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퇴계의 왕매계가 한창려에게 화답한 것을 읽고 가을 회포를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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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66회 작성일 21-07-25 05:53본문
이퇴계의 왕매계가 한창려에게 화답한 것을 읽고 가을 회포를 읊다
이퇴계의 〈왕매계가 한창려에게 화답한 것을 읽고 가을 회포를 읊다〉 시에 차운하여 회포를 달래다 11수 〔次李退溪讀王梅溪和韓秋懷韻 遣懷 十一首〕
아름다운 난초를 언덕에 심었더니 / 猗蘭種九畹
이슬 맺힌 잎이 싱그럽게 보이네 / 露葉看薿薿
빈숲에서 홀로 그윽한 빛 간직하고 / 獨保空林色
바람결에 향기 끊임없이 풍기네 / 風披香未已
서늘한 밤에 흰 이슬 으스스하고 / 白露戒凉宵
찬 바람소리 나그네 귀 놀래키네 / 玄商驚客耳
그윽한 향기 이 때문에 사라지고 나면 / 幽芳坐消歇
어찌 다시 새 마음이 일어날까 / 寧復新心起
난초 캐도 멀리 보내기 어려우니 / 采之難寄遠
쑥대처럼 시들고 말까 걱정되고 / 恐與蕭艾似
깊은 뿌리야 엄동설한도 견디겠지만 / 深根擬歲晩
하늘의 도란 역시 믿기 어려운 것 / 天道亦難恃
바라보면 고상한 회포 일어나니 / 看來起遐襟
사물과 나는 궤도가 하나이리라 / 物我同一軌
추위와 더위는 변함없는 이치니 / 寒暑自有常
어찌 영고성쇠로 기뻐하고 슬퍼하랴 / 榮悴寧悲喜
또〔又〕
한밤중에 된서리가 내려 / 嚴霜半夜飛
무성하던 풀 일시에 시들었는데 / 豊草一時悴
동쪽 울타리에 빼어난 국화는 / 傑然東籬英
금빛 꽃송이 땅에 가득 열어 / 金錢開滿地
그윽한 향기 세한의 절개 머금고 / 幽香含晩節
세찬 바람도 눈도 두려워 않네 / 不怕風雪恣
우뚝 서서 감히 뒤처지지 않음은 / 特立非敢後
타고난 천성이 본래 남다르기 때문 / 賦性元自異
미천한 식물이라 말하지 말라 / 莫言植物微
변치 않는 것이 고귀한 법이니 / 不變斯爲貴
가을 햇볕 따갑게 내리쬐어도 / 秋日苦暉暉
가을밤은 차츰차츰 길어지니 / 秋夜漸曼曼
허둥지둥 해 저무는 것 슬퍼하다가 / 蒼茫歲暮悲
멍하니 앉아 밥 먹는 것도 잊었네 / 嗒然坐忘飯
가을벌레는 또 무슨 마음이기에 / 寒蟲亦何心
정녕 괴롭게 내 탄식 북돋우는지 / 良苦助我歎
흘러가는 물은 돌아오는 물결 없고 / 逝水無回波
세월은 내 소원대로 흘러가지 않네 / 流光不偕願
내 분수란 작은 가지에 앉은 뱁새거니 / 自分鷦一枝
어찌 구만 리를 나는 붕새 부러워하랴 / 肯羡鵬九萬
해바라기와 같은 정성 품었지만 / 葵藿雖抱誠
미나리와 햇볕 드릴 수가 없구나 / 芹曝不堪獻
조용하고 곧은 것이 신명 보존하니 / 幽貞苟自保
세상 피하면 될 뿐 다시 누굴 원망하랴 / 肥遯復何怨
날랜 송골매가 양 날개 퍼덕이며 멀어지자 / 快鶻雙翩遠
날던 새매는 가을 하늘에서 활개치나니 / 飛隼秋霄凌
주둥이 날카로운 모기를 쓸어가고 / 利口掃飛蚊
옥돌에 점찍는 파리를 몰아낸다 / 點玉驅寒蠅
하늘의 뜻 정해지면 이치가 꼭 이기거늘 / 天定理必勝
넓은 저 하늘을 누가 미워하랴 / 蒼昊伊誰憎
말세에는 천도에 반하여 / 季世反天明
방정한 것 깎아버려 고에도 모가 없는 법 / 斲方觚無稜
향풀과 누린내풀이 한데 뒤섞여 먼지를 쓰고 / 薰蕕混同塵
천지가 하나로 싸여 그물망이 된다네 / 天地籠爲罾
일찍이 높이 날지 못한 것이 한스럽나니 / 高飛恨不早
어찌 하면 학의 울음소리 들을 수 있을까 / 鶴唳聞何能
또〔又〕
서리 내리는 밤에 기러기 울음소리 들리고 / 霜鴻夜墮音
소나무에 깃든 학은 이슬에 자주 놀라네 / 松鶴露頻警
옷 끌어당기며 그림자 안고 읊조리자니 / 攬衣抱影吟
추운 밤과 더불어 시름 길어져 가누나 / 愁共寒宵永
학문은 비루하여 황폐해지고 말았고 / 學陋坐鹵莾
마음은 쇠약해져 호방한 기운 줄었네 / 心頹减豪猛
지혜를 잡으려니 그물 뚫어져 부끄럽고 / 獵智慙漏網
깊은 샘물 길으려니 두레박줄이 짧구나 / 汲深倚短綆
곤궁해도 도 지키는 건 내 할 수 있으니 / 固窮我猶堪
뜻대로 사는 것은 하늘이 내게 준 행운 / 肆志天借幸
오는 세월은 혹 바로잡아 살 수 있으려니 / 來日倘可追
궁벽한 곳도 마다 않고 내 뜻대로 가리라 / 征邁甘幽屛
또〔又〕
해와 달 두 바퀴 돌고 돌아 / 日月轉雙輪
찬 달빛이 짧은 해를 잇는데 / 寒輝承短景
다시 이 시드는 때를 만나 / 復此對搖落
밤에 홀로 밝은 창가에서 읊네 / 孤吟夜窓冏
화기를 태워 스스로 속을 끓이고 / 焚和秪自煎
미친 듯이 달리는데 누가 가로막나 / 狂走因誰梗
세속에 찌든 얼굴 드는 것이 부끄럽고 / 塵容老羞抗
세상길은 겁이 나서 달려가지 못하겠네 / 世路蹙靡騁
어리석은 몸 돌아갈 곳 있어 다행하니 / 歸愚幸有地
구름 속 골짜기야 부탁 기다리지 않으리 / 雲壑不待請
밤 깊어 온갖 동물이 쉬고 / 夜深群動息
등불 가물거려 사방 벽 어둑한데 / 燈殘四壁暗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 있으니 / 肱枕自有樂
옷 해진 것이야 서운할 것 없지 / 衣敝吾無憾
편안히 정신을 지키고 있다면야 / 怡然神守都
귀신이 엿보는 것 어찌 두려우랴 / 肯怕鬼來瞰
거문고를 손 가는대로 타노라면 / 枯桐信手彈
소리 끊어져도 여운이 바야흐로 맑네 / 聲希味方淡
밤기운 받아 원기를 기르고 / 夜氣養灝元
감정이 일 때면 넘치는 것 경계해야 하리 / 情瀾戒觴濫
안연처럼 되는 것이 소원이지만 / 希顔志雖願
성인의 경지란 잠시 공력으론 안 되리 / 作聖功非暫
길 가던 수레 그만 달릴 수는 있어도 / 登途車可停
여울 거슬러 오르는 배가 멈출 수 있으랴 / 上瀨舟何纜
옛날 상고하여 새로운 지혜 터득하고 / 稽古發新知
묵은 책 꺼내어 교감해야 하리니 / 陳編事讐勘
씨 뿌리면 수확 기대할 수 있음에 / 投種望有穫
풍년들면 항아리 가득 차는 걸 보게 되리 / 逢年見盈甔
구월 늦가을 달이 한껏 둥글어 / 九秋月滿規
마루 위에 휘영청 다시 밝았네 / 復見明陛軒
떠오르면 낮이 다시 밤이 되나니 / 飛騰日復夜
누가 해와 달을 매어둘 수 있으랴 / 誰繫羲娥奔
나이가 어제의 잘못 깨달을 때에 이르러 / 年至悟昨非
지난 일 회상하면 할 말을 잊은 듯하네 / 撫事如忘言
젊어서 명예 쫒는 곳에 발 들였다가 / 少涉聲利場
앞뒤로 낭패 보아 부끄러운데 / 狼狽羞後前
늙어서 하찮은 관리가 되어 / 晩作折腰吏
일에는 게으르고 녹만 축내었으니 / 怠事饞素餐
손가락 돌보려다 등을 잃어버린 꼴 / 養指反喪背
고개 돌려보니 옛 책에 부끄러운데 / 回首愧靑編
말과 행동이 걸핏하면 서로 어긋나 / 言行動矛盾
후회와 허물이 늘 백 가지 천 가지 / 悔尤常百千
게다가 이젠 백발이 늘어나고 / 剩添鬢毛換
세상사 시린 맛 다 맛을 보아 / 飽嘗世味酸
이미 알았네, 하루에 만 전의 밥 먹는 게 / 已知萬錢食
침상에서 마음 편히 자는 것만 못함을 / 不慱一牀眠
기두와 같은 헛된 명성 다 버리고 / 虛名謝箕斗
역사의 나무처럼 천수를 누리려네 / 櫟社期終年
또〔又〕
동야는 뼛속까지 싸늘한 데 이르렀고 / 東野到骨寒
낭선은 늘 솥이 말라 있었지만 / 浪仙常釜乾
낭랑한 소리 금석에서 나온 듯하고 / 商聲出金石
시구 다듬어 맑은 옥처럼 울렸었지 / 琢句響明玕
원공은 흉금이 쇄락하였고 / 元公灑落胸
백자는 온화한 기운이 감돌아 / 伯子和氣團
끊어진 학문의 빗장을 열고 / 絶學啓關鍵
연원이 깊은 큰 물결 일으켰지 / 淵源深汗瀾
고심이야 어찌 달랐겠는가 / 苦心亦何異
귀착된 취미 아주 편안하게 여겼지 / 歸趣殊所安
그림의 떡은 배를 불리지 못하고 / 畫餠未果腹
농환은 참으로 자잘한 기예 / 小技眞弄丸
힘써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 / 勉爲君子儒
원대할 길 멈추지 말아야 하리라 / 道遠毋停鞍
하늘의 조화는 묵묵히 스스로 운행하고 / 天機默自運
하늘의 들음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는 법 / 天聽杳無聲
늠름한 풍상처럼 굳세고 / 凜凜風霜勁
멀고 먼 은하수처럼 밝네 / 迢迢星漢明
상하에 이치 밝게 펼쳐지고 / 上下理昭陳
심원함, 순일한 지성에 뿌리를 내렸다네 / 沕穆根一誠
천지를 바라보며 긴 휘파람 불어보나니 / 俯仰發長嘯
우주는 몇 번이나 비었다가 찼을까 / 宇宙幾虛盈
봄의 역할은 일원을 관장하고 / 春功管一元
가을 기운은 쇠와 병기를 맡았으니 / 秋氣司金兵
한 해의 공이 오래 축적되지 않으면 / 歲功不久居
만물이 어찌 길이 영화로울 수 있을까 / 物理豈長榮
세상에는 금석보다 견고한 것 없으니 / 世無金石堅
한 결 같이 하늘의 명에 따라야 하리 / 一順天所令
추녀 머리에 빼어난 고죽은 / 軒頭挺苦竹
세모의 모습이 멋스러운데 / 歲暮顔色好
연못 속에 우뚝하던 붉은 연꽃은 / 池心擢朱華
서리 내리자 일찍 시들고 말았네 / 霜飛萎敗早
다 같은 군자의 벗인데 / 同是君子友
하늘은 어찌하여 같이 보전하지 않는가 / 天胡不共保
번화한 것은 쉽게 쇠퇴하고 / 易替是繁華
야윈 것이 오직 오래 견디네 / 持久唯枯槁
타고난 바탕 온전하게 할 뿐이니 / 但使稟賦全
더디고 빠름을 어찌 말할 것 있으랴 / 遲速何足道
[주-D001] 왕매계(王梅溪) 송(宋)나라 왕십붕(王十朋)으로, 매계는 그의 호이다.
[주-D002] 왕매계가 …… 읊다 《퇴계집》 권2의 〈가을날의 회포 11수. 왕매계(王梅溪)가 한창려(韓昌黎)의 시에 화답한 것을 읽고 느낌이 있어 그 운을 그대로 쓴다.〔秋懷十一首, 讀王梅溪和韓詩有感, 仍用其韻.〕〉이다.
[주-D003] 해바라기와 같은 정성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듯이 임금에게 향한 신하의 변치 않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D004] 미나리와 햇볕 임금에게 올리는 갸륵한 정성을 비유하는 말이다. 옛날 어느 농부가 자기 입에 맛있는 미나리를 천하에 제일가는 진미(珍味)로 여겨 임금에게 바쳤고, 봄 햇살을 쪼이다가 그 방법을 임금에게 올리면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列子 楊朱》
[주-D005] 옥돌에 점찍는 파리 파리가 흠 없는 옥돌에다 오물을 내갈긴다는 것으로, 바른 사람을 헐뜯고 무함하는 소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6] 방정한 …… 법 고(觚)라는 술잔은 모가 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므로, 고의 모가 깎였다는 것은 본질이 훼손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고에 모 나지 않으면 고라 하겠느냐?〔觚不觚觚哉觚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D007] 안연(顔淵)처럼 되는 것 공자가 제자 안연을 평하여 “석 달 동안 인(仁)을 어기지 않았다.” 하였다.
[주-D008] 나이가 …… 이르러 나이가 50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인 거백옥(蘧伯玉)이 “나이 50세가 되어 49년의 잘못을 깨달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淮南子 原道訓》
[주-D009] 기두(箕斗) 기성(箕星)과 북두성(北斗星)으로, 실제 내용은 없이 이름만 지닌 것을 말한다. 《시경》 〈대동(大東)〉에서 “남쪽 하늘에 기성이 있어도 나락을 까불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10] 역사(櫟社)의 나무 구불구불하여 재목으로 쓸 수 없어 베이지 않은 나무로, 못났기 때문에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는 것을 비유한다. 옛날 장석(匠石)이란 목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제(齊)나라로 가다가 곡원(曲轅)에서 역사(櫟社), 즉 사당 앞에 있는 큰 상수리나무를 보고 “이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수명이 길다.” 하였다. 그날 밤 꿈에 그 상수리나무가 나타나 장석에게 “나는 쓸모가 없기를 바란 지가 오래이다. 그래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하였다. 《莊子 人間世》
[주-D011] 동야(東野)는 …… 이르렀고 동야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자인데, 소식(蘇軾)의 〈유자옥 제문〔祭柳子玉文〕〉에서 당나라 시인들의 시격(詩格)을 평하여, “맹교는 싸늘하고, 가도(賈島)는 수척하며, 원진(元稹)은 경박하고, 백거이는 비속하다.〔郊寒島瘦 元輕白俗〕”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2] 낭선(浪仙) …… 있었지만 낭선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자이다. 애초에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여 장강 주부(長江主簿)를 지내기도 하였지만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퇴고(推敲)라는 말의 유래가 된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으로서, 맹교(孟郊)와 더불어 ‘교한도수(郊寒島瘦)’라 일컬어졌다.
[주-D013] 원공(元公)은 흉금이 쇄락하였고 원공은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시호이다. 황정견(黃庭堅)이 그의 인품을 평하여 “염계(濂溪)의 마음은 쇄락하여 마치 ‘비 갠 뒤의 온화한 바람과 밝은 달〔光風霽月〕’과 같다.”라고 하였다.
[주-D014] 백자(伯子)는 …… 감돌아 백자는 송(宋)나라 학자 정호(程顥)를 가리키는데, 정호와 아우 정이(程頤)를 구분하여 형인 정호를 ‘백자’라 하고 아우 정이를 ‘숙자(叔子)’라 한다. 정이는 홀로 앉아 있을 적에는 석고상(石膏像) 같다가도, 사람을 접할 때면 한 덩어리의 화기〔一團和氣〕가 뭉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二程全書 卷12》
[주-D015] 농환(弄丸)〈태극도(太極圖)〉를 완상하는 일을 말한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자작진찬(自作眞贊)〉에서 “농환하는 여가에 한가로이 오간다.〔弄丸餘暇 閒往閒來〕” 하였는데, 그 소주(小註)에, “환(丸)은 태극이다.” 하였다. 《擊壤集 卷12》
[주-D016] 봄의 …… 관장하고 봄에 양기(陽氣)가 성해져 만물이 소생하므로 이른 것이다. 일원(一元)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천지의 원기를 말한다.
이퇴계의 〈왕매계가 한창려에게 화답한 것을 읽고 가을 회포를 읊다〉 시에 차운하여 회포를 달래다 11수 〔次李退溪讀王梅溪和韓秋懷韻 遣懷 十一首〕
아름다운 난초를 언덕에 심었더니 / 猗蘭種九畹
이슬 맺힌 잎이 싱그럽게 보이네 / 露葉看薿薿
빈숲에서 홀로 그윽한 빛 간직하고 / 獨保空林色
바람결에 향기 끊임없이 풍기네 / 風披香未已
서늘한 밤에 흰 이슬 으스스하고 / 白露戒凉宵
찬 바람소리 나그네 귀 놀래키네 / 玄商驚客耳
그윽한 향기 이 때문에 사라지고 나면 / 幽芳坐消歇
어찌 다시 새 마음이 일어날까 / 寧復新心起
난초 캐도 멀리 보내기 어려우니 / 采之難寄遠
쑥대처럼 시들고 말까 걱정되고 / 恐與蕭艾似
깊은 뿌리야 엄동설한도 견디겠지만 / 深根擬歲晩
하늘의 도란 역시 믿기 어려운 것 / 天道亦難恃
바라보면 고상한 회포 일어나니 / 看來起遐襟
사물과 나는 궤도가 하나이리라 / 物我同一軌
추위와 더위는 변함없는 이치니 / 寒暑自有常
어찌 영고성쇠로 기뻐하고 슬퍼하랴 / 榮悴寧悲喜
또〔又〕
한밤중에 된서리가 내려 / 嚴霜半夜飛
무성하던 풀 일시에 시들었는데 / 豊草一時悴
동쪽 울타리에 빼어난 국화는 / 傑然東籬英
금빛 꽃송이 땅에 가득 열어 / 金錢開滿地
그윽한 향기 세한의 절개 머금고 / 幽香含晩節
세찬 바람도 눈도 두려워 않네 / 不怕風雪恣
우뚝 서서 감히 뒤처지지 않음은 / 特立非敢後
타고난 천성이 본래 남다르기 때문 / 賦性元自異
미천한 식물이라 말하지 말라 / 莫言植物微
변치 않는 것이 고귀한 법이니 / 不變斯爲貴
가을 햇볕 따갑게 내리쬐어도 / 秋日苦暉暉
가을밤은 차츰차츰 길어지니 / 秋夜漸曼曼
허둥지둥 해 저무는 것 슬퍼하다가 / 蒼茫歲暮悲
멍하니 앉아 밥 먹는 것도 잊었네 / 嗒然坐忘飯
가을벌레는 또 무슨 마음이기에 / 寒蟲亦何心
정녕 괴롭게 내 탄식 북돋우는지 / 良苦助我歎
흘러가는 물은 돌아오는 물결 없고 / 逝水無回波
세월은 내 소원대로 흘러가지 않네 / 流光不偕願
내 분수란 작은 가지에 앉은 뱁새거니 / 自分鷦一枝
어찌 구만 리를 나는 붕새 부러워하랴 / 肯羡鵬九萬
해바라기와 같은 정성 품었지만 / 葵藿雖抱誠
미나리와 햇볕 드릴 수가 없구나 / 芹曝不堪獻
조용하고 곧은 것이 신명 보존하니 / 幽貞苟自保
세상 피하면 될 뿐 다시 누굴 원망하랴 / 肥遯復何怨
날랜 송골매가 양 날개 퍼덕이며 멀어지자 / 快鶻雙翩遠
날던 새매는 가을 하늘에서 활개치나니 / 飛隼秋霄凌
주둥이 날카로운 모기를 쓸어가고 / 利口掃飛蚊
옥돌에 점찍는 파리를 몰아낸다 / 點玉驅寒蠅
하늘의 뜻 정해지면 이치가 꼭 이기거늘 / 天定理必勝
넓은 저 하늘을 누가 미워하랴 / 蒼昊伊誰憎
말세에는 천도에 반하여 / 季世反天明
방정한 것 깎아버려 고에도 모가 없는 법 / 斲方觚無稜
향풀과 누린내풀이 한데 뒤섞여 먼지를 쓰고 / 薰蕕混同塵
천지가 하나로 싸여 그물망이 된다네 / 天地籠爲罾
일찍이 높이 날지 못한 것이 한스럽나니 / 高飛恨不早
어찌 하면 학의 울음소리 들을 수 있을까 / 鶴唳聞何能
또〔又〕
서리 내리는 밤에 기러기 울음소리 들리고 / 霜鴻夜墮音
소나무에 깃든 학은 이슬에 자주 놀라네 / 松鶴露頻警
옷 끌어당기며 그림자 안고 읊조리자니 / 攬衣抱影吟
추운 밤과 더불어 시름 길어져 가누나 / 愁共寒宵永
학문은 비루하여 황폐해지고 말았고 / 學陋坐鹵莾
마음은 쇠약해져 호방한 기운 줄었네 / 心頹减豪猛
지혜를 잡으려니 그물 뚫어져 부끄럽고 / 獵智慙漏網
깊은 샘물 길으려니 두레박줄이 짧구나 / 汲深倚短綆
곤궁해도 도 지키는 건 내 할 수 있으니 / 固窮我猶堪
뜻대로 사는 것은 하늘이 내게 준 행운 / 肆志天借幸
오는 세월은 혹 바로잡아 살 수 있으려니 / 來日倘可追
궁벽한 곳도 마다 않고 내 뜻대로 가리라 / 征邁甘幽屛
또〔又〕
해와 달 두 바퀴 돌고 돌아 / 日月轉雙輪
찬 달빛이 짧은 해를 잇는데 / 寒輝承短景
다시 이 시드는 때를 만나 / 復此對搖落
밤에 홀로 밝은 창가에서 읊네 / 孤吟夜窓冏
화기를 태워 스스로 속을 끓이고 / 焚和秪自煎
미친 듯이 달리는데 누가 가로막나 / 狂走因誰梗
세속에 찌든 얼굴 드는 것이 부끄럽고 / 塵容老羞抗
세상길은 겁이 나서 달려가지 못하겠네 / 世路蹙靡騁
어리석은 몸 돌아갈 곳 있어 다행하니 / 歸愚幸有地
구름 속 골짜기야 부탁 기다리지 않으리 / 雲壑不待請
밤 깊어 온갖 동물이 쉬고 / 夜深群動息
등불 가물거려 사방 벽 어둑한데 / 燈殘四壁暗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 있으니 / 肱枕自有樂
옷 해진 것이야 서운할 것 없지 / 衣敝吾無憾
편안히 정신을 지키고 있다면야 / 怡然神守都
귀신이 엿보는 것 어찌 두려우랴 / 肯怕鬼來瞰
거문고를 손 가는대로 타노라면 / 枯桐信手彈
소리 끊어져도 여운이 바야흐로 맑네 / 聲希味方淡
밤기운 받아 원기를 기르고 / 夜氣養灝元
감정이 일 때면 넘치는 것 경계해야 하리 / 情瀾戒觴濫
안연처럼 되는 것이 소원이지만 / 希顔志雖願
성인의 경지란 잠시 공력으론 안 되리 / 作聖功非暫
길 가던 수레 그만 달릴 수는 있어도 / 登途車可停
여울 거슬러 오르는 배가 멈출 수 있으랴 / 上瀨舟何纜
옛날 상고하여 새로운 지혜 터득하고 / 稽古發新知
묵은 책 꺼내어 교감해야 하리니 / 陳編事讐勘
씨 뿌리면 수확 기대할 수 있음에 / 投種望有穫
풍년들면 항아리 가득 차는 걸 보게 되리 / 逢年見盈甔
구월 늦가을 달이 한껏 둥글어 / 九秋月滿規
마루 위에 휘영청 다시 밝았네 / 復見明陛軒
떠오르면 낮이 다시 밤이 되나니 / 飛騰日復夜
누가 해와 달을 매어둘 수 있으랴 / 誰繫羲娥奔
나이가 어제의 잘못 깨달을 때에 이르러 / 年至悟昨非
지난 일 회상하면 할 말을 잊은 듯하네 / 撫事如忘言
젊어서 명예 쫒는 곳에 발 들였다가 / 少涉聲利場
앞뒤로 낭패 보아 부끄러운데 / 狼狽羞後前
늙어서 하찮은 관리가 되어 / 晩作折腰吏
일에는 게으르고 녹만 축내었으니 / 怠事饞素餐
손가락 돌보려다 등을 잃어버린 꼴 / 養指反喪背
고개 돌려보니 옛 책에 부끄러운데 / 回首愧靑編
말과 행동이 걸핏하면 서로 어긋나 / 言行動矛盾
후회와 허물이 늘 백 가지 천 가지 / 悔尤常百千
게다가 이젠 백발이 늘어나고 / 剩添鬢毛換
세상사 시린 맛 다 맛을 보아 / 飽嘗世味酸
이미 알았네, 하루에 만 전의 밥 먹는 게 / 已知萬錢食
침상에서 마음 편히 자는 것만 못함을 / 不慱一牀眠
기두와 같은 헛된 명성 다 버리고 / 虛名謝箕斗
역사의 나무처럼 천수를 누리려네 / 櫟社期終年
또〔又〕
동야는 뼛속까지 싸늘한 데 이르렀고 / 東野到骨寒
낭선은 늘 솥이 말라 있었지만 / 浪仙常釜乾
낭랑한 소리 금석에서 나온 듯하고 / 商聲出金石
시구 다듬어 맑은 옥처럼 울렸었지 / 琢句響明玕
원공은 흉금이 쇄락하였고 / 元公灑落胸
백자는 온화한 기운이 감돌아 / 伯子和氣團
끊어진 학문의 빗장을 열고 / 絶學啓關鍵
연원이 깊은 큰 물결 일으켰지 / 淵源深汗瀾
고심이야 어찌 달랐겠는가 / 苦心亦何異
귀착된 취미 아주 편안하게 여겼지 / 歸趣殊所安
그림의 떡은 배를 불리지 못하고 / 畫餠未果腹
농환은 참으로 자잘한 기예 / 小技眞弄丸
힘써 군자다운 선비가 되어 / 勉爲君子儒
원대할 길 멈추지 말아야 하리라 / 道遠毋停鞍
하늘의 조화는 묵묵히 스스로 운행하고 / 天機默自運
하늘의 들음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는 법 / 天聽杳無聲
늠름한 풍상처럼 굳세고 / 凜凜風霜勁
멀고 먼 은하수처럼 밝네 / 迢迢星漢明
상하에 이치 밝게 펼쳐지고 / 上下理昭陳
심원함, 순일한 지성에 뿌리를 내렸다네 / 沕穆根一誠
천지를 바라보며 긴 휘파람 불어보나니 / 俯仰發長嘯
우주는 몇 번이나 비었다가 찼을까 / 宇宙幾虛盈
봄의 역할은 일원을 관장하고 / 春功管一元
가을 기운은 쇠와 병기를 맡았으니 / 秋氣司金兵
한 해의 공이 오래 축적되지 않으면 / 歲功不久居
만물이 어찌 길이 영화로울 수 있을까 / 物理豈長榮
세상에는 금석보다 견고한 것 없으니 / 世無金石堅
한 결 같이 하늘의 명에 따라야 하리 / 一順天所令
추녀 머리에 빼어난 고죽은 / 軒頭挺苦竹
세모의 모습이 멋스러운데 / 歲暮顔色好
연못 속에 우뚝하던 붉은 연꽃은 / 池心擢朱華
서리 내리자 일찍 시들고 말았네 / 霜飛萎敗早
다 같은 군자의 벗인데 / 同是君子友
하늘은 어찌하여 같이 보전하지 않는가 / 天胡不共保
번화한 것은 쉽게 쇠퇴하고 / 易替是繁華
야윈 것이 오직 오래 견디네 / 持久唯枯槁
타고난 바탕 온전하게 할 뿐이니 / 但使稟賦全
더디고 빠름을 어찌 말할 것 있으랴 / 遲速何足道
[주-D001] 왕매계(王梅溪) 송(宋)나라 왕십붕(王十朋)으로, 매계는 그의 호이다.
[주-D002] 왕매계가 …… 읊다 《퇴계집》 권2의 〈가을날의 회포 11수. 왕매계(王梅溪)가 한창려(韓昌黎)의 시에 화답한 것을 읽고 느낌이 있어 그 운을 그대로 쓴다.〔秋懷十一首, 讀王梅溪和韓詩有感, 仍用其韻.〕〉이다.
[주-D003] 해바라기와 같은 정성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듯이 임금에게 향한 신하의 변치 않는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D004] 미나리와 햇볕 임금에게 올리는 갸륵한 정성을 비유하는 말이다. 옛날 어느 농부가 자기 입에 맛있는 미나리를 천하에 제일가는 진미(珍味)로 여겨 임금에게 바쳤고, 봄 햇살을 쪼이다가 그 방법을 임금에게 올리면 큰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列子 楊朱》
[주-D005] 옥돌에 점찍는 파리 파리가 흠 없는 옥돌에다 오물을 내갈긴다는 것으로, 바른 사람을 헐뜯고 무함하는 소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D006] 방정한 …… 법 고(觚)라는 술잔은 모가 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므로, 고의 모가 깎였다는 것은 본질이 훼손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고에 모 나지 않으면 고라 하겠느냐?〔觚不觚觚哉觚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D007] 안연(顔淵)처럼 되는 것 공자가 제자 안연을 평하여 “석 달 동안 인(仁)을 어기지 않았다.” 하였다.
[주-D008] 나이가 …… 이르러 나이가 50세가 되었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위(衛)나라 대부인 거백옥(蘧伯玉)이 “나이 50세가 되어 49년의 잘못을 깨달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淮南子 原道訓》
[주-D009] 기두(箕斗) 기성(箕星)과 북두성(北斗星)으로, 실제 내용은 없이 이름만 지닌 것을 말한다. 《시경》 〈대동(大東)〉에서 “남쪽 하늘에 기성이 있어도 나락을 까불 수 없고, 북쪽 하늘에 북두성이 있어도 술을 떠 마실 수 없네.〔維南有箕 不可以簸揚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10] 역사(櫟社)의 나무 구불구불하여 재목으로 쓸 수 없어 베이지 않은 나무로, 못났기 때문에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는 것을 비유한다. 옛날 장석(匠石)이란 목수가 제자들을 데리고 제(齊)나라로 가다가 곡원(曲轅)에서 역사(櫟社), 즉 사당 앞에 있는 큰 상수리나무를 보고 “이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수명이 길다.” 하였다. 그날 밤 꿈에 그 상수리나무가 나타나 장석에게 “나는 쓸모가 없기를 바란 지가 오래이다. 그래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하였다. 《莊子 人間世》
[주-D011] 동야(東野)는 …… 이르렀고 동야는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자인데, 소식(蘇軾)의 〈유자옥 제문〔祭柳子玉文〕〉에서 당나라 시인들의 시격(詩格)을 평하여, “맹교는 싸늘하고, 가도(賈島)는 수척하며, 원진(元稹)은 경박하고, 백거이는 비속하다.〔郊寒島瘦 元輕白俗〕”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12] 낭선(浪仙) …… 있었지만 낭선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자이다. 애초에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하여 장강 주부(長江主簿)를 지내기도 하였지만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퇴고(推敲)라는 말의 유래가 된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으로서, 맹교(孟郊)와 더불어 ‘교한도수(郊寒島瘦)’라 일컬어졌다.
[주-D013] 원공(元公)은 흉금이 쇄락하였고 원공은 송(宋)나라 주돈이(周敦頤)의 시호이다. 황정견(黃庭堅)이 그의 인품을 평하여 “염계(濂溪)의 마음은 쇄락하여 마치 ‘비 갠 뒤의 온화한 바람과 밝은 달〔光風霽月〕’과 같다.”라고 하였다.
[주-D014] 백자(伯子)는 …… 감돌아 백자는 송(宋)나라 학자 정호(程顥)를 가리키는데, 정호와 아우 정이(程頤)를 구분하여 형인 정호를 ‘백자’라 하고 아우 정이를 ‘숙자(叔子)’라 한다. 정이는 홀로 앉아 있을 적에는 석고상(石膏像) 같다가도, 사람을 접할 때면 한 덩어리의 화기〔一團和氣〕가 뭉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二程全書 卷12》
[주-D015] 농환(弄丸)〈태극도(太極圖)〉를 완상하는 일을 말한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자작진찬(自作眞贊)〉에서 “농환하는 여가에 한가로이 오간다.〔弄丸餘暇 閒往閒來〕” 하였는데, 그 소주(小註)에, “환(丸)은 태극이다.” 하였다. 《擊壤集 卷12》
[주-D016] 봄의 …… 관장하고 봄에 양기(陽氣)가 성해져 만물이 소생하므로 이른 것이다. 일원(一元)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천지의 원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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