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암 시에 차운해 쓰다〔次書遊仙巖〕 > 금계외집 5권 시

금계집 외집 제5권 / 시(詩)


유선암 시에 차운해 쓰다〔次書遊仙巖〕

한 번 금화산에 들어가 몇 번 겁회를 겪었나 / 一入金華幾劫灰
바위문 석실은 푸른 이끼에 잠겼네 / 巖扃石室鎖蒼苔
난새 타고 일찍이 노닐던 곳을 다시 찾으니 / 驂鸞更訪曾遊地
석류껍질로 벽에 그림 그리고 돌아온 것 보다 훨씬 낫네 / 太勝榴皮畫壁廻


강에 접한 선경의 양편은 평평한데 / 臨江玉扃兩邊平
우뚝한 봉우리 주변에 쇠를 깎아 이룬 듯하네 / 立立峯回削鐵成
바위 아래 물은 깊어 붉음과 푸름이 싸우니 / 巖下水深紅鬪碧
소나무 사이 철쭉은 노을빛 띠어 환하네 / 松間躑躅帶霞明


일찍이 삼신산을 향해 목공을 찾다가 / 曾向三山訪木公
도리어 석실을 쫒아 신선 자취 찾네 / 還從石室覓仙蹤
신령한 샘물로 위를 씻어내니 얼음보다 차갑고 / 靈源滌胃冰於冷
기이한 풀로 향기를 풍기니 꽃보다 아름답네 / 異卉薰人錦勝紅
보배로운 비결 남겨준 교진에게 읍하니 / 已揖喬眞遺寶訣
난새와 학을 몰고 서늘한 바람 탄 듯하네 / 疑驂鸞鶴御泠風
세속 먼지와 밥 짓는 연기는 원래 떨어졌으니 / 塵氛煙火元相隔
몸은 요대의 몇 겹에 있나 / 身在瑤臺第幾重


나막신 신고 돌길 따라 기이한 곳 찾았는데 / 蠟屐探奇石棧斜
위험한 길 만나면 담쟁이덩굴 잡고 오르네 / 路逢危險費緣蘿
산을 탐하여 길을 치움은 사령운과 같은데 / 貪山除道同靈運
우뚝 솟은 빼어난 명소는 영가보다 낫다네 / 拔地名區勝永嘉

[주-D001] 유선암(遊仙巖) : 《금계집》권3에 〈화이자발증유선암운(和李子發贈遊仙巖韻)〉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주-D002] 금화산(金華山) : 한(漢)나라 때의 신선 황초평(黃初平)은 단계(丹溪) 사람으로 15세에 양을 치다가 신선술을 닦으러 도사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에서 수도하였다. 그 후 40년 만에 그의 형 황초기(黃初起)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만났더니 양은 보이지 않고 흰 돌들만 있었다. 황초평이 “양들은 일어나라.”라고 소리치자, 흰 돌들이 모두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神仙傳 黃初平》

[주-D003] 석류껍질로 …… 그리고 : 《동파시화(東坡詩話)》에 “자칭 회산(回山) 사람이라고 하는 어떤 도사가 심동로(沈東老 심사(沈思))에게 들러 술을 마신 다음 석류(石榴) 껍질을 이용하여 그 집의 벽에 절구 한 수를 쓰기를 ‘서쪽 이웃은 부자지만 부족함을 걱정하는데, 동쪽 노인은 가난하지만 즐거움이 넉넉하다. 술을 빚어 온 건 좋은 손님 때문이고, 황금을 모두 흩은 건 서책을 사들이기 위해서이다.〔西隣已富憂不足 東老雖貧樂有餘 白酒釀來緣好客 黃金散盡爲收書〕’라고 하였다. 그 도사는 시를 다 쓰고 나서 문을 나가 다리를 건너갔는데, 결국 그가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혹자는, ‘그는 바로 여동빈(呂洞賓)이다.’ 한다.”라고 하였다.

[주-D004] 목공(木公) : 선도(仙道)를 체득한 남자를 일컫는 말이다.

[주-D005] 나막신 신고 : 남조(南朝) 때의 문인(文人)으로 풍류가 뛰어났던 사영운(謝靈運)은 특히 명산(名山)에 오르기를 좋아하여 매양 나막신을 신고 등산을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D006] 산을 …… 치움 : 한(漢)나라 주매신(朱買臣)이 만년에 영달하여 회계 태수(會稽太守)로 부임할 때 누더기 차림에 인수(印綬)를 허리에 차고 군저(郡邸)에 가자 아전이 인수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상관에게 보고하였다. 마침내 그를 영접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길을 치우게 하였는데, 그중에는 주매신을 경멸하며 버렸던 옛날의 아내와 그 남편도 끼어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上 朱買臣傳》

[주-D007] 영가(永嘉)보다 낫다네 : 영가는 안동(安東)의 고호이다. 유선암 주위 평해(平海)의 경치가 빼어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