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고종이 친히 정벌하며 내린 조서 뒤에 적음〔書宋高宗親征詔後〕 > 금계외집 8권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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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고종이 친히 정벌하며 내린 조서 뒤에 적음〔書宋高宗親征詔後〕 > 금계외집 8권제문

송나라 고종이 친히 정벌하며 내린 조서 뒤에 적음〔書宋高宗親征詔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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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6회 작성일 21-07-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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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고종이 친히 정벌하며 내린 조서 뒤에 적음〔書宋高宗親征詔後〕

옛날부터 난리를 이은 임금은 파천(播遷)을 겪은 뒤에 섰으니 난리를 다스릴 용기와 지혜의 재주가 없으면 중흥의 공을 이룰 수 없었다. 더구나 나약한 자질로써 항상 자리를 놓칠까 걱정하는 마음을 품고 안일을 도모하여 자리를 지킬 생각이 마음 속에서 다툰다면 끝내 큰 수치를 잊고 대사를 저해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본래 복수하려는 마음이 없고 겉으로 적을 친다는 이름만 빌린 것이니 아무리 날마다 친히 정벌하겠다는 조서를 내리더라도 성심(誠心)이 발동했다고 하겠는가? 내 장차 이로써 고종(高宗)의 죄를 결단하려고 하니, 유약(懦弱)하 자가 서지 못해 자강(自强)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구차하게나마 편안하려는 마음이 이겨 끝내 간신들에 의해 잘못되게 된다면 몇 줄의 조서가 과연 한 때의 자취를 감출 수 있겠는가? 금로(金虜 후금)가 중국 땅을 휘젓고 두 황제가 북방을 순수(巡狩)하여 종묘사직이 오랑캐에게 짓밟혀 의관(衣冠)이 좌임(左衽)으로 바뀌었으니 천지 고금에 가장 큰 변화이다. 고종이 된 자는 창을 베개로 삼고 쓸개를 맛보며 북쪽을 향해 목 놓아 울며, 장엄하고 예리한 제장(諸將)의 칼날을 이용하고 분발하기를 생각하는 의사(義士)의 기세로 인해 하늘과 땅에 마음을 맹서한 다음 전쟁을 일으켜 천지에 함께 할 수 없는 수치를 씻어 신(神)과 사람이 함께 분노하는 감정에 답했다. 인류가 금수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있어 그 마음을 다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는데, 도리어 부끄러움을 머금고 참으며 구차하게 세월을 보내면서 한결같이 위축되어 포로가 되기를 마음으로 달게 여기니, 오랑캐가 이르면 필마(匹馬)를 타고 남쪽으로 건너가 옛날 물건을 다 버리고, 오랑캐가 물러가면 머리만 내민 쥐처럼 기웃거리기만 하고 조금도 방어를 준비하지 않다가 제장이 승첩(勝捷)을 바치면 바로 반사(班師)를 명해 옛 땅을 겨우 수복하고 바로 노정(虜庭)에 맡기니, 이는 고기를 장만하여 호랑이에게 던지고 상금을 주어 도적을 막는 것과 같으니 도적을 칠 뜻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회복(恢復)하려는 도모를 저지하는 것이니 천리와 인륜이 땅을 쓴 듯 없어지고, 천관(天冠)과 지구(地屨)의 도치가 극에 닿았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없고 오직 지위를 얻어 나그네로써 한 치 땅을 얻어 지키는 것을 다행으로 삼고 그 준 것을 모두 잃어버릴까 두근두근 걱정했다. 이 때문에 이 간신이 그 뜻을 미리 알아차리고 배속까지 스며들어가 땅을 갈라 봉공(奉貢)하는 것을 양책(良策)을 삼고 죄를 성토하고 적을 치는 것을 실계(失計)로 삼고자 했으니, 조장(趙張)의 도모를 억눌러 우분(憂憤)에 죽고 무목(武穆)의 충성을 꺾어 대리(大理)를 굴복시켜 거의 다 이룬 공을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했다. 이는 어둡고 비열한 소치로 말미암았으나 큰 지위를 탐내어 차지하려는 마음이 이미 마음 속에 요동쳤기 때문이니, 멀리 말을 몰아서 중원(中原)으로 한 걸음 향해 가서 회복의 성적을 도모할 수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조서를 내린 것이 진짜가 아님을 알았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고종의 마음은 오로지 치우친 안일과 지위를 굳게 하려는 계책을 만들고 강토를 다 회복하는 것을 걱정했다. 휘종과 흠종 두 황제가 환국하여 이미 돌아보니 지위를 잃었으므로 복수하려는 뜻을 접었으니,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친 현신(賢臣)이 주찬(誅竄)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한 듯하다. 하늘에 닿을 만큼 죄가 지극하다. 옛날 출공첩(出公輒)이 위(衛)나라를 차지하고서 아버지를 막았고, 당 숙종(唐肅宗)은 명을 받지 않고 지위에 올랐으니, 고종의 마음도 이와 같았을 뿐, 어버이 때문에 굽혔지만 쥐를 잡으려는 것을 잊은 적이 있은 것은 아니다.” 하니, 말하기를 “드러나지 않은 악은 미리 억측할 수 없다. 어버이를 잊고서 포로가 되어 하늘에 죄를 얻었으니 정을 따져보면 주벌에 해당하니 아버지를 막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어버이를 구하는 도리는 오직 적을 섬멸하여 복수하는데 달려 있고, 자신을 굽혀서 수치를 참는데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그러나 신사년에 손수 쓴 조서를 보니 “적이 물러가지 않아 백관을 흩게 하면 백관이 흩어져 군주의 세력이 고립될 것이니 누가 함께 지키겠는가?” 하였으니, 어리석음이 심하여 스스로 도모할 수 없는 것이 주평(周平)이 신(申)나라에 가서 수자리 한 것과 차이가 없으니 주벌할 가치도 없다. 비록 현신(賢臣)이 마음을 합쳐 도와주는 공에 힘입었지만 치우치게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서 여생을 보전했으니, 저 어버이를 잊고 이치를 거역한 사람이 어찌 중흥의 반열에 끼일 수 있겠는가? 내가 그래서 친히 정벌하겠다는 조서를 보고 개탄이 있어 이에 쓴다.

[주-D001] 의관(衣冠)이 좌임(左衽)으로 바뀌었으니 : 오른쪽 옷섶을 왼쪽 옷섶 위로 여미는 것으로, 오랑캐의 풍속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2] 무목(武穆) : 송나라 악비(岳飛)의 시호이다. 그때에 정승 진회(秦檜)가 금(金) 나라와 강화를 주장하는데 악비는 명장으로 금나라를 치고 있었다. 마침내 진희가 악비를 죽였다.

[주-D003] 옛날 …… 막았고 : 춘추(春秋) 시대 위(衛)나라 영공(靈公)의 세자인 괴외(蒯聵)가 아버지에게 죄를 얻고 진(晉)나라로 도망하였다. 그 후 영공이 죽자, 위나라에서는 괴외의 아들 첩(輒)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괴외가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로 들어와 군주가 되려 하니, 첩은 자기 아버지인 괴외를 막았다. 이에 사람들은 괴외나 첩 모두 아버지를 제대로 섬기지 못한다 하여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하였다.

[주-D004] 쥐를 잡으려는 것 : 돌을 던져서 쥐를 잡고 싶어도 곁에 있는 그릇을 깰까 걱정된다는 뜻의 속담으로, 임금의 곁에 있는 간신을 제거하고 싶어도 임금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서 손을 쓰지 못할 때의 비유로 흔히 쓰인다.

[주-D005] 주평(周平)이 …… 것 : 주 평왕(周平王)이 자기의 백성을 그의 외가인 신(申)나라에 가 수자리하게 하였다. 뒤에 시인이 이를 비방하여 지은 시가《시경》 〈왕풍(王風)〉의 한 편명인 〈양지수(楊之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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