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복이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次安生 景福 所寄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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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9회 작성일 21-07-25 06:47본문
안경복이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次安生 景福 所寄詩〕
금계집 내집 제1권 / 시(詩)
서생 안경복이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次安生 景福 所寄詩〕
강동과 위북이 아득히 몇 리던가 / 江東渭北杳幾里
꿈도 멀어 그리운 마음 아직 전하지 못해 / 遠夢未傳相思意
해질녘 난간에서 자주 머리 돌려 바라보며 / 日暮闌干回首頻
남으로 가는 기러기 편에 짧은 편지 전했네 / 天借南鴻傳尺字
게으르고 병이 많아 마음 터놓은 이 적었는데 / 疏慵多病少相許
공만 홀로 은근히 대하고 남들은 날 버렸지 / 公獨慇懃人衆棄
구슬처럼 낭랑한 시구가 바람결에 쏟아져 / 鏗鏘珠唾灑天風
땅에 던지면 구절마다 금석 소리 울렸지 / 一一金聲生擲地
아마도 그대는 늘 일없이 한가히 살며 / 想子投閒日無事
초연히 헛된 명예에 취하지 않을 사람 / 超然不受浮名醉
풍류는 한묵의 마당에서 홀로 휘파람 불고 / 風流孤嘯翰墨場
한 이랑에 사방 벽뿐인 집도 꾸리지 않았지 / 一畝四壁猶不治
의리와 이익의 많고 적음으로 승부 결정되고 / 肥臞義利判勝負
몸과 명예의 경중으로 표리를 알 수 있는 법 / 輕重身名知表裏
시정은 차고 수척한 기색을 띠지 않아 / 騷情不帶寒瘦氣
건안의 여섯 선비를 따르려 하였고 / 建安思追六士子
오로지 자신을 수양하는 공부에 힘써 / 專心況是爲己學
털끝만한 것도 점검하여 진위를 분별하였네 / 點檢毫末分誠僞
모친 앞에서 봄날에 형제들 화기애애하니 / 萱闈春日吹塤篪
한 집안의 즐거운 일이 또 겸비되었던 것 / 一家樂事且兼備
두터운 명성이 사림에 우뚝 솟았건만 / 裒然聲價聳士林
몇 사람이나 걸상 두고 서치처럼 높였던가 / 幾人設榻推徐穉
근래에 천거되어 창고 관리 맡으셨는데 / 頃薦一名淹管庫
풍채가 범인과는 아주 달랐네 / 風儀逈與尋常異
일장춘몽에서 깨어 저자거리에 몸 숨기고 / 炊粱夢罷隱城市
문 닫고는 이름 다투는 일에 끼지 않았는데 / 閉闔不關爭名事
때로 안개 속 표범의 털 무늬 하나 드러나 / 時時霧豹露一斑
공작의 비취색 깃털 같은 빛 사람 놀라게 했네 / 華采驚人如孔翠
포정의 칼솜씨와 같은 능력을 감추고 / 善藏良庖刃可恢
일을 논함에 옛사람에게 부끄러울 게 없었지 / 論事古人猶不愧
충천하려면 삼 년을 날지 않는 새가 되어야 하고 / 衝天應作三年鳥
천리마는 알아주는 이 없어도 걱정할 것 없으리 / 垂耳莫愁千里驥
나에게 과분한 칭찬과 사랑을 주었고 / 奬許誠知愛我過
쇠도 끊을 두터운 우의까지 입었는데 / 斷金交情荷高誼
졸렬하여 어울리지 못하는 것 스스로 비웃고 / 自笑蹇拙不偕俗
쓸모없는 재능은 버려진 나무 조각과 같다네 / 散材正與溝斷類
십년 청포 두르고 고을 원에도 임명되었는데 / 十載靑袍寵竹使
일에는 나태하면서 공연히 음식만 축냈으니 / 怠事受直空饞饋
간측한 임금님의 말씀이 골수에 스며 있어 / 懇惻王言緘在髓
북쪽 하늘 바라보며 감격의 눈물 뿌린다네 / 北望堯天揮感淚
다행히 한 자락 빼어난 시내와 산 얻었는데 / 溪山幸占一段奇
평소 강호에 살려던 뜻과 우연히 들어맞아 / 偶契平生湖海志
지팡이 짚고 바위 올라 폭포수로 양치하고 / 倚杖風巖潄飛瀑
나막신 신고 구름 숲속을 뚫고 다닌다네 / 謝屐穿盡雲林邃
다만 가뭄을 만나 가을 결실이 안 되었으니 / 秪緣離旱不成秋
창고 열어 구제하지 않으면 나락에 떨어져도 / 發棠未周溝壑墜
감문관의 〈유민도〉 한 장 올릴 길이 없어 / 監門一圖進無階
오로지 하늘 우러르며 하사만 기대한다네 / 瞻仰旻天偏靳賜
남강의 정사 황폐하여 강학할 겨를도 없는데 / 南康荒政講不暇
복자천처럼 거문고 타는 것을 어찌 바라랴 / 宓宰彈琴那得企
마음 수고롭고 정사 졸렬해 스스로 탄핵해야 하나 / 心勞政拙宜自劾
분우의 책임 맡긴 임금의 뜻 저버려 밤마다 두렵네 / 夕惕恐負分憂寄
세상살이란 스스로 기름이 되어 태우는 거고 / 因思處世自膏火
헛된 꿈이 홰나무 베고 잔 잠뿐일까 여겼네 / 夢幻不啻槐根睡
허리 굽히기 싫어했던 이는 팽택의 노인이고 / 病腰懶折彭澤翁
양생술 깊이 배웠던 이는 칠원의 관리였나니 / 養生頗學漆園吏
은어대 불태우고 세상 사슬 벗어던지고 / 一焚銀魚謝塵械
필마로 가을 산을 멋대로 다니며 시 읊고 싶네 / 匹馬秋山吟信轡
어젯밤에 성산의 종이 소식 전하기를 / 昨夜星奚報消息
시내 남쪽의 송죽이 시들었다고 했네 / 溪南松竹荒憔悴
백구와의 맹세는 식고 학들도 원망이 많아 / 鷗盟久寒鶴怨多
장저ㆍ걸닉과 지팡이 나란히 하기로 약속했나니 / 沮溺已約聯杖植
시 천 수가 자랑스럽고 봉읍 만호는 가벼우니 / 千詩猶詑萬戶輕
낚싯대 하나 잡고 보면 삼공에 비할 수 있겠지 / 一竿肯把三公比
객창에서 가을을 만나니 감회가 많아 / 客窓逢秋感多緖
미친 듯이 읊은 구절 엮어 후의에 답한다네 / 聊綴狂吟酬厚記
[주-D001] 안경복(安景福)
미상이다.
[주-D002] 강동(江東)과 위북(渭北)
두보(杜甫)의 〈춘일회이백(春日懷李白)〉 시에서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 한 그루, 장강 동쪽 해질녘 구름일세.〔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는 시구가 있다. 이는 친한 친구끼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함을 묘사한 것이다.
[주-D003] 건안(建安)의 여섯 선비
건안 시대에는 흔히 건안칠자(建安七子)를 꼽는데, ‘여섯 선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미상이다. 건안칠자는 후한 헌제(後漢獻帝)의 건안 연간(196~220)에 조조(曹操) 부자 밑에서 활약한 문학 집단 가운데 특히 뛰어난 재자(才子)인 공융(孔融), 완우(阮瑀), 서간(徐幹), 진림(陳琳), 응창(應瑒), 왕찬(王粲), 유정(劉楨)인데, 이들의 문학은 시부(詩賦)를 중심으로 하여 격조가 높고 부화(浮華)에 흐르는 폐단이 없었다고 한다.
[주-D004] 걸상 …… 높였던가
선비를 특별히 예우한 것을 뜻하는 고사이다. 중국 후한 때 예장 태수 진번(陳蕃)은 오직 은사(隱士) 서치(徐穉)만을 위하여 의자 하나를 만들어 그를 특별히 대접하고 그가 떠나면 의자를 위로 매달아 두고는 다른 사람에게는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주-D005] 안개 …… 무늬
은거하며 문덕(文德)을 닦는 사람을 비유한다. 옛날 중국에 답자(答子)라는 사람이 3년 동안 옹기를 구웠는데, 명예는 얻지 못하고 집안만 부유해졌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남산에 검은 표범이 있는데,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낄 때는 7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털을 윤택하게 하여 무늬를 아름답게 합니다.”라고 하였다. 《列女傳》
[주-D006] 충천하려면 …… 하고
오래 축적하여 일거에 출세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중국 춘추 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려고 3년 동안 주색에 빠져 지내자 충신 오거(伍擧)가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가 있는데 이 새가 무슨 새입니까?”라고 비유하자, 장왕이 알아듣고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이제 날면 하늘에 닿을 것이요,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이제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史記 卷40 楚世家》
[주-D007] 감문관(監門官)의 유민도(流民圖)
중국 송(宋)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이 폐해가 많아 감문관 정협(鄭俠)이 왕안석에게 여러 번 그 폐해를 보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후 정협은 왕안석이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유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린 〈유민도〉를 상소와 함께 역마를 띄워 직접 올렸다. 신종이 〈유민도〉를 보고 탄식하며 신법을 중지하자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한다. 《宋史 卷321 鄭俠列傳》
[주-D008] 남강(南康)의 정사
주희(朱熹)가 남강 고을의 원이 되었을 때 방문(榜文)을 통해 백성을 권면하였는데, 밭갈이며 거름주기, 풀베기하는 절차는 물론 삼과 콩을 심는 일과 제방을 쌓는 등의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상하게 타일렀으며, 또 직접 들녘을 순시하며 가르친 대로 따르지 않는 자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주-D009] 홰나무 …… 잠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고사로 덧없는 인생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唐)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대낮에 홰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괴안국(槐安國)에 들러 공주에게 장가들어 남가 태수(南柯太守)를 지내는 등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꿈속의 괴안국이 바로 나무 밑동의 개미굴이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주-D010] 팽택(彭澤)의 노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그는 팽택의 현령으로 있다가 다섯 말의 녹봉〔五斗米〕 때문에 소인배들에게 허리를 굽히기〔折腰〕 싫다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주-D011] 칠원(漆園)의 관리
장자(莊子)를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몽(蒙) 땅의 칠원 고을에서 관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주-D012] 장저(長沮) 걸닉(桀溺)
중국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들로, 공자가 세상사에 연연하는 것을 비웃으며 자로(子路)에게 자기들과 함께 농사나 짓자고 하였다. 《論語 微子》
[주-D013] 낚싯대 …… 있겠지
당(唐)나라 대복고(戴復古)의 시 〈조대(釣臺)〉에서 “만사에 마음 비우고 낚싯대 하나 잡았으니, 삼공 벼슬 준다 해도 이 강산과 바꾸지 않으리.〔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라고 하였다.
금계집 내집 제1권 / 시(詩)
서생 안경복이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次安生 景福 所寄詩〕
강동과 위북이 아득히 몇 리던가 / 江東渭北杳幾里
꿈도 멀어 그리운 마음 아직 전하지 못해 / 遠夢未傳相思意
해질녘 난간에서 자주 머리 돌려 바라보며 / 日暮闌干回首頻
남으로 가는 기러기 편에 짧은 편지 전했네 / 天借南鴻傳尺字
게으르고 병이 많아 마음 터놓은 이 적었는데 / 疏慵多病少相許
공만 홀로 은근히 대하고 남들은 날 버렸지 / 公獨慇懃人衆棄
구슬처럼 낭랑한 시구가 바람결에 쏟아져 / 鏗鏘珠唾灑天風
땅에 던지면 구절마다 금석 소리 울렸지 / 一一金聲生擲地
아마도 그대는 늘 일없이 한가히 살며 / 想子投閒日無事
초연히 헛된 명예에 취하지 않을 사람 / 超然不受浮名醉
풍류는 한묵의 마당에서 홀로 휘파람 불고 / 風流孤嘯翰墨場
한 이랑에 사방 벽뿐인 집도 꾸리지 않았지 / 一畝四壁猶不治
의리와 이익의 많고 적음으로 승부 결정되고 / 肥臞義利判勝負
몸과 명예의 경중으로 표리를 알 수 있는 법 / 輕重身名知表裏
시정은 차고 수척한 기색을 띠지 않아 / 騷情不帶寒瘦氣
건안의 여섯 선비를 따르려 하였고 / 建安思追六士子
오로지 자신을 수양하는 공부에 힘써 / 專心況是爲己學
털끝만한 것도 점검하여 진위를 분별하였네 / 點檢毫末分誠僞
모친 앞에서 봄날에 형제들 화기애애하니 / 萱闈春日吹塤篪
한 집안의 즐거운 일이 또 겸비되었던 것 / 一家樂事且兼備
두터운 명성이 사림에 우뚝 솟았건만 / 裒然聲價聳士林
몇 사람이나 걸상 두고 서치처럼 높였던가 / 幾人設榻推徐穉
근래에 천거되어 창고 관리 맡으셨는데 / 頃薦一名淹管庫
풍채가 범인과는 아주 달랐네 / 風儀逈與尋常異
일장춘몽에서 깨어 저자거리에 몸 숨기고 / 炊粱夢罷隱城市
문 닫고는 이름 다투는 일에 끼지 않았는데 / 閉闔不關爭名事
때로 안개 속 표범의 털 무늬 하나 드러나 / 時時霧豹露一斑
공작의 비취색 깃털 같은 빛 사람 놀라게 했네 / 華采驚人如孔翠
포정의 칼솜씨와 같은 능력을 감추고 / 善藏良庖刃可恢
일을 논함에 옛사람에게 부끄러울 게 없었지 / 論事古人猶不愧
충천하려면 삼 년을 날지 않는 새가 되어야 하고 / 衝天應作三年鳥
천리마는 알아주는 이 없어도 걱정할 것 없으리 / 垂耳莫愁千里驥
나에게 과분한 칭찬과 사랑을 주었고 / 奬許誠知愛我過
쇠도 끊을 두터운 우의까지 입었는데 / 斷金交情荷高誼
졸렬하여 어울리지 못하는 것 스스로 비웃고 / 自笑蹇拙不偕俗
쓸모없는 재능은 버려진 나무 조각과 같다네 / 散材正與溝斷類
십년 청포 두르고 고을 원에도 임명되었는데 / 十載靑袍寵竹使
일에는 나태하면서 공연히 음식만 축냈으니 / 怠事受直空饞饋
간측한 임금님의 말씀이 골수에 스며 있어 / 懇惻王言緘在髓
북쪽 하늘 바라보며 감격의 눈물 뿌린다네 / 北望堯天揮感淚
다행히 한 자락 빼어난 시내와 산 얻었는데 / 溪山幸占一段奇
평소 강호에 살려던 뜻과 우연히 들어맞아 / 偶契平生湖海志
지팡이 짚고 바위 올라 폭포수로 양치하고 / 倚杖風巖潄飛瀑
나막신 신고 구름 숲속을 뚫고 다닌다네 / 謝屐穿盡雲林邃
다만 가뭄을 만나 가을 결실이 안 되었으니 / 秪緣離旱不成秋
창고 열어 구제하지 않으면 나락에 떨어져도 / 發棠未周溝壑墜
감문관의 〈유민도〉 한 장 올릴 길이 없어 / 監門一圖進無階
오로지 하늘 우러르며 하사만 기대한다네 / 瞻仰旻天偏靳賜
남강의 정사 황폐하여 강학할 겨를도 없는데 / 南康荒政講不暇
복자천처럼 거문고 타는 것을 어찌 바라랴 / 宓宰彈琴那得企
마음 수고롭고 정사 졸렬해 스스로 탄핵해야 하나 / 心勞政拙宜自劾
분우의 책임 맡긴 임금의 뜻 저버려 밤마다 두렵네 / 夕惕恐負分憂寄
세상살이란 스스로 기름이 되어 태우는 거고 / 因思處世自膏火
헛된 꿈이 홰나무 베고 잔 잠뿐일까 여겼네 / 夢幻不啻槐根睡
허리 굽히기 싫어했던 이는 팽택의 노인이고 / 病腰懶折彭澤翁
양생술 깊이 배웠던 이는 칠원의 관리였나니 / 養生頗學漆園吏
은어대 불태우고 세상 사슬 벗어던지고 / 一焚銀魚謝塵械
필마로 가을 산을 멋대로 다니며 시 읊고 싶네 / 匹馬秋山吟信轡
어젯밤에 성산의 종이 소식 전하기를 / 昨夜星奚報消息
시내 남쪽의 송죽이 시들었다고 했네 / 溪南松竹荒憔悴
백구와의 맹세는 식고 학들도 원망이 많아 / 鷗盟久寒鶴怨多
장저ㆍ걸닉과 지팡이 나란히 하기로 약속했나니 / 沮溺已約聯杖植
시 천 수가 자랑스럽고 봉읍 만호는 가벼우니 / 千詩猶詑萬戶輕
낚싯대 하나 잡고 보면 삼공에 비할 수 있겠지 / 一竿肯把三公比
객창에서 가을을 만나니 감회가 많아 / 客窓逢秋感多緖
미친 듯이 읊은 구절 엮어 후의에 답한다네 / 聊綴狂吟酬厚記
[주-D001] 안경복(安景福)
미상이다.
[주-D002] 강동(江東)과 위북(渭北)
두보(杜甫)의 〈춘일회이백(春日懷李白)〉 시에서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 한 그루, 장강 동쪽 해질녘 구름일세.〔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라는 시구가 있다. 이는 친한 친구끼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함을 묘사한 것이다.
[주-D003] 건안(建安)의 여섯 선비
건안 시대에는 흔히 건안칠자(建安七子)를 꼽는데, ‘여섯 선비’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미상이다. 건안칠자는 후한 헌제(後漢獻帝)의 건안 연간(196~220)에 조조(曹操) 부자 밑에서 활약한 문학 집단 가운데 특히 뛰어난 재자(才子)인 공융(孔融), 완우(阮瑀), 서간(徐幹), 진림(陳琳), 응창(應瑒), 왕찬(王粲), 유정(劉楨)인데, 이들의 문학은 시부(詩賦)를 중심으로 하여 격조가 높고 부화(浮華)에 흐르는 폐단이 없었다고 한다.
[주-D004] 걸상 …… 높였던가
선비를 특별히 예우한 것을 뜻하는 고사이다. 중국 후한 때 예장 태수 진번(陳蕃)은 오직 은사(隱士) 서치(徐穉)만을 위하여 의자 하나를 만들어 그를 특별히 대접하고 그가 떠나면 의자를 위로 매달아 두고는 다른 사람에게는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주-D005] 안개 …… 무늬
은거하며 문덕(文德)을 닦는 사람을 비유한다. 옛날 중국에 답자(答子)라는 사람이 3년 동안 옹기를 구웠는데, 명예는 얻지 못하고 집안만 부유해졌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남산에 검은 표범이 있는데,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낄 때는 7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털을 윤택하게 하여 무늬를 아름답게 합니다.”라고 하였다. 《列女傳》
[주-D006] 충천하려면 …… 하고
오래 축적하여 일거에 출세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중국 춘추 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려고 3년 동안 주색에 빠져 지내자 충신 오거(伍擧)가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가 있는데 이 새가 무슨 새입니까?”라고 비유하자, 장왕이 알아듣고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이제 날면 하늘에 닿을 것이요,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이제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史記 卷40 楚世家》
[주-D007] 감문관(監門官)의 유민도(流民圖)
중국 송(宋)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이 폐해가 많아 감문관 정협(鄭俠)이 왕안석에게 여러 번 그 폐해를 보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후 정협은 왕안석이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유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린 〈유민도〉를 상소와 함께 역마를 띄워 직접 올렸다. 신종이 〈유민도〉를 보고 탄식하며 신법을 중지하자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한다. 《宋史 卷321 鄭俠列傳》
[주-D008] 남강(南康)의 정사
주희(朱熹)가 남강 고을의 원이 되었을 때 방문(榜文)을 통해 백성을 권면하였는데, 밭갈이며 거름주기, 풀베기하는 절차는 물론 삼과 콩을 심는 일과 제방을 쌓는 등의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상하게 타일렀으며, 또 직접 들녘을 순시하며 가르친 대로 따르지 않는 자는 벌을 주었다고 한다.
[주-D009] 홰나무 …… 잠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고사로 덧없는 인생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唐)나라 때 순우분(淳于棼)이 대낮에 홰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괴안국(槐安國)에 들러 공주에게 장가들어 남가 태수(南柯太守)를 지내는 등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꿈속의 괴안국이 바로 나무 밑동의 개미굴이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주-D010] 팽택(彭澤)의 노인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그는 팽택의 현령으로 있다가 다섯 말의 녹봉〔五斗米〕 때문에 소인배들에게 허리를 굽히기〔折腰〕 싫다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주-D011] 칠원(漆園)의 관리
장자(莊子)를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몽(蒙) 땅의 칠원 고을에서 관리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주-D012] 장저(長沮) 걸닉(桀溺)
중국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들로, 공자가 세상사에 연연하는 것을 비웃으며 자로(子路)에게 자기들과 함께 농사나 짓자고 하였다. 《論語 微子》
[주-D013] 낚싯대 …… 있겠지
당(唐)나라 대복고(戴復古)의 시 〈조대(釣臺)〉에서 “만사에 마음 비우고 낚싯대 하나 잡았으니, 삼공 벼슬 준다 해도 이 강산과 바꾸지 않으리.〔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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