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유람한 기행시〔遊頭流山紀行篇〕-I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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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8회 작성일 21-07-27 05:08본문
산을 유람한 기행시〔遊頭流山紀行篇〕-I X
[주-D062] 격양가(擊壤歌)가 나왔고 :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쉰다네.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밥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고 하였다.
[주-D063] 일관봉(日觀峯) : 태산(泰山) 정상에 있는 봉우리이다. 해돋이를 보는 곳이기에 동암(東巖) 또는 동산(東山)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두류산 천왕봉(天王峯)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D064] 일원(一元) : 일반적인 의미에서 천지 만물을 생성시키는 원기라는 뜻으로 쓰였을 수도 있고, 소옹(邵雍)이 원(元)ㆍ회(會)ㆍ운(運)ㆍ세(世)에 입각하여 말한 일원(一元)일 수도 있다. 소옹에 의하면 일원은 하늘과 땅이 개벽하여 끝나는 기간이라 한다. 원에는 자(子)ㆍ축(丑)ㆍ인(寅)ㆍ묘(卯)의 12회가 있고, 회에는 30운이 있고 운에는 12세가 있는바, 1세는 30년이니, 1원은 12회, 360운, 4,320세로 총 12만 9,600년이 된다. 이는 태양이 1년에 한 번 하늘을 돈다는 설에 의하여 원을 1년에 맞추고 회를 열두 달에 맞추며, 운을 하루에 한 번 돈다는 별에 맞추고 세를 360일에 맞춘 것이다. 《皇極經世書 卷2 纂圖指要下》
[주-D065] 이적선(李謫仙) : 당나라의 이백(李白)이다. 적선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의 작품 〈촉도난(蜀道難)〉을 읽고 찬탄하여 ‘적선’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다.
[주-D066] 대무(大巫) : 법술이 아주 뛰어난 무당을 말하는데, 전하여 학문이나 기예가 뛰어난 사람을 비유한다. 두보(杜甫)의 〈증위좌승장제(贈韋左丞丈濟)〉 시에 “문장을 자랑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도리어 대무를 와서 뵙네.〔不謂矜餘力, 還來謁大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시에 뛰어난 이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067] 청한하고 수척 : 소식(蘇軾)이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당대(唐代) 시인들의 시격(詩格)을 평하여 “맹교의 시격은 청한하고, 가도의 시격은 수척하며, 원진의 시격은 경조하고, 백거이의 시격은 비속하다.〔郊寒島瘦, 元輕白俗.〕”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68] 바람에 …… 두렵다네 : 황준량이 시를 짓고 싶지만 지은 시가 나중에 남들로부터 맹교처럼 청한하고 가도처럼 수척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까 염려된다는 말이다.
[주-D069] 석양 무렵 :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해가 연우(淵虞)에 이르는 것을 ‘고용(高舂)’이라 하고 연석(連石)에 이르는 것을 ‘하용(下舂)’이라 한다.〔日至於淵虞, 是謂高舂. 至於連石, 是謂下舂.〕”라고 했는데, 고유(高誘)의 주(注)에 “연석은 서북산으로, 장차 어두워지려 함을 말하는데, 방아 찧는 일을 그만두려하기 때문에 ‘하용’이라 한다.〔連石, 西北山, 言將欲冥, 下象息舂, 故曰下舂.〕”라고 했다.
[주-D070] 자줏빛 …… 터인데 : 적성산(赤城山)은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토석의 색깔이 붉고 모양이 성첩과 같이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선(文選)》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서 “적성의 노을을 들어 표지로 세운다.〔赤城霞擧而建標〕”라고 하였다.
[주-D071] 선장(仙掌) : 한 무제(漢武帝) 때에 감로(甘露)를 받기 위하여 세웠다는 승로반(承露盤)을 말한다. 여기서는 승로반처럼 하늘 높이 솟은 대(臺)를 말한다.
[주-D072] 시인의 …… 산 : 성당(盛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눈발이 휘날리는 패교(霸橋) 위를 나귀 타고 지나갈 때 가장 멋진 시상(詩想)이 떠올랐다고 한다. 소식(蘇軾)은 시에서, “그대는 또 보지 못하였는가, 눈발 속에 나귀를 탄 맹호연이, 눈썹을 찌푸린 채 산처럼 높은 어깨를 옹그리고 시 읊조리던 그 모습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주-D073] 구종산(九嵕山) : 섬서성(陝西省) 예천현(醴泉縣)에 있는 산인데 당 태종(唐太宗)의 소릉(昭陵)이 여기에 있다. 봉우리가 매우 높이 솟았기 때문에 산세를 따라 옆을 파서 능을 만들었다고 한다.
[주-D074] 중사(中使) : 궁중에서 왕명(王命)을 전하는 내시(內侍)나 왕명을 받고 밖으로 나가는 내시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중국 황제의 중사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75] 가섭대(迦葉臺) : 지리산 천왕봉에서 조금 내려와 서쪽으로 가면 향적사(香積寺)가 있고, 또 서쪽으로 50리쯤 가면 가섭대가 있다.
[주-D076] 성군(聖君) :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가리킨다. 그는 고려 말 남쪽 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무찔러 공을 세웠는데, 특히 운봉(雲峯) 황산에서 대첩을 거두었다.
[주-D077] 자지가(紫芝歌) : 진(秦)나라 말기에 난리를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한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등 사호(四皓)가 자지(紫芝)를 캐 먹고 배고픔을 달래면서 〈자지가〉를 지어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주-D078] 응진(應眞) : 범어(梵語)인 나한(羅漢)을 의역(意譯)한 말로 진도(眞道)를 터득한 사람을 뜻한다.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서, “응진이 석장(錫杖)을 날려 허공을 밟고 다닌다.〔應眞飛錫以躡虛〕”라고 하였다.
[주-D079] 파공(巴邛)처럼 …… 있겠네 : 옛날 파공 사람이 자기 귤원(橘園)에 대단히 큰 귤이 있어서 이상하게 여겨 쪼개어 보니, 그 귤 속에 수염과 눈썹이 하얀 두 노인이 서로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 한 노인이 말하기를 “귤 속의 즐거움은 상산(商山)에 뒤지지 않으나, 다만 뿌리가 깊지 못하고 꼭지가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따 내리게 되었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玄怪錄 卷3》
[주-D080] 늙은 역적 : 최충헌(崔忠獻)을 가리킨다.
[주-D081] 방덕공(龐德公) : 제갈량(諸葛亮)이 존경했다는 한말(漢末)의 은사(隱士)이다. 양양(襄陽)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간청도 물리치고, 뒤에 처자식을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생을 마쳤다 한다. 《高士傳》
[주-D082] 문 …… 같았네 : 공승(龔勝)은 원래 한(漢)나라 사람인데, 소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경(經)에 밝아 애제(哀帝) 때 광록대부(光祿大夫)까지 되었다. 그 후 왕망(王莽)이 찬위(簒位)하여, 그를 강학좨주(講學祭酒)ㆍ태자사우(太子師友) 등의 벼슬로 불렀으나 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았다. 왕망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더 융숭한 예로 부르자 자기의 사의가 관철되지 못할 것을 알고 두 아들과 문인 고휘(高暉) 등을 불러 간략하게 치상 준비를 하도록 명하고는 그 길로 다시는 입을 열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14일 만에 79세의 나이로 죽었다. 《漢書 卷72 兩龔傳》
[주-D083] 무식한 시골뜨기 : 꽉 막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원문의 ‘오하농(吳下儂)’은 ‘오하아몽(吳下阿蒙)’을 달리 표현한 말인데 오하는 오(吳)나라, 아몽은 여몽(呂蒙)을 가리킨다. 오나라 여몽은 애초에 무식하였는데 손권(孫權)이 “국사(國事)를 하려면 학문을 해야 한다.”라고 하자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학식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뒤에 노숙(魯肅)이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 옛날 오하의 여몽이 아니구나.”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54 吳書 呂蒙傳》
[주-D084] 우(禹) 임금의 자취 : 요(堯) 임금 때에 우(禹)는 구주(九州)의 홍수(洪水)를 다스림과 동시에 방방곡곡의 땅의 등급과 물산(物産)의 종류 등을 낱낱이 밝혔다.
[주-D085] 사수(泗洙) : 사수(泗水)와 수수(洙水)를 말한다. 수수는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의 북쪽에 있고 사수는 그 남쪽에 있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이 일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 또는 유학의 발원지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D086] 관민(關閩) :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준말이다. 염락관민은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 등 송나라 성리학자들을 가리킨다.
[주-D087] 상산(象山) : 강서성(江西省) 귀계현(貴溪縣) 서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상산은 또한 주희(朱熹)의 이학(理學)에 반대하여 심학(心學)을 제창한 송(宋)나라 육구연(陸九淵)의 호이기도 하다.
[주-D088] 오송강(吳淞江) :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송강(松江)의 별칭이다. 송강은 또 당(唐)나라 때 문인 육구몽(陸龜蒙)의 호이기도 한데 그는 차, 솥, 필상(筆床), 조구(釣具) 등을 배에 싣고 이 일대를 왕래하며 놀았는데,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강호산인(江湖散人)이라고 불렀다.
[주-D089] 과아(夸娥)와 거령(巨靈) : 과아는 신(神) 이름이다. 옛날에 우공(愚公)이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옮길 때 하늘의 상제가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과아를 내려 보내 산을 옮기게 하였다고 한다. 거령은 화산(華山)을 쪼갠 하신(河神)의 이름으로 옛날에 산 하나가 하수(河水)를 막고 있어서 하수가 빙 돌아서 흐르자 거령이 이 산을 둘로 쪼개어 하수를 곧게 흐르게 하였다고 한다. 《列子 湯問》 《文選 張衡 西京賦
》[주-D090] 두우성(斗牛星) : 북두성과 견우성을 말한다.
[주-D091] 불을 …… 맞게 : 원문의 번시(燔柴)는 나무를 쌓은 다음 그 위에 희생(犧牲)과 옥백(玉帛)을 올려놓고 불을 붙여 제물의 타는 냄새가 하늘에 오르도록 하여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 원문의 망질(望秩)은 희생(犧牲), 폐백(幣帛), 위차(位次) 등을 순서에 맞추어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D092] 금물 칠한 옥함(玉函) : 원문의 니금(泥金)은 아교풀에 갠 금가루로 도색하는 것을 말하고, 옥검(玉檢)은 공적을 기록한 옥첩(玉牒)을 담는 함〔檢〕을 말한다. 《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의 “태산에 올라 봉 제사를 행하다.〔登封泰山〕”라는 구절의 주(注)에 “금책(金策) 석함(石函)과 금니(金泥) 옥검(玉檢)을 들고 올라가 봉(封)을 행한다.”라고 하였다.
[주-D093] 상산(湘山)의 비바람 : 진 시황(秦始皇)이 상수(湘水)를 건널 때 비바람이 거세게 일자 부득이하여 배를 돌리고 크게 성을 내며 상산(湘山)의 나무를 모두 베었다는 전설이 있다.
[주-D094] 서불(徐巿) : 진(秦)나라 때 사람으로 진 시황(秦始皇)이 그에게 동해의 삼신산(三神山)으로 가서 불로초(不老草)를 캐오라고 하면서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데리고 가게 하였는데, 일본에 도착하여 그곳에 살면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주-D095] 신보(申甫)를 …… 같아지소서 : 신보는 주(周)나라 때의 명신(名臣)인 신백(申伯)과 보후(甫侯)를 가리키고, 고숭(高崧)은 높은 태산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숭고(崧高)〉에 “산악이 신명을 내시어, 보후와 신백을 낳았네.〔維嶽降神, 生甫及申.〕”라고 하였다
.[주-D096] 절서 잃는 : 원문의 건복(愆伏)은 절기가 조화를 잃는 것을 말한다.
[주-D097] 인재 : 원문의 생용(笙鏞)은 악기 생황(笙簧)과 대종(大鐘)을 가리키는데, 조정의 귀한 인재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주-D098] 기풍(岐酆) : 주(周)나라의 도읍인 기주(岐州)와 풍읍(酆邑)으로, 태왕이 기주에 도읍하고 후에 문왕이 풍읍으로 옮겼다. 제왕의 도읍을 비유한다
.[주-D099] 산도(山都) : 유인원의 일종으로 모습이 사람과 비슷하다. 얼굴이 길고 입술이 검으며 몸에 털이 나 있고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한다.
[주-D100] 기름이 …… 태우는 것 : 화를 자초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산의 나무는 쓸모가 있어서 벌목을 자초하고, 유지(油脂)는 불을 밝힐 수 있어서 자기 몸을 태우게 만든다.〔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101] 덕 …… 최상 : 춘추 시대 때 노(魯)나라 대부 숙손표가 진(晉)나라에 갔을 적에 범선자(范宣子)가 길이 썩지 않을 일에 대해서 물어보자 그가 대답하기를 “최상의 것은 덕을 남기는 것이고,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며, 그다음은 말을 전하는 것이다.〔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4年》
[주-D102] 운대(雲臺) :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나라에 공을 세운 명장(名將)들의 초상화를 걸어 놓은 공신각(功臣閣) 이름이다.
[주-D103] 원숭이를 조각하듯 : 전국 시대에 송(宋)나라 사람이 많은 봉록(俸祿)을 취하기 위하여 연왕(燕王)에게 가서 가시 끝〔棘端〕에다 원숭이를 조각하겠다고 청했으나, 연왕이 거짓임을 깨닫고 그를 죽였다. 이후 부질없이 심력(心力)을 허비하거나 거짓된 짓을 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104] 완물상지(玩物喪志) : 외물을 좋아하다가 큰 뜻을 잃어버림을 말한다. 정자(程子)는 글쓰기를 좋아함을 일러, ‘사물을 즐기다가 큰 뜻을 잃어버린다.〔玩物喪志〕’라고 하였다.
[주-D105] 저력처럼 쓸모없는 재목 : 저력(樗櫟)은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로 쓸모없는 재목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와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산목(散木)인데, 쓸모없는 재목인지라 세상에서 버림받아 다행히 목숨을 온전히 보전한다는 말로 쓰인다
.[주-D106] 순무 …… 슬퍼하랴 : 이 대목은 《시경》 〈패풍(邶風) 곡풍(谷風)〉의 “순무를 캐는 것은 뿌리 때문만은 아니다.〔采葑采菲 無以下體〕”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으로, 뿌리는 좋지 않지만 잎이 쓸모 있기 때문에 채취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질이 좋은 것을 위주로 취한다는 말로, 자신의 용렬한 재주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107] 종남산(終南山)이 벼슬길의 첩경 : 종남산은 당(唐)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의 앞산이다. 당(唐)나라 노장용(盧藏用)이 벼슬할 마음을 품고는 짐짓 종남산에 숨어 살다가 마침내 부름을 받고 고관이 되자, 도사(道士)인 사마승정(司馬承禎)이 “종남산이야말로 벼슬길에 오르는 첩경이 된다.”라고 풍자한 ‘종남첩경(終南捷徑)’의 고사가 전한다. 《大唐新語 卷10》
[주-D108] 위수(渭水)에서 …… 것 :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서기 전에 점을 쳤더니 “잡을 것은 범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匪熊〕 왕패(王霸)를 보좌할 인물이다.”라는 점괘가 나왔는데, 사냥을 나갔다가 마침내 위수에서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을 만나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왔다는 고사를 시화(詩化)한 것이다. 《史記 卷32 齊太公世家》
[주-D109] 용천검(龍泉劍)이 …… 할까 : 원문의 용검(龍劍)은 고대의 명검인 용천검이다. 오(吳)나라 때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늘 보랏빛 기운이 감돌기에 장화(張華)가 예장(豫章)의 점성가(占星家) 뇌환(雷煥)에게 물었더니 보검의 빛이라 하였다. 이에 풍성(豐城)의 감옥 터 땅속에서 춘추 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적인 보검인 용천검과 태아검(太阿劍) 두 보검을 발굴했다 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주-D110] 불에 …… 만날 : 원문의 ‘표동(燢桐)’은 ‘표동(爂桐)’ 혹은 ‘찬동(爨桐)’의 잘못이다. 후한(後漢) 때에 오(吳) 땅의 어떤 사람이 오동나무를 땔감으로 하여 밥을 짓고 있었는데, 마침 채옹(蔡邕)이 지나다가 그것이 불타는 소리를 듣고는 좋은 목재(木材)임을 알아 그 오동나무를 구하여 거문고를 만들었더니 과연 좋은 소리가 났다고 한다. 거문고의 끝부분이 불에 탔다 하여 거문고 이름을 ‘초미금(焦尾琴)’이라 하였다. 《後漢書 卷60下 蔡邕列傳》
[주-D111] 태항산(太行山) :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산으로 험준하기로 이름이 높다.
[주-D112] 염예퇴(灩澦堆) :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서남쪽으로 양자강(揚子江) 구당협(瞿塘峽) 어귀에 큰 암석이 우뚝 서 있는 곳을 이르는데, 이 부근은 격류가 극심하여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주-D113] 멸족당한 …… 한탄했나 :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출신으로 진(秦)나라 승상(承相)을 지내면서 부귀를 누리다가 뒤에 조고(趙高)에 의해 아들과 함께 함양(咸陽) 저자에서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아들을 돌아보며 통곡하기를 “너와 내가 고향인 상채(上蔡)에서 누런 개를 이끌고 사냥하던 것을 언제나 다시 하리.”라고 하였다 한다. 이 구절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엮은 것이다
.[주-D114] 풍당(馮唐) : 고제(高帝) 때에 낭관(郎官)이 되었는데, 혜제(惠帝)를 지나 문제(文帝) 때에 가서야 이미 늙은 나이로 낭중서장(郞中署長)을 거쳐 겨우 거기도위(車騎都尉)에 이르렀다고 한다.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그가 다시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으나 이때는 그의 나이가 이미 90여 세나 되어 더 이상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주-D115] 산 : 원문의 나계(螺髻)는 소라고둥 모양의 상투이지만 보통 산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당(唐)나라 피일휴(皮日休)의 〈태호사표묘봉(太湖寺縹緲峯)〉에서 “흡사 푸른 소라고둥 같은 것을 밝은 달빛 아래 흩뿌려놓았네.〔似將靑螺髻, 撒在明月中.〕”라고 하였다.
[주-D116] 육우(陸羽) : 당(唐)의 은사(隱士)로 차를 좋아하여 세 편의 다경(茶經)을 저술했는데 차의 기원, 달이는 법, 맛, 그릇 등에 관하여 자세히 서술하여 천하에 다풍(茶風)을 일으켰다. 후인들은 그를 높여 다신(茶神), 다성(茶聖), 다선(茶仙) 등으로 불렀다
.[주-D117] 연(蓮)잎에 …… 기울이리 : 벽통배(碧筩杯)는 여름에 연잎으로 만든 술그릇이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정각(鄭慤)이 한여름에 역성(歷城) 북쪽의 사군림(使君林)에서 손님들과 어울려 피서하면서 줄기가 달린 커다란 연잎에 술 두 되를 담고 잎과 줄기가 서로 통하게 비녀로 구멍을 뚫은 다음, 그 줄기를 코끼리의 코처럼 잡아 올려 여러 사람이 서로 돌려가며 마셨다고 한다. 《酉陽雜俎 卷7 酒食》
[주-D118] 원량(元亮)처럼 …… 타고 : 원량은 동진(東晉) 때의 시인인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는 흥이 나면 오동나무로 만든 줄 없는 작은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연주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도잠처럼 은거하여 거문고를 타고 지내겠다는 말이다
.[주-D119] 낙천(樂天)처럼 …… 전하리라 : 낙천은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자이다. 그와 원진(元稹)은 항상 시를 지으면 대나무로 만든 시통(詩筒)에 담아서 주고받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백거이처럼 시를 지으면서 자락(自樂)하겠다는 말이다.
[주-D120] 초(楚)나라 사람의 활 : 초나라의 공왕(共王)이 나가 놀다가 활을 잃어버렸다. 좌우의 신하들이 찾아보기를 청하자, 왕이 말하기를 “그만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잃은 활을 초나라 사람이 얻었을 것이니 또 찾아 무엇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주-D121] 여뀌 먹는 벌레 :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칠간원세(七諫怨世)〉에 “여뀌 벌레는 아욱으로 옮겨갈 줄 모르네.〔蓼蟲不知徙乎葵菜〕”라는 말이 있다. 여뀌 벌레가 아욱처럼 달고 맛있는 풀을 먹지 않고 쓰고 맛없는 여뀌만 갉아먹다가 끝내 고달프게 살면서 수척해짐을 말한 것이다. 이 구는 여뀌 벌레처럼 융통성이 없이 고집을 부리다가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 곤궁하게 사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주-D122] 미끼 …… 가물치 : 낚시꾼의 미끼를 탐하다가 낚시에 걸려 목숨을 잃는 가물치를 통하여 벼슬을 탐하다가 패가망신함을 비유한 것이다.
[주-D123] 금마문(金馬門) : 한(漢)나라 때 학사들을 초대하던 곳이었는데, 후에는 한림원(翰林院)이나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주-D124] 교송(喬松) : 옛날의 두 선인(仙人)인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의 합칭(合稱)이다.
[주-D062] 격양가(擊壤歌)가 나왔고 :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쉰다네.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밥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고 하였다.
[주-D063] 일관봉(日觀峯) : 태산(泰山) 정상에 있는 봉우리이다. 해돋이를 보는 곳이기에 동암(東巖) 또는 동산(東山)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두류산 천왕봉(天王峯)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D064] 일원(一元) : 일반적인 의미에서 천지 만물을 생성시키는 원기라는 뜻으로 쓰였을 수도 있고, 소옹(邵雍)이 원(元)ㆍ회(會)ㆍ운(運)ㆍ세(世)에 입각하여 말한 일원(一元)일 수도 있다. 소옹에 의하면 일원은 하늘과 땅이 개벽하여 끝나는 기간이라 한다. 원에는 자(子)ㆍ축(丑)ㆍ인(寅)ㆍ묘(卯)의 12회가 있고, 회에는 30운이 있고 운에는 12세가 있는바, 1세는 30년이니, 1원은 12회, 360운, 4,320세로 총 12만 9,600년이 된다. 이는 태양이 1년에 한 번 하늘을 돈다는 설에 의하여 원을 1년에 맞추고 회를 열두 달에 맞추며, 운을 하루에 한 번 돈다는 별에 맞추고 세를 360일에 맞춘 것이다. 《皇極經世書 卷2 纂圖指要下》
[주-D065] 이적선(李謫仙) : 당나라의 이백(李白)이다. 적선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으로 하지장(賀知章)이 이백의 작품 〈촉도난(蜀道難)〉을 읽고 찬탄하여 ‘적선’이라고 부른 데서 연유한다.
[주-D066] 대무(大巫) : 법술이 아주 뛰어난 무당을 말하는데, 전하여 학문이나 기예가 뛰어난 사람을 비유한다. 두보(杜甫)의 〈증위좌승장제(贈韋左丞丈濟)〉 시에 “문장을 자랑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도리어 대무를 와서 뵙네.〔不謂矜餘力, 還來謁大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시에 뛰어난 이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D067] 청한하고 수척 : 소식(蘇軾)이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당대(唐代) 시인들의 시격(詩格)을 평하여 “맹교의 시격은 청한하고, 가도의 시격은 수척하며, 원진의 시격은 경조하고, 백거이의 시격은 비속하다.〔郊寒島瘦, 元輕白俗.〕”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68] 바람에 …… 두렵다네 : 황준량이 시를 짓고 싶지만 지은 시가 나중에 남들로부터 맹교처럼 청한하고 가도처럼 수척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까 염려된다는 말이다.
[주-D069] 석양 무렵 :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해가 연우(淵虞)에 이르는 것을 ‘고용(高舂)’이라 하고 연석(連石)에 이르는 것을 ‘하용(下舂)’이라 한다.〔日至於淵虞, 是謂高舂. 至於連石, 是謂下舂.〕”라고 했는데, 고유(高誘)의 주(注)에 “연석은 서북산으로, 장차 어두워지려 함을 말하는데, 방아 찧는 일을 그만두려하기 때문에 ‘하용’이라 한다.〔連石, 西北山, 言將欲冥, 下象息舂, 故曰下舂.〕”라고 했다.
[주-D070] 자줏빛 …… 터인데 : 적성산(赤城山)은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토석의 색깔이 붉고 모양이 성첩과 같이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선(文選)》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서 “적성의 노을을 들어 표지로 세운다.〔赤城霞擧而建標〕”라고 하였다.
[주-D071] 선장(仙掌) : 한 무제(漢武帝) 때에 감로(甘露)를 받기 위하여 세웠다는 승로반(承露盤)을 말한다. 여기서는 승로반처럼 하늘 높이 솟은 대(臺)를 말한다.
[주-D072] 시인의 …… 산 : 성당(盛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눈발이 휘날리는 패교(霸橋) 위를 나귀 타고 지나갈 때 가장 멋진 시상(詩想)이 떠올랐다고 한다. 소식(蘇軾)은 시에서, “그대는 또 보지 못하였는가, 눈발 속에 나귀를 탄 맹호연이, 눈썹을 찌푸린 채 산처럼 높은 어깨를 옹그리고 시 읊조리던 그 모습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12 贈寫眞何充秀才》
[주-D073] 구종산(九嵕山) : 섬서성(陝西省) 예천현(醴泉縣)에 있는 산인데 당 태종(唐太宗)의 소릉(昭陵)이 여기에 있다. 봉우리가 매우 높이 솟았기 때문에 산세를 따라 옆을 파서 능을 만들었다고 한다.
[주-D074] 중사(中使) : 궁중에서 왕명(王命)을 전하는 내시(內侍)나 왕명을 받고 밖으로 나가는 내시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중국 황제의 중사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75] 가섭대(迦葉臺) : 지리산 천왕봉에서 조금 내려와 서쪽으로 가면 향적사(香積寺)가 있고, 또 서쪽으로 50리쯤 가면 가섭대가 있다.
[주-D076] 성군(聖君) :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가리킨다. 그는 고려 말 남쪽 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무찔러 공을 세웠는데, 특히 운봉(雲峯) 황산에서 대첩을 거두었다.
[주-D077] 자지가(紫芝歌) : 진(秦)나라 말기에 난리를 피하여 상산(商山)에 은거한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 등 사호(四皓)가 자지(紫芝)를 캐 먹고 배고픔을 달래면서 〈자지가〉를 지어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주-D078] 응진(應眞) : 범어(梵語)인 나한(羅漢)을 의역(意譯)한 말로 진도(眞道)를 터득한 사람을 뜻한다.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서, “응진이 석장(錫杖)을 날려 허공을 밟고 다닌다.〔應眞飛錫以躡虛〕”라고 하였다.
[주-D079] 파공(巴邛)처럼 …… 있겠네 : 옛날 파공 사람이 자기 귤원(橘園)에 대단히 큰 귤이 있어서 이상하게 여겨 쪼개어 보니, 그 귤 속에 수염과 눈썹이 하얀 두 노인이 서로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 한 노인이 말하기를 “귤 속의 즐거움은 상산(商山)에 뒤지지 않으나, 다만 뿌리가 깊지 못하고 꼭지가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따 내리게 되었다.”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玄怪錄 卷3》
[주-D080] 늙은 역적 : 최충헌(崔忠獻)을 가리킨다.
[주-D081] 방덕공(龐德公) : 제갈량(諸葛亮)이 존경했다는 한말(漢末)의 은사(隱士)이다. 양양(襄陽)에서 농사지으며 살다가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의 간청도 물리치고, 뒤에 처자식을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생을 마쳤다 한다. 《高士傳》
[주-D082] 문 …… 같았네 : 공승(龔勝)은 원래 한(漢)나라 사람인데, 소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경(經)에 밝아 애제(哀帝) 때 광록대부(光祿大夫)까지 되었다. 그 후 왕망(王莽)이 찬위(簒位)하여, 그를 강학좨주(講學祭酒)ㆍ태자사우(太子師友) 등의 벼슬로 불렀으나 병을 이유로 나가지 않았다. 왕망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더 융숭한 예로 부르자 자기의 사의가 관철되지 못할 것을 알고 두 아들과 문인 고휘(高暉) 등을 불러 간략하게 치상 준비를 하도록 명하고는 그 길로 다시는 입을 열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14일 만에 79세의 나이로 죽었다. 《漢書 卷72 兩龔傳》
[주-D083] 무식한 시골뜨기 : 꽉 막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원문의 ‘오하농(吳下儂)’은 ‘오하아몽(吳下阿蒙)’을 달리 표현한 말인데 오하는 오(吳)나라, 아몽은 여몽(呂蒙)을 가리킨다. 오나라 여몽은 애초에 무식하였는데 손권(孫權)이 “국사(國事)를 하려면 학문을 해야 한다.”라고 하자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학식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뒤에 노숙(魯肅)이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 옛날 오하의 여몽이 아니구나.”라고 하였다. 《三國志 卷54 吳書 呂蒙傳》
[주-D084] 우(禹) 임금의 자취 : 요(堯) 임금 때에 우(禹)는 구주(九州)의 홍수(洪水)를 다스림과 동시에 방방곡곡의 땅의 등급과 물산(物産)의 종류 등을 낱낱이 밝혔다.
[주-D085] 사수(泗洙) : 사수(泗水)와 수수(洙水)를 말한다. 수수는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의 북쪽에 있고 사수는 그 남쪽에 있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이 일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 또는 유학의 발원지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D086] 관민(關閩) : 염락관민(濂洛關閩)의 준말이다. 염락관민은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 등 송나라 성리학자들을 가리킨다.
[주-D087] 상산(象山) : 강서성(江西省) 귀계현(貴溪縣) 서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상산은 또한 주희(朱熹)의 이학(理學)에 반대하여 심학(心學)을 제창한 송(宋)나라 육구연(陸九淵)의 호이기도 하다.
[주-D088] 오송강(吳淞江) :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송강(松江)의 별칭이다. 송강은 또 당(唐)나라 때 문인 육구몽(陸龜蒙)의 호이기도 한데 그는 차, 솥, 필상(筆床), 조구(釣具) 등을 배에 싣고 이 일대를 왕래하며 놀았는데,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강호산인(江湖散人)이라고 불렀다.
[주-D089] 과아(夸娥)와 거령(巨靈) : 과아는 신(神) 이름이다. 옛날에 우공(愚公)이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옮길 때 하늘의 상제가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과아를 내려 보내 산을 옮기게 하였다고 한다. 거령은 화산(華山)을 쪼갠 하신(河神)의 이름으로 옛날에 산 하나가 하수(河水)를 막고 있어서 하수가 빙 돌아서 흐르자 거령이 이 산을 둘로 쪼개어 하수를 곧게 흐르게 하였다고 한다. 《列子 湯問》 《文選 張衡 西京賦
》[주-D090] 두우성(斗牛星) : 북두성과 견우성을 말한다.
[주-D091] 불을 …… 맞게 : 원문의 번시(燔柴)는 나무를 쌓은 다음 그 위에 희생(犧牲)과 옥백(玉帛)을 올려놓고 불을 붙여 제물의 타는 냄새가 하늘에 오르도록 하여 하늘에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 원문의 망질(望秩)은 희생(犧牲), 폐백(幣帛), 위차(位次) 등을 순서에 맞추어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D092] 금물 칠한 옥함(玉函) : 원문의 니금(泥金)은 아교풀에 갠 금가루로 도색하는 것을 말하고, 옥검(玉檢)은 공적을 기록한 옥첩(玉牒)을 담는 함〔檢〕을 말한다. 《한서》 권6 〈무제기(武帝紀)〉의 “태산에 올라 봉 제사를 행하다.〔登封泰山〕”라는 구절의 주(注)에 “금책(金策) 석함(石函)과 금니(金泥) 옥검(玉檢)을 들고 올라가 봉(封)을 행한다.”라고 하였다.
[주-D093] 상산(湘山)의 비바람 : 진 시황(秦始皇)이 상수(湘水)를 건널 때 비바람이 거세게 일자 부득이하여 배를 돌리고 크게 성을 내며 상산(湘山)의 나무를 모두 베었다는 전설이 있다.
[주-D094] 서불(徐巿) : 진(秦)나라 때 사람으로 진 시황(秦始皇)이 그에게 동해의 삼신산(三神山)으로 가서 불로초(不老草)를 캐오라고 하면서 동남동녀(童男童女) 3천 명을 데리고 가게 하였는데, 일본에 도착하여 그곳에 살면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주-D095] 신보(申甫)를 …… 같아지소서 : 신보는 주(周)나라 때의 명신(名臣)인 신백(申伯)과 보후(甫侯)를 가리키고, 고숭(高崧)은 높은 태산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숭고(崧高)〉에 “산악이 신명을 내시어, 보후와 신백을 낳았네.〔維嶽降神, 生甫及申.〕”라고 하였다
.[주-D096] 절서 잃는 : 원문의 건복(愆伏)은 절기가 조화를 잃는 것을 말한다.
[주-D097] 인재 : 원문의 생용(笙鏞)은 악기 생황(笙簧)과 대종(大鐘)을 가리키는데, 조정의 귀한 인재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주-D098] 기풍(岐酆) : 주(周)나라의 도읍인 기주(岐州)와 풍읍(酆邑)으로, 태왕이 기주에 도읍하고 후에 문왕이 풍읍으로 옮겼다. 제왕의 도읍을 비유한다
.[주-D099] 산도(山都) : 유인원의 일종으로 모습이 사람과 비슷하다. 얼굴이 길고 입술이 검으며 몸에 털이 나 있고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사람을 보면 웃는다고 한다.
[주-D100] 기름이 …… 태우는 것 : 화를 자초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에 “산의 나무는 쓸모가 있어서 벌목을 자초하고, 유지(油脂)는 불을 밝힐 수 있어서 자기 몸을 태우게 만든다.〔山木自寇也, 膏火自煎也.〕”라는 말이 나온다
.[주-D101] 덕 …… 최상 : 춘추 시대 때 노(魯)나라 대부 숙손표가 진(晉)나라에 갔을 적에 범선자(范宣子)가 길이 썩지 않을 일에 대해서 물어보자 그가 대답하기를 “최상의 것은 덕을 남기는 것이고,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며, 그다음은 말을 전하는 것이다.〔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4年》
[주-D102] 운대(雲臺) :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나라에 공을 세운 명장(名將)들의 초상화를 걸어 놓은 공신각(功臣閣) 이름이다.
[주-D103] 원숭이를 조각하듯 : 전국 시대에 송(宋)나라 사람이 많은 봉록(俸祿)을 취하기 위하여 연왕(燕王)에게 가서 가시 끝〔棘端〕에다 원숭이를 조각하겠다고 청했으나, 연왕이 거짓임을 깨닫고 그를 죽였다. 이후 부질없이 심력(心力)을 허비하거나 거짓된 짓을 하는 것을 비유한다
.[주-D104] 완물상지(玩物喪志) : 외물을 좋아하다가 큰 뜻을 잃어버림을 말한다. 정자(程子)는 글쓰기를 좋아함을 일러, ‘사물을 즐기다가 큰 뜻을 잃어버린다.〔玩物喪志〕’라고 하였다.
[주-D105] 저력처럼 쓸모없는 재목 : 저력(樗櫟)은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로 쓸모없는 재목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와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산목(散木)인데, 쓸모없는 재목인지라 세상에서 버림받아 다행히 목숨을 온전히 보전한다는 말로 쓰인다
.[주-D106] 순무 …… 슬퍼하랴 : 이 대목은 《시경》 〈패풍(邶風) 곡풍(谷風)〉의 “순무를 캐는 것은 뿌리 때문만은 아니다.〔采葑采菲 無以下體〕”라고 한 말에서 나온 것으로, 뿌리는 좋지 않지만 잎이 쓸모 있기 때문에 채취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질이 좋은 것을 위주로 취한다는 말로, 자신의 용렬한 재주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주-D107] 종남산(終南山)이 벼슬길의 첩경 : 종남산은 당(唐)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의 앞산이다. 당(唐)나라 노장용(盧藏用)이 벼슬할 마음을 품고는 짐짓 종남산에 숨어 살다가 마침내 부름을 받고 고관이 되자, 도사(道士)인 사마승정(司馬承禎)이 “종남산이야말로 벼슬길에 오르는 첩경이 된다.”라고 풍자한 ‘종남첩경(終南捷徑)’의 고사가 전한다. 《大唐新語 卷10》
[주-D108] 위수(渭水)에서 …… 것 :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서기 전에 점을 쳤더니 “잡을 것은 범도 아니고 곰도 아니고〔匪熊〕 왕패(王霸)를 보좌할 인물이다.”라는 점괘가 나왔는데, 사냥을 나갔다가 마침내 위수에서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을 만나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왔다는 고사를 시화(詩化)한 것이다. 《史記 卷32 齊太公世家》
[주-D109] 용천검(龍泉劍)이 …… 할까 : 원문의 용검(龍劍)은 고대의 명검인 용천검이다. 오(吳)나라 때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늘 보랏빛 기운이 감돌기에 장화(張華)가 예장(豫章)의 점성가(占星家) 뇌환(雷煥)에게 물었더니 보검의 빛이라 하였다. 이에 풍성(豐城)의 감옥 터 땅속에서 춘추 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적인 보검인 용천검과 태아검(太阿劍) 두 보검을 발굴했다 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주-D110] 불에 …… 만날 : 원문의 ‘표동(燢桐)’은 ‘표동(爂桐)’ 혹은 ‘찬동(爨桐)’의 잘못이다. 후한(後漢) 때에 오(吳) 땅의 어떤 사람이 오동나무를 땔감으로 하여 밥을 짓고 있었는데, 마침 채옹(蔡邕)이 지나다가 그것이 불타는 소리를 듣고는 좋은 목재(木材)임을 알아 그 오동나무를 구하여 거문고를 만들었더니 과연 좋은 소리가 났다고 한다. 거문고의 끝부분이 불에 탔다 하여 거문고 이름을 ‘초미금(焦尾琴)’이라 하였다. 《後漢書 卷60下 蔡邕列傳》
[주-D111] 태항산(太行山) :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산으로 험준하기로 이름이 높다.
[주-D112] 염예퇴(灩澦堆) :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서남쪽으로 양자강(揚子江) 구당협(瞿塘峽) 어귀에 큰 암석이 우뚝 서 있는 곳을 이르는데, 이 부근은 격류가 극심하여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주-D113] 멸족당한 …… 한탄했나 :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출신으로 진(秦)나라 승상(承相)을 지내면서 부귀를 누리다가 뒤에 조고(趙高)에 의해 아들과 함께 함양(咸陽) 저자에서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아들을 돌아보며 통곡하기를 “너와 내가 고향인 상채(上蔡)에서 누런 개를 이끌고 사냥하던 것을 언제나 다시 하리.”라고 하였다 한다. 이 구절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엮은 것이다
.[주-D114] 풍당(馮唐) : 고제(高帝) 때에 낭관(郎官)이 되었는데, 혜제(惠帝)를 지나 문제(文帝) 때에 가서야 이미 늙은 나이로 낭중서장(郞中署長)을 거쳐 겨우 거기도위(車騎都尉)에 이르렀다고 한다. 무제(武帝) 때에 이르러 그가 다시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었으나 이때는 그의 나이가 이미 90여 세나 되어 더 이상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주-D115] 산 : 원문의 나계(螺髻)는 소라고둥 모양의 상투이지만 보통 산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당(唐)나라 피일휴(皮日休)의 〈태호사표묘봉(太湖寺縹緲峯)〉에서 “흡사 푸른 소라고둥 같은 것을 밝은 달빛 아래 흩뿌려놓았네.〔似將靑螺髻, 撒在明月中.〕”라고 하였다.
[주-D116] 육우(陸羽) : 당(唐)의 은사(隱士)로 차를 좋아하여 세 편의 다경(茶經)을 저술했는데 차의 기원, 달이는 법, 맛, 그릇 등에 관하여 자세히 서술하여 천하에 다풍(茶風)을 일으켰다. 후인들은 그를 높여 다신(茶神), 다성(茶聖), 다선(茶仙) 등으로 불렀다
.[주-D117] 연(蓮)잎에 …… 기울이리 : 벽통배(碧筩杯)는 여름에 연잎으로 만든 술그릇이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정각(鄭慤)이 한여름에 역성(歷城) 북쪽의 사군림(使君林)에서 손님들과 어울려 피서하면서 줄기가 달린 커다란 연잎에 술 두 되를 담고 잎과 줄기가 서로 통하게 비녀로 구멍을 뚫은 다음, 그 줄기를 코끼리의 코처럼 잡아 올려 여러 사람이 서로 돌려가며 마셨다고 한다. 《酉陽雜俎 卷7 酒食》
[주-D118] 원량(元亮)처럼 …… 타고 : 원량은 동진(東晉) 때의 시인인 도잠(陶潛)의 자이다. 그는 흥이 나면 오동나무로 만든 줄 없는 작은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연주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도잠처럼 은거하여 거문고를 타고 지내겠다는 말이다
.[주-D119] 낙천(樂天)처럼 …… 전하리라 : 낙천은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자이다. 그와 원진(元稹)은 항상 시를 지으면 대나무로 만든 시통(詩筒)에 담아서 주고받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백거이처럼 시를 지으면서 자락(自樂)하겠다는 말이다.
[주-D120] 초(楚)나라 사람의 활 : 초나라의 공왕(共王)이 나가 놀다가 활을 잃어버렸다. 좌우의 신하들이 찾아보기를 청하자, 왕이 말하기를 “그만두어라. 초나라 사람이 잃은 활을 초나라 사람이 얻었을 것이니 또 찾아 무엇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주-D121] 여뀌 먹는 벌레 : 한(漢)나라 동방삭(東方朔)의 〈칠간원세(七諫怨世)〉에 “여뀌 벌레는 아욱으로 옮겨갈 줄 모르네.〔蓼蟲不知徙乎葵菜〕”라는 말이 있다. 여뀌 벌레가 아욱처럼 달고 맛있는 풀을 먹지 않고 쓰고 맛없는 여뀌만 갉아먹다가 끝내 고달프게 살면서 수척해짐을 말한 것이다. 이 구는 여뀌 벌레처럼 융통성이 없이 고집을 부리다가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 곤궁하게 사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주-D122] 미끼 …… 가물치 : 낚시꾼의 미끼를 탐하다가 낚시에 걸려 목숨을 잃는 가물치를 통하여 벼슬을 탐하다가 패가망신함을 비유한 것이다.
[주-D123] 금마문(金馬門) : 한(漢)나라 때 학사들을 초대하던 곳이었는데, 후에는 한림원(翰林院)이나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주-D124] 교송(喬松) : 옛날의 두 선인(仙人)인 왕자교(王子喬)와 적송자(赤松子)의 합칭(合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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