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 동헌의 시에 차운하다〔次槐山軒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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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5회 작성일 21-07-26 21:27본문
괴산군 동헌의 시에 차운하다〔次槐山軒韻〕
차가운 산에 낙조가 뉘엿뉘엿 내릴 무렵 / 寒山落照下亭亭
눈 속에 동풍 맞으며 성에 드는 나그네 / 亂雪東風客入城
팔꿈치 잡아당겨 평소의 뜻 어기었고 / 掣肘只應違素志
부지런히 힘써도 백성 구제하진 못하네 / 勞筋未必濟蒼生
어여뻐라, 고향으로 돌아간 장한의 흥취 / 自憐張翰多歸興
누가 믿으랴, 왕공이 벼슬 욕심 적었다고 / 誰信王公少宦情
잠시 높은 누각에서 팔 베고 누웠더니 / 暫借高軒肱枕臥
헛된 명성으로 구하지 못할 진락이로세 / 難將眞樂博虛名
[주-D001] 팔꿈치 잡아당겨 : 원문의 철주(掣肘)는 공연히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여 뜻한 바를 이룰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로 노(魯)나라 복자천(宓子賤)의 고사이다. 복자천이 단보(亶父)의 수령으로 임명되어 떠나갈 적에 글씨를 잘 쓰는 임금의 측근 아전 두 사람을 청하여 함께 데리고 갔다.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 아전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글씨를 쓰려고 하면 옆에서 팔꿈치를 잡아당기고, 그 때문에 글씨를 잘못 쓰면 또 화를 내었다. 그 아전들이 두려워 사직하고 돌아가 임금에게 자초지종을 고하니, 임금이 자신을 경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呂氏春秋 具備》
[주-D002] 고향으로 …… 흥취 :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는 고향인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소중하다.”라고 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주-D003] 왕공(王公)이 …… 적었다고 : 왕공은 왕유(王維)를 지칭하는 듯하다. 그는 안사(安史)의 난 때 장안(長安)이 점령되자 반란군에 사로잡혀 낙양(洛陽)으로 끌려갔는데 이곳에서 벼슬을 하였다. 비록 벼슬을 탐탁지 않게 여겨 남전(藍田)의 망천장(輞川莊)에 머물며 시로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벼슬에 몸담게 되면서 누리게 된 여유이므로 벼슬에 대한 뜻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가운 산에 낙조가 뉘엿뉘엿 내릴 무렵 / 寒山落照下亭亭
눈 속에 동풍 맞으며 성에 드는 나그네 / 亂雪東風客入城
팔꿈치 잡아당겨 평소의 뜻 어기었고 / 掣肘只應違素志
부지런히 힘써도 백성 구제하진 못하네 / 勞筋未必濟蒼生
어여뻐라, 고향으로 돌아간 장한의 흥취 / 自憐張翰多歸興
누가 믿으랴, 왕공이 벼슬 욕심 적었다고 / 誰信王公少宦情
잠시 높은 누각에서 팔 베고 누웠더니 / 暫借高軒肱枕臥
헛된 명성으로 구하지 못할 진락이로세 / 難將眞樂博虛名
[주-D001] 팔꿈치 잡아당겨 : 원문의 철주(掣肘)는 공연히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여 뜻한 바를 이룰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로 노(魯)나라 복자천(宓子賤)의 고사이다. 복자천이 단보(亶父)의 수령으로 임명되어 떠나갈 적에 글씨를 잘 쓰는 임금의 측근 아전 두 사람을 청하여 함께 데리고 갔다. 고을의 아전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 아전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글씨를 쓰려고 하면 옆에서 팔꿈치를 잡아당기고, 그 때문에 글씨를 잘못 쓰면 또 화를 내었다. 그 아전들이 두려워 사직하고 돌아가 임금에게 자초지종을 고하니, 임금이 자신을 경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呂氏春秋 具備》
[주-D002] 고향으로 …… 흥취 : 진(晉)나라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는 고향인 강동(江東) 오중(吳中)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소중하다.”라고 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주-D003] 왕공(王公)이 …… 적었다고 : 왕공은 왕유(王維)를 지칭하는 듯하다. 그는 안사(安史)의 난 때 장안(長安)이 점령되자 반란군에 사로잡혀 낙양(洛陽)으로 끌려갔는데 이곳에서 벼슬을 하였다. 비록 벼슬을 탐탁지 않게 여겨 남전(藍田)의 망천장(輞川莊)에 머물며 시로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벼슬에 몸담게 되면서 누리게 된 여유이므로 벼슬에 대한 뜻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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