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로 퇴계의 시에 차운하여 드리다〔五次退溪韻奉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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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03회 작성일 21-07-28 14:16본문
이별 뒤의 세월이 구슬 구르듯 지나니 / 別後流光劇轉丸
어느 날에 얼굴 뵙고 참 기쁨을 지을까 / 承顔何日做眞歡
연마에 뜻을 두나 연설될까 부끄럽고 / 鑽硏有志慙燕說
시문 지어 못 이루니 월관이 우습구나 / 雕篆無成笑越冠
벼슬길에서 삼사나 물러남이 해롭잖고 / 名路不妨三舍退
외진 거처 오히려 한 가지의 편안함이 기쁘네 / 幽居猶喜一枝安
음기 다하자 또 양기 재촉해 펴나리니 / 窮陰又是陽催發
눈 헤치고 핀 매화를 대나무 밖에서 보았네 / 披雪梅花竹外看
[주-D001] 연설(燕說) : 지나치게 천착하여 견강부회함을 말한다. 옛날에 영(郢)에 사는 사람이 연(燕)나라 국상(國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밤에 편지를 썼는데, 불이 어두웠으므로 “촛불을 들라.〔擧燭〕” 하였다. 그러자 받아쓰는 자가 이를 편지 내용인 줄 알고 편지에다가 ‘거촉(擧燭)’이라고 썼는데, 이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냈다. 이 편지를 받아 본 연나라 국상은 이를 보고 해석하기를 “촛불을 들라는 것은 밝음을 숭상하라는 것이다. 밝음을 숭상하라는 것은 어진 이를 들어서 임용하라는 뜻이다.” 하고는, 이를 임금에게 아뢰었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주-D002] 시문 지어 : 조충전각(雕蟲篆刻)은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조각하듯이,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문장을 꾸미는 작은 기예(技藝)를 폄하하는 말이다.
[주-D003] 월관(越冠) : 하는 일이 시의(時宜)에 맞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송(宋)나라 사람 중에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 월나라로 팔러 간 사람이 있었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단발(斷髮)을 하고 문신(文身)을 새겼으므로 소용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주-D004] 삼사(三舍)나 물러남 : 크게 퇴보했음을 뜻한다. 1사(舍)는 30리로 옛날 군대는 하루에 30리를 가서 유숙하였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망명 시절에 초나라 성왕(成王)이 예우하고 묻기를 “공자가 만약 진나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나에게 보답하겠소?”라고 하니, 중이가 대답하기를 “만약 임금의 은덕으로 진나라에 돌아가게 된다면 진나라와 초나라가 중원(中原)에서 서로 대전할 경우 임금을 피해 삼사를 후퇴하겠소.”라고 하였는데, 그 후 중이가 문공(文公)이 되었을 때 과연 그 말대로 실천했다. 《春秋左氏傳 僖公23年, 28年》
어느 날에 얼굴 뵙고 참 기쁨을 지을까 / 承顔何日做眞歡
연마에 뜻을 두나 연설될까 부끄럽고 / 鑽硏有志慙燕說
시문 지어 못 이루니 월관이 우습구나 / 雕篆無成笑越冠
벼슬길에서 삼사나 물러남이 해롭잖고 / 名路不妨三舍退
외진 거처 오히려 한 가지의 편안함이 기쁘네 / 幽居猶喜一枝安
음기 다하자 또 양기 재촉해 펴나리니 / 窮陰又是陽催發
눈 헤치고 핀 매화를 대나무 밖에서 보았네 / 披雪梅花竹外看
[주-D001] 연설(燕說) : 지나치게 천착하여 견강부회함을 말한다. 옛날에 영(郢)에 사는 사람이 연(燕)나라 국상(國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밤에 편지를 썼는데, 불이 어두웠으므로 “촛불을 들라.〔擧燭〕” 하였다. 그러자 받아쓰는 자가 이를 편지 내용인 줄 알고 편지에다가 ‘거촉(擧燭)’이라고 썼는데, 이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보냈다. 이 편지를 받아 본 연나라 국상은 이를 보고 해석하기를 “촛불을 들라는 것은 밝음을 숭상하라는 것이다. 밝음을 숭상하라는 것은 어진 이를 들어서 임용하라는 뜻이다.” 하고는, 이를 임금에게 아뢰었다. 《韓非子 外儲說左上》
[주-D002] 시문 지어 : 조충전각(雕蟲篆刻)은 벌레 모양이나 전서(篆書)를 조각하듯이, 미사여구(美辭麗句)로 문장을 꾸미는 작은 기예(技藝)를 폄하하는 말이다.
[주-D003] 월관(越冠) : 하는 일이 시의(時宜)에 맞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송(宋)나라 사람 중에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 월나라로 팔러 간 사람이 있었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단발(斷髮)을 하고 문신(文身)을 새겼으므로 소용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주-D004] 삼사(三舍)나 물러남 : 크게 퇴보했음을 뜻한다. 1사(舍)는 30리로 옛날 군대는 하루에 30리를 가서 유숙하였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망명 시절에 초나라 성왕(成王)이 예우하고 묻기를 “공자가 만약 진나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나에게 보답하겠소?”라고 하니, 중이가 대답하기를 “만약 임금의 은덕으로 진나라에 돌아가게 된다면 진나라와 초나라가 중원(中原)에서 서로 대전할 경우 임금을 피해 삼사를 후퇴하겠소.”라고 하였는데, 그 후 중이가 문공(文公)이 되었을 때 과연 그 말대로 실천했다. 《春秋左氏傳 僖公23年, 28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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