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청정에서 이선생의 시에 차운하다〔濯淸亭次李先生〕 > 금계외집 2권 시

탁청정에서 이선생의 시에 차운하다〔濯淸亭次李先生〕

거친 바위 새로 깎아 정자 하나 세우고 / 新斸荒巖揷一亭
느긋하게 노닐며 한가한 삶 보내네 / 慣將遊賞送閒生
바람이 솔가지에 불어 푸른 솔이 움직이고 / 風鳴錦瑟蒼松動
이슬이 연잎에 맺혀 연대가 기우네 / 露重仙盤翠藕傾
금 항아리의 향긋한 술을 손이 마셔 취하고 / 金甕香雲賓取醉
옥 바둑판의 바둑알 소리 객이 와서 다투네 / 玉枰晴雹客來爭
트인 정자를 잠시 빌려 원룡처럼 누웠더니 / 疏櫺暫借元龍臥
대자리에 가을이 와서 꿈 절로 맑구나 / 氷簟秋回夢自淸


세모에 호산의 정자에 기대니 / 歲晏湖山客倚亭
찬 숲에 잎이 져서 감회가 일어나네 / 寒林落木感懷生
한 곡조 피리 불자 서산이 저물고 / 一聲笛喚西岑暮
천고의 회포에 술동이 기울이네 / 千古胸澆北海傾
한단의 꿈을 꾼 뒤 쉽게 늙어 놀라도 / 半枕邯鄲驚易老
누대 가득한 풍월은 다툼 없어 기쁘네 / 滿樓風月喜無爭
퇴계의 아름다운 편액과 농암의 시가 / 退溪佳扁聾巖韻
추녀에 걸려 있어 곱절로 청아하네 / 添却高軒一倍淸

[주-D001] 탁청정(濯淸亭) : 김수(金綏, 1491~1555)가 지은 정자로, 이현보, 이황, 황준량, 정윤목 등의 시판이 걸려 있었다.

[주-D002] 솔가지 : 원문의 금슬(錦瑟)은 원래 옻칠에 비단 문양을 새긴 좋은 거문고이나 여기서는 금슬의 줄처럼 뻗어있는 고운 솔가지를 가리킨다.

[주-D003] 연잎 : 원문의 선반(仙盤)은 원래 한나라 때 만든 승로반(承露盤), 곧 선인장(仙人掌)이나 여기서는 승로반처럼 생긴 연잎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4] 바둑알 소리 : 원문의 청박(晴雹)은 바둑을 둘 때 바둑알 놓는 소리가 우박 소리처럼 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주-D005] 원룡(元龍) : 후한(後漢) 말엽 진등(陳登)의 자(字)이다. 허사(許汜)가 진등을 찾아갔을 때 진등이 그를 무시하여 아래 침상에서 자게하고 자신은 위의 큰 침상에서 잤는데, 허사가 이것을 분하게 여겨 진등이 아직도 호해의 기상을 버리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유비(劉備)가 자기 같으면 허사를 땅바닥에 눕게 하고 자신은 백척루(百尺樓) 위에 누웠을 것이라며 진등을 옹호했던 고사가 전한다. 《三國志 卷7 魏書 呂布傳 陳登》뜻이 원대하고 호방하여 개인적인 세상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주로 쓰인다.

[주-D006] 술동이 : 원문의 북해준(北海樽)은 한(漢)나라 말기 북해태수(北海太守) 공융(孔融)의 술을 가리킨다. 공융은 성격이 관대하고 선비들을 좋아하여 항상 그의 문전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자리에는 손님이 항상 가득하고 동이에는 술이 항상 비어 있지 않으니, 나는 걱정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70 孔融列傳》

[주-D007] 한단(邯鄲)의 꿈 : 인생의 영고성쇠(榮枯盛衰)가 모두 꿈결처럼 헛되고 덧없는 것을 말한다. 이필(李泌)의 《침중기(枕中記)》에 “당 현종(唐玄宗) 개원(開元) 19년에, 도사(道士) 여옹(呂翁)이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노생(盧生)이라는 한 곤궁한 소년이 신세타령하는 것을 보고, 자기 베개를 빌려 주면서 ‘이 베개를 베고 자면 그대가 많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잤는데 과연, 꿈속에 청하(淸河)에 사는 최씨(崔氏)의 딸에게 장가 들고 또 높은 벼슬을 두루 역임하여 부귀영화를 일평생 누리고 살다가 꿈을 깨어 본즉, 아까 여관 주인이 짓던 좁쌀밥이 채 익지 않았다. 이에 여옹이 웃으면서 ‘인간 세상의 일도 이 꿈과 마찬가지이다.’ 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