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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선비촌 중심인물...서한정, 권득평, 김담, 이진, 송석충, 문경동 > 錦仙 선비자락 소식

영주 선비촌 중심인물...서한정, 권득평, 김담, 이진, 송석충, 문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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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6회 작성일 23-09-0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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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서한정(徐翰廷 1407-1490) : 조선 태종~성종. 본관 달성. 호는 돈암(遯菴).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47세 되던 해에 계유정란을 일으킨 세조가 불의한 방법으로 조카(단종)의 보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는 대과응시를 포기하고 대구 화원에서 영주의 산이촌(현재의 이산)으로 은둔하여 단종에 대해 절의를 지킨 선비의 삶을 살았다. 만년에는 다시 순흥 등강촌(현재의 단산 동원리)에 몇 칸의 집을 마련하여 백이숙제의 절의를 본받고자 했다. 당시 효행으로 덕망이 높았던 권득평은 그에게 증여한 시에서 맑은 표치는 백이의 반열에 못지 않네라고 칭송했다. 구고서원에 배향되고 후에 절의로 지평에 증직됐다. 계룡산 숙모전에 단종의 위패를 모시는 곳에 여러 지사들과 함께 배향되었다. 돈암집이 있다.

 

8.권득평(權得平 1407-미상) : 태종~미상. 본관 안동. 호는 회봉(檜峰). 순흥부 동원(현재의 단산면 동원리)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기특하여 어버이 뜻을 거스름이 없었고 글읽기를 좋아했다. 1462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출세에는 뜻이 없고 강학과 어버이 봉양에만 힘썼다.

부친이 중병으로 눈이 멀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하던 중 겨울인데도 복숭아를 먹고 싶다하여 어디서 구할까 생각하며 마을 앞 냇가를 오르내리면서 슬픔에 잠겼다. 이때 얼음 구멍 사이로 푸른 잎이 달린 복숭아 가지가 떠내려 와서 건져보니 정말 붉은 복숭아였다. 그는 하늘이 준 것이라 생각하여 몇 번 절하고 소중하게 갖고 와서 부친께 드렸더니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고 한다. 1465년 부친상과 모친상을 연이어 당하자 6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시묘살이를 마치고서도 사당에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올렸으며 나들이할 때는 반드시 사당에 참배를 했다. 1499년 그의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정려각을 세웠으나 지금은 비석만 남아있다. 또 그 복숭아의 씨앗으로 풍기군수가 술잔을 만들어 그 하나는 권득평 종가에서 보존하고 제사 때는 그 잔으로 헌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사적은 삼강행실록에도 전하고 있으며 단산면 구구리에 후손들이 모신 등영사가 있다.

 

9.김담(金淡 1416-1464) : 조선 세종 때의 천문학자. 본관 선성.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이다. 영주 삼판서고택에서 태어나 1435(세종 17)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정자, 통사랑, 사헌부 감찰, 이조좌랑, 사간원 헌납, 성균관 직강, 홍문관 정자 등을 역임했다.

 

이순지와 더불어 당대에 가장 뛰어난 천문학자로서 당시의 천문·역법 사업에 크게 공헌하였고, 이순지·정인지 등과 함께 칠정산내편, 칠정산외편, 태양통궤, 태음통궤등의 천문역서를 편찬하였다. 특히 기존에 원나라에서 들여온 역서(수시력)는 중국 역법을 기준으로 제작돼 있어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그와 이순지 등은 그것을 우리나라 기준에 맞는 역법으로 바로 잡았던 것이다.

정도전의 매부이자 삼판서고택의 두 번째 판서의 주인인 황유정의 외손자로 삼판서고택의 세 번째 주인이 되었다. 영주 향현사(구강서원)와 문계서당(단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세종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의 매부로 알려져 있다.

 

10.이진(李畛 1420-1484) : 세종~성종. 자는 대여(大汝), 호는 송암(松巖) 또는 두은(杜隱). 약관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144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지냈고, 1445년 이조정랑을 거쳐 단종 때 임파현령을 역임했다.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비분하여 벼슬을 던지고 영남으로 내려와 영주 뒤새(杜西)에 숨어 절조를 지켰다. 자손에게도 가학(家學)을 지켜 벼슬에 나가지 말라고 일렀다. 영주 두서길에 그를 숭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지은 경림정(景臨亭)이 있다.

 

11.송석충(宋碩忠 1454-1524) : 단종~중종. 본관 야로(야성). 자는 원로(元老), 호는 눌옹(訥翁), 야성 송씨 영주 입향조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1478(성종 9)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해 과거를 준비하는 한편 김굉필·최보·박담손·신희연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정지교부계를 맺어 학문과 덕행을 닦았다.

1498(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 교유하던 인물들이 화를 입어 처벌받게 되자 평소 이들과 왕래했던 서간과 저술을 강물에 던지고 병을 빙자해 향리에 내려가 경서와 역사공부에 몰두했다. 성품이 강건하고 정직하며 명성과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영주산천서원에 제향됐다.

 

12.문경동(文敬仝 1457-1521) : 세조~중종. 본관 남평. 자는 흠지(欽之), 호는 창계(滄溪), 조선초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진유경(진중길의 증손)의 사위이다.

1495(연산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을 거쳐 비안현감, 강원도 도사를 역임하였다.

종부시 첨정으로 승진하여 춘추관 편수관을 겸임하고 연산군일기의 편찬에 참여했다. 삼포왜란(1510) 때 왜적토벌에 공을 세우고 성균관사성으로 승진했다. 독서를 좋아하고 시문에 능하여 유생들이 다투어 그의 글을 익혔다고 한다. 퇴계의 부인 허씨의 외조부이고(퇴계의 장인은 허찬), 퇴계의 묘갈명이 있다. <사진> 창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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