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천에게 화답하고서 김계진에게 주고 겸하여 주무릉과 조송강에게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절구 6수 〔次退溪 時爲大司成 和林石川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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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4회 작성일 21-07-25 06:43본문
임석천에게 화답하고서 김계진에게 주고 겸하여 주무릉과 조송강에게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절구 6수 〔次退溪 時爲大司成 和林石川贈金季珍兼示周武陵趙松岡 六絶〕
퇴계가 이때 대사성이었다. 임석천에게 화답하고서 김계진에게 주고 겸하여 주무릉과 조송강에게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절구 6수 〔次退溪 時爲大司成 和林石川贈金季珍兼示周武陵趙松岡 六絶〕
고을 관아에서 잠이 이어지는 밤은 / 鈴閣眠紬夜
대궐에서는 조회 기다릴 시간 / 金門待漏朝
새와 물고기는 함께 만나기 어렵고 / 羽鱗難會合
붕새와 메추라기는 노는 세상이 다르다네 / 鵬鷃各逍遙
옛 친구 천 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 故人千里遠
밝은 달은 두 고을을 모두 비추리 / 明月兩鄕皆
맑은 달빛 움켜 드리고 싶건만 / 欲把淸光贈
하늘이 높아 오를 수가 없다네 / 天高不可階
도는 고원한 것이 아니건만 / 此道非高遠
사람들은 굽고 길로 찾아가네 / 人多曲逕尋
모름지기 바른 학문을 밝혀야 / 要須明正學
사람들 마음 인도할 수 있겠지 / 便可牖人心
용릉의 늙은이 몹시도 그리다가 / 苦憶舂陵叟
서로 만나 기쁨에 잠을 이루지 못했네 / 相逢喜不眠
남쪽으로 와 해가 늦은 것에 놀라니 / 南來驚歲晩
둥근 달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 幾見望舒圓
송강에게서 좋은 소식 있으니 / 松岡聞好信
집 주변의 산 구름 바라보며 누워있다네 / 臥對屋山雲
대나무를 사랑하여 어여쁜 시구 남기니 / 愛竹留佳句
맑은 바람이 차군에게 읍을 하겠네 / 淸風揖此君
석천의 시 즐겨 읊었는데 / 愛吟石川句
기풍과 곡조가 옛날 거문고 소리 같았네 / 風調如古琴
은근히 칠수에게 감사하노니 / 慇懃謝漆水
시통에 맑은 시구 부쳐주었네 / 筒裏寄淸音
[주-D001] 김계진(金季珍)
김언거(金彦琚)로, 계진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풍영(豐咏)이다. 김정(金禎)의 아들이다.
[주-D002] 용릉(舂陵)의 늙은이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용릉은 북송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살던 곳으로 중국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에 있다.
[주-D003] 차군(此君)
대나무의 별칭이다.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친구에게 빌린 집에 기거하면서 문득 대나무를 심으라고 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그가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어찌 하루라도 이 친구가 없을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邪〕”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주-D004]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으로 석천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태수(太樹)이다. 을사사화 때 아우 임백령(林百齡)이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 일파에 가담하는 것을 보고 해남(海南)에 은거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하였다. 저서에 《석천집》이 있다.
[주-D005] 칠수(漆水)
제목의 김언거(金彦琚)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퇴계집》 권4 〈서주경유제김계진시첩후(書周景遊題金季珍詩帖後)〉에서 인용한 김언거의 말에서 “나의 옛집이 광주의 칠수 가에 있었다.〔吾舊家光之漆水上〕”라고 하였다. 또 《퇴계집》 별집 권2 〈황중거기전김계진시간……(黃仲擧寄傳金季珍詩簡……)〉 시에서 “누구에 의지해 흉중의 일을 물을까. 칠수의 시가 옴에 홀로 수없이 읊어보네.〔憑誰更問懷中事 漆水詩來費獨吟〕”라고 하였다.
퇴계가 이때 대사성이었다. 임석천에게 화답하고서 김계진에게 주고 겸하여 주무릉과 조송강에게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절구 6수 〔次退溪 時爲大司成 和林石川贈金季珍兼示周武陵趙松岡 六絶〕
고을 관아에서 잠이 이어지는 밤은 / 鈴閣眠紬夜
대궐에서는 조회 기다릴 시간 / 金門待漏朝
새와 물고기는 함께 만나기 어렵고 / 羽鱗難會合
붕새와 메추라기는 노는 세상이 다르다네 / 鵬鷃各逍遙
옛 친구 천 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 故人千里遠
밝은 달은 두 고을을 모두 비추리 / 明月兩鄕皆
맑은 달빛 움켜 드리고 싶건만 / 欲把淸光贈
하늘이 높아 오를 수가 없다네 / 天高不可階
도는 고원한 것이 아니건만 / 此道非高遠
사람들은 굽고 길로 찾아가네 / 人多曲逕尋
모름지기 바른 학문을 밝혀야 / 要須明正學
사람들 마음 인도할 수 있겠지 / 便可牖人心
용릉의 늙은이 몹시도 그리다가 / 苦憶舂陵叟
서로 만나 기쁨에 잠을 이루지 못했네 / 相逢喜不眠
남쪽으로 와 해가 늦은 것에 놀라니 / 南來驚歲晩
둥근 달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 幾見望舒圓
송강에게서 좋은 소식 있으니 / 松岡聞好信
집 주변의 산 구름 바라보며 누워있다네 / 臥對屋山雲
대나무를 사랑하여 어여쁜 시구 남기니 / 愛竹留佳句
맑은 바람이 차군에게 읍을 하겠네 / 淸風揖此君
석천의 시 즐겨 읊었는데 / 愛吟石川句
기풍과 곡조가 옛날 거문고 소리 같았네 / 風調如古琴
은근히 칠수에게 감사하노니 / 慇懃謝漆水
시통에 맑은 시구 부쳐주었네 / 筒裏寄淸音
[주-D001] 김계진(金季珍)
김언거(金彦琚)로, 계진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풍영(豐咏)이다. 김정(金禎)의 아들이다.
[주-D002] 용릉(舂陵)의 늙은이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용릉은 북송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살던 곳으로 중국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에 있다.
[주-D003] 차군(此君)
대나무의 별칭이다. 동진(東晉)의 왕휘지(王徽之)가 친구에게 빌린 집에 기거하면서 문득 대나무를 심으라고 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그가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어찌 하루라도 이 친구가 없을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邪〕”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80 王徽之列傳》
[주-D004]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으로 석천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태수(太樹)이다. 을사사화 때 아우 임백령(林百齡)이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 일파에 가담하는 것을 보고 해남(海南)에 은거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성격이 강직하였다. 저서에 《석천집》이 있다.
[주-D005] 칠수(漆水)
제목의 김언거(金彦琚)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퇴계집》 권4 〈서주경유제김계진시첩후(書周景遊題金季珍詩帖後)〉에서 인용한 김언거의 말에서 “나의 옛집이 광주의 칠수 가에 있었다.〔吾舊家光之漆水上〕”라고 하였다. 또 《퇴계집》 별집 권2 〈황중거기전김계진시간……(黃仲擧寄傳金季珍詩簡……)〉 시에서 “누구에 의지해 흉중의 일을 물을까. 칠수의 시가 옴에 홀로 수없이 읊어보네.〔憑誰更問懷中事 漆水詩來費獨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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