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 피해 우거하면서〔避寓宣城縣村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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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42회 작성일 21-07-25 06:53본문
시골집에 피해 우거하면서〔避寓宣城縣村舍〕
금계집 내집 제1권 / 시(詩)
선성현 시골집에 피해 우거하면서〔避寓宣城縣村舍〕
정월에 집을 떠나니 집 없는 사람과 같아 / 一月離家猶靡家
세월이 빨리 지나는 것에 유달리 놀라네 / 偏驚瞥眼年光過
문화산 눈 녹아 저녁 산 드러나고 / 文華雪盡暮山出
낙동강 얼음 풀려 봄물 많이 불어났네 / 淸洛氷消春水多
거리의 안개 머금은 버들은 고운 빛 띠려 하고 / 巷柳含煙欲弄色
강가의 꽃망울 맺힌 매화는 꽃잎 날리려 하네 / 江梅綴玉將飄華
등불 아래서 홀로 읊다 머리 묻고 잠들었더니 / 孤吟燈下蒙頭睡
동창에 밝은 해가 높이 떠올랐네 / 明發東窓昇日車
[주-D001] 문화산(文華山)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옛날에 청량산(淸凉山)의 이명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전거를 보면, 고려 안축(安軸)의 《근재집》 권2 〈영가(永嘉) 문화산(文華山)〉 시에서 “신라 시대 김생의 필법 신기하였으니, 글씨 공부하던 산중 서실 천년이 되었다네.〔羅代金生筆法新 學書山室已千春〕”라고 하였고, 《퇴계집》 속집 권5 〈조사경에게 주다〔與趙士敬〕〉라는 편지 내용에서 “ ‘문화’ 두 글자는 그 이름이 매우 좋지만 지리지에 이 이름이 없고 다만 토속에 전해오는 것이니 이것으로 일컬으면 사람들이 청량산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별도의 다른 산이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본래의 이름으로 일컫는 것이 온당하다.〔文華二字 其名甚好 但地誌無此稱 只因土俗所傳而如此稱之 人不知爲淸涼 而認爲別有他山 不如稱本號爲穩〕”라고 하였다.
금계집 내집 제1권 / 시(詩)
선성현 시골집에 피해 우거하면서〔避寓宣城縣村舍〕
정월에 집을 떠나니 집 없는 사람과 같아 / 一月離家猶靡家
세월이 빨리 지나는 것에 유달리 놀라네 / 偏驚瞥眼年光過
문화산 눈 녹아 저녁 산 드러나고 / 文華雪盡暮山出
낙동강 얼음 풀려 봄물 많이 불어났네 / 淸洛氷消春水多
거리의 안개 머금은 버들은 고운 빛 띠려 하고 / 巷柳含煙欲弄色
강가의 꽃망울 맺힌 매화는 꽃잎 날리려 하네 / 江梅綴玉將飄華
등불 아래서 홀로 읊다 머리 묻고 잠들었더니 / 孤吟燈下蒙頭睡
동창에 밝은 해가 높이 떠올랐네 / 明發東窓昇日車
[주-D001] 문화산(文華山)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옛날에 청량산(淸凉山)의 이명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전거를 보면, 고려 안축(安軸)의 《근재집》 권2 〈영가(永嘉) 문화산(文華山)〉 시에서 “신라 시대 김생의 필법 신기하였으니, 글씨 공부하던 산중 서실 천년이 되었다네.〔羅代金生筆法新 學書山室已千春〕”라고 하였고, 《퇴계집》 속집 권5 〈조사경에게 주다〔與趙士敬〕〉라는 편지 내용에서 “ ‘문화’ 두 글자는 그 이름이 매우 좋지만 지리지에 이 이름이 없고 다만 토속에 전해오는 것이니 이것으로 일컬으면 사람들이 청량산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별도의 다른 산이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본래의 이름으로 일컫는 것이 온당하다.〔文華二字 其名甚好 但地誌無此稱 只因土俗所傳而如此稱之 人不知爲淸涼 而認爲別有他山 不如稱本號爲穩〕”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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