광채를 양성하여 오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빛이 나 눈 쌓인 봉우리와 견고한 철벽처럼 우뚝 서서 응결되고 모여서 빼어남을 다투고 있으니, 이것은 아마도 가락의 임금께서 인후한 덕이 오래도록 쌓여 이루어진 것인 듯하구나!
예컨대 신라 대각간 흥무왕(興武王)의 풍부한 공덕과 위대한 업적은 고금에 우뚝하고, 고려시대의 죽강(竹岡 金普) 선생 및 율은(栗隱 金佇) 선생의 충절은 청사에 빛나는 큰 절개이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는 김탁영(濯纓 金馹孫)·김갑봉(甲峰 金宇杭)·허미수(眉叟 許穆) 등 여러분들은 덕학과 문장으로 세상에 크게 울려졌으며, 김령군(金寧君)은 무예로써 김령읍에 봉해져 본관으로 삼아 자손들이 혁혁하게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2천 년 동안 1천 개의 파벌은 하나의 근본을 둔 것이며, 1만 개의 가지는 뿌리가 같은 셈이다. 김렴(金濂)과 김충선(金忠善)은 본래 김수로왕의 후예는 아니므로 후손의 반열에서 논할 수 없는 것이지만, 팔도에서 살고 있는 김씨들 중에 우리 김수로왕의 후예 아닌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 영조·정조 때에 이르러 관리를 시켜 치제(致祭)하게 하였고, 고종 때에 이르러 토지를 주어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참봉을 설치할 때 김씨와 허씨 두 성씨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돌아가면서 사당의 제사를 받들고 지키게 하였으니, 아! 열성조께서 숭보(崇報)하신 법이 어쩌면 그리도 위대하였던가!
이로 말미암아 후손들의 추모의 정성은 어찌 세대가 멀어진다고 하여 사라질 수 있겠는가. 하물며 지금 산하가 붕괴되어 세상은 기나 긴 어둠에 들어가 인류가 화하여 금수가 되어 하늘의 해가 거듭 어느 때에 비출지를 모르고 있으니, 차라리 정자 하나를 지어 천 년 추모의 정회를 붙이는 것이 또한 마음에 흡족하지 않겠는가!
여러 동족들과 상의하여 강주(剛州, 영주의 옛 이름)의 철탄산(鐵呑山) 아래 선계동(仙溪洞)의 땅을 간택하였다. 산은 소백산으로부터 비스듬히 뻗어 남으로 달려 철탄산을 이루었고, 점점 아래로 내려와 별도의 작은 봉우리를 이루었는데, 이름 하여 선계동이라 하였다.
여러 개의 낮은 산들이 비취가 에워싼 듯 하여 마치 여러 자손들이 죽 늘어선 듯 하고, 큰 강이 빙 둘러 안을 듯 좌우를 두르고 있다. 앞으로는 큰 마을이 임하여 여염집들이 땅에 엎드려 있고, 수레바퀴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북을 치듯 요란하더니 차츰 성 좌편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선경 하나를 지어내니, 아름다운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그윽한 샘은 옥구슬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니 참으로 뛰어난 경계이다.
이에 자재를 모으고 장인들을 모집하여 자손들의 성심을 다하니 한해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공정을 마쳤다. 정자는 무릇 몇 칸의 기둥에 처마는 날개를 펼치고 나는 듯 하며, 마루와 창은 상쾌하고 넓게 트여 마치 신이 도운 것 같다.
편액에 쓰기를 낙운정이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심원하다. 세상의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고 층층으로 우뚝 누각을 세운 경우는 다만 강호와 풍월의 경치 및 바위와 계곡 산에서 이는 연기를 가지고 정자의 이름을 삼는다.
그런데 지금 김해김씨가 정자 이름을 반드시 ‘낙운’ 두 글자로 정한 것은 진실로 그들의 조상을 잊지 않으려는 정성스러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무릇 이와 같다면 이 정자는 한갓 일시적으로 올라가 완상하는데 그칠 뿐만이 아닌 것이다.
김수로왕 이후 천 년 후에 천 년 전의 수로왕을 경모하는 자라면 여기에서 경모하지 아니하고 그 어느 곳에서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때인가 산은 텅 비어 달은 밝고 솔바람 소리 골짜기 가득 은은한데 관 쓰고 예복 입고 수레 타고서 이 정자를 배회하고 오르내리다가 굽어보고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에게 훌륭한 후손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 후손된 자들이 그런 아련한 마음이 없을 수 있겠으며 또 추모의 정이 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리가 잠기고 울림이 잦아든 후에 그 정자에 인하여 그 이름을 걸어놓고 보니 한 구역의 산천이 찬란하게 명성과 영광을 누리는 것 같으니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정성이 길이 내세에까지 이어지리로다.
시경에 이르기를 “오직 너의 덕을 닦을지니, 너의 조상을 생각지 않으련가.”하였다. 조상들이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몸을 닦고 독실하게 행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한갓 이 정자의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있지 않다. 자자손손 다른 것을 끌어다가 바꾸지 말아야 것이다.
그리할진대 소나무가 무성해지고 대나무가 우거져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대들이 노력하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다시금 이로써 당부 드리는 바다. 모두들 말하기를 “명하는 바를 잘 들었습니다.”라고 하거늘 이에 서술하여 낙운정 창건기로 삼는다.
- 황헌(黃 土+憲), 『금주집(錦洲集)』
김두혁(金斗赫)이 낙운정을 짓고서 소백산에 있는 나의 처소인 계양초당(桂陽草堂)에 방문하여 기문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놀라워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아름다운 업적이다. 궁벽한 산중에서 늙고 병든 몸으로 더구나 글 솜씨조차 변변치 못하거늘 어찌 감히 한마디 말을 하여 그 아름다움을 해치는 잘못을 범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계속 청하기에 삼가 살펴보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고시대에 신령하고 성스러운 분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는데 황금 궤짝에서 내려와 뭇 백성들의 삶이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김으로 성을 삼고, 이름을 수로라고 하였다. 임금의 덕성이 어질고 용맹하였는데 그 지혜로움이 신과 같았으므로 구간(九干) 등이 왕으로 추대하고 도읍을 김해로 하였으며 국호를 대가락(大駕洛)이라고 하였다.
인도(印度)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씨를 맞아 왕비로 삼아 모두 10명의 자식을 낳았다. 왕은 왕위에 오르자 태자 거등(居登)을 세워 적통을 잇게 하였고, 동생 5명을 봉하여 본손(本孫)과 지손(支孫)을 밝혔다. 두 아들에게 모후의 성씨인 허씨 성을 하사하였으며, 아들 7명은 모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9부를 분립하여 관직을 정하였고, 인의를 숭상하고 예악을 일으켰으며, 가족이 없는 고독한 자들을 구휼하고 홀아비와 과부를 가엽게 여기니 위엄과 덕성이 멀리까지 미치고 정치와 교화가 넘쳐났다. 삼국의 가혹한 풍속을 하나로 합쳐 교화하니 그 은택이 백세에 흐르고 선량한 자손들이 무궁하여 우리나라의 금지옥엽 같은 이들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하늘이 현명하고 걸출한 인재를 출생하는 것은 진실로 세상의 융성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상서로운 기운과 광채를 양성하여 오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빛이 나 눈 쌓인 봉우리와 견고한 철벽처럼 우뚝 서서 응결되고 모여서 빼어남을 다투고 있으니, 이것은 아마도 가락의 임금께서 인후한 덕이 오래도록 쌓여 이루어진 것인 듯하구나!
예컨대 신라 대각간 흥무왕(興武王)의 풍부한 공덕과 위대한 업적은 고금에 우뚝하고, 고려시대의 죽강(竹岡 金普) 선생 및 율은(栗隱 金佇) 선생의 충절은 청사에 빛나는 큰 절개이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는 김탁영(濯纓 金馹孫)·김갑봉(甲峰 金宇杭)·허미수(眉叟 許穆) 등 여러분들은 덕학과 문장으로 세상에 크게 울려졌으며, 김령군(金寧君)은 무예로써 김령읍에 봉해져 본관으로 삼아 자손들이 혁혁하게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2천 년 동안 1천 개의 파벌은 하나의 근본을 둔 것이며, 1만 개의 가지는 뿌리가 같은 셈이다. 김렴(金濂)과 김충선(金忠善)은 본래 김수로왕의 후예는 아니므로 후손의 반열에서 논할 수 없는 것이지만, 팔도에서 살고 있는 김씨들 중에 우리 김수로왕의 후예 아닌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 영조·정조 때에 이르러 관리를 시켜 치제(致祭)하게 하였고, 고종 때에 이르러 토지를 주어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참봉을 설치할 때 김씨와 허씨 두 성씨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돌아가면서 사당의 제사를 받들고 지키게 하였으니, 아! 열성조께서 숭보(崇報)하신 법이 어쩌면 그리도 위대하였던가!
이로 말미암아 후손들의 추모의 정성은 어찌 세대가 멀어진다고 하여 사라질 수 있겠는가. 하물며 지금 산하가 붕괴되어 세상은 기나 긴 어둠에 들어가 인류가 화하여 금수가 되어 하늘의 해가 거듭 어느 때에 비출지를 모르고 있으니, 차라리 정자 하나를 지어 천 년 추모의 정회를 붙이는 것이 또한 마음에 흡족하지 않겠는가!
여러 동족들과 상의하여 강주(剛州, 영주의 옛 이름)의 철탄산(鐵呑山) 아래 선계동(仙溪洞)의 땅을 간택하였다. 산은 소백산으로부터 비스듬히 뻗어 남으로 달려 철탄산을 이루었고, 점점 아래로 내려와 별도의 작은 봉우리를 이루었는데, 이름 하여 선계동이라 하였다.
여러 개의 낮은 산들이 비취가 에워싼 듯 하여 마치 여러 자손들이 죽 늘어선 듯 하고, 큰 강이 빙 둘러 안을 듯 좌우를 두르고 있다. 앞으로는 큰 마을이 임하여 여염집들이 땅에 엎드려 있고, 수레바퀴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북을 치듯 요란하더니 차츰 성 좌편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선경 하나를 지어내니, 아름다운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그윽한 샘은 옥구슬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니 참으로 뛰어난 경계이다.
이에 자재를 모으고 장인들을 모집하여 자손들의 성심을 다하니 한해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공정을 마쳤다. 정자는 무릇 몇 칸의 기둥에 처마는 날개를 펼치고 나는 듯 하며, 마루와 창은 상쾌하고 넓게 트여 마치 신이 도운 것 같다.
편액에 쓰기를 낙운정이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심원하다. 세상의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고 층층으로 우뚝 누각을 세운 경우는 다만 강호와 풍월의 경치 및 바위와 계곡 산에서 이는 연기를 가지고 정자의 이름을 삼는다.
그런데 지금 김해김씨가 정자 이름을 반드시 ‘낙운’ 두 글자로 정한 것은 진실로 그들의 조상을 잊지 않으려는 정성스러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무릇 이와 같다면 이 정자는 한갓 일시적으로 올라가 완상하는데 그칠 뿐만이 아닌 것이다.
김수로왕 이후 천 년 후에 천 년 전의 수로왕을 경모하는 자라면 여기에서 경모하지 아니하고 그 어느 곳에서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때인가 산은 텅 비어 달은 밝고 솔바람 소리 골짜기 가득 은은한데 관 쓰고 예복 입고 수레 타고서 이 정자를 배회하고 오르내리다가 굽어보고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나에게 훌륭한 후손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 후손된 자들이 그런 아련한 마음이 없을 수 있겠으며 또 추모의 정이 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리가 잠기고 울림이 잦아든 후에 그 정자에 인하여 그 이름을 걸어놓고 보니 한 구역의 산천이 찬란하게 명성과 영광을 누리는 것 같으니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정성이 길이 내세에까지 이어지리로다.
시경에 이르기를 “오직 너의 덕을 닦을지니, 너의 조상을 생각지 않으련가.”하였다. 조상들이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몸을 닦고 독실하게 행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한갓 이 정자의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있지 않다. 자자손손 다른 것을 끌어다가 바꾸지 말아야 것이다.
그리할진대 소나무가 무성해지고 대나무가 우거져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대들이 노력하기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다시금 이로써 당부 드리는 바다. 모두들 말하기를 “명하는 바를 잘 들었습니다.”라고 하거늘 이에 서술하여 낙운정 창건기로 삼는다.
- 황헌(黃 土+憲), 『금주집(錦洲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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