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답을 이어 다시 차운하다〔承和復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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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79회 작성일 21-07-28 15:21본문
천상의 신선같이 무리 밖에 우뚝한 분 / 天上仙才逈不群
바다같이 아름다운 글 손에 쥐고 나오네 / 絳河雲錦手初分
천 잔 술 들이켜 풍류가 일고 / 千鍾酒發風流興
만 권 책 흉중에 들어 시문이 아름답네 / 萬卷胸蟠黼黻文
백 년의 친구 밤에 걸상 보내는데 / 知己百年輸夜榻
이별의 회포 며칠이나 서로 떨어져있었던가 / 離懷幾日阻江雲
지붕 위 밝은 달과 마루 앞 대나무 / 屋樑明月軒前竹
해맑은 자태 흡사 그대 보는 듯하오 / 髣髴淸姿若見君
삼복더위 한 번의 비 이제까지 내리니 / 一雨三庚尙到今
넘실거리는 강물에 깊은 숲도 잠겼네 / 漫茫江海沒重林
옥 같은 벗 천 리 멀리 이별하게 되어 / 才分玉友成千里
좋은 시 지어 주니 만금의 값어치라네 / 爲擲瓊詞抵萬金
어느 날에 행차가 협구에 이를까 / 幾日行旌臨峽口
오랫동안 돌아갈 생각에 금심이 가득하네 / 多時歸思滿琴心
아름다운 성에 물과 대가 나란히 빼어나니 / 嘉城水竹雙奇絶
하늘이 시인을 보내 마음껏 읊게 하네 / 天遣騷仙盡意吟
하늘의 표주박을 기울인 듯 빗줄기 더욱 세차 / 傾倒天瓢雨勢加
떠나는 수레에 몸을 맡겨 빗속을 지나가네 / 任敎行蓋雨中過
객창에서 다시 안부를 못 하고 떠나니 / 客窓更負平安問
남쪽 하늘 바라보며 회한이 더 늘어나네 / 瞻望南天恨轉多
청년시절 의기는 월등히 뛰어나고자 했건만 / 靑年意氣欲超群
노년시절 공부는 절반도 못 하였네 / 老去工夫欠半分
남방의 벼슬살이 귀거래사 이루지 못하여 / 南服未成歸去賦
북산에선 이문이 내려 도리어 부끄러워하네 / 北山還愧勒移文
일평생 많은 질병은 사마상여 같고 / 一生多病如司馬
반평생의 공허한 담론 양자운에 사죄하네 / 半世談玄謝子雲
다행히 만년에 뜻 맞는 친구가 있어 / 何幸晩年知己在
붉은 지초같이 아름다운 그대 만나 기쁘네 / 紫芝眉宇喜逢君
[주-D001] 금심(琴心) : 거문고 소리에 부치는 연주자의 마음을 비유한다. 이는 탁문군(卓文君)의 일을 말한다. 탁문군은 한 나라 임공(臨邛)에 사는 탁왕손(卓王孫)의 딸인데 과부가 되었다.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씨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금심(琴心)을 돋우니 문군이 밤에 상여에게 달려갔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02] 이문(移文) : 북산문(北山文)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줄여 쓴 말이다. 남조(南朝)의 주옹(周顒)이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뒤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변절하여 해염 현령(海鹽縣令)이 되었다. 그 후 임기를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종산에 들르려고 하자, 이때 종산에 은거하고 있던 공치규(孔稚珪, 447~501)가 주옹의 변절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종산 신령의 이름을 가탁하여 〈북산이문〉이라는 글을 지어 그를 성토한 적이 있다.
[주-D003] 일평생 …… 사마상여 : 사마상여는 한(漢)나라 때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지냈으며 특히 사부(辭賦)에 뛰어났으나 평생 소갈병(消渴病)으로 시달렸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바다같이 아름다운 글 손에 쥐고 나오네 / 絳河雲錦手初分
천 잔 술 들이켜 풍류가 일고 / 千鍾酒發風流興
만 권 책 흉중에 들어 시문이 아름답네 / 萬卷胸蟠黼黻文
백 년의 친구 밤에 걸상 보내는데 / 知己百年輸夜榻
이별의 회포 며칠이나 서로 떨어져있었던가 / 離懷幾日阻江雲
지붕 위 밝은 달과 마루 앞 대나무 / 屋樑明月軒前竹
해맑은 자태 흡사 그대 보는 듯하오 / 髣髴淸姿若見君
삼복더위 한 번의 비 이제까지 내리니 / 一雨三庚尙到今
넘실거리는 강물에 깊은 숲도 잠겼네 / 漫茫江海沒重林
옥 같은 벗 천 리 멀리 이별하게 되어 / 才分玉友成千里
좋은 시 지어 주니 만금의 값어치라네 / 爲擲瓊詞抵萬金
어느 날에 행차가 협구에 이를까 / 幾日行旌臨峽口
오랫동안 돌아갈 생각에 금심이 가득하네 / 多時歸思滿琴心
아름다운 성에 물과 대가 나란히 빼어나니 / 嘉城水竹雙奇絶
하늘이 시인을 보내 마음껏 읊게 하네 / 天遣騷仙盡意吟
하늘의 표주박을 기울인 듯 빗줄기 더욱 세차 / 傾倒天瓢雨勢加
떠나는 수레에 몸을 맡겨 빗속을 지나가네 / 任敎行蓋雨中過
객창에서 다시 안부를 못 하고 떠나니 / 客窓更負平安問
남쪽 하늘 바라보며 회한이 더 늘어나네 / 瞻望南天恨轉多
청년시절 의기는 월등히 뛰어나고자 했건만 / 靑年意氣欲超群
노년시절 공부는 절반도 못 하였네 / 老去工夫欠半分
남방의 벼슬살이 귀거래사 이루지 못하여 / 南服未成歸去賦
북산에선 이문이 내려 도리어 부끄러워하네 / 北山還愧勒移文
일평생 많은 질병은 사마상여 같고 / 一生多病如司馬
반평생의 공허한 담론 양자운에 사죄하네 / 半世談玄謝子雲
다행히 만년에 뜻 맞는 친구가 있어 / 何幸晩年知己在
붉은 지초같이 아름다운 그대 만나 기쁘네 / 紫芝眉宇喜逢君
[주-D001] 금심(琴心) : 거문고 소리에 부치는 연주자의 마음을 비유한다. 이는 탁문군(卓文君)의 일을 말한다. 탁문군은 한 나라 임공(臨邛)에 사는 탁왕손(卓王孫)의 딸인데 과부가 되었다.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씨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금심(琴心)을 돋우니 문군이 밤에 상여에게 달려갔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주-D002] 이문(移文) : 북산문(北山文)은 〈북산이문(北山移文)〉을 줄여 쓴 말이다. 남조(南朝)의 주옹(周顒)이 일찍이 북산(北山)에 은거하다가 뒤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변절하여 해염 현령(海鹽縣令)이 되었다. 그 후 임기를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그 종산에 들르려고 하자, 이때 종산에 은거하고 있던 공치규(孔稚珪, 447~501)가 주옹의 변절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종산 신령의 이름을 가탁하여 〈북산이문〉이라는 글을 지어 그를 성토한 적이 있다.
[주-D003] 일평생 …… 사마상여 : 사마상여는 한(漢)나라 때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지냈으며 특히 사부(辭賦)에 뛰어났으나 평생 소갈병(消渴病)으로 시달렸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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