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락당에서 제하다〔題保樂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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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97회 작성일 21-07-25 06:05본문
보락당에서 제하다〔題保樂堂〕
물 굽어보는 높은 난간에 돈 얼마나 들였을까 / 俯水危欄費幾金
경영할 땐 망녕되게도 백년 누릴 마음이었으리 / 經營妄擬百年心
오는 사람도 없어 누대가 적막하기만 한데 / 樓臺寂寞無人到
저물녘 까마귀만이 북쪽 숲에 가득하구나 / 唯有昏雅滿北林
[주-D001] 보락당(保樂堂) 조선 중기의 문신 김안로(金安老, 1481~1537)가 지금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강 어귀인 동호(東湖) 가에 지었던 정자 이름이다. 마루 현판은 함허헌(涵虛軒)이라 하였다. 직접 지은 〈보락당기(保樂堂記)〉가 《희락당문집》 권5에 실려 있다. 《중종실록》 31년 10월 30일 기사에 ‘정부와 육조가 날마다 이곳에서 연회를 하여 수레와 말이 못 뚝에 가득 찼고 하인배들이 우글거려 호수 가의 백성들은 너무 괴로워서 문을 닫고 도피하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 《中宗實錄 31年 10月 30日》
물 굽어보는 높은 난간에 돈 얼마나 들였을까 / 俯水危欄費幾金
경영할 땐 망녕되게도 백년 누릴 마음이었으리 / 經營妄擬百年心
오는 사람도 없어 누대가 적막하기만 한데 / 樓臺寂寞無人到
저물녘 까마귀만이 북쪽 숲에 가득하구나 / 唯有昏雅滿北林
[주-D001] 보락당(保樂堂) 조선 중기의 문신 김안로(金安老, 1481~1537)가 지금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강 어귀인 동호(東湖) 가에 지었던 정자 이름이다. 마루 현판은 함허헌(涵虛軒)이라 하였다. 직접 지은 〈보락당기(保樂堂記)〉가 《희락당문집》 권5에 실려 있다. 《중종실록》 31년 10월 30일 기사에 ‘정부와 육조가 날마다 이곳에서 연회를 하여 수레와 말이 못 뚝에 가득 찼고 하인배들이 우글거려 호수 가의 백성들은 너무 괴로워서 문을 닫고 도피하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 《中宗實錄 31年 10月 3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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