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욱금 길을 가다가 회암의 시에 차운하다〔小白山郁錦路中次晦菴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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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5회 작성일 21-07-27 05:25본문
소백산 욱금 길을 가다가 회암의 시에 차운하다〔小白山郁錦路中次晦菴韻〕
불이 난 비탈 밭은 돌밭이나 다름없고 / 阪田經火偏和石
바위 옆의 초가엔 구름 반쯤 덮였네 / 茅店依巖半帶雲
황량한 작은 동네 살아갈 길 막막하니 / 小洞荒涼生事窄
백성들이 어찌 즐겨 경작할 수 있으랴 / 居民何得樂耕耘
옅고 연한 녹음은 비단처럼 고우며 / 輕陰軟綠細如紗
이슬 젖은 꽃향기는 노을에 어울리네 / 裛露花香襯紫霞
납극과 봄 적삼으로 마음대로 가노라니 / 蠟屐春衫隨意去
나도 몰래 하가타암으로 발길 들어섰네 / 不知行入下伽陀
하가타암(下伽陀庵)으로 가는 도중에
연하에 이끌려서 지팡이를 짚고 가니 / 觸撥煙霞倚短筇
비온 뒤 푸른 기운 앞산에 떨어지네 / 雨餘寒翠落前峯
석 잔 술에 취하여 호기가 생겨나니 / 三杯醉後生豪氣
남악에서 풍류 즐기던 회옹을 이어볼까 / 南岳風流續晦翁
온 숲엔 붉고 푸른 꽃과 잎이 즐비하여 / 千林紅綠影離離
지팡이 짚고 앞길을 더디게 오르려네 / 倚杖前頭欲上遲
높은 바위에서 휘파람 부니 호기가 생겨나고 / 吐嘯危巖生浩氣
맑은 시내에서 갓끈 씻으니 세속 생각 사라지네 / 濯纓淸澗洗塵思
날리는 구름은 모습이 다양하고 / 悠揚雲葉飛多態
우뚝한 산들은 꼼짝도 하지 않네 / 偃蹇山容立不移
만물 이치 살펴보니 모두가 자득하여 / 物理觀來皆自得
동지들과 어울려 먼 곳까지 따라가네 / 更携同志遠相隨
퇴계의 시에 차운하다.
부슬부슬 안개가 수풀에 가득하여 / 霏微煙靄滿林端
벼랑과 숲속을 어지럽게 밟았네 / 亂踏懸崖紫翠間
원숭이를 따라가니 중의 다리 튼튼하고 / 步趁飛猿僧脚健
대지팡이 짚고 가니 길손 마음 고달프네 / 力扶枯竹客心酸
환해라는 봉우리엔 신선이 이르고 / 峯名懽海仙蹤至
구주라는 산새는 세속 수레 돌아가라 하네 / 鳥號鉤輈俗駕還
조물주의 큰 솜씨에 무척 감사하나니 / 多謝化翁施鉅手
규각처럼 깎아내어 장관을 만들었네 / 鐫鑱圭角作奇觀
환해봉(懽海峯)으로 가는 길에 무릉(武陵)의 시에 차운하다.
석 잔 술을 마시자 흥이 일어 / 擬趁三杯興
만리의 바람을 타보려 하네 / 將乘萬里風
먹구름은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 頑陰天作祟
짙은 안개 대낮에도 허공에 끼었네 / 昏霧晝漫空
구름이 형산처럼 어둑하다면 / 雲與衡山暗
그 누가 이부와 함께 하랴 / 人誰吏部同
내일 아침 정상에 올라서 / 明朝登最上
붉은 해가 동에서 뜨는 것 보리라 / 紅日望昇東
위의 시는 무릉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항아리엔 곡식 없고 빈 바랑만 걸렸는데 / 甁無粟粒挂空囊
가사와 염주만이 불상을 마주했네 / 荷裓懸珠對佛牀
메마른 나무는 쓸모가 없지만 / 槁木縱然無實用
은거함이 속세에서 얽매임보다 낫네 / 巢雲還勝絆塵韁
온 산에 비 내리자 먼 곳까지 깨끗하여 / 雨送千峯洗遠天
하늘 밖에서 가슴 펴고 속세 인연 씻었네 / 開襟空外盪塵緣
이제부터 거처가 기질 바꾼다는 말 믿겠거니 / 從今尤信居移氣
노나라의 산천이 눈앞에 아득하네 / 東魯山川渺眼前
청도의 호표가 지키는 관문에서 꿈이 깨어 / 夢斷淸都虎豹關
천성대로 구름 낀 산에서 늙어가려네 / 野情眞欲老雲山
백사에 동참함은 내 일이 아니지만 / 同參白社非吾事
뜻 있으면 금수의 물가로 찾아오라 / 有意來尋錦水干
위의 절구 3수는 퇴계의 시에 차운하여 섬 상인(暹上人)에게 준 것이다.
한줄기 찬 샘물이 구름 씻어내는데 / 涵氷泉脈漱雲根
가사 입은 여윈 중은 원숭이와 비슷 / 荷衲臞僧貌似猿
숲속에는 은자 없다 웃으며 말하지만 / 笑說林間無隱逸
소산의 계수나무 벌써 새싹 돋았네 / 小山叢桂已生孫
바위틈에 솟는 샘물 술동이에 가득하고 / 泉生巖竇滿汙樽
무성한 넝쿨풀은 석문을 가렸네 / 得意藤蘿掩石門
결하하러 고승이 석장 날려 떠나서 / 結夏高僧飛錫去
부질없이 탑 그림자 소나무 밑에 드리웠네 / 空留㙮影臥松根
위의 절구 2수는 명경사(明鏡寺)에서 근 상인에게 준 것이다.
며칠 동안 세상에서 담소하며 놀았는데 / 笑口人間幾日開
벼슬살이 얽매여 억지로 돌아감이 부끄럽네 / 郤慙羈宦强遲徊
그 누가 가을에 조롱 속의 학을 풀어 주랴 / 誰敎籠鶴乘秋放
고맙게도 원숭이들이 나의 회로 배웅하네 / 聊謝林猿待我回
바람이 동천에 불어 티끌 쓸어가기에 / 風灑洞天塵拂去
지팡이로 혜초 길을 찾자 달이 마중 나왔네 / 筇尋蕙路月迎來
병든 이 몸이 운천의 주인 되었으니 / 病夫已作雲泉主
맨발로 이끼 밟는 것도 꺼리지 않네 / 白足休嫌惹屐苔
석륜사(石崙寺)로 가는 길에 무릉(武陵)의 시에 차운하다.
그 누가 단혈산의 봉황을 / 誰將丹穴鳥
자하대 꼭대기에 가뒀는가 / 牢鎖紫霞顚
천 길 봉이 하늘을 찔러서 / 千仞凌霄志
긴 세월에 굳센 돌로 변했네 / 多年化石堅
느릅나무 오가는 메추라기에게 배척받고 / 搶楡飛斥鷃
가시나무에 깃들어 무성한 안개 속에 늙어가네 / 棲棘老荒煙
언제쯤 바람타고 날아올라 / 何日生風翮
선명한 오색 털로 춤을 출까 / 來儀五彩鮮
위는 봉두암(鳳頭巖)에서 무릉의 시를 차운한 것이다.
푸른 이내와 아지랑이 길손 옷을 물들이고 / 翠靄靑嵐染客裾
빠른 여울과 험한 산이 승방을 지키네 / 奔湍危峭護僧居
처마 사이 옛 글씨는 날 아는가 모르는가 / 楣間古墨知余否
손꼽으니 노닌 지 이십여 년 지났네 / 屈指曾遊廿載餘
석륜사(石崙寺) 시에 차운하다.
[주-D001] 욱금(郁錦) : 황준량이 살았던, 경북 영주시 풍기읍 욱금리를 말한다. 지금도 그가 머물던 욱양정사(郁陽精舍)가 남아 있다.
[주-D002] 납극(蠟屐) : 밀랍을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한 나막신. 동진(東晉) 때 조약(祖約)은 재물을 좋아하고, 완부(阮孚)는 신〔屐〕을 좋아하여 둘 다 누(累)가 되는 일이긴 하나 누가 좋고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가 조약의 집에 가 보니 조약은 마침 돈을 세고 있다가 손님이 이르자 세던 돈을 농 뒤로 치우고 몸을 기울여 가리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고, 완부의 집에 가 보니 그는 마침 나막신에 밀랍을 칠하다가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일생에 이 신을 얼마나 더 신을는지 모르겠다.” 하며 기색이 자약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비로소 승부가 판가름이 났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孚列傳》
[주-D003] 하가타암(下伽陀庵) : 소백산에 있던 암자이다. 소백산에는 상가타암(上伽陀庵), 중가타암(中伽陀庵)도 있었다.
[주-D004] 남악(南岳)에서 …… 이어볼까 : 남악은 형산(衡山)을 가리킨다. 일찍이 주희(朱熹)가 친구인 남헌(南軒) 장식(張栻)과 함께 이 산을 유람하였다. 이때 지은 시가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에 실려 있다.
[주-D005] 구주(鉤輈) : 자고새의 울음소리로, 중국 남방 방언의 의성어이다.
[주-D006] 규각(圭角) : 규는 옛날 벼슬아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신표인데 규각은 네모진 아랫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7] 무릉(武陵) : 주세붕(周世鵬)의 호이다.
[주-D008] 이부(吏部) : 이부는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한유가 형악(衡嶽)에 올랐으나 구름이 짙게 끼고 비가 내려 유람을 할 수 없었는데, 정성껏 기도하자 날이 개었다고 한다. 이때 지은 시가 〈알형악묘수숙악사제문루(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이다. 2구는 한유가 처음 형악에 올랐을 때처럼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면 그와 함께 유람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주-D009] 거처가 기질 바꾼다 : 맹자가 제(齊)나라 왕자의 의젓한 풍채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거하는 곳〔지위〕이 기상을 바꾸고 생활이 체질을 바꾼다.〔居移氣, 養移體.〕”라고 한 말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
[주-D010] 노나라 : 원문의 동로(東魯)는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를 가리킨다. 공자는 노나라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긴 적이 있었다. 여기서는 공자가 주공(周公)의 봉토인 노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있었음을 말한 것으로 공자와 노나라에 대한 동경을 담은 표현이다.
[주-D011] 청도(淸都)의 …… 관문 : 청도는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의 궁전이다. 호표관(虎豹關)은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호랑이와 표범이 아홉 겹의 하늘 관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아래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자들을 잡아 죽인다.〔虎豹九關, 啄害下人些.〕”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는 선계(仙界)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 속에 은거하여 여생을 마치고자함을 표현한 것이다.
[주-D012] 백사(白社) : 백련사(白蓮社)의 약칭으로,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당시의 명사였던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을 할 목적으로 백련사를 결성하고 서로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냈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섬 상인(暹上人)이 황준량에게 백사와 유사한 모임에 동참하기를 요청하고, 황준량이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D013] 금수(錦水) : 여기서는 황준량의 고향인 영주시 풍기읍 욱금(郁錦)을 가리킨다.
[주-D014] 섬 상인(暹上人) : 법명에 섬(暹) 자가 들어가는 스님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주-D015] 소산의 계수나무 : 한(漢)나라 회남소산(淮南小山), 곧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초은사(招隱士)〉에 “계수나무는 그윽한 산속에 총생하네.〔桂樹叢生兮山之幽〕”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16] 결하(結夏) : 하안거(夏安居)라고도 한다. 음력 4월 보름 다음 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좌선과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이른다.
[주-D017] 명경사(明鏡寺) : 소백산 철암(哲庵) 위 석륜암(石崙庵) 아래에 있던 암자로,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梓鄕誌》
[주-D018] 단혈산(丹穴山)의 봉황 : 원문의 단혈조(丹穴鳥)는 봉황을 가리킨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단혈산에는 모양이 마치 닭과 같고 오채(五采)의 무늬가 선명한 새가 있어 봉황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주-D019] 자하대(紫霞臺) : 환희봉(懽喜峯) 서쪽에 있다. 돌로 된 봉우리가 우뚝하게 솟아 있는데, 위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으며, 산 경치를 이곳에서 다 바라볼 수 있다. 옛날 이름은 산대암(山臺菴)이었으나 퇴계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梓鄕誌》
[주-D020] 느릅나무 …… 배척받고 : 대붕이 하늘 높이 떠올라 남명(南溟)을 향해 날아갈 적에, 매미와 쓰르라미가 이를 비웃으며, “우리는 기껏 날아 봤자 느릅나무와 방나무까지가 고작인데, 저 새가 어찌하여 구만 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我決起而飛, 搶楡枋, 奚以之九萬里而南爲.〕”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莊子 逍遙遊》
불이 난 비탈 밭은 돌밭이나 다름없고 / 阪田經火偏和石
바위 옆의 초가엔 구름 반쯤 덮였네 / 茅店依巖半帶雲
황량한 작은 동네 살아갈 길 막막하니 / 小洞荒涼生事窄
백성들이 어찌 즐겨 경작할 수 있으랴 / 居民何得樂耕耘
옅고 연한 녹음은 비단처럼 고우며 / 輕陰軟綠細如紗
이슬 젖은 꽃향기는 노을에 어울리네 / 裛露花香襯紫霞
납극과 봄 적삼으로 마음대로 가노라니 / 蠟屐春衫隨意去
나도 몰래 하가타암으로 발길 들어섰네 / 不知行入下伽陀
하가타암(下伽陀庵)으로 가는 도중에
연하에 이끌려서 지팡이를 짚고 가니 / 觸撥煙霞倚短筇
비온 뒤 푸른 기운 앞산에 떨어지네 / 雨餘寒翠落前峯
석 잔 술에 취하여 호기가 생겨나니 / 三杯醉後生豪氣
남악에서 풍류 즐기던 회옹을 이어볼까 / 南岳風流續晦翁
온 숲엔 붉고 푸른 꽃과 잎이 즐비하여 / 千林紅綠影離離
지팡이 짚고 앞길을 더디게 오르려네 / 倚杖前頭欲上遲
높은 바위에서 휘파람 부니 호기가 생겨나고 / 吐嘯危巖生浩氣
맑은 시내에서 갓끈 씻으니 세속 생각 사라지네 / 濯纓淸澗洗塵思
날리는 구름은 모습이 다양하고 / 悠揚雲葉飛多態
우뚝한 산들은 꼼짝도 하지 않네 / 偃蹇山容立不移
만물 이치 살펴보니 모두가 자득하여 / 物理觀來皆自得
동지들과 어울려 먼 곳까지 따라가네 / 更携同志遠相隨
퇴계의 시에 차운하다.
부슬부슬 안개가 수풀에 가득하여 / 霏微煙靄滿林端
벼랑과 숲속을 어지럽게 밟았네 / 亂踏懸崖紫翠間
원숭이를 따라가니 중의 다리 튼튼하고 / 步趁飛猿僧脚健
대지팡이 짚고 가니 길손 마음 고달프네 / 力扶枯竹客心酸
환해라는 봉우리엔 신선이 이르고 / 峯名懽海仙蹤至
구주라는 산새는 세속 수레 돌아가라 하네 / 鳥號鉤輈俗駕還
조물주의 큰 솜씨에 무척 감사하나니 / 多謝化翁施鉅手
규각처럼 깎아내어 장관을 만들었네 / 鐫鑱圭角作奇觀
환해봉(懽海峯)으로 가는 길에 무릉(武陵)의 시에 차운하다.
석 잔 술을 마시자 흥이 일어 / 擬趁三杯興
만리의 바람을 타보려 하네 / 將乘萬里風
먹구름은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 頑陰天作祟
짙은 안개 대낮에도 허공에 끼었네 / 昏霧晝漫空
구름이 형산처럼 어둑하다면 / 雲與衡山暗
그 누가 이부와 함께 하랴 / 人誰吏部同
내일 아침 정상에 올라서 / 明朝登最上
붉은 해가 동에서 뜨는 것 보리라 / 紅日望昇東
위의 시는 무릉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항아리엔 곡식 없고 빈 바랑만 걸렸는데 / 甁無粟粒挂空囊
가사와 염주만이 불상을 마주했네 / 荷裓懸珠對佛牀
메마른 나무는 쓸모가 없지만 / 槁木縱然無實用
은거함이 속세에서 얽매임보다 낫네 / 巢雲還勝絆塵韁
온 산에 비 내리자 먼 곳까지 깨끗하여 / 雨送千峯洗遠天
하늘 밖에서 가슴 펴고 속세 인연 씻었네 / 開襟空外盪塵緣
이제부터 거처가 기질 바꾼다는 말 믿겠거니 / 從今尤信居移氣
노나라의 산천이 눈앞에 아득하네 / 東魯山川渺眼前
청도의 호표가 지키는 관문에서 꿈이 깨어 / 夢斷淸都虎豹關
천성대로 구름 낀 산에서 늙어가려네 / 野情眞欲老雲山
백사에 동참함은 내 일이 아니지만 / 同參白社非吾事
뜻 있으면 금수의 물가로 찾아오라 / 有意來尋錦水干
위의 절구 3수는 퇴계의 시에 차운하여 섬 상인(暹上人)에게 준 것이다.
한줄기 찬 샘물이 구름 씻어내는데 / 涵氷泉脈漱雲根
가사 입은 여윈 중은 원숭이와 비슷 / 荷衲臞僧貌似猿
숲속에는 은자 없다 웃으며 말하지만 / 笑說林間無隱逸
소산의 계수나무 벌써 새싹 돋았네 / 小山叢桂已生孫
바위틈에 솟는 샘물 술동이에 가득하고 / 泉生巖竇滿汙樽
무성한 넝쿨풀은 석문을 가렸네 / 得意藤蘿掩石門
결하하러 고승이 석장 날려 떠나서 / 結夏高僧飛錫去
부질없이 탑 그림자 소나무 밑에 드리웠네 / 空留㙮影臥松根
위의 절구 2수는 명경사(明鏡寺)에서 근 상인에게 준 것이다.
며칠 동안 세상에서 담소하며 놀았는데 / 笑口人間幾日開
벼슬살이 얽매여 억지로 돌아감이 부끄럽네 / 郤慙羈宦强遲徊
그 누가 가을에 조롱 속의 학을 풀어 주랴 / 誰敎籠鶴乘秋放
고맙게도 원숭이들이 나의 회로 배웅하네 / 聊謝林猿待我回
바람이 동천에 불어 티끌 쓸어가기에 / 風灑洞天塵拂去
지팡이로 혜초 길을 찾자 달이 마중 나왔네 / 筇尋蕙路月迎來
병든 이 몸이 운천의 주인 되었으니 / 病夫已作雲泉主
맨발로 이끼 밟는 것도 꺼리지 않네 / 白足休嫌惹屐苔
석륜사(石崙寺)로 가는 길에 무릉(武陵)의 시에 차운하다.
그 누가 단혈산의 봉황을 / 誰將丹穴鳥
자하대 꼭대기에 가뒀는가 / 牢鎖紫霞顚
천 길 봉이 하늘을 찔러서 / 千仞凌霄志
긴 세월에 굳센 돌로 변했네 / 多年化石堅
느릅나무 오가는 메추라기에게 배척받고 / 搶楡飛斥鷃
가시나무에 깃들어 무성한 안개 속에 늙어가네 / 棲棘老荒煙
언제쯤 바람타고 날아올라 / 何日生風翮
선명한 오색 털로 춤을 출까 / 來儀五彩鮮
위는 봉두암(鳳頭巖)에서 무릉의 시를 차운한 것이다.
푸른 이내와 아지랑이 길손 옷을 물들이고 / 翠靄靑嵐染客裾
빠른 여울과 험한 산이 승방을 지키네 / 奔湍危峭護僧居
처마 사이 옛 글씨는 날 아는가 모르는가 / 楣間古墨知余否
손꼽으니 노닌 지 이십여 년 지났네 / 屈指曾遊廿載餘
석륜사(石崙寺) 시에 차운하다.
[주-D001] 욱금(郁錦) : 황준량이 살았던, 경북 영주시 풍기읍 욱금리를 말한다. 지금도 그가 머물던 욱양정사(郁陽精舍)가 남아 있다.
[주-D002] 납극(蠟屐) : 밀랍을 칠하여 광택이 나게 한 나막신. 동진(東晉) 때 조약(祖約)은 재물을 좋아하고, 완부(阮孚)는 신〔屐〕을 좋아하여 둘 다 누(累)가 되는 일이긴 하나 누가 좋고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가 조약의 집에 가 보니 조약은 마침 돈을 세고 있다가 손님이 이르자 세던 돈을 농 뒤로 치우고 몸을 기울여 가리면서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정이었고, 완부의 집에 가 보니 그는 마침 나막신에 밀랍을 칠하다가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일생에 이 신을 얼마나 더 신을는지 모르겠다.” 하며 기색이 자약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비로소 승부가 판가름이 났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晉書 卷49 阮孚列傳》
[주-D003] 하가타암(下伽陀庵) : 소백산에 있던 암자이다. 소백산에는 상가타암(上伽陀庵), 중가타암(中伽陀庵)도 있었다.
[주-D004] 남악(南岳)에서 …… 이어볼까 : 남악은 형산(衡山)을 가리킨다. 일찍이 주희(朱熹)가 친구인 남헌(南軒) 장식(張栻)과 함께 이 산을 유람하였다. 이때 지은 시가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에 실려 있다.
[주-D005] 구주(鉤輈) : 자고새의 울음소리로, 중국 남방 방언의 의성어이다.
[주-D006] 규각(圭角) : 규는 옛날 벼슬아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신표인데 규각은 네모진 아랫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7] 무릉(武陵) : 주세붕(周世鵬)의 호이다.
[주-D008] 이부(吏部) : 이부는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한유가 형악(衡嶽)에 올랐으나 구름이 짙게 끼고 비가 내려 유람을 할 수 없었는데, 정성껏 기도하자 날이 개었다고 한다. 이때 지은 시가 〈알형악묘수숙악사제문루(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이다. 2구는 한유가 처음 형악에 올랐을 때처럼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다면 그와 함께 유람하지 않을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주-D009] 거처가 기질 바꾼다 : 맹자가 제(齊)나라 왕자의 의젓한 풍채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거하는 곳〔지위〕이 기상을 바꾸고 생활이 체질을 바꾼다.〔居移氣, 養移體.〕”라고 한 말이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
[주-D010] 노나라 : 원문의 동로(東魯)는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를 가리킨다. 공자는 노나라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긴 적이 있었다. 여기서는 공자가 주공(周公)의 봉토인 노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인이 될 수 있었음을 말한 것으로 공자와 노나라에 대한 동경을 담은 표현이다.
[주-D011] 청도(淸都)의 …… 관문 : 청도는 옥황상제가 산다는 천상의 궁전이다. 호표관(虎豹關)은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호랑이와 표범이 아홉 겹의 하늘 관문을 지키고 있으면서, 아래에서 올라오려고 하는 자들을 잡아 죽인다.〔虎豹九關, 啄害下人些.〕”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는 선계(仙界)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 속에 은거하여 여생을 마치고자함을 표현한 것이다.
[주-D012] 백사(白社) : 백련사(白蓮社)의 약칭으로, 동진(東晉)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고승(高僧) 혜원법사(慧遠法師)가 당시의 명사였던 도잠(陶潛), 육수정(陸修靜) 등을 초청하여 승속(僧俗)이 함께 염불 수행을 할 목적으로 백련사를 결성하고 서로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냈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섬 상인(暹上人)이 황준량에게 백사와 유사한 모임에 동참하기를 요청하고, 황준량이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D013] 금수(錦水) : 여기서는 황준량의 고향인 영주시 풍기읍 욱금(郁錦)을 가리킨다.
[주-D014] 섬 상인(暹上人) : 법명에 섬(暹) 자가 들어가는 스님이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주-D015] 소산의 계수나무 : 한(漢)나라 회남소산(淮南小山), 곧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초은사(招隱士)〉에 “계수나무는 그윽한 산속에 총생하네.〔桂樹叢生兮山之幽〕”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D016] 결하(結夏) : 하안거(夏安居)라고도 한다. 음력 4월 보름 다음 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좌선과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이른다.
[주-D017] 명경사(明鏡寺) : 소백산 철암(哲庵) 위 석륜암(石崙庵) 아래에 있던 암자로,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梓鄕誌》
[주-D018] 단혈산(丹穴山)의 봉황 : 원문의 단혈조(丹穴鳥)는 봉황을 가리킨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단혈산에는 모양이 마치 닭과 같고 오채(五采)의 무늬가 선명한 새가 있어 봉황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주-D019] 자하대(紫霞臺) : 환희봉(懽喜峯) 서쪽에 있다. 돌로 된 봉우리가 우뚝하게 솟아 있는데, 위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으며, 산 경치를 이곳에서 다 바라볼 수 있다. 옛날 이름은 산대암(山臺菴)이었으나 퇴계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梓鄕誌》
[주-D020] 느릅나무 …… 배척받고 : 대붕이 하늘 높이 떠올라 남명(南溟)을 향해 날아갈 적에, 매미와 쓰르라미가 이를 비웃으며, “우리는 기껏 날아 봤자 느릅나무와 방나무까지가 고작인데, 저 새가 어찌하여 구만 리를 날아 남쪽으로 간단 말인가?〔我決起而飛, 搶楡枋, 奚以之九萬里而南爲.〕”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莊子 逍遙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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