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절공파(文節公派) - 황유중의 둘째인 4세 황서(黃瑞)의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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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1회 작성일 25-09-17 06:21본문
고려에서 삼중대광 1명, 문하시중 2명으로 재상을 3명 배출하였다. 또한 조선에서는 3명의 공신이 있었다. 그러나 공신 책봉 횟수로 따지면 협찬창조공신, 위화도회군공신, 개국원종공신, 조선개국공신 2등, 선무훈이등공신으로 총 5번이 책봉되었다. 덕분에 조선에서 5명이 정승으로 추증되었다.
불행히도 가문의 족보는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어 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1604년 선무훈이등공신(宣武勳二等功臣)이기도 했던, 당시 예천군수 문절공파 예빈공파 해월공 황여일(黃汝一)이 새로이 평해 황씨 족보인 평해황씨초간세보(平海黃氏草刊世譜) 간행하였다. 덕분에, 아직도 선조들의 관직, 배우자, 묘소의 위치 등을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다.
평해 황씨는 조선시대 급제자는 문과 22명, 무과 급제자 19명, 사마시 47명, 역과 2명을 배출하였다.[3]
주요 선조들
- 3세조 황유중(黃裕中)은 고려에서 최고 관직인 종1품 문하시중(조선의 정승/도제조, 현재의 총리)을 역임하였는데, 이분의 아들인 진, 서, 용으로부터 검교공파, 문절공파, 충경공파로 갈라졌다. 현재 존재하는 많은 파들은 모두 이 3파로 기본으로 한다. 충선왕 전까지는 고려 최고 관직이 정1품이 아닌 종1품이었다. 충선왕이 삼중대광을 만들어 정1품을 신설하였다.
- 4세조 문절공 황서(黃瑞) 또한 고려에서 종1품 문하시중(조선의 정승/도제조, 현재의 총리)에 올라 다시 한 번 일인지상 만인천하의 자리에 올랐다. 충렬왕 때 원나라에 3번이나 다녀오며, 이 공훈으로 본관인 평해를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켰다.[4] 이에 고려 후기 평해황씨를 명문가 반열에 올려 놓은 실질적인 평해 황씨의 부흥조이다. 문절공파의 시조이다. 문절공파에서는 조선에서 공신이 1명 나왔다.
- 4세조 충경공 황용(黃墉)은 문절공 황서(黃瑞)의 동생으로, 고려의 정1품 삼중대광보국(고려 충선왕이 새로 만든 최고위 관직, 이전까지는 문하시중이 최고위 관직)에 올라 신하로써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충경공파의 시조이다. 충경공파에서는 조선에서 공신이 2명이 나왔고, 공신 책봉 횟수는 4번이다.
- 7세조 충경공파 황천계(黃天繼)는 경기전라경상 삼도관찰사(京畿全羅慶尙 三道觀察使)였고, 조카인 8세조 황희석(黃希碩)과 함께 함경도 영흥에서부터 조선 태조 이성계를 보좌하기 시작하였다. 조선(朝鮮)이 개국하고 협찬창조공신(協贊剏造功臣)으로 책봉 되었다.
- 8세조 충경공파 양무공 황희석(黃希碩)은 고려(高麗)에서 청주상만호(靑州上萬戶)였고, 삼촌 황천계(黃天繼)와 함께 이성계를 따르기 시작하여 위화도 회군까지 함께 하였다. 위화도회군공신(威化島回軍功臣),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태조 특지로 조선개국공신(朝鮮開國功臣) 2등에 책봉되어 총 3번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에 이르렀다. 사후 우의정(右議政)으로 추증되었다.
- 8세조 검교공파 황유정(黃有定)은 호가 미균(米均)으로 한성판윤, 예조전서, 공조전서, 형조전서를 지낸 인물로 정도전의 여동생인 봉화 정씨와 혼인하였다. 정도전의 아버지인 정운경은 아들이 죽자, 사위인 황유정(黃有定)에게 영주의 삼판서고택을 물려주었다. 아들인 9세조 황현(黃鉉)은 태종과 세종 대에서 성균관 대제학과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 14세조 문절공파 예빈공파 해월공 황여일(黃汝一)은 임진왜란 때, 권율을 종사관으로 보좌하여 선무훈이등공신(宣武勳二等功臣)이 되었다. 후에 1604년 예천군수 때, 소실된 평해황씨 족보를 새로이 간행하였다. 다음은 평해황씨초간세보(平海黃氏草刊世譜)의 서문이다.
대대로 벼슬하던 우리 세족이 천민과 노예로 흘러 떨어지고 자손이 길가에서 만난 사람처럼 남보다도 더 멀어진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끝없이 통탄함이 여기에 이르렀다.[5][6]
주요 3분파(分派)
1세 황온인(黃溫仁) : 고려(高麗),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
➝ 2세 황우정(黃佑精) : 고려(高麗), 군기소윤(軍器少尹).
➝ 3세 황유중(黃裕中) : 고려(高麗), 문하시중(門下侍中).
3세 황유중(黃裕中)의 세 아들인 4세조로부터 큰 3파로 나누어졌다.
즉, 첫째 황진의 '검교공파', 둘째 황서의 '문절공파' , 셋째 황용의 '충경공파'이다.
문절공파(文節公派) - 황유중의 둘째인 4세 황서(黃瑞)의 후손들
문절공파(文節公派)의 시조 : 황유중의 둘째인 4세 황서(黃瑞). 고려(高麗).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금어대(金魚袋), 첨의평리(僉議評理), 문하시중(門下侍中).
➝ 5세 황종량(黃宗亮) : 황서(黃瑞)의 외아들. 고려(高麗). 호부전서(戶部典書).
➝ 6세 황세영(黃世英) : 황종량(黃宗亮)의 외아들. 고려(高麗). 향공진사(鄕貢進士), 예빈사동정(禮賓寺同正).
➝ 7세(용기, 운기)[8]
[1] 7세 황용기(黃龍起) : 6세 황세영의 첫째 아들
| 분파 | 파시조 | ||||
|---|---|---|---|---|---|
| 예빈공파(禮賓公派) | 7세 황용기(黃龍起) : 6세 황세영의 첫째 아들. 고려(高麗). 예빈정(禮賓正). ➝ 8세 황길보(黃吉甫) : 7세 황용기의 첫째 아들. 병사(兵使). ➝ 14세 황여일(黃汝一) : 13세 황응징의 외아들로 선무훈이등공신(宣武勳二等功臣)이자 해월공파의 파시조
|
[2] 7세 황운기(黃雲起) : 6세 황세영의 둘째 아들
| 분파 | 파시조 |
|---|---|
| 소윤공파(少尹公派) | 7세 황운기(黃雲起) : 6세 황세영의 둘째 아들. 고려(高麗). 내자소윤(內資少尹). |
문절공파(文節公派)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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