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록》 뒤에 쓰다〔題忠武錄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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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0회 작성일 21-07-28 15:52본문
남양과 와룡의 뜻이 스스로 기이하여 / 龍臥南陽志自奇
풍운의 아름다운 만남 초려에서 이뤄졌네 / 風雲佳會草廬時
높은 이름 큰 의리로 삼분된 나라에서 / 高名大義三分國
청천백일에 두 번 출사표 올렸네 / 白日靑天兩表辭
재상의 재목은 원래 관중도 짝할 바 아니니 / 王佐本非雙管仲
큰 재주 어찌 열 조비일 뿐이랴 / 雄才何啻十曹丕
큰 별은 나라 위해 머무르지 않으니 / 長星不爲炎精駐
무릎 안고 부질없이 진췌시만 읊노라 / 抱膝空吟殄瘁詩
[주-D001] 충무록(忠武錄) : 조선 전기에 중국에서 수입했던《제갈충무록(諸葛忠武錄)》을 가리킨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모신(謀臣)이다. 자는 공명(孔明), 별호는 와룡(臥龍) 또는 복룡(伏龍)이다. 전란의 시대, 형주의 초야에서 지내던 중 제갈량의 나이 29세 때 유비(劉備)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온 제갈량은 재략과 웅재로써 유비를 도와 촉한을 건국하는 제업(帝業)을 이루었다. 《충무록》과 관련 내용은《중종실록》 36년 8월 27일자 기사에 나온다. 당시《제갈무후전(諸葛武侯傳)》은 이미 경상도에서 간행하였다고 한다.
[주-D002] 남양(南陽)과 …… 이뤄졌네 : 군주와 신하의 만남을 뜻하고, 유비(劉備)가 의형제를 맺은 장비(張飛)와 관우(關羽)를 데리고, 제갈량의 초가를 찾았던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를 가리킨다.
[주-D003] 두 …… 올렸네 : 제갈량이 유비의 사후 후주 유선(劉禪)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린 후 중원을 도모하였으나 적수 사마의(司馬懿)와의 대결 도중 오장원에서 나이 54세로 숨을 거두었다.
[주-D004] 관중(管仲) : 춘추시대 초기의 정치가로 관경중(管敬仲)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며, 영상(穎上) 사람이다. 사마천(司馬遷)도 “관중 없이 환공의 패업이 없고 중원의 평화도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관중에 대한 기록은《사기(史記)》 권62 〈관안열전(管晏列傳)〉을 통해서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영상은 지금의 안휘성 영상현이다.
[주-D005] 큰 …… 뿐이랴 : 조비(曹丕, 187~226)는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220~226)로서 자는 자환(子桓)이며 시호는 문제(文帝)이다. 유비(劉備)가 병이 위독했을 때 제갈량을 불러 놓고 후사(後事)를 부탁하여 이르기를 “그대의 재주는 조비보다 10배나 높으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켜 끝내 대사(大事)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자(嗣子)가 보필할 만하면 보필해 주고, 만일 자격이 안 되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할지어다.”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주-D006] 무릎 안고 : 천하에 뜻을 품은 선비가 울울한 심정을 토로함을 뜻한다.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를 지을 때 매일 새벽과 저녁에 무릎을 감싸 안은 채 길게 불렀던 노래이기 때문에 ‘포슬음(抱膝吟)’이라 한다.[주-D007] 진췌시(殄瘁詩) : 이 시는《시경》 〈첨앙장(瞻卬章)〉을 말하는데,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왕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 “선인(善人)이 죽었으니 나라가 끊기고 병들리라.〔人之云亡 邦國殄瘁〕”라는 구절이 있다.
풍운의 아름다운 만남 초려에서 이뤄졌네 / 風雲佳會草廬時
높은 이름 큰 의리로 삼분된 나라에서 / 高名大義三分國
청천백일에 두 번 출사표 올렸네 / 白日靑天兩表辭
재상의 재목은 원래 관중도 짝할 바 아니니 / 王佐本非雙管仲
큰 재주 어찌 열 조비일 뿐이랴 / 雄才何啻十曹丕
큰 별은 나라 위해 머무르지 않으니 / 長星不爲炎精駐
무릎 안고 부질없이 진췌시만 읊노라 / 抱膝空吟殄瘁詩
[주-D001] 충무록(忠武錄) : 조선 전기에 중국에서 수입했던《제갈충무록(諸葛忠武錄)》을 가리킨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모신(謀臣)이다. 자는 공명(孔明), 별호는 와룡(臥龍) 또는 복룡(伏龍)이다. 전란의 시대, 형주의 초야에서 지내던 중 제갈량의 나이 29세 때 유비(劉備)의 삼고초려로 세상에 나온 제갈량은 재략과 웅재로써 유비를 도와 촉한을 건국하는 제업(帝業)을 이루었다. 《충무록》과 관련 내용은《중종실록》 36년 8월 27일자 기사에 나온다. 당시《제갈무후전(諸葛武侯傳)》은 이미 경상도에서 간행하였다고 한다.
[주-D002] 남양(南陽)과 …… 이뤄졌네 : 군주와 신하의 만남을 뜻하고, 유비(劉備)가 의형제를 맺은 장비(張飛)와 관우(關羽)를 데리고, 제갈량의 초가를 찾았던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를 가리킨다.
[주-D003] 두 …… 올렸네 : 제갈량이 유비의 사후 후주 유선(劉禪)에게 출사표(出師表)를 올린 후 중원을 도모하였으나 적수 사마의(司馬懿)와의 대결 도중 오장원에서 나이 54세로 숨을 거두었다.
[주-D004] 관중(管仲) : 춘추시대 초기의 정치가로 관경중(管敬仲)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며, 영상(穎上) 사람이다. 사마천(司馬遷)도 “관중 없이 환공의 패업이 없고 중원의 평화도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관중에 대한 기록은《사기(史記)》 권62 〈관안열전(管晏列傳)〉을 통해서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영상은 지금의 안휘성 영상현이다.
[주-D005] 큰 …… 뿐이랴 : 조비(曹丕, 187~226)는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220~226)로서 자는 자환(子桓)이며 시호는 문제(文帝)이다. 유비(劉備)가 병이 위독했을 때 제갈량을 불러 놓고 후사(後事)를 부탁하여 이르기를 “그대의 재주는 조비보다 10배나 높으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켜 끝내 대사(大事)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사자(嗣子)가 보필할 만하면 보필해 주고, 만일 자격이 안 되거든 그대가 스스로 취할지어다.”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주-D006] 무릎 안고 : 천하에 뜻을 품은 선비가 울울한 심정을 토로함을 뜻한다.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를 지을 때 매일 새벽과 저녁에 무릎을 감싸 안은 채 길게 불렀던 노래이기 때문에 ‘포슬음(抱膝吟)’이라 한다.[주-D007] 진췌시(殄瘁詩) : 이 시는《시경》 〈첨앙장(瞻卬章)〉을 말하는데, 정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왕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그 가운데 “선인(善人)이 죽었으니 나라가 끊기고 병들리라.〔人之云亡 邦國殄瘁〕”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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