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당시고취》 뒤에 적음〔書和唐詩皷吹後〕 우계 상사 황한충(黃漢忠)공이 화답한 것이다. > 금계외집 8권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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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당시고취》 뒤에 적음〔書和唐詩皷吹後〕 우계 상사 황한충(黃漢忠)공이 화답한 것이다. > 금계외집 8권제문

《화당시고취》 뒤에 적음〔書和唐詩皷吹後〕 우계 상사 황한충(黃漢忠)공이 화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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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7회 작성일 21-07-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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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당시고취》 뒤에 적음〔書和唐詩皷吹後〕 우계 상사 황한충(黃漢忠)공이 화답한 것이다.

시를 짓기도 쉽지 않지만 시에 화답(和答)하기는 더욱 어렵다. 짓는 것은 흥취(興趣)를 부치고 화답은 억지로 압운(押韻)함에 막힌다. 그러므로 시를 짓는 사람은 그 감정을 다할 수 있지만 화답하는 사람은 그 묘함을 다하기 어렵다.

예전 소동파(蘇東坡)가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처음으로 화답(和答)한 것과 왕반산(王半山 왕안석)이 소동파가 지은 〈눈〔雪〕〉이라는 시에 화답한 것은 어두운 가슴 속에 품었던 만권 서적인데, 어려움으로 인해 기이함을 드러내려고 했으나 오히려 미치지 못한 것이 병통이다. 간혹 초계(椒桂)를 공격하여 해치는 근심이 있는데, 더구나 그 아래에 있어서이겠는가?

우계공(愚溪公)이 뛰어난 재기(才器)로 일찍 부모님으로부터 학업을 들어 옛 성현들의 언행을 많이 알아 제자서를 빠짐없이 관통하고 문필에 종사했으며, 마음을 쏟아 육예(六藝) 속에서 놀았으니, 비록 화국(華國)을 보좌하여 뭐라 하든 상관없이 시행했으나 한 번 사마시에 응시한 다음 이름을 다투는 과거장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고 바로 시골집으로 돌아가 임천(林泉)에 마음을 붙여 시내를 유주(柳州)라 이름하고 농서(隴西)에서 시를 읊으며 평생의 근심과 기쁨이 마음에 북받치면 여기에 울적한 마음을 쏟았다. 한가한 가운데 화미(和媚)하고 술 취한 속에서 방랑하며, 곤륜산의 홀(笏)과 형산의 박옥(璞玉)이 까치를 만나자 마자 밀어젖혔으니, 덕도 있고 칭송도 있는 군자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은 시를 주머니에 넣는 것을 탐탁찮게 여겨 흩어져 전하는 것이 없고《화고취(和皷吹)》두 질(帙)만 상자 속에 담겨있어 수택(手澤)이 완연이 있으니, 이것도 시름을 달래며 우연한 데에서 나왔을 뿐이고, 뇌박(牢薄)하며 뒷날을 기다리는데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아들 진사 빈(彬)이 그 가업의 대를 잘 지켜 간행하여 썩지 않게 하기를 도모하고 갱장(羹牆)에 보이는 듯 사모를 붙이는 것으로 나에게 발문(跋文)을 지어달라고 억지를 썼으니, 어찌 외람되게도 문말(門末)에 공을 상세히 아는 자가 나만 같은 사람이 없겠는가마는 절하고 보이면서 몇 번이나 부탁했다.

궁상(宮商)의 음악이 이따금 연주되고 규벽(奎璧)이 잇달아 빛을 발휘하며, 평운(平韻)은 여유가 있어 유려(流麗)하고, 험한 걸음은 원전(圓轉)하여 완숙하니, 작자(作者)에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 공을 이룬 근면과 마음을 쓴 노고가 또한 지극하다. 그가 그 배열해 놓은 성조(聲調)와 짜서 꾸며놓은 격률(格律)은 명가(名家)라 부르지만 오히려 퇴고의 쓸쓸함을 면하지 못했다. 공이 홀로 몰래 성당(盛唐)을 사모하여 〈양춘곡(陽春曲)〉에 화답을 붙였지만 빈한하여 온갖 고생을 한 모습이 없으니 무턱대고 남을 흉내 내려고 하는 것과 견줄 것이 아니니, 그 풍류와 기상을 상상해 볼 수 있고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겠다. 만약 소문(蘇門)을 언급한다면 황구(黃九)의 끝없는 칭찬을 얻은 것을 환히 알 수 있다.

아, 공의 효우(孝友)는 세속의 사표가 될 만하다. 남에게 있는 것에 힘을 다한 것이 아니라 끝에 가서 공의 문장이 충분히 세상을 놀라게 했으니 그 전하는 것이 극언한 것이 아니고 바로 어려운 점이니 뒤에 보는 사람은 그 끝을 잡고서 그 본(本)을 하문(下問)하고, 그 어려움으로 인해 그 쉬움을 상상한다면 그 진실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공의 아름다움을 다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가정(嘉靖) 무신년(1548, 명종3) 계춘에 모(某)는 삼가 발문을 쓰다.

[주-D001] 화당시고취 : 《당시고취》는 금(金)나라 원호문(元好問, 1190~1257)이 당(唐)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들이 지은 한시(漢詩) 중에서 일부를 뽑아 편집한 책이다. 황한충(黃漢忠)이 이것에 차운하여《화당시고취(和唐詩鼓吹)》2권을 지었다.

[주-D002] 황한충(黃漢忠) : 본관은 창원, 자는 양좌(良佐)이다. 1496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문장으로 명성이 있었다. 우계(愚溪) 주변에 양성정(養性亭)을 짓고 독서하며 뜻을 구했다. 스스로 아호를 ‘우수(愚叟)’라 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 마을을 ‘우수동(愚叟洞)’이라 하였다.

[주-D003] 초계(椒桂) : 산초나무와 계수나무를 가리키는데, 이는 모두 향목(香木)으로 현인(賢人)에 비유한 말이다.

[주-D004] 덕도 …… 군자 : 훌륭한 덕에 걸맞은 훌륭한 말이다. 《논어》 〈헌문(憲問)〉에 공자가 “덕을 소유한 사람은 반드시 이에 합당한 말을 하게 마련이지만, 그럴듯한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꼭 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有德者 必有言 有言者 不必有德〕”라고 하였다.

[주-D005] 갱장(羹牆)에 …… 사모 : 못내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요(堯)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이 3년 동안 사모하는 정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밥을 먹을 때에는 요 임금의 얼굴이 국그릇 속에 비치는 듯하고, 앉아 있을 때에는 담장에 요 임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했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63 李杜列傳》

[주-D006] 양춘곡(陽春曲) : 옛날 초나라의 가곡 이름인데, 이 가곡은 곡조가 매우 고상하여 화답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는 데서, 전하여 뛰어난 시가에 비유된다.

[주-D007] 비로소 …… 있겠다 : 공자(孔子)가《시경》을 가지고 자하(子夏)와 문답하면서 자하를 칭찬하여 “나를 일깨운 사람은 상(商)이로다.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만하구나.〔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八佾》

[주-D008] 황구(黃九) : 여러 형제들 가운데 제 몇 번째라는 칭호인데, 소삼(蘇三)이니 황구(黃九)니 하는 따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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