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정(有定) 1343년 충혜왕 복위 4년 출생 > 미균 황유정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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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정(有定) 1343년 충혜왕 복위 4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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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8회 작성일 21-08-1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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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정(有定) (1343년 충혜왕 복위 4년 출생~1422)고려조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성판윤 공조판서 벼슬에 이르렀다. 살펴보건대 공은 평해에서 영천(榮川, 현재 영주)

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혹은 말하기를 황원로가 영천으로 이사하였다고 하니 누구 말이

맞는지 알지 못하겠다. 공이 군(郡)의 남쪽 초곡리(草谷里)에서 살았는데 군에서 거리가

5리쯤 된다. 홍무(洪武) 23년 경오년 공양왕 2년(1390)에 각도에 명령을 내려서 호적

문서를 이루도록 했다. 영천 관청의 호적 문서에 의하면 황유정은 나이 48세 이었고

그때 초계군수 였다. 아들 전(銓)은 28세로 예빈주부(禮賓主簿)였고 아들 현(鉉)은

22세로 생원이었고 또 아들 연(鋋)은 나이 11세라 했다. 판윤공은 아마 계미(癸未)년인

원나라 지정 3년 즉 고려 충혜황 4년(1343)에 출행하였다(풍기보에 이르기를 금계선생이

 상고한 바라고 했다). 공은 어려서부터 노인이 되어서까지 논어 읽기를 좋아하였고

세인들이 칭하기를 「미균(米囷)」선생이라고 하였다. 공의 시는 당나라 풍조(風調)가

있다 고 했다. 어느 날 외손(外孫)인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을 찾아가서 시를 지은

바 있는데 그 시에

    偶携藜扙出柴扉      우연히 명아주 지팡이를 끌고 사립문을 나서

    四月淸和燕燕飛      사월달 화창한 날씨 재비들이 날고

    乘興往尋金氏子      흥을 타고 김씨의 집에 찾아가 보니

    薔薇一朶秀疎籬      한 떨기 장미 울타리에서 빼어났구려

초계의 군관민들이 지금까지도 공의 맑은 덕을 칭송하고 있다. 공의 사람됨이 단정해서

허트러지 않았다고 그때 사람이 공을 지목하여 미균(米囷, 쌀창고)이라고 했다. 묘가

영천군(현재 영주) 동쪽 20리쯤 있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그 무덤을 황분토(黃墳土)라고

하고 그 안에 반드시 지석(誌石)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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