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께 올린 문목 《심경》 계해년(1563, 명종18)〔上退溪先生問目 心經○癸亥〕 > 금계외집 7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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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께 올린 문목 《심경》 계해년(1563, 명종18)〔上退溪先生問目 心經○癸亥〕 > 금계외집 7권 소

퇴계 선생께 올린 문목 《심경》 계해년(1563, 명종18)〔上退溪先生問目 心經○癸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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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0회 작성일 21-07-2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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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께 올린 문목 《심경》 계해년(1563, 명종18)〔上退溪先生問目 心經○癸亥〕

〔문〕 1권. 《시경》에 “네가 군자를 벗하는 것을 본다.〔視爾友君子〕”의 부주(附註)에 “필경 주의 경사가 성인과의 거리가 가깝다.〔畢竟周之卿士去聖人近〕”라고 하였는데, 주나라의 경사가 성인과 시대가 멀지 않기 때문에 기상이 후세의 사람들과는 같지 않다는 뜻입니까?

〔답〕 이 말이 옳습니다.


〔문〕 일설(一說)에, 주(周)의 경사가 성인과의 거리가 가깝다고 한 것에 대해, 예백(芮伯) 같은 무리가 〈억(抑)〉시를 지어 경계한 말이라고 하지만, 왕을 경계하는 말과 자신을 경계하는 말은 기상이 절로 같지 않습니다.

〔답〕 이 말은 옳지 않습니다. 〈억(抑)〉시는 무공(武公)이 지은 것입니다. 주나라의 경사라고 말한 까닭은, 〈대아(大雅)〉와 〈소아(小雅)〉의 여러 시는 모두 주나라의 경사들이 지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억〉시를 논함에 따라 여러 작가들을 아울러 지적해서 운운(云云)하게 찬미한 것입니다.


〔문〕 “안연이 인에 대해 물었다.〔顔淵問仁〕”라고 하였는데, 부주(附註)에 “이천 선생이 말하기를 ‘……그 근본이 참되고 고요하다.’하였다.〔伊川先生曰……其本也眞而靜〕”라고 하였습니다. 오성(五性)이 곧 진(眞)이고, 미발(未發)은 곧 정(靜)이니, 아마도 두 가지로 재단해 보는 것은 옳지 못하여 진이정(眞而靜)으로 보았기 때문에 오성이 갖추어진 것이 아닙니까? 또 “진(眞)은 무극(無極)의 진이고, 정(靜)은 애초에 사물과 감응하지 않았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眞是無極之眞 靜言其初未感物時〕”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명을 받아 태어난 처음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미발(未發)’은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아〔寂然不動〕 사물과 접촉하기 이전을 가리키는 것이니, 이른바 ‘미발의 중〔未發之中〕’이 아니고, 곧 본연의 성〔本然之性〕입니다. 아래 문장에 “형체가 생겨나니 정이 움직인다.〔形生情動〕”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성이 움직여 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답〕 이 단락을 본 견해는 잘못이 있습니다. 대개 그 근본이 진실하고 고요하다는 것은, 미발(未發)은 오성(五性)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과 더불어 참으로 두 가지로 재단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양쪽에 중점을 두어 말한 것입니다.

첫 번째, 다만 본연의 성〔本然之性〕은 인위(人僞)가 섞이지 않아 담연히 깊고 묘한 곳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근본이 진실하고 고요하다.〔其本也眞而靜〕”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이전에 말한 고요하다고 한 곳에, 다시 나아가서는 이른바 진(眞)이라는 명목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미발한 상태는 오성이 갖추어져 있다.……〔未發也 五性具……〕”라고 하였으니, 이것으로 인해서 저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자가 채원사(蔡元思)와 이 점을 논하면서 “이천(伊川)의 글은 이와 같이 다양한 면이 있으니 마음대로 엮어간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고, 또 ‘첩설(疊說)’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보내온 서찰에 “진실하고 고요하기 때문에 오성(五性)이 갖추어져 있다.”라고 보려 했습니다. 이것은 진정(眞靜)과 오성이 두 물건이 되어 서로 기다려 소유하게 되는 것이니, 옳겠습니까?

보내온 편지에 “진(眞)은 무극(無極)의 진이고, 정(靜)은 애초에 사물과 감응하지 않았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을 받아 태어난 최초를 가리켜 말한 것이며, 이른바 미발(未發)은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아 사물과 접촉하기 이전을 가리키는 것이니, 이른바 미발의 중이 아니고, 곧 본연의 성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대가 보내온 뜻을 가만히 살펴보니, 진이정(眞而靜)을 사람이 처음 태어나 아직 사물에 감응하지 않은 때로 보아서, 이른바 미발의 중〔未發之中〕을 여기에 해당시켰습니다. 미발(未發)에 오성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뒷날 일을 살피는 사람이 아직 사물과 접촉하기 전에 적연부동(寂然不動)한 때로 보아서 이른바 ‘본연의 성’을 여기에 해당시켰으니, 이 뜻이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대개 사람이 처음 태어나 사물에 아직 감응하지 아니한 때에는, 본래 진실하고 고요하며, 일을 살피는 사람이 사물에 감응하지 않은 때에도 역시 진실하고 고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물과 접촉하기 전, 미발(未發)의 중(中)인 상태가 곧 태어났을 때 본연(本然)의 성(性)입니다. 이 일은 전후와 대소(大小)의 구분 없이 관통하는 하나의 이(理)일 뿐입니다. 다만 이것이 막 사물에 감응하자마자 잃어버리는 것이 사람일 뿐입니다.


〔문〕 “하늘의 명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라고 한 부주(附註)에 “만약 천지로 말한다면 다만 하나의 지이다.〔若說天地只是一箇知也〕”라고 하였으니, 내가 알고 그대가 안다는 것은 오히려 남과 나의 구별이 있는데, 천지는 나누어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천(天)과 인(人)이 하나의 이치여서 나누어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까? 또 말하기를 “본전(本傳)에 ‘하늘이 알고 신이 안다.〔天知神知〕’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하나의 지(知)라고 말할 만합니까?

〔답〕 “남과 나는 본래 나눌 수 있거니와, 천(天)과 지(地)는 나눌 수 없다.”라고, 이천(伊川)이 이와 같이 말했지만, 주자의 뜻은 “자신과 다른 사람, 천(天)과 지(地)가 다만 하나의 이치이니, 모두 두 개의 지(知)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알고 다른 사람이 안다고 말하였고, 또 이천(伊川)의 말을 인용하여 이를 증명하였습니다. 《역전(易傳)》에 “천지의 오묘한 작용을 신이라고 한다.〔天地之妙用 謂之神〕”라고 하였으니, 천지(天知), 신지(神知)가 어찌 하나의 지(知)가 아니겠습니까.


〔문〕 2권. 《대학(大學)》에 말한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한다.〔誠其意者 毋自欺也〕”라고 한 부주에 “스스로 속이는 것에 대해 물으니, 마음이 발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곳이다.〔問自欺曰 心之所發 不知不覺地〕”라고 운운하였습니다. 지(知)가 이르러 충분히 발현된 지경에 이른 뒤에 성의(誠意)를 말할 수 있고, 지(知)가 조금이라도 이르지 못한 경지가 있으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끝내 스스로 속이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공부가 지극히 세밀해야 합니다. 그 아래 문장에 ‘한가히 지내는 소인〔閒居之小人〕’은 보잘것없는 소인인데 스스로 속인다〔自欺〕라고 잘못 본 것입니까? 또 위 문장에서 ‘스스로 속인다는 것은, 반은 알고 반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악을 행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선을 행하는 데 성실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는 데 마음이 있는 것이니,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 사이에 한 말이 아니어서, 각각 주장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속이는 데에 얕고 깊으며 정밀하고 거친 차이가 있어서입니까?

〔답〕 “하루 사이에 한 말이 아니어서 각각 주장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옳습니다. “스스로 속이는 데에 얕고 깊은 차이가 있다.”라는 이 말도 또한 옳습니다. 다만 중간에 아니면〔抑〕이라는 한 글자를 넣어 어세(語勢)를 반대로 하여서는 안 됩니다. 대개 스스로 속이는 데에 천심(淺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날 한 말에 각각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자기도 모르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불선(不善)을 행하는 데 빠져 버린다고 하는 것에 대해, 앎〔知〕이 지극하고 지극하지 않음이 있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부당한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문〕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修身在正其心者〕”라고 한 부주(附註)에, 주자가 “……출입을 할 때면 헤아릴 수 없는 문자〔……出入時無數文字〕”라고 한 말은 평소 출입할 때, 헤아릴 수 없는 문자가 있고 일 마다 원본(元本)과 초본(抄本) 두 책이 있었다고 한 것입니까, 아니면 잡학(雜學)에 출입할 때가 헤아릴 수 없어서 문자와 일마다 각각 두 책이 있었다는 것입니까? “하루는 홀연히 생각하며, ‘나를 게으르게 하지 말자.’라고 말하였다.〔一日忽思之曰 且慢我〕”에서 만(慢)은 ‘속이다〔欺〕’와 같습니까? 종전의 잡학이 자신에 들어맞지 않아 다만 ‘자만(自慢)’이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차만(且慢)을 구절로 삼아 ‘우선 이 일은 느슨하게 할 만하다〔且可慢此事〕’고 하였습니다.

〔답〕 지난번에 한양의 한영숙(韓永叔)ㆍ신계숙(申啓叔) 등이 이 단락을 강론했습니다. 나의 생각에는, 그대가 보내온 첫 번째 설과 뜻이 같고, 두 벗은 먼저 받아들인 설 때문에 두 번째 설을 취하였다가 나의 설을 듣고 나서 합당한 듯하다고 말했지만, 이전의 견해를 속으로 주장함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조사경(趙士敬)도 역시 두 번째 설을 주장하고자 하였습니다.

‘차만(且慢)’으로 구두(句讀)를 끊어야 되고, ‘아(我)’ 자는 아래 구절에 붙여서 읽는 것이 옳습니다. ‘기만(欺慢)’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문〕《예기(禮記)》에 “군자가 말하기를 ‘예악은 자신의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君子曰不可斯須去身〕”라고 한 조목(條目)의 부주(附註)의 ‘자포자기(自暴自棄)’의 소주(小註)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행동한다〔做許多模樣〕’고 한 것은 다른 사람을 본받아 행하는 모양을 비웃는 것입니까?

〔답〕 어떤 사람이 기묘년(1519, 중종14)에 한 선비를 조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의 행동거지와 언어와 용모를 보니 머리는 곧게 하고, 손 모양은 공손하게 하고, 발놀림은 진중하게 한다’는 등 하나하나 모습을 형용하여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러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문〕 섭하손(葉賀孫)이 청해 물으니〔葉賀孫 請問〕……“공은 선향사람 입니까?〔公仙鄕人〕”라고 한 곳의 선향인은 어성(語聲)이 높습니까, 낮습니까?

〔답〕 살펴보건대, 섭씨(葉氏)는 처주(處州) 사람이니, 온주(溫州)와 접경을 하고 있으며 천태산(天台山)과 가까워 산수가 기이하고 아름다워 마치 선경(仙境)과 비슷하기 때문에 ‘선향(仙鄕)’이라고 한 것입니다. 생각건대,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말씨는 대체로 낮고 가늘어 매섭게 울리지 않으니, 섭씨도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인하여 선생이 “공의 마을 사람은 말소리가 어찌하여 모두 이와 같은가?”라고 한 것이지 “공은 선향 사람이니 말이 낮아서는 마땅하지 않는데 도리어 낮은가?”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문〕 3권. 《맹자》의 “우산의 나무는 일찍이 아름다웠다.〔牛山之木 嘗美矣〕”라고 한 부주에 “묻기를 ‘평소 경을 부지하는 것은 고요할 때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였다.〔問居常持敬 於靜時最好……〕”라고 한 것의 소주(小註)에 노재(魯齋) 허씨(許氏)가 말하기를 “……문득 경을 구하고자 한다.〔……便索要敬〕”라고 한 곳에 색(索) 자는 극(極) 자로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 구(求) 자로 보면 의미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

〔답〕 아마도 구(求) 자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극(極) 자의 뜻으로 보면, 비록 의미는 긴절한 듯하지만, 도리어 쓸데없는 곳에 힘을 써버리는 것이 됩니다.


〔문〕 부주(附註)에 또 “인심이 주재함이 정해지지 못하여……장천기(張天棋)가 침상에 오르면서 곧 생각을 않게 되었다.〔人心作主不定……自上著牀 便不得思量〕”라고 했으니, 그가 사려와 감동을 싫어하다가 겨우 사려를 하지 않게 되면, 곧 억지로 이 마음을 잡아 억제하고 결박을 해야 하거나, 또는 하나의 형상에 붙어있게 합니다. 이는 마치 사마공(司馬公)이 중(中)을 가려내는 것을 염두에 둔 것과 같으니, 두 가지는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까?

〔답〕 사려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비록 사려를 좋아하더라도 만약 마음을 몰아내거나, 혹 제어하고 속박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 같으면, 모두 병통이 됩니다.


〔문〕 4권. 주자(周子)의《통서(通書)》에 “성은 배울 수 있습니까?〔聖可學乎〕”라고 한 조목의 부주에 또 “주선생이 일은 욕심이 없는 것이다……다만 이 ‘경’자에서 밀고 나가서〔周先生說一者無欲也……只就這敬字上崖去〕”라고 한 것에 ‘애(崖)’자는 ‘애(挨)’자의 뜻으로 향상해 간다고 보아야 합니까? 만약 도안(道岸)의 의미로 본다면 어떠합니까?

〔답〕 ‘애(崖)’자는 ‘애(挨)’자와는 아마도 음이 같아서 서로 호응이 되니, 도안(道岸)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문〕 범씨(范氏) 〈심잠(心箴)〉 조목의 부주에 “묻기를 ‘실린 범준(范浚)의 〈심잠〉은……여백공이 매우 소홀히 여겼었다.’ 하였다.〔問所載范箴……呂伯恭甚忽之〕”라고 한 곳에서, ‘여백공이 매우 소홀히 여겼었다’를 구절의 뜻으로 끊어 보아도 됩니까? 또 “혹자는 백공이 매우 소홀히 여긴다고 하여 묻기를……사람들이 흔히 말하는데, 반드시 범씨의 설을 취해야 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或云伯恭甚忽之而問……人多說得到 必取范說 何也〕”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의미가 심장한 듯한데 어떠합니까?

〔답〕 아마도 앞의 설과 같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뒤의 설과 같이 보면, 이것은 주 선생(朱先生)이 말한 것이 됩니다. 이미 백공(伯恭)과 서로 문답을 한 말이니, 백공의 물음이 끝나는 곳에는 ‘문(問)’자를 써서는 마땅하지 않고, 다만 ‘운(云)’자를 쓰거나 혹은 ‘내가 운운했다〔謂某云云〕’고 쓰는 것이 옳습니다. 백공에게 이미 답한 곳에 ‘왈(曰)’ 자를 써서는 마땅하지 않고, ‘내가 그에게…… 답했다〔某答他云云〕’라고 쓰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다만 ‘문(問)’자와 ‘왈(曰)’자만 썼기 때문에, 나는 백공의 물음이 아니고, 앞에서 물은 사람이 다시 물은 것이며, ‘왈(曰)’은 그 물음에 답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끝에 “이 글을 실은 뜻이 대개 이유가 있다.〔此意蓋有在者〕”라고 한 것도 역시 기록한 사람의 말입니다.

나는 이와 같이 보려고 하는데, 지난번에 한수(韓脩), 신옥(申沃), 조사경(趙士敬) 세 사람은 모두 그다지 믿으려 하지 않으니, 끝내 어떻게 보아야 흡족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문〕주자 〈경재잠(敬齋箴)〉조목의 부주에 “묻기를 ‘경재잠 뒷면에… …어떻게 박절을 이해하는가.……’라 하였다.〔問敬齋箴後面……如何解迫切……〕”이라고 한 것의 ‘여하해박절(如何解迫切)’의 ‘해(解)’를 혹 ‘지(知)’로 보는데, 이것은 어조사로 본 것입니까?

송당(松堂)은 ‘제비(除非)’를 ‘지시(只是)’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제시(除是)’와 같을 듯합니다. ‘사람이 공부하기를 대단히 박절(迫切)하게 해 본 뒤에, 다른 사람에게 박절하게 하지 말라고 권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옳습니다만, ‘이제 공부도 해 보지 않고 뒷문을 열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느긋하게 하도록 한다’고 하니 이것은 또한 박절한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이 공부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박절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이 뜻이 맞습니까, 맞지 않습니까?

〔답〕 ‘해(解)’자는 실제 지(知)로 풀이한 곳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지(知)로 풀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위(爲)’자의 뜻으로 보는 것이 어떠합니까?

‘제비(除非)’는 애초에 지시(只是)의 뜻은 아닙니다. 오직 어세(語勢)가 거듭 도치(倒置)되어 결국 지시(只是)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송당(松堂)이 지시(只是)로 본 것은 문자의 의미를 벗어나 뜻을 얻은 것이라 할 만합니다. 한수와 신옥 두 벗의 설도 또한 이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문장을 따라 뜻을 구하면 모두 애매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 뜻은 대개 ‘어떤 사람이 공부하기를 대단히 박절(迫切)하게 해 본 뒤에, 다른 사람에게 박절하게 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옳지만, 이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만두는〔除〕 것이 옳다.’라고 한 것입니다. - 제(除)는 박절하게 하지 말기를 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보내온 편지에 제시(除是)와 같은 것이라 한 것은, 아마도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또 ‘이제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今未做工夫〕’ 이하는 말뜻이 또한 분명하지 않습니다.


〔문〕《심경》이라는 책은 서산(西山) 선생이 성현의 격언을 모아, 첫머리에 ‘위미(危微)’를 인용하고 ‘덕성(德性)으로써 끝을 맺었습니다. 중간에 기록한 것은 산만하여 체계가 없으니,《중용》과 《대학》책과는 같지 않습니다. 황돈(篁墩) 정민정(程敏政)이 선현(先賢)들이 남긴 것으로, 몸에 절실한 깊은 뜻이 담긴 말들을 모아 종류별로 나누어 견해를 붙임으로써 환히 밝게 갖추어지니, 참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약석(藥石)입니다. 그러나 견해가 명백하지 않고 선택이 정밀하지 못합니다. 서산 진덕수 같은 사람은 화려하지만 부실하고, 난계(蘭溪) 범준(范浚) 같은 사람은 지루하면서 절실하지 못합니다. 황자계(黃慈溪)에 이르러서는 소견이 두 사람에 비해 더욱 낮습니다. 이천(伊川)을 마음대로 비방하고 오만하게 스스로 성인인 것처럼 했으니, 성현이 마음을 전하는 요결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말은 모두 대주(大註)에 나열하고, 정주(程朱)의 격언은 도리어 주석(註釋)에 배치하였습니다. 그 밖의 취하고 버릴 것은 타당성을 잃었으며 그가 가만히 부기(附記)한 말도 또한 드러내어 밝힌 곳이 없으니, 어찌 이 책의 하나의 흠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고칠 것은 고쳐 넣고, 삭제할 것은 삭제해 버려 순수하게 올바른 데서 나와, 조금의 흠도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생님께서 침잠하신 지 오래되어 표리를 환하게 아시면서, 매번 물러나서 이런 등의 일에 손을 댈 뜻을 갖지 않으시니, 후학들은 아득히 어디로 좇아가야 합니까? 다만 남긴 경전을 끌어안고 바람결에 탄식만 할 뿐입니다.

〔답〕 보내온 서찰에 “《심경》을 인용한 여러 글들은 산만하여 체계가 없는 것이 병통이다.”라고 하였으니, 저의 생각에는 그렇지 않을 듯합니다. 저《대학》과《중용》등의 책은 진실로 강조(綱條)와 맥락이 정연하고 분명하니, 이것은 자체로 한 권의 책이기 때문에 체제가 마땅히 그러한 것입니다. 《논어》같은 책은 비록 간간이 비슷한 기록이 있지만, 대부분 잡다하게 뒤섞인 것이 많으며,《맹자》는 더욱 산만하여 손 가는 대로 엮어졌으니, 어찌 반드시《중용》과《대학》만을 법으로 삼은 적이 있었습니까. 더구나 인용한 여러 글에는 대략 시대의 선후가 있으며, 성현의 말도 또한 저절로 점차 천명함이 있어서 크게 갖추어진 뒤에 마쳤으니, 또 어찌 반드시 종류대로 구분한 뒤에야 제대로 되었다고 하겠습니까?

《대학》의 ‘평천하장(平天下章)’을 정자(程子)가 종류대로 나누었는데, 주자(朱子)가 “종류대로 나누면 의미가 도리어 얕아져서, 옛것을 따라 섞어 낸 것이 정녕 반복한 뜻을 얻게 되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경(經)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내온 편지에 “황돈(篁墩)의 견해는 분명하지 않으며 선택이 정밀하지 못하다”라고 한 말은 더욱 듣지 못하겠습니다. 대개 진 서산(眞西山)의 의론은 비록 때때로 문장의 기습(氣習)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사람은 인품이 매우 높으며, 이치를 봄이 분명하고 조예가 깊어 주문(朱門) 이후에 일인자(一人者)입니다. 범난계(范蘭溪)는 유학(儒學)에서 터득한 것이 있어, 주문(朱門)에서 인정한 것이 대개 〈심잠(心箴)〉하나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화려하지만 부실하고, 지루하면서 절실하지 못하다.”라는 말로 두 사람을 나무라니, 나는 편치 않습니다. 자계(慈溪) 황씨(黃氏)가 이천(伊川)을 비방한 말은 어느 책에 보이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예컨대,《심경》의 두 조목은 이천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는 정자와 주자가 남긴 뜻을 잘 드러낸 것이니, 그 말의 의미가 아주 충후(忠厚)하고 정성스러워 세상을 구제하는 약석(藥石)입니다.

황돈(篁墩)이 세 사람의 말을 대주(大註)에 배치하고, 정주(程朱)의 말은 혹 소주(小註)에 둔 것은 선택이 정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만 말에 객체와 주체가 있는 것이고, 의미에 얕고 깊음이 있어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황돈이 가만히 붙인 설(說)에 이르러서는, 이곳에서 스스로 도를 논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 설들을 버리고 취하는 이유를 대략 나타냄으로써, 주의 뜻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볍게 설명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부설(附說)의 체제를 바로 얻은 것입니다. 그대의 논의는 이런 점을 가지고 이 책의 하나의 흠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책의 흠이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그대는 평소에 의론과 견식이 고상한 것에 힘쓰고 일삼기를 좋아하는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또 나로 하여금 그 사이에 삭제하고 고치도록 하니, 이것은 대목수가 집을 건설할 때에, 천문만호(千門萬戶)가 각각 이미 아주 자연스럽게 완성되었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손에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보와 기둥을 무너뜨리고 마음대로 고치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손에 피를 흘리며 마음대로 고치는 자가 그 이유를 말하지 않더라도, 그 일을 시키는 사람에 대해서는 남들이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주-D001] 네가 …… 본다 : 《시경》 〈탕(蕩)〉과 〈억(抑)〉에 보인다.[주-D002] 예백(芮伯) : 주 여왕(周厲王) 때 예백이 여왕의 학정(虐政)을 풍자하여 부른 노래가 있으니, 벼슬하여 녹봉(祿俸)을 먹는 대신 농사를 지어서 먹고산다는 뜻으로,《시경》 〈상유(桑柔)〉에 “저 모진 바람을 받고 선 듯이, 또한 몹시도 숨이 막히도다. 사람마다 나갈 마음은 있지만, 다들 난세라 안 된다 하고, 이 농사짓기를 좋아하여, 백성들과 농사지어 녹봉을 대신하노니, 농사짓는 것이 보배로우며, 녹봉 대신한 게 좋기만 하도다.〔如彼遡風 亦孔之僾 民有肅心 荓云不逮 好是稼穡 力民代食 稼穡維寶 代食維好〕”라고 하였다.[주-D003] 안연(顔淵)이 …… 물었다 : 《논어》 〈안연(顔淵)〉에 실려 있다.[주-D004] 만약 …… 지(知)이다 : ‘양진사지(楊震四知)’를 말한다. 한(漢)나라 양진(楊震)이 동래 태수(東萊太守)로 옮겨갈 때 창읍(昌邑)을 지났는데, 그전에 무재(茂才)로 과거시켜 주었던 왕밀(王密)이 수령(守令)이 되었기에, 만나 인사를 드리고, 밤에 이르러 금 10근을 품고 와서 주니, 양진이 말하기를 “친구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친구를 모르니 웬일인가.”라고 하였다. 왕밀이 말하기를 “어두운 밤이라 아는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양진이 말하기를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 자가 없다 하는가.〔天知 地知 我知 子知〕”라고 하니, 왕밀이 부끄러워하면서 돌아갔다고 하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後漢書 楊震列傳》[주-D005] 섭하손(葉賀孫) : 주자의 문인으로, 자는 미도(味道)이다. 벼슬은 비서관(秘書官)을 역임했다.[주-D006] 노재(魯齋) 허씨(許氏) : 원(元)나라 학자인 허형(許衡, 1209~1281)을 가리킨다. 노재는 그의 호이고 자는 중평(仲平),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저서에《독역사언(讀易私言)》, 《노재유고》가 있다.[주-D007] 장천기(張天棋) : 장전(張戩, 1030~1076)으로, 천기는 그의 자이다. 횡거(橫渠) 장재(張載)의 아우이다. 관중(關中)의 학자들에게 형 장재와 함께 ‘이장(二張)’으로 일컬어졌다.[주-D008] 사마공(司馬公)이 …… 것 : 사마광(司馬光)이 항상 생각이 어지러움을 걱정하여 더러는 밤중에 일어나 아침까지 자지 못하면서 힘들다가, 남에게 말하기를 “근일에 한 가지 방법을 얻었으니, 항상 중(中)을 생각한다.”라고 했다는데, 이는 다만 좋은 말 중에서 하나의 좋은 글자를 골라낸 것이다. 《心經, 卷3》[주-D009] 주자(周子) : 송나라의 학자인 주돈이(周敦頤, 1017~1073)를 말한다.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이다. 송대(宋代)의 이학(理學)을 열었다.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어 무극(無極) 태극(太極)을 말하였다.[주-D010] 여백공 : 송나라 사람 여조겸(呂祖謙, 1137~1181)으로, 백공은 그의 자이다. 호는 동래(東萊), 시호는 충량(忠亮)이다. 주희(朱憙)ㆍ장식(張栻)과 함께 동남삼현(東南三賢)이라 일컬어졌다. 경사(經史)에 치중하였고 절강학파(浙江學派)를 열었다. 저서로는《동래집(東萊集)》,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등이 있다.[주-D011] 송당(松堂) : 박영(朴英, 1471~1540)으로, 송당은 그의 호이다. 자는 자실(子實), 본관은 밀양(密陽),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본래는 무인이었으나 뒤에 고향인 선산(善山)으로 돌아가 정붕(鄭鵬)의 문하에서 학문에 힘썼다.[주-D012] 서산(西山) : 송(宋)나라의 학자 진덕수(眞德秀)의 호이다. 심학(心學)의 요지가 되는 성현의 격언(格言)을 모아 편집한 책이《심경》이다. 자는 경원(景元), 시호는 문충(文忠)이다.[주-D013] 위미(危微) : 위태로운 인심(人心)과 희미한 도심(道心)이라는 말인데,《서경》 〈대우모(大禹謨)〉에서 순(舜)이 우(禹)에게 전한 ‘인심유위 도심유미(人心惟危道心惟微)’를 말한다.[주-D014] 황자계(黃慈溪) : 황진(黃震, 1213~1280)으로, 자는 동발(東發)이다. 이종(理宗)을 섬겨 선정(善政)이 있었고, 주돈이(周敦頤), 이정(二程), 주희(朱熹)의 학문을 배웠다. 저서로는《고금기요(古今紀要)》, 《황씨일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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