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문학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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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6회 작성일 21-08-17 05:20본문
8. 문학文學
금계집錦溪集 및 금계집錦溪集 미수록 시詩를 합하여 약 1천여千餘의 시를 남겼다.
지리산 산행을 하며 지은 한시漢詩는 2천5백여자에 이르는 장편시長篇詩로 지리산 관련 한시漢詩 중에 가장 긴 장편長篇의 시다. 황준량의 지리산 시를 연구한 경상대 최석기 교수는 유두류산기행편에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고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금계 황준량의 지리산智異山 기행시 중 유두류산기행편遊頭流山紀行篇(두류산은 지리산의 다른 말) 시의 형식적 특징은 지리산智異山 유산시 가운데 가장 긴 장편長篇 고시古詩라는 점과 자연경관과 생태生態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빼어나다는 점이다. 이 시는 176운 352구 2,516자로 된 장편시인데, 평성 ‘동東’ 자를 기본 운자韻字로 하면서 협운叶韻을 하였지만 환운換韻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인으로서의 빼어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소백산小白山, 지리산智異山, 청량산淸凉山, 가야산伽倻山 산행시山行詩는 둘레길 자락길을 따라 가면서 흥취를 느낄 수 있다. 이 시들을 보면 자연 경관이 어떠한지 상상이 가도록 쓰여 있다. 단순 경치 감상이 아니라 생태에 대한 묘사가 되어있다. 자연을 노래한 시이지만 그 속에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관념이 투영될 때가 많다.
선배, 후배, 제자들에게 시로 안부를 주고받고, 의견을 개진하며, 당부하는 것도 시로 많이 나타내었다. 제자들에게 글을 줄 때에도 그 표현이 정중한 것이 특징이다. 많은 옛 어른들의 기록에는 그런 내용의 시나 편지글이 나온다. 공부 못한다고 회초리를 맞는 민화에 나오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풍부한 감성과 함께 한시漢詩의 완성도를 크게 높인 시로 평가받는다. 한시漢詩 전문 학자學者 말을 빌리면 최고의 한시漢詩 시인詩人으로 앞으로 크게 연구될 시가 많다 한다.
부임지로 향하면서, 부임지에서, 어사御使로 활동하면서, 지인들을 방문하면서, 지인들과 같이 탐방하면서 가는 곳 마다 시詩를 남겼다. 시의 성격은 다양하다. 때로는 경치를, 때로는 풍속을, 때로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때로는 미래희망을 시 속에 표현하였다.
금계 황준량이 쓴 대부분의 시는 시 속에 또 다른 스토리가 들어있다. 시 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스토리의 내용은 대부분 옛사람들의 좋은 생각과 행동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시 속에 있는 옛사람들의 스토리는 금계 황준량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역사에 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9. 서예書藝
다양한 서체의 글씨가 모두 일가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종가宗家에 보관되어 전해지던 필적筆跡은 소수서원紹修書院 박물관博物館에 기탁되어 있다.
책 1권 전체가 금계錦溪 필치筆致로 된 책도 있다. 경로사상敬老思想의 귀중한 흔적인 애일당구경별록愛日堂具慶別錄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종가宗家에 보존되어 있다가 지금은 한국국학진흥원韓國國學振興院에 기탁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초대 조선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수집한 주요 명인들의 친필 모음집 한묵청완翰墨淸玩과 조선명가진필朝鮮名家珍筆에도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의 친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들은 현재 경남대가 소장하며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0. 역사의식歷史意識
금계 황준량은 왕조실록王朝實錄 편찬編纂에 두 번이나 참여를 하였다. 중종실록과 인종실록 편찬 시 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금계 황준량이 역사 편찬에 참여를 하면서 가졌던 역사의식歷史意識을 알 수 있는 글이 전하고 있다.
황준량은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역사를 다루는 직책은 매우 어려운 자리이다. 그 임무에 다른 책임은 매우 무겁다. 왕과 신하의 말과 행동의 옳고 그름, 정치행위와 풍속의 좋고 나쁨을 사관이 빠짐없이 다 모아 글로 써서 세상에 보이고 후세에 전하여 권장하고 징계하는 도구로 삼으니 어찌 그 직책이 어렵지 않고 임무가 막중하지 않겠는가.”
역사의 임무와 기능을 높이 평가한 말이다. 공간적으로는 세상을 위하고 시간적으로는 후대에 대하여 ‘권장하고 징계하는 것’이 역사라는 의미다.
역사를 취급하는 관리는 어떤 다른 관직 보다 더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이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금계 황준량의 의하면 역사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학문(학學), 재질(재才), 절조(절節)이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추어야 역사가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상적 제도를 존중하고 미래의 법치法道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옳은 것을 널리 알리고 적용이 많이 되게 하고 나쁜 것은 비판하여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게끔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란 옳든 그르든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모으는 것이라고 하여 fact를 중시함을 볼 수 있다. 물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렇게 모은 fact에서 긍정적肯定的인 것들은 진작振作되고 앞으로도 이어가야 하고 부정적인 것들은 비판이 되고 극복이 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이상사회理想社會의 실현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가歷史家를 길러내면 권력의 도덕적 행사行使, 건강한 사회발전社會發展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금계집錦溪集 및 금계집錦溪集 미수록 시詩를 합하여 약 1천여千餘의 시를 남겼다.
지리산 산행을 하며 지은 한시漢詩는 2천5백여자에 이르는 장편시長篇詩로 지리산 관련 한시漢詩 중에 가장 긴 장편長篇의 시다. 황준량의 지리산 시를 연구한 경상대 최석기 교수는 유두류산기행편에서 작가의 정신세계를 고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금계 황준량의 지리산智異山 기행시 중 유두류산기행편遊頭流山紀行篇(두류산은 지리산의 다른 말) 시의 형식적 특징은 지리산智異山 유산시 가운데 가장 긴 장편長篇 고시古詩라는 점과 자연경관과 생태生態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빼어나다는 점이다. 이 시는 176운 352구 2,516자로 된 장편시인데, 평성 ‘동東’ 자를 기본 운자韻字로 하면서 협운叶韻을 하였지만 환운換韻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인으로서의 빼어난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소백산小白山, 지리산智異山, 청량산淸凉山, 가야산伽倻山 산행시山行詩는 둘레길 자락길을 따라 가면서 흥취를 느낄 수 있다. 이 시들을 보면 자연 경관이 어떠한지 상상이 가도록 쓰여 있다. 단순 경치 감상이 아니라 생태에 대한 묘사가 되어있다. 자연을 노래한 시이지만 그 속에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관념이 투영될 때가 많다.
선배, 후배, 제자들에게 시로 안부를 주고받고, 의견을 개진하며, 당부하는 것도 시로 많이 나타내었다. 제자들에게 글을 줄 때에도 그 표현이 정중한 것이 특징이다. 많은 옛 어른들의 기록에는 그런 내용의 시나 편지글이 나온다. 공부 못한다고 회초리를 맞는 민화에 나오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풍부한 감성과 함께 한시漢詩의 완성도를 크게 높인 시로 평가받는다. 한시漢詩 전문 학자學者 말을 빌리면 최고의 한시漢詩 시인詩人으로 앞으로 크게 연구될 시가 많다 한다.
부임지로 향하면서, 부임지에서, 어사御使로 활동하면서, 지인들을 방문하면서, 지인들과 같이 탐방하면서 가는 곳 마다 시詩를 남겼다. 시의 성격은 다양하다. 때로는 경치를, 때로는 풍속을, 때로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때로는 미래희망을 시 속에 표현하였다.
금계 황준량이 쓴 대부분의 시는 시 속에 또 다른 스토리가 들어있다. 시 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스토리의 내용은 대부분 옛사람들의 좋은 생각과 행동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시 속에 있는 옛사람들의 스토리는 금계 황준량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역사에 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9. 서예書藝
다양한 서체의 글씨가 모두 일가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종가宗家에 보관되어 전해지던 필적筆跡은 소수서원紹修書院 박물관博物館에 기탁되어 있다.
책 1권 전체가 금계錦溪 필치筆致로 된 책도 있다. 경로사상敬老思想의 귀중한 흔적인 애일당구경별록愛日堂具慶別錄으로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종가宗家에 보존되어 있다가 지금은 한국국학진흥원韓國國學振興院에 기탁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초대 조선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수집한 주요 명인들의 친필 모음집 한묵청완翰墨淸玩과 조선명가진필朝鮮名家珍筆에도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의 친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들은 현재 경남대가 소장하며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0. 역사의식歷史意識
금계 황준량은 왕조실록王朝實錄 편찬編纂에 두 번이나 참여를 하였다. 중종실록과 인종실록 편찬 시 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금계 황준량이 역사 편찬에 참여를 하면서 가졌던 역사의식歷史意識을 알 수 있는 글이 전하고 있다.
황준량은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역사를 다루는 직책은 매우 어려운 자리이다. 그 임무에 다른 책임은 매우 무겁다. 왕과 신하의 말과 행동의 옳고 그름, 정치행위와 풍속의 좋고 나쁨을 사관이 빠짐없이 다 모아 글로 써서 세상에 보이고 후세에 전하여 권장하고 징계하는 도구로 삼으니 어찌 그 직책이 어렵지 않고 임무가 막중하지 않겠는가.”
역사의 임무와 기능을 높이 평가한 말이다. 공간적으로는 세상을 위하고 시간적으로는 후대에 대하여 ‘권장하고 징계하는 것’이 역사라는 의미다.
역사를 취급하는 관리는 어떤 다른 관직 보다 더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이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금계 황준량의 의하면 역사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학문(학學), 재질(재才), 절조(절節)이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추어야 역사가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상적 제도를 존중하고 미래의 법치法道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해석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옳은 것을 널리 알리고 적용이 많이 되게 하고 나쁜 것은 비판하여 이상세계理想世界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게끔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란 옳든 그르든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모으는 것이라고 하여 fact를 중시함을 볼 수 있다. 물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렇게 모은 fact에서 긍정적肯定的인 것들은 진작振作되고 앞으로도 이어가야 하고 부정적인 것들은 비판이 되고 극복이 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이상사회理想社會의 실현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가歷史家를 길러내면 권력의 도덕적 행사行使, 건강한 사회발전社會發展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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