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과 교종 혁파를 청하는 상소〔請革兩宗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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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10회 작성일 21-07-27 04:45본문
선종과 교종 혁파를 청하는 상소〔請革兩宗疏〕
신이 듣건대 임금의 잘못은 일식 월식과 같아 이전 상태를 회복하면 밝음에 손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식이나 월식처럼 과오가 있고서 바로 고치지 않으면 백성들이 장차 무엇을 우러러보겠습니까? 신 등은 선종과 교종에 관한 일을 피력하고 울부짖으며 주상께서 받아들이시어 과실이 없기를 바라지만 주상께서는 갈수록 더 들으려하시지 않고 거절이 더욱더 심하시면서, 매번 조종을 본받고 군사를 증강하라는 내용으로 하교하셨습니다. 열성조의 일 가운데서 어찌 법도로 삼을 만한 것이 없겠으며, 군사를 증강하는 것도 어찌 올바른 도가 없겠습니까? 어찌하여 꼭 이러한 사례에 기대어 핑계를 대십니까? 대신들은 병을 부지한 채로 시귀(蓍龜)의 방책을 헌상하고 있고, 대간(臺諫)들은 자신의 몸조차 잊은 채 약석(藥石)이 되는 말을 진상하고 있습니다. 또 시종(侍從)들은 마음을 다하여 선도(善道)를 개진하고 선비들은 오래도록 눈 속에 서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백관들에서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근심에 젖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울분을 터뜨리고 탄식하는 가운데 성의(聖意)의 소재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인정을 거스르고 천리(天理)를 배척하면서 온 나라가 그르게 여기는 바를 홀로 옳다 하시고 있으며 기필코 윤리와 정도를 해치는 추악한 종교를 드높인 뒤에라야 마음에 흔쾌하게 여기시니, 전하께서 유독 무슨 마음을 먹고 계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 불자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신하가 임금을 배반하며 인간 도리를 끊고 하늘의 이치를 멸절(滅絶)시키는 가운데 사람에게 복이 미칠 수 없게 먼저 그 몸을 불사르니, 역대의 성패에 관해서는 전례가 밝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문모(文母)의 성스러움과 전하의 명석하심으로서 깊이 존신하고 지극히 숭봉하시어 이런 지경이 이른 것입니까?
경연(經筵)에서 늘 밝게 강의하는 것은 모두 정도를 유지하고 사도를 억제하는 이론입니다. 전하께서도 일찍이 이에 대해 여러 번 올바른 뜻을 표명하시며 반드시 삼가는 태도를 보이셨는데, 결국은 잘못된 길을 밟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십니까? 만약 올바른 도를 믿는 마음이 독실하지 못하고, 올바른 도를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제왕의 강학(講學)에 무슨 귀함이 있겠습니까? 자손에게 좋은 가르침을 남겨 편안하게 도움을 주시고 올바른 도리로 어그러짐이 없게 하시며, 성대하게 40년 승평(昇平)의 치세를 여신 것은 바로 중종(中宗) 대왕의 성덕(聖德)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법도를 취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인데, 하필이면 멀리 열성조들께서 혁파하시지 못한 잘못된 정책에 기탁하여 중종께서 이미 폐지하신 전례(典禮)를 시행하려 하시며, 인륜을 파괴하는 종교를 시행하여 문명의 치세에 오점을 남기려 하시고, 진리를 어지럽히는 책을 또 다시 문명의 시대에 낭송하려 하십니까?
근래에 승려들은 서로 축하하며 선종과 교종은 절대로 혁파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개월 동안 지지부진한 어려움에 처하여 저들의 말처럼 되자 저들은 서로 함께 불경을 공부하고 범패를 낭송하며 더욱더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팔을 불며 망아지를 탄 채 백주에도 몰려다니고 있으니, 이 어찌 된 것이 전하의 금승령(禁僧令)이 도리어 저들의 기를 살려주는 데 알맞은 것이 되고 있단 말입니까? 천민으로서 노역을 싫어하는 무리나 사대부 자손으로서 무식한 자들이 다투어 영예롭게 여기고 부러워하고, 점차 그 흐름을 따라 마침내 안락만 추구하고 고된 일은 회피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어른이나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유행을 따라 숲으로 숨어들고 산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물고기처럼 모였다가 새처럼 흩어지는 무리들을 붙잡아 올 방법이 없어서 전하의 나라는 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뒷날 비록 서제(噬臍)의 후회를 한다 해도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겉으로 그 이름을 빌려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으니, 이것은 섶나무를 짊어지고 불을 끄는 격이고, 제방을 무너뜨리고서 강물을 막고자 하는 격입니다. 신 등은 그러한 이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일이 만약 전하의 마음에서 나왔다면 행여나 자전(慈殿)에게 잘못을 돌리지 마십시오. 자전의 잘못된 행동은 바로 전하의 잘못입니다. 만약 자전의 마음에서 나왔다면 청컨대 전하께서는 은미하게 간언을 드려 잘못을 고치도록 하십시오. 자전께서 잘못된 행동에 빠져드는 것도 전하의 책임입니다. 무지한 백성들도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령스러워 속일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일편단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훈구대신과 깊은 생각과 원대한 사고를 갖고 있는 조정의 벼슬아치들을 어찌 거짓말로 속여 넘길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한 푼의 이익이라도 있고 정도를 방해하는 폐해가 없다면 장차 어명을 순순히 따르며 찬성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누가 감히 성지(聖旨)를 어기며 귀에 거슬리는 말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신하된 자는 충성을 다하여 나라만 위할 뿐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바른 말 듣기를 싫어하여 불경하다고 책망하는 것은 간언하는 입을 막고 유유낙락(唯唯諾諾)의 길로 가도록 권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심은 다르면서도 면전에서 속이는 일로 진실한 행동이 아니므로 국가의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맹자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선도(善道)를 개진하여 임금의 사악한 마음을 막는 것을 공경이라 하고, 우리 임금은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을 적(賊)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아첨을 하며 임금의 뜻에 순종하여 임금을 불의에 빠뜨리는 자를 공경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唐)나라 태종은 자신을 수(隋)나라 양제(煬帝)에 비견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사람에게 상을 주었고 우리 성종(成宗)께서는 자신을 걸주(桀紂)에 비견했다는 사람을 가상히 여겨 칭찬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양(梁) 나라 무제(武帝)와 같은 길을 가려 하시면서도 앞의 간언들을 과격한 폐습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간언을 기쁘게 듣는 유풍에 부끄러운 행동이 될 듯합니다. 그 실질이 있는데도 명분을 회피하려 하시고, 잘못된 일을 하고도 그 흔적을 가리려 하시고서야 이것이 어찌 성상께서 마음을 열고 진실을 보려 하시는 아름다운 뜻이겠습니까?
아아! 한(漢) 나라 명제(明帝)는 유학을 존중하고 노인을 받드는 아름다운 일을 하였지만 꿈에 금인(金人)을 만난 허물을 가릴 수는 없고, 당(唐)나라 헌종(憲宗)은 회서(淮西)의 난을 평정하고 종사를 다시 세운 공이 있지만, 부처의 뼈를 맞아온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역사책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공론도 추상과 같습니다.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 즉위하여 처음 교화를 베푸시는 때에 대소 신민들은 눈을 씻고 우러러보며 오래도록 천명이 이어지기를 하늘에 기원할 뿐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정업원(淨業院)을 만들라 하시고, 또 선종과 교종을 세우라고 하시니, 정령(政令)을 운위하는 사이에 불교를 높이 받드는 일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유학자는 숨을 죽이고 승려 무리는 소매를 떨치며 활보하고 있으니 올바른 도의 흥쇠가 판가름이 났고 국가의 안위도 결판이 났습니다. 전하께서 6, 7년 동안 근심하며 부지런히 힘쓰신 공을 그 선정과 함께 차마 폐기하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습니까? 또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국사에 기록되고 후세에 전해져서 후세 사람들이 지금 사람을 비웃는 것이 마치 지금 사람이 옛날을 비웃는 것과 같이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신 등은 모두 간언을 드릴 책임이 없는데도 누차 성총(聖聰)을 모독하였으니 직위를 벗어난 죄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설(邪說)이 정도를 해치는데 대하여는 누구나 공격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충정과 울분이 북받쳐 내외를 분간하지 못하고 통곡으로 눈물이 흘러내려 차마 좌시할 수 없습니다. 감히 도끼로 주살되는 죄를 무릅쓰고서라도 하늘의 밝은 태양이 다시 회복되기를 빕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자께서 살펴주시옵소서.
[주-D001] 시귀(蓍龜)의 방책 : 시귀(蓍龜)는 옛날에 점을 칠 때 쓰는 시초(蓍草)와 거북. 따라서 시귀의 방책은 준수하고 따를 만한 신묘한 대책을 가리킨다.
[주-D002] 눈 …… 있습니다 : 중국 북송(北宋) 때 유작(游酢)ㆍ양시(楊時)가 정이(程頤)를 처음 찾아갔을 때 정이가 눈을 감고 명상(瞑想)에 잠겨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밖에 서서 날이 저물도록 기다렸는데, 정이가 물러가라고 명하였을 때에는 문 밖에 눈이 석 자나 쌓였다. 윗사람을 모시는 지극한 정성을 비유한다.
[주-D003] 문모(文母) :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로서 황모(皇母)와 같다. 여기서는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를 가리킨다.
[주-D004] 서제(噬臍)의 후회 : 서제(噬齊)라고도 쓴다. 자신의 배꼽을 물어뜯는다는 의미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사향노루가 사람에게 잡혀 죽게 될 때 제 배꼽의 향내 때문이라고 배꼽을 물어뜯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주-D005] 자전(慈殿) :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주-D006] 유유낙락(唯唯諾諾) :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임금의 말에 예예하며 순종만 하는 행위.
[주-D007] 선도(善道)를 …… 한다 :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온다.
[주-D008] 당(唐)나라 …… 주었고 : 당(唐)나라 초기의 현신 위징(魏徵)이 태종을 경계하면서 수(隋)나라 양제(煬帝)처럼 되지 말라고 간언을 올렸다.
[주-D009] 금인(金人) : 한나라 명제가 금 도금을 한 사람〔金人〕의 꿈을 꾸고 부의(傅毅)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서역의 귀신은 그 이름을 부처라 하옵는데, 폐하께옵서 꿈꾸신 것은 아마 이것인가 합니다.”라고 하였다.
[주-D010] 당(唐)나라 …… 평정하고 : 당나라 헌종(憲宗) 때 오원제(吳元濟)가 회서(淮西)에서 난을 일으키자 배도(裴度)를 시켜 평정한 일을 말한다.
[주-D011] 부처의 …… 죄는 : 당(唐)나라 헌종(憲宗)이 불골(佛骨)을 맞아들여 궁중에 안치하자, 한유(韓愈)가 〈불골표(佛骨表)〉를 올려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신이 듣건대 임금의 잘못은 일식 월식과 같아 이전 상태를 회복하면 밝음에 손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식이나 월식처럼 과오가 있고서 바로 고치지 않으면 백성들이 장차 무엇을 우러러보겠습니까? 신 등은 선종과 교종에 관한 일을 피력하고 울부짖으며 주상께서 받아들이시어 과실이 없기를 바라지만 주상께서는 갈수록 더 들으려하시지 않고 거절이 더욱더 심하시면서, 매번 조종을 본받고 군사를 증강하라는 내용으로 하교하셨습니다. 열성조의 일 가운데서 어찌 법도로 삼을 만한 것이 없겠으며, 군사를 증강하는 것도 어찌 올바른 도가 없겠습니까? 어찌하여 꼭 이러한 사례에 기대어 핑계를 대십니까? 대신들은 병을 부지한 채로 시귀(蓍龜)의 방책을 헌상하고 있고, 대간(臺諫)들은 자신의 몸조차 잊은 채 약석(藥石)이 되는 말을 진상하고 있습니다. 또 시종(侍從)들은 마음을 다하여 선도(善道)를 개진하고 선비들은 오래도록 눈 속에 서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백관들에서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근심에 젖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울분을 터뜨리고 탄식하는 가운데 성의(聖意)의 소재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인정을 거스르고 천리(天理)를 배척하면서 온 나라가 그르게 여기는 바를 홀로 옳다 하시고 있으며 기필코 윤리와 정도를 해치는 추악한 종교를 드높인 뒤에라야 마음에 흔쾌하게 여기시니, 전하께서 유독 무슨 마음을 먹고 계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 불자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신하가 임금을 배반하며 인간 도리를 끊고 하늘의 이치를 멸절(滅絶)시키는 가운데 사람에게 복이 미칠 수 없게 먼저 그 몸을 불사르니, 역대의 성패에 관해서는 전례가 밝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일찍이 문모(文母)의 성스러움과 전하의 명석하심으로서 깊이 존신하고 지극히 숭봉하시어 이런 지경이 이른 것입니까?
경연(經筵)에서 늘 밝게 강의하는 것은 모두 정도를 유지하고 사도를 억제하는 이론입니다. 전하께서도 일찍이 이에 대해 여러 번 올바른 뜻을 표명하시며 반드시 삼가는 태도를 보이셨는데, 결국은 잘못된 길을 밟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십니까? 만약 올바른 도를 믿는 마음이 독실하지 못하고, 올바른 도를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제왕의 강학(講學)에 무슨 귀함이 있겠습니까? 자손에게 좋은 가르침을 남겨 편안하게 도움을 주시고 올바른 도리로 어그러짐이 없게 하시며, 성대하게 40년 승평(昇平)의 치세를 여신 것은 바로 중종(中宗) 대왕의 성덕(聖德)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법도를 취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인데, 하필이면 멀리 열성조들께서 혁파하시지 못한 잘못된 정책에 기탁하여 중종께서 이미 폐지하신 전례(典禮)를 시행하려 하시며, 인륜을 파괴하는 종교를 시행하여 문명의 치세에 오점을 남기려 하시고, 진리를 어지럽히는 책을 또 다시 문명의 시대에 낭송하려 하십니까?
근래에 승려들은 서로 축하하며 선종과 교종은 절대로 혁파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개월 동안 지지부진한 어려움에 처하여 저들의 말처럼 되자 저들은 서로 함께 불경을 공부하고 범패를 낭송하며 더욱더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팔을 불며 망아지를 탄 채 백주에도 몰려다니고 있으니, 이 어찌 된 것이 전하의 금승령(禁僧令)이 도리어 저들의 기를 살려주는 데 알맞은 것이 되고 있단 말입니까? 천민으로서 노역을 싫어하는 무리나 사대부 자손으로서 무식한 자들이 다투어 영예롭게 여기고 부러워하고, 점차 그 흐름을 따라 마침내 안락만 추구하고 고된 일은 회피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어른이나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유행을 따라 숲으로 숨어들고 산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물고기처럼 모였다가 새처럼 흩어지는 무리들을 붙잡아 올 방법이 없어서 전하의 나라는 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뒷날 비록 서제(噬臍)의 후회를 한다 해도 미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오히려 겉으로 그 이름을 빌려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으니, 이것은 섶나무를 짊어지고 불을 끄는 격이고, 제방을 무너뜨리고서 강물을 막고자 하는 격입니다. 신 등은 그러한 이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일이 만약 전하의 마음에서 나왔다면 행여나 자전(慈殿)에게 잘못을 돌리지 마십시오. 자전의 잘못된 행동은 바로 전하의 잘못입니다. 만약 자전의 마음에서 나왔다면 청컨대 전하께서는 은미하게 간언을 드려 잘못을 고치도록 하십시오. 자전께서 잘못된 행동에 빠져드는 것도 전하의 책임입니다. 무지한 백성들도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령스러워 속일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일편단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훈구대신과 깊은 생각과 원대한 사고를 갖고 있는 조정의 벼슬아치들을 어찌 거짓말로 속여 넘길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한 푼의 이익이라도 있고 정도를 방해하는 폐해가 없다면 장차 어명을 순순히 따르며 찬성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누가 감히 성지(聖旨)를 어기며 귀에 거슬리는 말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신하된 자는 충성을 다하여 나라만 위할 뿐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바른 말 듣기를 싫어하여 불경하다고 책망하는 것은 간언하는 입을 막고 유유낙락(唯唯諾諾)의 길로 가도록 권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심은 다르면서도 면전에서 속이는 일로 진실한 행동이 아니므로 국가의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맹자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선도(善道)를 개진하여 임금의 사악한 마음을 막는 것을 공경이라 하고, 우리 임금은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을 적(賊)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아첨을 하며 임금의 뜻에 순종하여 임금을 불의에 빠뜨리는 자를 공경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唐)나라 태종은 자신을 수(隋)나라 양제(煬帝)에 비견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사람에게 상을 주었고 우리 성종(成宗)께서는 자신을 걸주(桀紂)에 비견했다는 사람을 가상히 여겨 칭찬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양(梁) 나라 무제(武帝)와 같은 길을 가려 하시면서도 앞의 간언들을 과격한 폐습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니 이는 아마도 간언을 기쁘게 듣는 유풍에 부끄러운 행동이 될 듯합니다. 그 실질이 있는데도 명분을 회피하려 하시고, 잘못된 일을 하고도 그 흔적을 가리려 하시고서야 이것이 어찌 성상께서 마음을 열고 진실을 보려 하시는 아름다운 뜻이겠습니까?
아아! 한(漢) 나라 명제(明帝)는 유학을 존중하고 노인을 받드는 아름다운 일을 하였지만 꿈에 금인(金人)을 만난 허물을 가릴 수는 없고, 당(唐)나라 헌종(憲宗)은 회서(淮西)의 난을 평정하고 종사를 다시 세운 공이 있지만, 부처의 뼈를 맞아온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역사책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공론도 추상과 같습니다. 하물며 지금 전하께서 즉위하여 처음 교화를 베푸시는 때에 대소 신민들은 눈을 씻고 우러러보며 오래도록 천명이 이어지기를 하늘에 기원할 뿐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정업원(淨業院)을 만들라 하시고, 또 선종과 교종을 세우라고 하시니, 정령(政令)을 운위하는 사이에 불교를 높이 받드는 일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유학자는 숨을 죽이고 승려 무리는 소매를 떨치며 활보하고 있으니 올바른 도의 흥쇠가 판가름이 났고 국가의 안위도 결판이 났습니다. 전하께서 6, 7년 동안 근심하며 부지런히 힘쓰신 공을 그 선정과 함께 차마 폐기하니 어찌 애통하지 않겠습니까? 또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국사에 기록되고 후세에 전해져서 후세 사람들이 지금 사람을 비웃는 것이 마치 지금 사람이 옛날을 비웃는 것과 같이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신 등은 모두 간언을 드릴 책임이 없는데도 누차 성총(聖聰)을 모독하였으니 직위를 벗어난 죄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사설(邪說)이 정도를 해치는데 대하여는 누구나 공격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충정과 울분이 북받쳐 내외를 분간하지 못하고 통곡으로 눈물이 흘러내려 차마 좌시할 수 없습니다. 감히 도끼로 주살되는 죄를 무릅쓰고서라도 하늘의 밝은 태양이 다시 회복되기를 빕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자께서 살펴주시옵소서.
[주-D001] 시귀(蓍龜)의 방책 : 시귀(蓍龜)는 옛날에 점을 칠 때 쓰는 시초(蓍草)와 거북. 따라서 시귀의 방책은 준수하고 따를 만한 신묘한 대책을 가리킨다.
[주-D002] 눈 …… 있습니다 : 중국 북송(北宋) 때 유작(游酢)ㆍ양시(楊時)가 정이(程頤)를 처음 찾아갔을 때 정이가 눈을 감고 명상(瞑想)에 잠겨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밖에 서서 날이 저물도록 기다렸는데, 정이가 물러가라고 명하였을 때에는 문 밖에 눈이 석 자나 쌓였다. 윗사람을 모시는 지극한 정성을 비유한다.
[주-D003] 문모(文母) :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로서 황모(皇母)와 같다. 여기서는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를 가리킨다.
[주-D004] 서제(噬臍)의 후회 : 서제(噬齊)라고도 쓴다. 자신의 배꼽을 물어뜯는다는 의미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사향노루가 사람에게 잡혀 죽게 될 때 제 배꼽의 향내 때문이라고 배꼽을 물어뜯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주-D005] 자전(慈殿) :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주-D006] 유유낙락(唯唯諾諾) :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임금의 말에 예예하며 순종만 하는 행위.
[주-D007] 선도(善道)를 …… 한다 :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온다.
[주-D008] 당(唐)나라 …… 주었고 : 당(唐)나라 초기의 현신 위징(魏徵)이 태종을 경계하면서 수(隋)나라 양제(煬帝)처럼 되지 말라고 간언을 올렸다.
[주-D009] 금인(金人) : 한나라 명제가 금 도금을 한 사람〔金人〕의 꿈을 꾸고 부의(傅毅)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서역의 귀신은 그 이름을 부처라 하옵는데, 폐하께옵서 꿈꾸신 것은 아마 이것인가 합니다.”라고 하였다.
[주-D010] 당(唐)나라 …… 평정하고 : 당나라 헌종(憲宗) 때 오원제(吳元濟)가 회서(淮西)에서 난을 일으키자 배도(裴度)를 시켜 평정한 일을 말한다.
[주-D011] 부처의 …… 죄는 : 당(唐)나라 헌종(憲宗)이 불골(佛骨)을 맞아들여 궁중에 안치하자, 한유(韓愈)가 〈불골표(佛骨表)〉를 올려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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