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다가 인보의 의고시에 차운하다〔酒中次仁父擬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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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36회 작성일 21-07-27 19:44본문
금계집 외집 제3권 / 시(詩)
술을 마시다가 인보의 의고시에 차운하다〔酒中次仁父擬古〕
듣자니 태곳적 풍류로 / 聞道太古風
풍속은 순후하고 동이 술을 마셨다네 / 風淳飮樽臼
〈남풍가〉에 노래를 이어 부르고 / 南薰藹賡歌
행단에는 훌륭한 스승과 벗 있었다네 / 杏壇彬師友
동경 사람들은 맑은 의론을 숭상하고 / 東京尙淸議
죽림칠현은 헛되이 술을 숭상하였네 / 竹林徒崇酒
장재와 주희는 때 아닌 때에 태어나 / 關閩生不時
학풍 바로 잡느라 많은 구설에 시달렸네 / 正學困多口
하물며 세상이 더욱 쇠퇴하여 / 況乃世益替
구름과 비를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때임에랴 / 翻覆雲雨手
성글고 거친 데다 늦게 나온 게 한스러운데 / 疏荒恨晩出
평소의 뜻마저 방해받게 되었네 / 素志成掣肘
가슴속은 만고에 뜻을 두었건만 / 胸中志萬古
책 상자 안에는 반 질의 책뿐이네 / 篋裏書半部
부질없이 대관의 양을 배불리 먹고자 / 空飽大官羊
명리의 길에 잠겨 스스로를 저버렸네 / 名途丞自負
현이 곧아 아직 풀어지지 않았으니 / 絃直尙未渝
외려 세 번 쫓겨난 유하혜를 스승 삼으리 / 猶師三黜柳
봄바람이 좋은 산에 많은데 / 春風多好山
어째서 애써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랴 / 何爲强趨走
내 근심이 마땅한 것은 아니나 / 吾憂非所宜
그대 위하여 애오라지 술을 드노라 / 爲君聊擧酒
[주-D001] 남풍가(南風歌) : 순(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처음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孔子家語》
[주-D002] 행단(杏壇) : 공자(孔子)가 강학(講學)하던 곳이다. 지금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공자묘(孔子廟)의 대성전(大成殿) 앞을 말한다.
[주-D003] 동경(東京) …… 숭상하고 : 동경은 동한(東漢)의 서울 낙양(洛陽)으로서 서한(西漢)의 서울인 장안(長安)에서 보면 동쪽에 위치하였으므로 동한의 별칭으로 쓰인다. 동한 말엽부터 정치가 극도로 혼란하여 청의(淸議)를 일삼는 지식인들이 많아졌다.
[주-D004] 죽림칠현(竹林七賢) :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혜강(嵇康), 산도(山濤), 상수(向秀), 완함(阮咸), 왕융(王戎), 유령(劉伶) 등 7인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모두 예속(禮俗)에 얽매이지 않고 호방 광달(豪放曠達)하여 노장(老莊)의 학설을 말하기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시면서 항상 죽림(竹林)사이에 모여 놀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죽림칠현이라고 칭하였다.
[주-D005] 장재(張載)와 주희(朱熹) : 원문의 관민(關閩)은 관중(關中)과 민중(閩中)으로 송대(宋代)에 이학(理學)이 흥성했던 곳이다. 관중에는 횡거(橫渠) 장재(張載)가 있었고, 민중에는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있었다.
[주-D006] 방해받게 되었네 : 원문의 철주(掣肘)는 공연히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여 뜻한 바를 이룰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로 노(魯)나라 복자천(宓子賤)의 고사이다. 복자천이 선보(單父)의 수령으로 임명되어 떠나갈 적에 글씨를 잘 쓰는 임금의 측근 아전 두 사람을 청하여 함께 데리고 갔다.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 아전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글씨를 쓰려고 하면 옆에서 팔꿈치를 잡아당기고, 그 때문에 글씨를 잘못 쓰면 또 화를 내었다. 그 아전들이 두려워 사직하고 돌아가 임금에게 자초지종을 고하니, 임금이 자신을 경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呂氏春秋 具備》
[주-D007] 대관(大官)의 양 : 고관(高官)으로서 많은 녹봉(祿俸)을 받는 사람을 육식자(肉食者)라 칭한 데서 온 말이다. 특히 북송(北宋) 말기에는 소식(蘇軾)의 문장(文章)을 매우 숭상하여 그 문장에 익숙한 사람은 벼슬길이 잘 트였으므로, 당시에 “소식의 문장에 익숙하면 양육을 먹게 되고, 소식의 문장에 서투르면 나물국만 먹게 된다.〔蘇文熟 喫羊肉 蘇文生喫菜羹〕”라고 한 말이 있기도 하였다.
[주-D008] 세 …… 삼으리 : 춘추 때 유하혜(柳下惠)가 곧기 때문에 세 번이나 벼슬에서 쫓겨났으나 버리고 가지 않으므로, 사람이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곧은 도(道)로써 사람을 섬기면 어디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으리오. 굽은 도(道)로써 사람을 섬기어 하필 부모의 나라를 버릴 것인가?”라고 하였다.
술을 마시다가 인보의 의고시에 차운하다〔酒中次仁父擬古〕
듣자니 태곳적 풍류로 / 聞道太古風
풍속은 순후하고 동이 술을 마셨다네 / 風淳飮樽臼
〈남풍가〉에 노래를 이어 부르고 / 南薰藹賡歌
행단에는 훌륭한 스승과 벗 있었다네 / 杏壇彬師友
동경 사람들은 맑은 의론을 숭상하고 / 東京尙淸議
죽림칠현은 헛되이 술을 숭상하였네 / 竹林徒崇酒
장재와 주희는 때 아닌 때에 태어나 / 關閩生不時
학풍 바로 잡느라 많은 구설에 시달렸네 / 正學困多口
하물며 세상이 더욱 쇠퇴하여 / 況乃世益替
구름과 비를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때임에랴 / 翻覆雲雨手
성글고 거친 데다 늦게 나온 게 한스러운데 / 疏荒恨晩出
평소의 뜻마저 방해받게 되었네 / 素志成掣肘
가슴속은 만고에 뜻을 두었건만 / 胸中志萬古
책 상자 안에는 반 질의 책뿐이네 / 篋裏書半部
부질없이 대관의 양을 배불리 먹고자 / 空飽大官羊
명리의 길에 잠겨 스스로를 저버렸네 / 名途丞自負
현이 곧아 아직 풀어지지 않았으니 / 絃直尙未渝
외려 세 번 쫓겨난 유하혜를 스승 삼으리 / 猶師三黜柳
봄바람이 좋은 산에 많은데 / 春風多好山
어째서 애써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랴 / 何爲强趨走
내 근심이 마땅한 것은 아니나 / 吾憂非所宜
그대 위하여 애오라지 술을 드노라 / 爲君聊擧酒
[주-D001] 남풍가(南風歌) : 순(舜) 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처음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염을 풀어 줄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풍부하게 하리로다.〔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孔子家語》
[주-D002] 행단(杏壇) : 공자(孔子)가 강학(講學)하던 곳이다. 지금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 공자묘(孔子廟)의 대성전(大成殿) 앞을 말한다.
[주-D003] 동경(東京) …… 숭상하고 : 동경은 동한(東漢)의 서울 낙양(洛陽)으로서 서한(西漢)의 서울인 장안(長安)에서 보면 동쪽에 위치하였으므로 동한의 별칭으로 쓰인다. 동한 말엽부터 정치가 극도로 혼란하여 청의(淸議)를 일삼는 지식인들이 많아졌다.
[주-D004] 죽림칠현(竹林七賢) :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혜강(嵇康), 산도(山濤), 상수(向秀), 완함(阮咸), 왕융(王戎), 유령(劉伶) 등 7인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모두 예속(禮俗)에 얽매이지 않고 호방 광달(豪放曠達)하여 노장(老莊)의 학설을 말하기 좋아하고 술을 즐겨 마시면서 항상 죽림(竹林)사이에 모여 놀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죽림칠현이라고 칭하였다.
[주-D005] 장재(張載)와 주희(朱熹) : 원문의 관민(關閩)은 관중(關中)과 민중(閩中)으로 송대(宋代)에 이학(理學)이 흥성했던 곳이다. 관중에는 횡거(橫渠) 장재(張載)가 있었고, 민중에는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있었다.
[주-D006] 방해받게 되었네 : 원문의 철주(掣肘)는 공연히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여 뜻한 바를 이룰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로 노(魯)나라 복자천(宓子賤)의 고사이다. 복자천이 선보(單父)의 수령으로 임명되어 떠나갈 적에 글씨를 잘 쓰는 임금의 측근 아전 두 사람을 청하여 함께 데리고 갔다.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 아전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글씨를 쓰려고 하면 옆에서 팔꿈치를 잡아당기고, 그 때문에 글씨를 잘못 쓰면 또 화를 내었다. 그 아전들이 두려워 사직하고 돌아가 임금에게 자초지종을 고하니, 임금이 자신을 경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呂氏春秋 具備》
[주-D007] 대관(大官)의 양 : 고관(高官)으로서 많은 녹봉(祿俸)을 받는 사람을 육식자(肉食者)라 칭한 데서 온 말이다. 특히 북송(北宋) 말기에는 소식(蘇軾)의 문장(文章)을 매우 숭상하여 그 문장에 익숙한 사람은 벼슬길이 잘 트였으므로, 당시에 “소식의 문장에 익숙하면 양육을 먹게 되고, 소식의 문장에 서투르면 나물국만 먹게 된다.〔蘇文熟 喫羊肉 蘇文生喫菜羹〕”라고 한 말이 있기도 하였다.
[주-D008] 세 …… 삼으리 : 춘추 때 유하혜(柳下惠)가 곧기 때문에 세 번이나 벼슬에서 쫓겨났으나 버리고 가지 않으므로, 사람이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곧은 도(道)로써 사람을 섬기면 어디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으리오. 굽은 도(道)로써 사람을 섬기어 하필 부모의 나라를 버릴 것인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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