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군 - 평해황씨(平海黃氏) 청송 입향조를 기리는 - 청송 영이정(靑松 泳而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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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9회 작성일 25-11-28 06:38본문
≪소재지≫경북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 534-28번지
≪문화재분류번호≫청송군 문화유산 제7호(2009년 9월 1일 지정)
≪답사일≫2025년 6월 12일(목)
영이정(泳而亭)은
평해황씨(平海黃氏) 청송 입향조인 영이(泳而) 황덕필(黃德弼)의 유업을 기리는 정자이다.
‘영이(泳而)’는 황덕필의 자호로 ‘때(時)와 형세(勢)를 알고 소요자재(逍遙自在) 함’을 뜻한다고 한다.
평해황씨의 입향은 황덕필의 증조할아버지 황국노(黃國老)가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병조참의(行兵曹參議) 겸 오위도총부부총관(行兵曹參議兼五衛都摠府副摠管)이었으나,
재직 때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연루되어 경주로 낙향하였으며,
이들은 경주에서 다시 의성을 거쳐 현재의 청송군 청운리로 이거 하였다.
평해황씨가 처음부터 청운리에 정착할 목적은 아니었음이 황덕필의 묘갈명에 나타난다.
임진왜란의 혼란한 상황에 동생 황덕진과 함께 청송에 정착하였음을 보여준다.
평해황씨는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청운리에 1573년 처음으로 황덕필이 입향하여 서당과 정자를 지었고,
황학(黃㶅) 등이 지역의 후학들을 양성하고, 대마를 재배하여 우수한 삼베를 생산하여,
전국에 유명한 '청운포(靑雲布)'를 생산하는 등 지역의 학문과 산업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으며,
청운리 외에도 송생리, 파천면 신기리 등에도 집성촌을 이루고 현재까지 세거하고 있다.
정자의 대청의 벽에는 석판에 새긴 ‘취동팔경(翠洞八景)' 각자판이 걸려 있으며,
오른쪽 방에는 욕호(浴乎), 왼쪽 방에는 풍호(風乎)라는 평판을 문 앞에 내걸었다.
이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온다.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는 구절에서 따왔으며 황덕필의 호(號)이자 정자명도 영이귀(詠而歸)에서 따온 말이다.
영이정(泳而亭)은 정면 4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에는 둥근 기둥으로 권위를 세웠고 가운데 2칸은 대청으로 바닥을 열고,
양쪽으로 1칸×1.5칸 크기의 방을 두었다. 방의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옆쪽으로는 쪽마루를 놓았다.
뒤쪽에는 벼락닫이 창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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