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성화보 (1465-1487) > 평해황씨대동보펀찬위원회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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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성화보 (1465-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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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9회 작성일 26-05-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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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족보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문화유산이다. 40여년 전 한국 을 방문한 독일의 사회학자보르노 박사는 한국의 족보가 사회의 질서와 도덕성을 유지하여 국가발전에 기여를 할 것으로예측하였다. 어느 한국학자가 역사학자 토인비에게 지구가 멸망해서 다른 별로 이주할 때 한 가지만 가져가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 가겠느냐고 물었다. 토인비는 한국의 족보를 가져가겠노라고대답했다고 한다.

광개토왕릉비에 새겨진 계보는 오늘날의 족보와는 다르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계전승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육조시대부터 가계보를 만들었고 송대와 원대에 널리 성행하였다. 고려시대에도 일부 명문가에서 가계기록을 남겼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실제로 남아있는 기록은 없다. 족보의 기본은 성씨인데 성은 인류가 혈통을 기억하고 조상과 가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었다. 성씨의 성은 혈족집단을 말하고 씨는 사는 지역 즉 본관을 말한다.

우리 역시에 현존하는 형태의 족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여러 형태의 가계 전승기 록들이 있었다 그것은 지배계층의 가문의식, 왕실족보 편찬의 영향, 음서 및 재산상속과 같은 현실적필요성에 따라 작성되었다. 음서란 공신이나 고위관리의 자손을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채용하는 제도이다. 고려에서 조선전기까지는 위 4대. 아래 4대로 한정하여 가계보를 기록하는 경향이있었지만, 조선중기 이후부터 수십대의 상하수평관계를 기록하는 오늘날의 족보가 만들어졌다. 이는 조선이 기존의 위아래 4대 동족 8촌으로 제한했던 친족 중심 사회에서 같은 시조를 모시는모든 후손들 을 포괄하는 대동사회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가보 형식을 갖춘 최초의 족보는 1423년 문화유씨가 발행한 영락보이다. 그러나 영락보는 서문만 존재하고 본문은 찾을 수가 없다. 영락은 명나라 영락제(1403-1424)의 연호이다. 본문까지 존재하는 제일 오래된 족보는 안동권씨 성화보이다. 성화(1465-1487)는 명나라 성화제의 연호이다. 하버드대학교 동양학과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는 안동권씨 성화보를 국립중앙도서 관에 소장된 마이크로필름에서 찾아냈다. 

이 족보는 이전까지 기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문화유씨 가정보(1562)보다 86년 앞선 1476년(성종7년)에 간행된 것으로 3권 12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족보는 원본이 없고 중간본만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초기 족보를 만든 이유는 조상의 관직제수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이성무 교수는 주장한다. 고려 말 홍건적 또는 왜구와의 전투에서 공을 쌓은 사람들에게 관직을 남발하여 관직세계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기 가문이 신진 양반과 다름을 과시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동권씨 세보(1476)에는 안동권씨의 본손과 외손을 자세히 등재하고 있다. 태조부터 성종 까지 90년 간에 치른 74차례 과거에서 급제자의 수가 1.794명이 었는데. 이 중 안동권씨 세보(성화보)에 등재된 인물이 901명으로 급제자의 51%를 차지한다. 그중 고위 관리까지 역임한 사람이 70%에 이른다고 이양재 연구자는 말한다. 그래서 이 족보는 조선 초기 사회의 상류층 인맥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부천굴포항뉴스(http://www.bucheon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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