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금계지 욱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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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7회 작성일 22-09-10 08:31본문
금계지 - 경북영주여행 |
해발 1천439m. 백두대간의 중심인 소백산 정상 비로봉에 섰다. 구름 낀 시야는 소백산 능선의 살갗을 보여줄 듯 말 듯하다. 하지만 웅장하고도 거대한 대자연의 힘에 지상으로 우뚝 솟은 소백산의 능선과 주봉은 감탄 그 자체다. 비로봉 아래 금계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딛는 제방을 제외하고 사방이 소백산 줄기로 둘러싸여 있다. 마치 축복 받은 땅처럼, 그리고 예언의 공간처럼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다.
1500년 초 동양의 예언가 남사고는 백두산 땅을 밟고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경북의 땅 울진과 봉화를 거쳐 영주 소백산 죽령 고개를 넘어섰을 때 금계지 아래 금계마을을 보며 무릎을 꿇고 탄복했다고 한다. “이 땅이 명당이자 길지로세”라면서 말이다.
예로부터 풍기 땅은 남사고가 예언한 십승지(十勝地) 중 한 곳으로, 열 곳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고장으로 유명하다.
원래 지금의 금계지 땅도 남사고가 생존했을 당시 30~40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살았던 촌락이었다. 이런 마을에 저수지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금계마을 최중열 이장을 만나 금계지에 얽힌 사연을 들어봤다.
“원래 금계지가 있기 전에는 서로 경쟁하듯 개울 물을 퍼서 논농사를 했지.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연화봉·신선봉·국망봉·상월봉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양이 보통이 아니거든. 그 물을 한 곳에 모아 농사 짓는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한거야.”
금계지가 탄생한 배경이다. 1987년 준공된 금계지는 이른바 십승지 마을인 금계1,2리 위에 위치했다. 조성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아온 최 이장은 마을에서 금계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생생하게 증언했다.
최 이장은 “소백산에서 흐르는 물은 아주 깨끗하고 맑을 뿐만 아니라, 유역 면적도 2천400만㏊로, 공적 가치가 매우 큰 저수지”라며 “대부분 벼농사를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금계지는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30대 초반 무렵 최 이장은 금계지 자리를 지나 소백산으로 가는 길목마다 나무를 하곤 했다. 땔감용으로 쓰기 위해 지게와 리어카를 항상 갖고 다녔다.
“산간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벌목을 하는 사람만 골라 혼을 내주곤 하지. 잘못 걸리면 관청에 끌려가서 망신을 당하고 두들겨 맞기도 해. 그 사람과 나는 거의 숨바꼭질 하듯 금계지 주변 능선을 무대로 쫓고 도망쳤지. 아, 겨울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이야.”
요즘이야 난방용 등유나 전기로 월동 준비를 했지만 예전에는 나무가 유일한 난방 수단일 때 이야기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금계마을은 남사고가 예언한 10승지 가운데 한 곳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전혀 없을 만큼 살기 좋다.
단양 죽령고개에서 소백산 천문대를 지나면 소백산 정상 연화봉(해발 1383m)에 오를 수 있다.
금계지가 생기면서부터 금계마을 사람들의 삶은 풍성해졌다. 남사고가 예언했듯이 금계마을을 품은 풍기땅은 기름지고 자연재해가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 여름 그렇게 지독한 가뭄에 물이 부족해 전국의 농촌이 시름했는데도 금계마을은 금계지 덕분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또 금계지 주변 농지는 해마다 씨를 뿌리고 수확해도 풍년을 기록할만큼 지력(地力)이 우수하다.
최 이장은 “소백산 줄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금계지 상류에서부터 끊임없이 내려오기 때문에 금계마을이 생기고 지금까지 한 번도 물 부족 현상에 시달리지 않았다”며 “금계지가 없었다면 모든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자원 확보 차원에서도 금계지는 ‘마르지 않은 샘’일 만큼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농어촌공사도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둑높이기사업을 현재 진행중이다. 포항지역 업체인 태동건설이 공사중인 이 사업은 연말 완공을 목표로 각종 수변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홍대벽 농어촌공사 영주봉화지사장은 “소백산국립공원의 올레길 코스가 금계지를 지나 금계마을의 개삼터길과 연결된다”면서 “앞으로 금계지가 연 1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소백산 권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금계지 아래 금계마을의 모든 길은 최근 ‘풍기인삼 개삼터길’로 지정됐다. 원래 금계마을 사람들은 벼농사와 더불어 인삼을 주로 재배해 생계를 이어왔다. 이곳은 그 유명한 풍기인삼의 시초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전체 7㎞ 길이인 개삼터길은 12자락 길 가운데 2자락이다. 십승지 마을의 특징을 살리고 관광객에게 걷는 재미와 신비로움, 흥미를 더해주기 위해 지정한 것.
금계마을에는 ‘금선정’같은 볼거리도 많다.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인 황준량이 머물면서 학문을 익혔던 곳으로 유명하다. 금선정 옆으로 소나무와 기암괴석 사이로 금계지로부터 흐르는 개울물이 생동감을 더한다.
금계지 상류로 가는 길에 남사고가 예언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인 게 금계바위다.
“사람의 욕심이 모든 불행의 근원일지니 어리석은 자는 이러한 교훈을 가볍게 여겨 결국 행복을 잃고 방황하는가.”
소백산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남사고의 훈계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주말여행을 계획한다면 금계지와 소백산을 주요 코스로 잡는 것도 추천한다.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신선이 머무른 것 같은 신기한 소백산의 비경과 금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백산의 기(氣)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 금계지는 중앙고속도로 풍기IC를 나와 소백산국립공원 방향으로 가다보면 만날 수 있다. 충북에서도 접근이 가능한데 단양IC를 나와 죽령 옛길을 드라이브하면 단풍과 소백산이 어우러져 경치가 압권이다.
☞가볼 만한 곳= 금계지 주변에는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많다. 금계마을에서는 우유로 두부만들기와 치즈체험도 가능하다. 물 위에 뜬 섬을 뜻하는 무섬마을도 가볼 만하다.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두운도사가 창건한 사찰로 불교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풍기인삼시장에서는 향이 강하고 유효 사포닌 함량이 높은 풍기 인삼을 맛볼 수 있다. 또 국내 최초 서원으로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설립한 소수서원과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선비촌,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사찰인 부석사도 가족과 여행코스로 제격이다.
글=이창남기자 argus61@yeongnam.com
[출처] 금계지 - 경북영주여행|작성자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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