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선비촌 중심인물...조욱, 이황, 안현, 김난상, 이석간, 장수희 > 錦仙 선비자락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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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선비촌 중심인물...조욱, 이황, 안현, 김난상, 이석간, 장수희 > 錦仙 선비자락 소식

영주 선비촌 중심인물...조욱, 이황, 안현, 김난상, 이석간, 장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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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2회 작성일 23-09-0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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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조욱(趙昱, 1498821~ 15571210)은 조선의 유학자다. 자는 경양, 호는 우암, 본관은 평양이다.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오르지 않고 용문산으로 들어가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높은 학식과 인격이 세상에 알려지자 '용문 선생'이라 불리었다. 명종 때 현사로 뽑혀 선무항 내 섬주부직을 받았고, 장수 현감을 지냈다. 당시의 저명한 학자인 이황·서경덕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죽은 후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용문집이 있다. 운계서원에 제향되었다.

 

18.이황(李滉 1501-1570) : 연산군~선조. 본관 진보. 자 경호(景浩), 호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 시호 문순(文純)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주자의 사상을 깊게 연구하여 조선 성리학 발달의 기초를 형성했으며, ()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이기호발설을 주장하였다. 주리론 전통의 영남학파의 종조로 숭앙된다. 그는 풍기군수로 있던 15491월에 경상도관찰사 심통원(1499-?)을 통하여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1484-1555)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을 담은 소수(紹修)’로 결정하고 1550(명종 5) 2월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19. 안현(安玹) 1501-1560년 본관 순흥(順興). 자 중진(仲珍). 호 설강(雪江). 시호 문희(文僖). 1521(중종 16)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 교서관권지부정자(校書館權知副正字)가 되었다. 1524년 검열(檢閱), 1528년 주서(注書) 때 좌랑(佐郞) 박광우(朴光祐)의 무고로 삭직되었으며 투옥된 뒤 석방되었다. 그뒤 대교(待敎) ·봉교(奉敎)를 거쳐 1533년 지평(持平), 다음해 응교(應敎) ·장령(掌令) ·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1535년 집의(執義) 겸 경차관(敬差官)이 되고 부제학(副提學)을 거쳐, 1546(명종 1) 경상도관찰사, 1547년 한성부좌윤을 거쳐 판윤(判尹)에 이르렀다. 1553년 이조판서를 거쳐, 1558년 우의정이 되고 이어 좌의정에 올랐다. 의방(醫方)에도 정통하여 내외 의국(醫局)을 관리하였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20.김난상(金鸞祥 1507-1570) : 중종~선조. 자는 계응(季應), 호는 매양(梅陽). 본관 청도. 을사명현(乙巳名賢)으로 불린다. 22세에 퇴계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고 31세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저작에 임명됐다. 그후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면서 문정왕후의 명을 어긴 죄로 파직됐으며, 1547(명종 2) 9월의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19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선조 즉위 후 방면되어 기대승의 천거로 학행이 출중한 선비로 발탁, 홍문관 직제학에 이르렀다. 조선조 100인 명필록에 등재된 명필가로도 유명하며, 영주 오산서원에 제향되었다. 병산유집이 있다.

 

21.이석간(李碩幹 1509-1574) : 중종~선조. 본관 공주. 자는 중임(仲任)이며 영주 뒤세(杜西)에서 태어났다. 1534(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하여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곧 물러났다. 의술로 고명하여 여러 가지 신기한 일화를 남겼으나 아쉽게도 그러한 사실이 남아있는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명나라 황제의 부름을 받아 황태후의 괴이한 병을 고쳐주고 천하명의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그가 4명의 의원(이석간·채득기·박렴·허임)이 평생에 걸쳐 경험한 임상처방을 근거로 편찬한 사의경험방(四醫經驗方)은 임상을 통하여 체험으로 익힌 실증적이고 살아있는 한의학 전문서적이다. 특히 여기에 실려있는 300여종의 생약은 그 당시의 약에 대한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당시 민간 의방서로 애용되었던 이 책은 경험방·본초서·동의문견방등의 출전을 밝혀서 내용을 충실히 하였고, 병의 증세를 우리말로 해석하여 경험방의 고증과 그 지식을 대중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남겼다.

 

22.장수희(張壽禧 1516-1586) : 중종~선조. 본관 인동. 자는 우옹(祐翁), 호는 과재(果齋), 세조 때 적개공신 장말손의 증손이자 문경동의 외손자로 퇴계의 문인이다. 퇴계가 영주 초곡의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들었을 때 6세의 어린아이였지만 직접 책을 가지고 수업하면서 퇴계의 가르침을 받았다. 1547(명종 4) 소수서원에 입원 수학하였으며, 이산서원 창건의 주된 역할을 하였고 그 일을 주관하는 12년 동안에 규모를 세우고 비용을 보탰다. 음직으로 어모장군을 지내고 형조참의를 증직 받았으며 영주 한천서원에 배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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