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황공제단비(平海黃公祭壇碑)’ 해석문 오류 수정(2025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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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르미29재윤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6-04-21 15:12본문
‘평해황공제단비(平海黃公祭壇碑)’ 해석문 오류 수정(2025년 8월 5일)
검교공 8세 공조판서公 황유정(黃有定)의 제단비가 ‘국가유산지식이음’ 사이트에 비문과 해석문이 등록되어 있는데, 해석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오류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https://portal.nrich.go.kr/kor/ksmUsrView.do?menuIdx=584&ksm_idx=11408
1.해석문에는, ‘15년이 지난 기미년(1919년) 여름에 돌을 깎아서 곧 글을 새기게 됨에 나 김약련(若錬)에게 음기(陰記)를 지을 것을 위촉해왔다.(其由越十有五年己未夏伐石將鐫屬若鍊識其陰)’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암 김약련’은 1730년~1802년간에 생존한 인물이니, 1919 기미년이 될 수 없고, ‘1799년’이어야 합니다. (사진1,2)
2. 비석을 세운 시기인, ‘崇禎後三庚申十月 日立’을 ‘숭정 후 3년 경신 10월 일 세우다.’로 해석해 놓았었는데, 이는 ‘숭정 후 3경신 10월에 세우다’로 풀어야 맞습니다. 숭정은 明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로 1628(무진년)이 시작입니다. ‘崇禎후 3년’이라고 풀면 1630년이고, ‘崇禎후 3경신’이라고 풀면, 숭정 후에 3번째 경신년(1800년)이라는 뜻입니다. 즉, 숭정(1628년)후의 첫 번째 경신년은 1680년, 두 번째는 1740년, 세 번째는 1800년입니다. 이는 비석을 건립한 연도와 딱 일치합니다. 이렇게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18세기는 明이 멸망하고 淸시대였으나, 崇明排淸(숭명배청) 사상이 강하여 明 마지막 황제의 연호로 [崇禎後 몇干支] 식으로 연도를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진1,2)
▶ 오류내용 정리:
1. 해석문의 기미년은 1919년이 아니라 1799년이며,
2. 비를 세운 해는 ‘숭정 후 3년 경신 10월’이 아니라 ‘숭정 후 3경신 10월에 세우다(1800년)’로 해석해야 함.
즉, 1799에 비문을 작성하여 1800년에 세운 것임.
▶ 경과: 2025. 8. 5일, ‘국가문화유산연구원(국가유산청 산하기관)’에 오류 검토요청(사진3)한 결과, 오류를 인정하여 수정함. 현재는 수정된 내용으로 되어 기록되어 있음.(사진4)
※두암 김약련은 황유정의 外孫인, ‘이조판서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의 후손입니다. 비문에도 ‘外裔孫通政大夫承政院左副承旨宣城金若鍊撰/외예손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지선성김약련찬‘으로 썼습니다. 즉, 김약련은 황유정의 외후손입니다. 선성김씨(예안김씨)는 지금 영주 무섬마을에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진1,2 : 황공제단비문 (수정전)
사진3 : 문화유산청 오류 신고내용(2025. 8. 5)
사진4 : 수정후 비문 해석문(수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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