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현에서 조 목사의 시에 차운하다〔花園縣次曺牧韻〕 > 금계외집 4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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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현에서 조 목사의 시에 차운하다〔花園縣次曺牧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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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4회 작성일 21-07-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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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집 외집 제4권 / 시(詩)


화원현에서 조 목사의 시에 차운하다〔花園縣次曺牧韻〕

풍진을 뒤집어써 병도 이에 침노하니 / 風塵撲面病仍侵
쓸쓸한 원객의 마음을 뉘라서 알랴 / 寥落誰知遠客心
봄 떠난 뒤로 땅 가득 녹음 우거졌음에 / 滿地綠陰春去後
한 정원에서 꽃 찾기 어려워 한스럽구나 / 一園花事恨難尋


호학으로 일찍이 십년 전에 유람하였는데 / 湖學曾經十載遊
오늘에는 수의로 잠시 지체하면서 머무네 / 繡衣今日暫遲留
쇠잔한 성은 여전한데 사람은 바뀌어 / 殘城依舊人民改
서글피 정위처럼 옛 화표주 머리에 섰네 / 惆悵丁威古柱頭

[주-D001] 호학(湖學) : 호학은 송(宋)나라 호원(胡瑗)이 호주(湖州)의 교수(敎授)로 있으면서 세운 학교인데, 전하여 교육와 관련된 일을 보는 벼슬의 뜻으로도 쓰인다. 황준량은 24세 때인 1540년(중종35)에 화원현(花園縣)에서 멀지 않은 성주(星州)에서 훈도(訓導)를 지낸 적이 있다.

[주-D002] 수의(繡衣) : 수놓은 화려한 옷이라는 뜻으로, 어사(御史)를 달리 일컫는 말이다. 황준량은 당시 경상도(慶尙道) 감군어사(監軍御史)였다.[주-D003] 정위(丁威)처럼 …… 섰네 : 정위는 한(漢)나라 때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이다. 그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서 훗날 학(鶴)으로 변화하여 고향인 요동의 성문(城門)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있었더니, 어느 소년(少年)이 활로 쏘려하기에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여, 집 떠난 지 천 년에 지금 비로소 돌아왔는데, 성곽은 예와 같건만 사람은 옛사람 아니구나. 왜 선술은 배우지 않아 무덤만 줄을 이었는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始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하고는 마침내 하늘 높이 날아올라 갔다는 고사가 있다. 《搜神後記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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