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의 폐단을 진달하는 소〔丹陽陳弊疏〕 군수(郡守) 신(臣) 황준량(黃俊良)은 삼가 주상 전하께 아룁니다. > 금계외집 7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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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의 폐단을 진달하는 소〔丹陽陳弊疏〕 군수(郡守) 신(臣) 황준량(黃俊良)은 삼가 주상 전하께 아룁니다. > 금계외집 7권 소

단양의 폐단을 진달하는 소〔丹陽陳弊疏〕 군수(郡守) 신(臣) 황준량(黃俊良)은 삼가 주상 전하께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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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9회 작성일 21-07-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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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집 외집 제7권 / 소(疏)


단양의 폐단을 진달하는 소〔丹陽陳弊疏〕

군수(郡守) 신(臣) 황준량(黃俊良)은 삼가 주상 전하께 아룁니다.

삼가 생각건대, 천하의 일은 피폐되기 전에 보완하는 것은 보통 사람도 쉽게 할 수 있지만, 이미 피폐된 뒤에 바로 세우는 것은 지혜로운 자도 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대개 이루어져 있는 형세를 기반으로 해서 피폐한 정치를 수습하는 것은 수령의 힘만으로도 쉽게 도모할 수 있겠지만, 버려진 그릇을 안고서 이미 흩어져 버린 형세를 수습하는 것은 수령에게 전적으로 책임 지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잘 보듬어 편안하게 하는 은전(恩典)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피폐된 것을 진작시키는 어려움은 피폐되기 전에 보수하는 쉬움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에 조처하는 책략은 결코 수령이 전담하거나 옹졸한 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신은 장구(章句)나 아는 보잘것없는 유자(儒者)로서 경세(經世)하는 재주가 없는데 외람되이 군수의 책임을 맡았으니, 잔폐된 고을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책임이 중합니다. 따라서 어찌 정성과 생각을 다하여 조금이나마 걱정을 나누어 갖는다는 중임에 부응하려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돌아 보건대 이곳과 가까운 곳에서 신이 살았기에 일찍부터 피폐된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부임하면서 그 참상을 목격하고 시기에 맞추어 업무를 보자니 백성이 흩어진 지 오래되었고, 편안히 앉아서 모른 체하자니 온갖 일이 모여듭니다. 그래서 가부간에 의심이 되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성스러운 성상께서 천리 밖을 환히 살펴보지 않으셨다면 고루한 신이 어찌 그 사이에서 한 가지인들 조처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신이 삼가 살피건대, 단양이라는 고을은 본래 원주(原州)의 조그마한 고을 가운데 하나였는데 적을 섬멸한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지금의 칭호로 올려준 것입니다.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한쪽은 큰 강이 흐르고 있는데 우거진 잡초와 험한 바위 사이에 있는 마을 집들은 모두 나무껍질로 기와를 대신하고 띠풀을 엮어 벽을 만들었으며 토지는 본래 척박해서 수재와 한재가 제일 먼저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일정한 생산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풍년이 들어도 반쯤은 콩을 먹어야 하는 실정이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주워 모아야 연명할 수가 있습니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이른바 “땅이 척박하고 물이 차가워서 오곡이 풍요롭지 못하다.”라고 한 것은 이곳의 풍토가 본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극도로 피폐해져서 살아갈 길이 날로 옹색해지는 데다가 부역에 나아갈 수 있는 민호(民戶)가 40호도 되지 않고 산과 들의 경지 면적이 3백 결(結)에도 차지 않으며 창고의 곡식 4천 석 중에는 가라지나 피가 섞여 있는데 그것도 미납된 세금이 반이지만 받아 낼 길이 없습니다. 이름은 비록 군이지만 반이 중간 정도의 살림살이에 미치지 못하니 참으로 가련합니다. 이와 같은데도 부역의 재촉은 큰 고을보다도 중하고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다른 고을 백성보다 몇 곱절이나 되어 한 집이 1백 호의 부역을 부담하고 한 장정이 1백 사람의 임무를 감당하게 되어 힘껏 밭갈고 재빨리 농사지어도 제 몸을 꾸려나갈 희망조차 없고, 돈을 빌리고 밭을 세내어도 세금과 부역도 감당하지 못하니, 기름 끓는 듯 애를 태우며 목마른 붕어가 모인 듯하여 대궐에 호소할 길이 없어서 애달프게 하늘에 하소연하니 이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이처럼 고통스럽게 합니까? 가난한 자는 이미 곤궁해지고 곤궁한 자는 이미 병들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땅은 벌써 텅 비었습니다.

아, 새도 남쪽 가지에 둥지를 틀고 이리도 옛 언덕을 향하여 머리를 돌린다고 하는데,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 더욱 심한 것입니다. 전지와 마을을 버리고서 이슬을 맞으며 깊은 산속 한데서 살다가 승냥이나 살무사에게 죽더라도 돌아오려 하지 않으니 유독 인정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살을 도려내고 골수를 우려내며 거북 등처럼 털을 벗겨 못하는 짓이 없어서 명령이 성화같이 절박하고 참혹한 형벌을 가하여 조금도 편안히 살 수가 없으므로 고향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 이어 도망가서 마침내 온 고을이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사리에 당연한 것이니 어찌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마을은 가시덤불로 덮이고 밭에는 쑥대가 우거져 사방 들판이 황량하고 고요하여 인가에 연기도 나지 않아 전쟁이 난 뒤보다 더욱 심하여 마음으로 미처 슬퍼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떨어집니다. 성명(聖明)한 시대에 자주 불쌍히 여기는 유지(諭旨)를 내렸지만 백성들이 이렇게 심하게 학정에 시달릴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비참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자는 아 대부(阿大夫)처럼 삶기는 형벌을 면하였으니, 악을 징계하는 법이 너무 엉성하지 않습니까? 그 사이에 겨우 숨을 몰아쉬며 살아남은 목숨이나 무너진 처마와 부서진 울타리 틈에 외롭게 남은 백성들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아침저녁으로 목숨을 붙여 사는 자들도 안주하여 살며 생업을 즐기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외와 대소가 폐기한 상황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질병에서 소생시키고 부세를 감면하라는 조정의 명령이 벌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기울고 막힌 기회에 다시 흥기시키는 기약은 늙고 병든 백성이라도 모두 지팡이를 짚고 눈을 비비며 성은(聖恩)을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바로 피폐한 단양군이 흥폐하고 이합(離合)하는 하나의 중대한 기회입니다. 전하께서 백성을 아픈 사람처럼 여기는 인자함과 어린 아이를 보호하는 듯한 은혜로 피로하고 잔약한 백성들을 똑같이 보시고 다 법도에 따라 받아들인다면 어찌 폐읍(敝邑)의 백성들만이 버림을 받아 바르지 못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더구나 생명이 있는 부류가 한 번도 은택을 입지 못하면 명군(明君)이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으니, 이를 처치하는 방법은 참으로 느슨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것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이고 어진 마음 그것만으로는 저절로 행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비상한 방도가 있어야 다 끊어져 가는 형세를 진작시킬 수 있을 것이니, 예사롭게 상례(常例)를 따라 처리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신이 참담하고 놀라서 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망녕되이 천려일득(千慮一得)으로 주제넘게 세 가지 계책을 진달하여 채택에 대비했으니, 삼가 전하께서는 자애롭게 살펴주소서.

조그마한 고을이 완전히 피폐해져 전혀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지금 같은 형편에 전날의 조공(朝貢)을 독책한다면, 비록 공소(龔召)라 하더라도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만일 한 군을 내버리고 뜻을 접은 채로 돌아보지 않으며 부역을 면제해 주어 그 항목을 모두 없애고 10년 동안을 기한으로 즐거이 살면서 일하게 하여 백성들에게 태평스러운 삶을 누리게 함으로써 인의(仁義)의 은택에 젖어들게 한다면, 원근에 유산되어 있던 백성들이 모두 돌아오기를 원할 것은 물론, 거칠어진 1백 리의 땅이 다시 살기 좋은 낙토로 변해서 근본이 이루어질 것이니, 이것이 상책입니다. 말 많이 하는 자들은 멀리 10년으로 기한을 정한 것이 매우 오활하다고 하는데, 이는 근본을 아는 자의 말이 아닙니다. 버려진 지역은 구우일모(九牛一毛)보다 적은 것이 무슨 손상이기에 나라의 계책을 세우는 사람이 기어코 백성을 괴롭혀 조정을 살찌우고 고기를 잘라 배를 채우는 어리석음을 본받으려 하겠습니까.

옛사람들이 백성을 휴양시키고 생식(生息)시키는 데는 반드시 10년의 오랜 세월을 기한으로 하여 왔습니다. 월(越)나라 구천(句踐)이 인구를 늘린 것이나 제갈량(諸葛亮)이 백성들을 규합한 것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10년 만 부역을 면해 주면 1백 년을 보장할 수 있지만 3~5년에 그치면 구제하자마자 도로 폐지되어 원대한 계획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또 이 군의 40호로 수만 호나 되는 이웃 고을에 비교하면 수만 인이 10년 동안의 부역은 바로 40인이 하루에 할 부역입니다. 지금 비록 10년 동안 안일하게 지낸 적이 있지만 부역은 이미 백 년의 고통을 겪었으니, 다시 10년을 면제해 주어도 이미 부족합니다. 백성들이 이미 수고하였으니 조금 쉬게 하면 어찌 홀로 애쓰고 수고한다는 원망이 있겠습니까. 이는 만물을 다스려 치우침이 없이 고르게 하는 조물주가 염두에 두고 혁신해야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 땅에 매겨져 있던 조공을 다 면제해 줄 수 없고 조도(調度)가 많아서 10년 동안 늦출 수 없다면 마땅히 군(郡)과 군수(郡守)를 혁파해서 강등시켜 현(縣)으로 만들어 아직 흩어지지 않은 백성을 큰 고을에 들어가게 하여 참혹한 해를 면하게 하는 것이 그 차책(次策)입니다. 만일 피폐된 고을을 아무런 죄도 없이 폐지하는 것 또한 큰 일이라 여겨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도 행할 수가 없다면 마땅히 하책(下策)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 가운데 큰 것만을 뽑은 것으로 폐단의 절반도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니, 바로 눈앞의 고식적인 급함을 우선 구제하는 것이요 피폐해진 것을 진기시켜 장구히 유지해 나가는 정사가 아닙니다. 그 항목이 열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재목(材木)에 대한 폐단입니다. 크고 작은 재목을 공납해야할 관사가 각각 선공감(繕工監)과 와서(瓦署), 귀후서(歸厚署)입니다. 서까래와 재목이 4백 개에 이르고 산목(散木 좋지 못한 재목)이 거의 수만 개가 되니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숫자입니다. 40호에서 수만의 재목을 가지고 험한 산을 넘고 깊은 골짝을 건너 운반하자면 남녀가 모두 기진맥진하고 소와 말도 따라서 죽게 되어 온 고을의 농가에 수십 마리의 가축도 없게 될 것이니, 백성의 고생이 극도에 이를 것입니다. 저택은 구름이 연속할 정도로 호사스러움이 너무 심하며, 기와 이음매가 비늘처럼 즐비하여 조그만 땅도 여유가 없으니, 선공감의 급하지도 않는 재목과 와서(瓦署)의 끝없는 축적이 어찌 한 군이 빠진다고 무슨 손실이 있겠습니까? 귀후서의 넓은 판자는 비록 4치에 그치지만 가릴 무렵에 점검하여 좋지 못한 재목들을 물리치는 까닭으로 방납(防納)하는 값이 쌀 천 말에 이르니 집집마다 1곡(斛)을 내어도 오히려 충당하지 못합니다. 대체로 왕자(王者)의 정치는 죽음으로써 생명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이런 이로움과 해로움은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강을 이용하여 뗏목으로 운반하기 때문에 쉽게 공납할 수가 없는데, 삼사(三司 선공감, 와서, 귀후서)의 공가(貢價)가 거의 1백 필에 이르니, 2년 동안 공납하지 못하여 장구히 독촉을 받게 된 것은 또한 괴이하게 여길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중국 사신을 공궤하는 것도 비록 항공(恒貢)하는 관례가 아니지만 채붕(彩棚)을 만들 때 쓰는 큰 재목과 여기에 관계되는 잡물은 본 군이 감당할 바가 아니므로 내년 지공을 덜어줌은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삼사의 공납을 오래도록 면제해 주고 아울러 몇 해 동안 부역도 없애 주며, 중국 사신의 비용을 부담시키지 말고 겸하여 잡물의 폐단도 제거해 주고 산을 따라 어영차하는 메아리가 밭이랑을 갈며 노래하는 소리로 바뀐다면, 백성들이 혹 여기에서 조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종이의 공납에 대한 폐단입니다. 종이를 만드는 어려움은 다른 부역보다 배나 심한데, 종이를 공납하는 어려움이 유독 이 고을에만 많아서 편호(編戶)의 백성들이 시달리다가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래입니다. 지금 장인(匠人)은 세대를 이어 전수하는 솜씨가 단절되고 외부 사람들은 전수받아 익히는 고통을 싫어하여, 관전(官田)이 오래도록 황폐하여 닥나무가 금덩이같이 귀하고 일상적인 장부와 문서는 미처 때맞추어 올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풍저창(豐儲倉)과 장흥고(長興庫)의 공납은 모두 계목(啓目)에 의해 회계(會稽)에 관계된 물품이기 때문에 독책하지만 예조ㆍ교서관ㆍ관상감과 같은 관사(官司)도 모두 공납하게 되어 있어 도합 2백여 권이나 되는데, 공사(公私)의 저축이 함께 바닥이 나서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갑인년(1554, 명종9) 이후로 4년 사이에 침탈과 학대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이르러, 피폐하지 않아도 고을이 더욱 고통스럽게 됩니다. 지금 비록 없는 데서 있는 것을 내놓으라고 독책(督責)하는 것은 바로 회수(淮水)에서 귤(橘)을 요구하는 것과 같으니, 마침내 어찌 얻을 방법이 있겠습니까. 종이를 취하는 가벼운 일을 소중한 백성들에게 비교한다면, 나라에 바치는 공물 가운데 모자라는 것은 종이가 아닙니다. 수백 권의 종이를 아낄 것이 뭐 있겠습니까. 게다가 종이가 매우 귀해진 것은 서적을 많이 인쇄하기 때문인데, 육경(六經) 이외에 다른 서적은 없습니다. 제자(諸子)의 설은 다만 헛된 말만 조장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서가에 꽂아 좀이나 먹는 서적이니 어찌 백성들을 해치면서까지 널리 인쇄하려 하십니까. 삼가 바라건대 오래도록 그 공물을 경감하고 아울러 4년간 부세를 면제하여 주신다면 또한 비용을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나가면 백성들이 이 때문에 혹 조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산행(山行)에 대한 폐단입니다. 봉진(封進)하는 숫자에 대해서는 정해진 법이 있고 사냥하는 사람도 각기 해당자가 있는 것인데, 지금은 길짐승과 날짐승의 사냥을 오로지 백성에게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쟁기를 풀어놓고 따비를 버리며 그물과 활을 가지고 여름과 겨울도 구분하지 않고 숲속을 달리는데, 우인(虞人 산림과 천택 관리관)이 없이 사슴을 쫓는 격이어서 새 한 마리도 잡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저축해 놓은 곡식을 털어서 몇 곱의 값으로 사들이는데도 오히려 때에 늦은 죄를 면치 못하여 다시 속포(贖布)의 벌을 받게 되니, 한 고을의 민생들이 오래전에 이미 죽은 상태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1년의 공물에 노루가 70마리이고 꿩이 2백 마리가 넘습니다. 전 감사 류지선(柳智善)이 특별히 석 달의 포(脯)를 감하여 몇 달간 여가를 얻게 했으니 매우 큰 다행입니다. 남은 수량이 아직 많은데, 사람은 적고 일은 거창하니 어떻게 그 무거운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노루와 꿩의 숫자를 줄여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고 또한 백성을 편안히 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 나가면 남은 백성들이 혹 여기에서 조금이나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야장(冶匠 대장장이)에 대한 폐단입니다. 선공(繕工)의 직무는 반드시 기내(畿內)의 사람을 써야 합니다. 번휴(番休 당번 배정)가 오고 감에 그 수고로움을 보상해 주어야 하니, 방외(方外)의 떠돌며 유리걸식하는 자들이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병오년(1546, 명종1)에 처음으로 2명을 정했는데 모두 걸인(乞人)들로 그 액수(額數)를 구차하게 채워 놓았으니 후일의 폐단을 생각지 않음이 심합니다. 옳지 못한 일에 앞장선 자들은 매우 어질지 못합니다. 액수는 그대로 있고 사람은 없으므로 아울러 민간에 책임 지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6개월의 입번(立番)에 대한 2명의 번가(番價)를 이미 몇 해 동안 빠뜨렸으니 이자가 불어나서 가포(價布)가 80필에 이르렀는데, 앉아서 침색(侵索)을 당하고 있습니다. 살을 저며 내고 피를 말리는 참상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름만 야장(冶匠)을 가지고 있다고 어찌 단련하는 솜씨를 다하겠습니까. 백성에게 해독을 끼치는 값이나 물건을 대신 세운 구사(丘史 관노)에게 다 돌리니, 추종하는 자들에게 자랑하며 도로에서 호창(呼唱)하는 밑천으로 삼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면 새로 정한 장인은 혁파해야 합니다. 삼가 야장의 폐단을 아주 제거하고 아울러 2년 동안 빠뜨린 가포도 면제해 주시어 다 죽어가는 목숨이 명분 없는 부역에서 면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큰 피해가 이미 제거되고 남은 백성이 혹 여기에서 조금은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는 악공(樂工)에 대한 폐단입니다. 외방 고을에서 충원된 자가 아직 재능을 익힌 것도 아닌데 6개월씩 부리므로 다른 역사(役使)보다 더 괴롭습니다. 그런데 잔폐한 고을에다가 4명을 충원하게 하였으니, 이미 지나친 것입니다. 지금은 노비들이 죽거나 옮겨가서 거의 다 없어졌으므로 악공의 숫자를 지탱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생활해 갈 수가 없으므로 서로 연달아 도망하는데, 징수하는 가포는 야장과 같으므로 노비들의 생계가 더욱 위축됩니다. 전 감사 류지선이 두 가지 명목을 이정(移定)하여 그 폐단이 조금 느슨해졌으니, 은혜가 지극했습니다. 간혹 호소함으로 인하여 오래지 않아 다시 정할까 염려한다면 또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음악을 관장하는 악공(樂工)은 모두 생우(笙竽)나 관약(管籥) 등을 부는 솜씨를 지닌 것은 아닌데 궐가(闕價)를 준엄하게 요구하여 구사(丘史)를 대신 채워도 본사(本司)의 인원으로 길가를 끼고 뒤에서 옹위하는 밑천이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4명의 악공을 줄여야 합니다. 삼가 우선 역사를 도피한 악공을 감면해 주고 길이 이정된 액수를 없애주신다면 능멸하는 근심이 조금 느슨해져서 남은 백성이 혹 여기에서 조금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는 보병(步兵)에 대한 폐단입니다. 군졸(軍卒)이란 나라의 손톱이고 어금니이며 방어하는 도구이니 더욱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본 고을에는 보병이 26명이나 되니 많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겨우 13명만 남아 있는데, 그것도 보솔(保率)이 없는 단신(單身)입니다. 그 나머지 13명은 대체할 자가 없이 빈 문서만 걸어놓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급한 일이 생겨 갑자기 군대를 동원할 일이 있게 되면 누가 변경의 진중(陣中)으로 달려갈 것이며 누가 죽령(竹嶺)의 관문을 지키겠습니까. 더구나 보병의 신역에는 으레 가포(價布)가 있으니 현재 남아있는 13명은 모두 이웃과 일족의 힘을 빌리고 있는 상황이고 그 나머지 1백 여의 가포는 어떻게 공납할 수가 없어 민간에게 나누어 배정하였으므로 한번 보병의 가포를 겪고 나면 온 고을이 탕진되어 솥이 남아 있는 집이 몇 안 됩니다. 대저 군병(軍兵)은 정예롭게 함에 힘을 써야 하니 헛된 명분은 무익합니다. 속포(束布)를 실어 들이는 자들은 반드시 모두가 간성(干城)의 도구가 아님을 안다면, 지금 이처럼 급함은 혹시 조금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헛 액수의 보병을 감하거나 혹은 이정하는 길을 열어놓아 머리를 떨어뜨리고 기운이 꺾인 백성들로 하여금 법 밖의 가포를 징수하는 일이 없게 해주신다면 또한 소생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편이 될 것입니다.

일곱째는 기인(其人 아전)의 폐단입니다. 아전 50명 중에서 1명을 정하는 것이 나라의 법입니다. 그런데 본 고을은 늙고 쇠약한 아전이 20명도 못 되는데 기인의 액수는 1명 반이 됩니다. 10여 명의 아전이 80명의 역사에 이바지해야 하는데 대포(代布)의 숫자는 1백 필이 넘으니, 어리석고 잔약한 아전들로서는 한 자의 베도 저축한 것이 없는데 장차 어디서 마련할 수가 있겠습니까. 재산을 다 기울여도 부족해서 이웃과 일족에게까지 침해가 미치므로 서리와 백성이 모두 곤궁에 시달립니다. 2년 동안 공역을 완전히 폐하였으므로 앉아서 대립(代立)하는 침학을 받는데 형부(刑部)에 이문(移文)하여 매양 관리를 추문하고 있어 해가 더욱 심합니다. 본사(本司)의 진배(進排)가 비록 경비가 있겠지만 백성들의 고혈이 벌써 고갈되어 길어낼 수 없다면, 변통하는 대책을 세워 급하지 않은 비용을 더는 것을 소홀하게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반으로 삭감해서 조금이나마 급박함을 펴이게 해주고 2년 동안 빠뜨린 것을 천천히 보상할 수 있다면 또한 소생시킬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될 것입니다.

여덟째는 피물(皮物)에 대한 폐단입니다. 병영(兵營)의 방물(方物)로 소록(小鹿)과 장피(獐皮)의 공납이 있는데 이를 유신현(惟新縣)과 아울러 배정하였고, 또 대록(大鹿)과 황우(黃牛)의 대가(代價)가 있는데 상공(上供)한다는 명목을 핑계로 그 선택을 최고로 하여 소록은 사슴의 중간치로 하고 장피는 사슴 가운데 작은 것으로 합니다. 다른 도(道)도 모두 그렇게 하여 이미 폐습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10여 가지나 되는 잡색(雜色)의 세금을 모두 백성에게 배정하였으므로 점퇴(點退)와 유연(留連)에 대한 비용은 포함시키지 않아도 내야 할 정목(正木)이 1백여 필에 이르니, 이 또한 큰 폐단입니다. 여러 고을의 공납이 작지 않은데, 방물(方物)을 바치는 것도 이같이 많습니까. 윗사람에게 진상(進上)하는 물건이라 하면서 반은 은택을 파는 뇌물로 돌아간다면 한 고을을 제외하는 것도 비용에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신현은 큰 고을이므로 반드시 폐읍(弊邑)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으니, 녹호(鹿虎) 가죽 대가인 40필의 포목을 유신현에만 배정하고 폐읍에는 독책하지 않는 것이 또한 약한 자를 부지시키는 정치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병영의 피물을 경감하고 아울러 배정한 우록을 영원히 면제해 줌으로써 가죽이 다하면 털도 없어진다는 폐단을 면하게 해주신다면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방책이 될 것입니다.

아홉째는 이정(移定)의 폐단입니다. 본 고을의 조공도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데 다른 고을의 부세까지 더 이정했으니, 공주(公州)의 사노비(寺奴婢), 해미(海美)의 목탄(木炭), 연풍(延豐)의 서까래와 재목, 영춘(永春)의 봉판(蜂板), 황간(黃澗)의 기인(其人) 등 다섯 종목이 그것입니다. 당초 이정(移定)한 것 또한 폐단을 구제하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 이제 3백 고을에 이러한 폐단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돌보아 주지 않습니까. 노비의 액수가 빈 문서로 기재는 되어 있지만 현재 복역하는 숫자는 50도 되지 못하는데, 액수 외의 것이라 명명하여 이쪽에서 빼앗아 저쪽에 주는 것은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더구나 학교에 노예가 없는데 저곳에 부역을 나누어 준다면 더욱 넉넉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역이 삼도의 요충에 해당되고 고을에는 1백 호의 취락도 없는데, 사신들의 왕래와 왜인들이 다니는 길목이므로 이들의 공궤에 드는 수요를 모두 이 무리에게 의지하는 것은 물론, 복물(卜物)도 모두 이들에게 지고 나르게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또 수십 명이 도망하여 아직 돌아와 입역(立役)하지 않고 있으므로 두 번이나 해조(該曹)에 보고하였으나, 관례에 따라 방계(防啓)하였습니다. 아, 이것이 어찌 관례에 따라 하는 일이겠습니까? 이는 바로 원헌(原憲)의 재산을 빼앗아 계씨(季氏)의 부(富)를 보태주는 것과 같으니, 이를 어찌 차마 한단 말입니까. 공주는 백성이 많은 큰 고을인데 비록 부족한 바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우리 고을에서 취해다가 채워야 될 형편이겠습니까. 만일 빨리 도모하지 않으면 아마도 군의 구실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공주로 이정한 노비를 도로 본 고을로 돌려주고 다른 고을에서 이정(移定)한 제반 공물도 도로 해당 고을로 돌려주어 한 지방의 공물을 보충할 수 있게 하여 영원토록 이롭게 한다면,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정사가 될 것입니다.

열 번째는 약재(藥材)에 대한 폐단입니다. 의약에 관한 재료는 공납이 각기 달라 혜민서(惠民署)에 공납하는 것이 13가지이고, 감사(監司)와 도(道)에 봉납하는 것이 80여 품목입니다. 봄, 가을의 공납과 매월 초하루의 명령은 어찌 정해진 수가 그리 많습니까. 약초를 캐는 사람이 다 떠나고 의생(醫生)도 몇 사람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공납하는 일에 겨를을 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채취(採取)할 여가가 있겠습니까. 무지한 시골 백성들은 약 이름도 모르는데 없는 물건을 생판으로 마련하여 내게 하므로 포목을 가지고 가서 사게 되니, 하소연할 데 없는 불쌍한 백성들이 감내할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웅담(熊膽)과 사향(麝香), 백급(白笈)과 인삼(人蔘), 복령(茯苓)과 지황(地黃)입니다. 1백 필의 포목을 가지고도 이 약재 한 가지를 준비하기가 어려운 데다가 거기에는 모두 인정물(人情物)까지 있으니,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아울러 배정된 우황(牛黃)은 백성들이 내게 되니 이는 전적으로 제천(堤川)에만 맡겨서 이 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리는 것이 불가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팔도의 공물은 모두 내의원(內醫院)에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한 고을을 제외시킨다고 약재의 수요가 부족한 것은 아니니, 토산물이 아닌 것을 책임지우고 긴급하지 않은 곳에 베풀어 산 사람의 목숨을 해치니, 환자의 몸을 치료하는 것이 비록 생명을 구제하는 정사이기는 하지만 백성을 은혜롭게 하는 인정(仁政)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한 고을을 버리지 마시고 갖추기 어려운 약재를 특별히 삭감하여 조금이나마 은혜를 입게 함으로써 태평성대를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시면 모든 병폐가 저절로 없어져 하늘과 땅에 화기가 감돌 것이니 이 또한 소생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상 열 가지 폐단은 가장 해가 심한 것으로 전체의 숫자로 계산하여 본다면 겨우 10분의 1쯤 됩니다. 흩어진 백성을 되돌아오게 하려면 마땅히 모든 역사를 감해 주어야 하는데 이 10분의 1에 대해 하나라도 어렵게 여기는 것이 있어서 다 개혁하지 못한다면 소생시키려는 계책은 어긋나고 말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계책은 속임수가 아니겠습니까. 때에 따라 줄이고 늘임은 성왕(聖王)의 할 일이니 정사를 함에 시행하지 않아 반드시 새로 교화를 펴는 데에 이르게 되면 한 지역의 견해를 지키다가 한 고을을 버리게 되는 격이니, 또한 지혜롭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취한다고 꼭 나라에 이로운 것은 아니고 덜어주면 백성에게 덕이 될 수 있는 것은 임금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니, 이 열 가지 폐단에 대해 어렵게 여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청밀(淸蜜)의 공납이 2섬이 넘는데, 백성은 적고 땅은 거칠어 그 숫자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젓갈용으로 쓸 눌어(訥魚)의 배당도 1백 마리가 넘는데 물이 맑아서 큰 것이 없으므로 먼 지역에 가서 사가지고 오니 또한 폐단이라 하겠습니다. 제원(諸員) 1명이 이에 종사한 지가 이미 오래인데, 역사와 독책의 괴로움이 야장(冶匠)의 폐단과 다를 것이 없고 세공(歲貢)을 위해 한 사람을 배정하여 그것으로 먹고 살게 했으나 역사(役事)를 도망하는 폐단이 악공(樂工)과 같으니, 또한 폐단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나머지 20개의 각사(各司)에도 모두 공물이 있고 삭선(朔膳)ㆍ월령(月令)에 대해서도 각각 도회(都會)가 있는데 크고 작은 폐단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감히 낱낱이 거론하여 성총(聖聰)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채택해서 취사하시기만을 바랍니다.

혹자가 이르기를, 두 번 지나간 갑신년(1524, 중종19) 중에 일찍이 폐기하고서 2백여 명이 들어가 살도록 계청(啓請)하였는데, 지금에 이 계책을 쓰면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다. 신이 헤아려 보건대, 폐단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살아갈 방도가 없으니 우거하는 백성들이 장차 어느 지역에 발을 붙이겠습니까. 부역에서 도피한 유민(流民)들을 어떻게 그들의 손발을 묶어 둘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조세를 감면해주는 것의 쉬움이 백성을 옮기는 어려운 일과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시간적인 측면을 고려하자면 민호(民戶)가 수백인데 전결(田結)은 육백이니, 오히려 이때보다 갑절인데도 아직도 들어가 살라는 명만 내리고 있으니, 이 또한 조정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아, 영동(嶺東)의 조그마한 고을이 기운이 이미 떨어진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한 역사와 한 부세도 오히려 갖추기 어려운데, 이포(里布)와 지정(地征)까지 끝없이 내기를 독책하고, 까다로운 법령과 번거로운 조항으로 징색하여 마지않습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도망한 자의 일족과 묵은 밭의 이웃에게 책임을 분담시켜 부세를 징수하여 기필코 그 수를 채우려 하니, 10묘(畝)의 농사로 어떻게 배를 채우고 몸을 감쌀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물고기를 끓는 솥에 기르고 새를 불타는 숲에 깃들이게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아무리 자애로운 부모라도 자식을 보호하기 어려운데, 임금이 어떻게 백성을 보유할 수 있겠습니까. 폐기된 지가 이미 오래인데 이제야 알았으니, 그 사이의 시름과 고통으로 인한 원망에 대해 어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생각하여 안타깝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신이 약 10년 동안 완전히 면제해 주어 길이 고통을 잊게 해주자는 것은 이 때문이며, 강등하여 부곡(部曲)으로 만들어 큰 고을의 그늘에 비호되도록 하자는 것도 이 때문이며, 두 가지 다 할 수 없으면 진달한 바의 폐단만이라도 견감하여 우선 일시적이나마 편안하게 해주자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충(聖衷)으로 결단하고 대신에게도 상의해서 전하의 계책과 조정의 의논에서 이를 빠짐없이 헤아려 백성을 소생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어 주고 또 감사(監司)와 병사(兵使)에게도 유지를 내려서 포부(逋負)를 감면해 줌으로써 보호하는 계책을 양쪽 다 극진하게 하면 더욱 다행스럽기 그지없겠습니다.

만약 지위도 낮고 말도 경망하여 일일이 들어 줄 수 없다 하여 지난해처럼 관례대로 긴급하지 않은 공물이나 감면해 주고 만다면 비록 감면해 주었다는 말은 있어도 실상은 소생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나아갔던 사람들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고 아직 모이지 않은 사람은 주위를 돌아보며 모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조정에서 그런 실정을 통찰하였는데도 본 고을이 은혜를 입지 못한다면, 이는 하늘이 버린 것이지 수령의 죄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신도 무슨 체면으로 5말 피곡을 훔쳐 한 군의 수령으로 공허한 지역을 지키고, 공납하는 예법을 궐하며 위로는 고을을 맡겨 함께 다스리는 명을 어기고, 아래로는 평생의 뜻을 저버리겠습니까. 가서 장차 관직(官職)을 피하여 능력있는 사람에게 돌리고 무거운 부담을 풀어 농사지으러 돌아감도 분수에 마땅하다고 하겠습니다.

아, 서민들이 즐겁게 살지 못한다면 임금이 함께 공업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한 고을이 이와 같으면 한 나라도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집도 없이 떠도는 백성이 궁벽한 골짝에서 원망에 차서 울부짖는 자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뭇 사람들의 원망이 골수에 사무쳤는데도 위로 통할 수가 없으니 하늘의 감시를 소홀히 하면 반드시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자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국가의 형세가 모두 흙더미와 같아서 허물어지려 하는데, 개미 구멍을 막지 않았다가 이것이 말할 수 없는 화란을 미리 방비하지 않은 것이 될 줄 어찌 알겠습니까.

아, 띠풀로 지붕을 덮고 궁궐을 낮게 했던 옛날에 어찌 재목으로 인한 폐해가 있었을 것이며, 토기(土器)에 명아주국을 끓여 먹던 때에 어찌 짐승을 사냥하는 괴로움이 있었겠습니까. 후직(后稷)과 기(夔)가 음악을 담당하자 신인(神人)이 화락하였으니 악공에게 무슨 괴로움이 있었겠습니까. 공수(工倕)가 공쟁이들을 보살펴 기술을 맡아 간하던 때는 야장들이 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대나무에 글을 쓰고 정사가 간소하였으니, 종이 만드는 폐단이 없었을 것이고, 문교(文敎)를 펴서 악한 이를 감화시켰으니 어찌 군사의 일이 많았겠습니까. 백초(百草)를 맛본 것은 기백(岐伯)에서 비롯되어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니, 그때는 캐어서 바치는 괴로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구주(九州)의 큰 나라로서도 양주(梁州)에만 직피(織皮)를 바치게 했으니 공물의 제도가 이미 간소한데 어찌 가죽을 사서 바치는 원망이 있었겠습니까. 때맞추어 산림(山林)의 나무를 베어 재목을 쓰고도 남았으니, 어찌 아전들이 탄목(炭木)을 걱정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며 이사를 해도 그 고장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백성들이 유리될까 걱정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이래서 태평성대의 정치는 백성을 부려도 기쁘게 하고 이롭게 해주면서도 누가 해준 것인지 알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도(世道)가 변하여 한번 격하되자 민생의 피해가 더욱 깊어져 색목(色目)이 수도 없이 많아서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없고 법령은 범과 같이 사나워서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중택(中澤)의 기러기가 슬피 울고 대동(大東)의 저축(杼柚)이 모두 비어 있고 곡퇴(谷蓷)의 부(賦)와 장초(萇楚)의 탄식이 이미 마을에 가득 찼으며, 하늘의 재앙과 사물의 변괴가 잇달아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가 잘못되어 백성이 유리됨으로써 장차 나라가 나라꼴이 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임금된 사람이 그 폐단이 발생한 근원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장차 어찌할 수 없다고 치부하고, 퇴폐한 지경에 있는 것을 관망하면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앉아 계책을 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옛날과 지금은 사의(事宜)가 달라 비록 간단하고 쉬운 방법을 다 따를 수 없다고 한다면, 어찌 편리하게 바로잡아 혁파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대로 하여 풍속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성군(聖君)과 현상(賢相)이 정신을 다해 정사를 하더라도 장차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몸은 요순시대를 만났지만 눈은 말세의 정치를 보게 되니 이것이, 신이 하늘을 우러르며 가슴 아프게 탄식하고 통곡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한 지방을 보아 각 도(道)를 미루어 살피시고 한 사물을 들어 만 가지를 통찰하소서. 임금 노릇하기가 쉽지 않고 백성 보호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서 어진 정사를 베풀어 백성의 고통을 보살피고 부세를 박하게 하여 민생을 후하게 해주고 사치를 고쳐 백성의 재물을 아끼고 공사(工事)를 감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무거운 부세를 감면해 주고 포흠낸 백성을 독책하지 말고 정사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는 자를 통쾌히 소탕하라는 전지를 내리시고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제거하는 계책을 극진히 강구하여 국가의 운명을 편안하게 해서 와해되는 걱정이 없게 하여 나라의 근본이 공고하고 반석같이 튼튼하게 한다면 어찌 한 고을과 한 나라의 경사일 뿐이겠습니까. 실로 만세토록 이어갈 종사(宗社)의 무궁한 복인 것입니다.

신은 지극히 어리석고 미천한 몸으로 아둔한 소견을 두서없이 외람되게 올렸으니, 그 죄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은 소원하다고 해서 다른 것이 아니니, 한 고을의 폐단을 우선으로 삼아 세 모서리를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신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기시어 참람됨을 용서하여 주소서. 신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소를 받들어 올립니다.

[주-D001] 거북 …… 벗겨 : 거북은 본디 털이 나지 않아서 아무리 등을 긁어 봐도 털을 취할 수 없으므로, 전하여 헛수고만 할 뿐 공효를 거두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거북의 등에서 털을 긁어 보았자, 어느 때에 모전을 이룰 수 있으랴.〔刮毛龜背上 何時得成氈〕”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아 대부(阿大夫)처럼 삶기는 형벌 : 탐관(貪官)을 처벌하는 극형을 의미한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위왕(威王)이 처음에 모든 지방 정치를 경대부(卿大夫)에게 위임하였다. 여러 경대부들 가운데 아 대부(阿大夫)가 정치를 가장 잘한다는 예찬의 소리가 날로 들리기에, 사람을 보내 아(阿) 땅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실제로는 정치는 가장 못하고 왕의 좌우 사람들에게 뇌물을 써서 여론을 조작한 것이었다. 이에 위왕이 당장 아 대부를 불러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 《資治通鑑 周紀 烈王6年》

[주-D003] 백성을 …… 인자함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문왕은 다친 사람을 보듯 백성을 가엾게 여겼다.〔文王 視民如傷〕”라는 말이 나온다.

[주-D004] 어린 …… 은혜 : 《서경》 〈강고(康誥)〉에 “갓난아이 보호하듯 하면 백성이 편안하리라.〔若保赤子 惟民其康乂〕”라고 하였다.

[주-D005] 공소(龔召) : 한(漢)나라 때 지방관으로 선정을 많이 베풀어 명성이 당대에 드높았던 공수(龔遂)와 소신신(召信臣)을 합칭한 말이다.

[주-D006] 월(越)나라 …… 것 : 춘추 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월왕 구천을 부초(夫椒)에서 패망시킨 뒤에 월왕이 보낸 대부 종(種)의 이야기를 듣고 강화(講和)를 허락하자, 오원(伍員)이 사람들에게 “월나라가 10년 안에 인구를 불리고 재력을 축적할 것이며, 또 10년 안에 백성을 훈련시켜 강병(強兵)을 양성할 것이니, 20년 만 지나면 오나라는 그들에 의해 연못이 되고 말 것이다.〔越十年生聚 十年敎訓 二十年之外 吳其爲沼乎〕”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哀公元年》

[주-D007] 제갈양(諸葛亮)이 …… 것 : 한 소열(漢昭烈)이 제갈량을 등용하여 제후(諸侯)들을 규합(糾合)하여 천하를 한 번 바로잡는 공(功)을 이루었던 사실을 가리킨다

.[주-D008] 백성들이 …… 하면 : 《시경》 〈민로(民勞)〉에 “백성이 또한 수고로운지라, 조금 편안하게 해야 할 터이니, 이 중국을 사랑하여, 사방을 편안하게 할지어다.〔民亦勞止 汔可小康 惠此中國 以綏四方〕라고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주-D009] 어찌 …… 원망 : 훌륭한 재주를 지닌 자가 홀로 어려운 일을 감당하여 고생하는 신세를 원망한다는 뜻이다. 《시경》 〈북산(北山)〉에 “넓은 하늘 아래 모두가 임금의 땅이요, 사해(四海)의 안이 그 누군들 신하 아닌 이 없건마는, 대부의 일 처리 균등치 못한지라 나만 일하면서 혼자만 노력하네.〔溥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大夫不均 我從事獨賢〕”라고 한 것에서 나왔다.

[주-D010] 류지선(柳智善) : 1498~1577. 자는 중붕(仲朋), 본관은 문화이다. 1548년(명종3)대사간을 거쳐 동부승지를 지냈고 1550년에는 도승지에 올랐다. 이듬해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고 형조 참판이 되었다. 1560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황해도 관찰사로 전임되었다.

[주-D011] 옳지 …… 자들 :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처음에 나무인형을 만들어 순장을 한 사람은 후손이 없을 것이라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자가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서 썼기 때문이다.〔仲尼曰 始作俑者 其無後乎 爲其象人而用之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012] 원헌(原憲)의 …… 것 : 가난한 사람의 재물을 빼앗아 부자에게 줌을 풍자한다. 원헌은 춘추 시대 송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집이 가난하여 풀로 지붕을 덮고 옹기로 낸 창문을 헌옷으로 막아 위는 비가 새고 아래는 습기가 찼으나 바르게 앉아 금슬(琴瑟)을 탔다고 한다. 《莊子 讓王》또《논어》 〈선진(先進)〉에 “계씨(季氏)가 주공(周公)보다도 부자였는데, 공자의 제자 염구가 계씨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서 그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 주니, 공자가 말하기를 ‘나의 제자가 아니니, 제자들아 북을 치며 그를 성토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非吾徒也 小子 鳴鼓而攻之可也〕”라고 하였다.

[주-D013] 없는 …… 하므로 : 뿔 없는 염소를 말한 것으로, 결코 있을 수 없는 물건을 의미한다. 《시경》 〈빈지초연(賓之初筵)〉에 “취하여 망언을 하는 자에겐, 뿔 없는 염소를 내놓으라 하리라.〔由醉之言 俾出童羖〕”라고 하였다.

[주-D014] 곡퇴(谷蓷)의 부(賦) : 곡퇴는 골짜기의 풀이 가뭄으로 말라버린 것으로 흉년이 들어 참담한 정경이 된 것을 말한다. 《시경》 〈중곡유퇴(中谷有蓷)〉에 “골짜기에 익모초가 말라간다. 골짜기 가운데 익모초 가뭄에 말랐네. 생이별한 여인 슬픈 소리로 탄식하네. 슬픈 소리로 탄식함은 사람 만남이 어려워서라네.〔中谷有蓷 暵其乾矣 有女仳離 嘅其嘆矣 嘅其嘆矣 遇人之艱難矣〕”라고 하였다.

[주-D015] 장초(萇楚)의 탄식 : 정사가 번거롭고 부역이 무거운 나머지, 백성들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서 장초가 무지하여 근심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탄식한 것이다. 장초는 복숭아나무와 비슷한 나무이다. 《시경》 〈장초(萇楚)〉에 “진펄에서 생장한 저 장초나무, 그 가지 곱기도 하네. 반지르르 귀여운 너, 감각 없는 네가 부럽다.〔隰有萇楚 猗儺其枝 夭之沃沃 樂子之無知〕”라고 하였다.

[주-D016] 세 모서리를 헤아리시기를 : 하나를 말해 주면 그 나머지를 유추해서 안다는 뜻이다. 《논어》 〈술이(述而)〉에 “한쪽 모서리를 들어보였을 때 그 나머지 세 모서리를 헤아려 대답하지 못하면 더 이상 말해 주지 않는다.〔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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