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간이 영천 군수로 가는 것을 전송하면서 노인보의 시에 차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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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9회 작성일 21-07-27 08:44본문
이공간이 영천 군수로 가는 것을 전송하면서 노인보의 시에 차운하다
이공간이 영천 군수로 가는 것을 전송하면서 노인보의 시에 차운하다〔送李公幹宰永陽 次盧仁父韻〕 인보(仁父) 또한 이 운자로 행차를 전송하였다. 선친(先親)을 이어 영천 군수(永川郡守)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 영화롭게 여겼다.
아, 즐거우리라! 영천 가는 길은 / 嗟爾樂哉永之陽
백리 되는 읍치가 어찌 이리 아득한가 / 雷封百里何微茫
연꽃처럼 맑은 공은 영남에서 빼어나고 / 靑蓮粘斗公嶺秀
벽옥 같은 가을 물엔 물고기가 살지리 / 碧玉涵秋魚水長
그림 같은 누대에는 갈매기가 날고 / 罨畫樓臺白鷗邊
찌는 듯한 유월에도 바람은 서늘하리 / 盾威六月風含涼
백성들은 예로부터 부유하다 일컬었고 / 居民從古稱富庶
누에 기르고 베 짜느라 쉴 겨를 없다네 / 田蠶織作無少遑
젊은 시절에 길손 되어 여기 들렀는데 / 少年爲客記前度
우연히 잠을 자러 청사에 투숙했네 / 偶將一夢投黃堂
주렴 걷고 기대니 가을 하늘 펼쳐져서 / 鉤簾高憑海天秋
탁 트인 만 리의 풍광을 읊조렸다네 / 眼豁萬里吟風光
생각건대 우리 재상께선 부모 위해 뜻 굽히고 / 憶曾吾相屈爲親
초시 보아 작은 고을에서 벼슬을 시작했네 / 割鷄初試發鉶鋩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두모라 칭송하고 / 闔境煙火頌杜母
열 줄의 어찰에는 궁중 향기 배었었네 / 十行褒札蜚天香
게다가 아무 언덕은 옛날의 고향이니 / 某丘矧是舊桑榟
금의환향의 영광 어찌 부러워하랴 / 榮光何羡錦還鄕
옛날의 선정은 유풍이 남아 있어 / 當時善政尙餘風
부로들은 아직도 큰 은혜 입고 있네 / 父老猶飽恩波洋
지금은 벼슬한 지 50년이 되어서 / 如今簪笏五十載
이미 귀거래사 짓고 관인 던지겼네 / 已草歸去投金章
지산촌과 분천에서 맑은 놀이 즐기시니 / 芝山汾水占淸遊
지극한 즐거움은 왕후와도 바꾸지 않으리 / 至樂不換侯與王
가업 이어 뛰어나니 훌륭한 자손이라 / 承家白眉是寶樹
사람들이 성대의 기린아라 말한다네 / 人道瑞世麒麟祥
일찍이 사마시와 문과에서 이름 떨쳐 / 蓮池桂苑早蜚英
청년의 장한 뜻이 유년의 꿈을 이루었네 / 靑年壯志酬蓬桑
주나라 사주처럼 필법에 시비가 엄정했고 / 周籒筆下是非嚴
진나라 거울처럼 마음속에 사정이 분명했네 / 秦鏡胸中邪正彰
봉산과 벽수 거쳐 화전에서 노닐다가 / 蓬山璧水步花甎
청전과 옥순으로 현량에 추천되었네 / 靑錢玉筍推賢良
사헌부 지평으로 풍상 같은 상소 올렸고 / 霜風白簡烏府客
병조의 낭관으로 장막에서 계책 세웠네 / 帷幄籌邊騎省郞
빠르게 먼 거리를 분주히 내달렸고 / 奔風逸足騁長衢
순탄하게 지위 올라 귀밑머리 안 세었네 / 穩步煙霄鬢未霜
벼슬길도 고향 그리움 빼앗을 수 없어서 / 靑雲難奪白雲思
지방 수령 요청하여 조정 반열 사직했네 / 爲乞左符辭鵷行
대대로 영천군에서 가업을 이었고 / 一郡連世作靑氈
맑은 덕을 전수 받아 후손들이 계승했네 / 傳家淸德追遺芳
옛날의 원로들이 아직 죽지 않아 / 當年耆老未成塵
친구를 술로써 기쁘게 맞이하리 / 竹馬喜迎羅壺漿
공무의 여가에 자연의 흥취 따라 / 公餘剩做水雲趣
강가의 누대에서 승경 보며 즐기리라 / 江樓勝賞輸眺望
게다가 선성과는 거리가 멀지 않으니 / 況此宣城去無多
부모를 봉양함에 지장이 없으리라 / 趨庭奉歡非爲妨
물고기 잡아 드리고 죽순 베어 바치면서 / 銀鯈薦網箭抽萌
어머님께 요지의 술잔을 올리리라 / 北堂爲捧瑤池觴
그대 부친도 이런 직분 다하셨으니 / 君親盡職此一擧
남아의 사업이 아름답고 성대한 것 / 男兒事業猗嗟昌
오직 한 마디로 고을 다스림 말하자면 / 聊將片語道爲郡
형률로 백성 묶는다는 말 듣지 못했네 / 繩民刑律聞未嘗
민생이 시름겨우면 석서 시를 지으니 / 民生愁歎賦碩鼠
백성을 어루만질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撫字一責今誰當
풍속을 인도함에 교화를 주로 하면 / 移風導俗本敎化
영천에 강포한 위엄 부릴 필요 없네 / 穎陽不必威豪强
현가하던 무성의 자유 같은 사람 되어 / 絃歌武城要得人
인습되는 폐정을 바꾸어야 할 때라네 / 因循弊政時更張
백리 땅의 수령으로 뜻을 펼칠 만하니 / 專城百里志可展
근심 나누는 다스림에 공은 힘써야 하네 / 分憂共理公宜蘉
높은 명성이 청사에 드는 걸 꼭 보리니 / 會見高名入史香
옛날에 양호 추모한 양양 타루비가 있으리 / 襄陽淚碑追前羊
우습구나! 이 몸은 방황하며 떠도느라 / 自笑迷津身作寄
장과 곡이 양을 잃은 것도 깨닫지 못한 것이 / 臧糓不悟俱兩亡
자연에서 백구와 노닐려는 맹세 저버렸는데 / 溪山有約鷺盟寒
천지 세월은 백구가 지나듯 무정히 가버렸네 / 天地無情駒隙忙
어느 날에나 고당에 쌀을 지고 가랴 / 高堂負米是何日
남쪽 구름 보며 부질없이 눈물 흘리네 / 南望嶺雲空涕滂
반평생 헛된 명성으로 어찌 그리 바빴던가 / 半世浮名何草草
한평생 충효는 삼강에 부끄럽네 / 一生忠孝愧三綱
다시금 외로운 학이 옛 벗과 헤어지니 / 更被孤鴻離舊侶
속세에 홀로 남아 무언가 잊은 것 같네 / 獨留紅塵心若忘
가게나, 어찌 자기를 사사로이 할 겨를 가지랴 / 去矣吾私肯暇計
가서 봄볕을 따라 어진 교화 잘 일으키게나 / 好扇仁化隨春陽
명주이불 덮고 궁궐 꿈을 자주 꾸면서 / 黃紬頻夢九重天
가시나무에 봉황 깃든 것 괴이하게 여기지 말게 / 莫怪棘林棲鸞凰
만일 서울로 돌아가는 농두 사람 있거든 / 西歸如有隴頭人
매화가지 꺾어 보내 애타는 이 마음 위로해주게 / 折寄南枝慰斷腸
[주-D001] 이공간(李公幹) : 이중량(李仲樑, 1504~1582)으로, 공간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하연(賀淵)이다. 이현보의 넷째 아들이다. 1528년(중종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4년 문과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검열, 대교, 봉교를 역임하고, 병조 좌랑이 되었다. 1541년 11월 사헌부 지평에 승진되었고, 곧 병조 정랑ㆍ경기도 도사를 거쳐, 1542년 황해도 도사, 1543년에 부모봉양을 위해 영천 군수(永川郡守)를 자원하였다. 1549년(명종4) 삼척 부사, 1550년 청송 부사, 1554년 통훈대부에 오르면서 안동 대도호부사 등등의 20년간의 외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주-D002] 선친(先親) : 이중량의 선친인 이현보(李賢輔)를 말한다. 이현보는 그의 나이 42세 때인 1508년 9월에 부모봉양을 위하여 영천 군수(永川郡守)가 되었다.
[주-D003] 읍치(邑治) : 원문의 뇌봉(雷封)은 지방의 작은 고을의 수령을 뜻한다. 보통 사방 100리 정도 되는 고을이 현(縣)이 되는데, 천둥이 치면 그 소리가 100리쯤 진동한다 하여 현령(縣令)을 뇌봉이라고 하였다.
[주-D004] 청사(廳舍) : 원문의 황당(黃堂)은 태수(太守)가 거처하는 청사(廳舍)이다. 옛날에 태수 청사의 벽을 자황(雌黃)으로 바른 데서 연유하였다.
[주-D005] 우리 재상(宰相) :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를 가리킨다.
[주-D006] 작은 …… 시작했네 : 원문의 할계(割雞)는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도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것을 비유한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을 때, 조그마한 고을에서 예악(禮樂)의 정사를 펼치는 것을 보고는, 공자가 웃으면서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割雞焉用牛刀〕”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論語 陽貨》
[주-D007] 두모(杜母) : 한(漢)나라 때의 어진 수령인 두시(杜詩)의 별칭이다. 두시가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덕정(德政)을 베풀자 남양 백성들이 “앞에는 소부가 있고 뒤에는 두모가 있다.〔前有召父 後有杜母〕”라고 칭송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89 循吏傳 召信臣》 《後漢書 卷31 杜詩列傳》 여기서는 이현보를 말한다.
[주-D008] 궁중 향기 : 천향(天香)은 궁중(宮中)에서 사용하는 훈향(薰香)으로 어향(御香)이라고도 한다. 임금께서 이현보를 영천 군수로 임명하는 교지를 내렸기 때문에 교지에 궁중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주-D009] 아무 언덕 : 한유(韓愈)의 〈송양거원소윤서(送楊巨源少尹序)〉에 “지금 그대가 고향에 돌아가서는 나무를 가리켜 말하기를 ‘아무 나무는 우리 선인께서 심은 것이요, 아무 물, 아무 언덕은 내가 어렸을 때에 낚시질하며 놀던 곳이다.’라고 할 것이다.〔今之歸 指其樹曰 某樹 吾先人之所種也 某水某丘 吾童子時所釣遊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0] 지산촌(芝山村) : 경북 영천(永川)에 있는 지명이다.
[주-D011] 분천(汾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을 가리킨다.
[주-D012] 훌륭한 자손 : 원문의 보수(寶樹)는 훌륭한 자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이중량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지초(芝草)나 난초(蘭草) 또는 좋은 나무를 집 앞 계단이나 뜰에 심고자 하는 것처럼 그런 귀염을 받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語言》
[주-D013] 유년(幼年)의 꿈 : 원문의 봉상(蓬桑)은 상봉지지(桑蓬之志)로 유년 시절에 사방을 경륜하려는 큰 뜻을 품은 것을 말한다. 옛날에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갈대풀로 화살을 만들어〔桑弧蓬矢〕 천지 사방에 쏘았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禮記 內則》
[주-D014] 사주(史籀) : 주 선왕(周宣王) 때의 태사(太史)이다. 고문(古文)을 고쳐 대전(大篆)을 만든 사람이다. 그러므로 대전(大篆)을 일명 주문(籀文)이라고 한다. 또한 주 선왕을 칭송하는 글을 지어서 북처럼 생긴 돌에 새겼다고 한다.
[주-D015] 진나라 거울 : 진 시황(秦始皇) 때에 큰 거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거울은 물건의 본질을 밝혀 주는 것이므로 아무리 변형하여도 본질 그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 거울을 조마경(照魔鏡)이라 한다.
[주-D016] 봉산(蓬山) : 한림원(翰林院)ㆍ비서성(祕書省) 등 청환(淸宦)의 관서를 비유한다.
[주-D017] 벽수(璧水) : 벽옹에 둘린 물이니, 즉 태학을 가리킨다.
[주-D018] 화전(花甎) : 꽃무늬 벽돌이라는 뜻으로, 학사원(學士院)을 가리킨다. 당나라 때 학사가 근무하는 내각(內閣) 북청(北廳)의 앞 섬돌에 화전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19] 청전(靑錢) : 문장이 훌륭한 선비를 말한다. 《신당서(新唐書)》 권161 〈장천열전(張薦列傳)〉에 “장천(張薦)의 조부 장작(張鷟)은 자가 문성(文成)인데 여덟 차례나 제거(制擧)에서 갑제(甲制)가 되었고, 네 차례의 판책(判策)에서 참선(參選)하니 사람들이 ‘장작의 문장이 청동전(靑銅錢) 같아서 만선 만중(萬選萬中)한다.’ 하여 청전학사(靑錢學士)라 했다.” 하였다.
[주-D020] 옥순(玉筍) : 급제한 문생을 가리킨다. 당나라 이종민(李宗閔)이 시관(試官)이 되어 선발한 문생들 모두가 저명 인사였으므로 당시에 옥순이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74 李宗閔列傳》
[주-D021] 현량(賢良) : 한 문제 때부터 시작된 과거 제도로, 책문을 통해 직언과 극간(極諫)을 잘하는 사람을 뽑았는데, 현량문학(賢良文學) 혹은 현량방정(賢良方正)이라고도 한다.
[주-D022] 사헌부 …… 올렸고 : 오부는 사헌부의 별칭이고, 백간(白簡)은 관원을 탄핵하기 위해 올리는 상소문을 말한다.
[주-D023] 지방 수령 : 원문의 좌부(左符)는 부절(符節)이다. 고대(古代)에 군수(郡守)에게 동(銅)으로 만든 부(符)를 주었는데, 두 쪽으로 쪼개어 오른 쪽은 임금이 지니고, 왼쪽 것은 군수에게 주었다.
[주-D024] 조정 반열 : 원문의 완항(鵷行)은 조정에 선 관리의 항렬(行列)을 말한다. 완(鵷)은 봉황새의 일종인 원추새로 높이 나는 새이기 때문에 조관(朝官)을 비유한다.
[주-D025] 술 : 원문의 호장(壺漿)은 술이나 차 따위의 음료를 호리병에 담은 것으로, 먼 길 온 사람을 위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D026] 선성(宣城) : 이중량의 고향인 예안(禮安)의 옛 지명이다.
[주-D027] 요지(瑤池)의 술잔을 올리리라 : 요지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는 신화 속의 못 이름인데, 선녀인 서왕모(西王母)가 주 목왕(周穆王)을 영접하여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고 술잔을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穆天子傳 卷3 古文》
[주-D028] 그대 …… 다하셨으니 : 이중량의 아버지 이현보가 70세가 넘은 노모를 정성껏 봉양했던 일을 말한다.
[주-D029] 석서(碩鼠) 시 : 《시경》 〈위풍 석서(碩鼠)〉 편을 말한다. 〈석서〉에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삼 년이나 서로 알고 지냈거늘, 나를 돌보아주지 않을진댄, 장차 너를 버리고 떠나서, 저 즐거운 땅으로 가버리련다.〔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라고 하였다.
[주-D030] 옛날에 …… 있으리 : 진(晉)나라 양호(羊祜)가 일찍이 도독형주제군사(都督荊州諸軍事)가 되어 양양(襄陽)에 머물렀는데, 고을 사람들이 그가 죽은 뒤에 생전에 노닐던 현산(峴山)에 비(碑)와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그 비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눈물을 흘렸으므로, 두예(杜預)가 이 비를 타루비(墮淚碑)라 칭하였다.
[주-D031] 장(臧)과 …… 것 : 《장자》 〈변무(騈拇)〉에 “장(臧)과 곡(穀)이 함께 양을 치다가 모두 양을 잃었다. 장에게 묻기를 ‘무슨 일을 하다가 양을 잃었느냐?’ 하자 ‘글을 읽었다.’ 하고, 곡에게 ‘무슨 일을 하였느냐?’ 하자 ‘장기를 두고 놀았다.’ 하였다.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았지만 양을 잃기는 마찬가지다.” 하였다.
[주-D032] 백구(白鷗)와 노닐려는 맹세 : 속세를 떠나 강호에 돌아가서 갈매기를 벗 삼아 은거하려는 맹세를 말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갈매기와 몹시 친하게 지냈는데, 갈매기를 잡을 마음을 가지고 바닷가로 나가니 갈매기들이 위에서 날면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마음을 툭 터놓고 상대를 대하거나, 세상을 피하여 은둔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列子 黃帝》
[주-D033] 백구(白駒)가 지나듯 :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비유한 것이다. 《장자》 〈지북유(知北遊)〉에 “사람이 천지간에 사는 동안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잠깐일 뿐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라고 하였다.
[주-D034] 어느 …… 가랴 :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원문의 부미(負米)는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자신은 나물을 뜯어 먹으면서도, 어버이를 위해서는 백 리 밖까지 나가서 쌀을 구한 다음 먼 길을 짊어지고 와서〔爲親負米百里之外〕 쌀밥을 해 드렸다는 고사가 있다. 《孔子家語 卷2 致思》
[주-D035] 명주이불 : 원문의 황주(黃紬)는 누런 명주이불로 지방관을 말한다. 송 태조(宋太祖)가 일찍이 한 현령(縣令)에게 경계하기를 “황주 이불 속에 늦게까지 누워서 직무를 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한다.
[주-D036] 농두(隴頭) …… 위로해주게 : 남조(南朝) 송(宋)의 육개(陸凱)가 강남에 있을 때 교분이 두터웠던 범엽(范曄)에게 매화 한 가지를 부치면서 “매화를 꺾다 역사를 만났기에, 농두 사는 그대에게 부치오. 강남에는 아무것도 없어, 애오라지 한 가지 봄을 보낸다오.〔折梅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라는 시를 함께 부친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이공간을 육개에 견주고 자신을 범엽에 비유하면서, 이공간이 영천 군수로 가서 선정을 펼치다가 만약 서울로 가는 사람이 있으면 서울에 있는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이공간이 영천 군수로 가는 것을 전송하면서 노인보의 시에 차운하다〔送李公幹宰永陽 次盧仁父韻〕 인보(仁父) 또한 이 운자로 행차를 전송하였다. 선친(先親)을 이어 영천 군수(永川郡守)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 영화롭게 여겼다.
아, 즐거우리라! 영천 가는 길은 / 嗟爾樂哉永之陽
백리 되는 읍치가 어찌 이리 아득한가 / 雷封百里何微茫
연꽃처럼 맑은 공은 영남에서 빼어나고 / 靑蓮粘斗公嶺秀
벽옥 같은 가을 물엔 물고기가 살지리 / 碧玉涵秋魚水長
그림 같은 누대에는 갈매기가 날고 / 罨畫樓臺白鷗邊
찌는 듯한 유월에도 바람은 서늘하리 / 盾威六月風含涼
백성들은 예로부터 부유하다 일컬었고 / 居民從古稱富庶
누에 기르고 베 짜느라 쉴 겨를 없다네 / 田蠶織作無少遑
젊은 시절에 길손 되어 여기 들렀는데 / 少年爲客記前度
우연히 잠을 자러 청사에 투숙했네 / 偶將一夢投黃堂
주렴 걷고 기대니 가을 하늘 펼쳐져서 / 鉤簾高憑海天秋
탁 트인 만 리의 풍광을 읊조렸다네 / 眼豁萬里吟風光
생각건대 우리 재상께선 부모 위해 뜻 굽히고 / 憶曾吾相屈爲親
초시 보아 작은 고을에서 벼슬을 시작했네 / 割鷄初試發鉶鋩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두모라 칭송하고 / 闔境煙火頌杜母
열 줄의 어찰에는 궁중 향기 배었었네 / 十行褒札蜚天香
게다가 아무 언덕은 옛날의 고향이니 / 某丘矧是舊桑榟
금의환향의 영광 어찌 부러워하랴 / 榮光何羡錦還鄕
옛날의 선정은 유풍이 남아 있어 / 當時善政尙餘風
부로들은 아직도 큰 은혜 입고 있네 / 父老猶飽恩波洋
지금은 벼슬한 지 50년이 되어서 / 如今簪笏五十載
이미 귀거래사 짓고 관인 던지겼네 / 已草歸去投金章
지산촌과 분천에서 맑은 놀이 즐기시니 / 芝山汾水占淸遊
지극한 즐거움은 왕후와도 바꾸지 않으리 / 至樂不換侯與王
가업 이어 뛰어나니 훌륭한 자손이라 / 承家白眉是寶樹
사람들이 성대의 기린아라 말한다네 / 人道瑞世麒麟祥
일찍이 사마시와 문과에서 이름 떨쳐 / 蓮池桂苑早蜚英
청년의 장한 뜻이 유년의 꿈을 이루었네 / 靑年壯志酬蓬桑
주나라 사주처럼 필법에 시비가 엄정했고 / 周籒筆下是非嚴
진나라 거울처럼 마음속에 사정이 분명했네 / 秦鏡胸中邪正彰
봉산과 벽수 거쳐 화전에서 노닐다가 / 蓬山璧水步花甎
청전과 옥순으로 현량에 추천되었네 / 靑錢玉筍推賢良
사헌부 지평으로 풍상 같은 상소 올렸고 / 霜風白簡烏府客
병조의 낭관으로 장막에서 계책 세웠네 / 帷幄籌邊騎省郞
빠르게 먼 거리를 분주히 내달렸고 / 奔風逸足騁長衢
순탄하게 지위 올라 귀밑머리 안 세었네 / 穩步煙霄鬢未霜
벼슬길도 고향 그리움 빼앗을 수 없어서 / 靑雲難奪白雲思
지방 수령 요청하여 조정 반열 사직했네 / 爲乞左符辭鵷行
대대로 영천군에서 가업을 이었고 / 一郡連世作靑氈
맑은 덕을 전수 받아 후손들이 계승했네 / 傳家淸德追遺芳
옛날의 원로들이 아직 죽지 않아 / 當年耆老未成塵
친구를 술로써 기쁘게 맞이하리 / 竹馬喜迎羅壺漿
공무의 여가에 자연의 흥취 따라 / 公餘剩做水雲趣
강가의 누대에서 승경 보며 즐기리라 / 江樓勝賞輸眺望
게다가 선성과는 거리가 멀지 않으니 / 況此宣城去無多
부모를 봉양함에 지장이 없으리라 / 趨庭奉歡非爲妨
물고기 잡아 드리고 죽순 베어 바치면서 / 銀鯈薦網箭抽萌
어머님께 요지의 술잔을 올리리라 / 北堂爲捧瑤池觴
그대 부친도 이런 직분 다하셨으니 / 君親盡職此一擧
남아의 사업이 아름답고 성대한 것 / 男兒事業猗嗟昌
오직 한 마디로 고을 다스림 말하자면 / 聊將片語道爲郡
형률로 백성 묶는다는 말 듣지 못했네 / 繩民刑律聞未嘗
민생이 시름겨우면 석서 시를 지으니 / 民生愁歎賦碩鼠
백성을 어루만질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撫字一責今誰當
풍속을 인도함에 교화를 주로 하면 / 移風導俗本敎化
영천에 강포한 위엄 부릴 필요 없네 / 穎陽不必威豪强
현가하던 무성의 자유 같은 사람 되어 / 絃歌武城要得人
인습되는 폐정을 바꾸어야 할 때라네 / 因循弊政時更張
백리 땅의 수령으로 뜻을 펼칠 만하니 / 專城百里志可展
근심 나누는 다스림에 공은 힘써야 하네 / 分憂共理公宜蘉
높은 명성이 청사에 드는 걸 꼭 보리니 / 會見高名入史香
옛날에 양호 추모한 양양 타루비가 있으리 / 襄陽淚碑追前羊
우습구나! 이 몸은 방황하며 떠도느라 / 自笑迷津身作寄
장과 곡이 양을 잃은 것도 깨닫지 못한 것이 / 臧糓不悟俱兩亡
자연에서 백구와 노닐려는 맹세 저버렸는데 / 溪山有約鷺盟寒
천지 세월은 백구가 지나듯 무정히 가버렸네 / 天地無情駒隙忙
어느 날에나 고당에 쌀을 지고 가랴 / 高堂負米是何日
남쪽 구름 보며 부질없이 눈물 흘리네 / 南望嶺雲空涕滂
반평생 헛된 명성으로 어찌 그리 바빴던가 / 半世浮名何草草
한평생 충효는 삼강에 부끄럽네 / 一生忠孝愧三綱
다시금 외로운 학이 옛 벗과 헤어지니 / 更被孤鴻離舊侶
속세에 홀로 남아 무언가 잊은 것 같네 / 獨留紅塵心若忘
가게나, 어찌 자기를 사사로이 할 겨를 가지랴 / 去矣吾私肯暇計
가서 봄볕을 따라 어진 교화 잘 일으키게나 / 好扇仁化隨春陽
명주이불 덮고 궁궐 꿈을 자주 꾸면서 / 黃紬頻夢九重天
가시나무에 봉황 깃든 것 괴이하게 여기지 말게 / 莫怪棘林棲鸞凰
만일 서울로 돌아가는 농두 사람 있거든 / 西歸如有隴頭人
매화가지 꺾어 보내 애타는 이 마음 위로해주게 / 折寄南枝慰斷腸
[주-D001] 이공간(李公幹) : 이중량(李仲樑, 1504~1582)으로, 공간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하연(賀淵)이다. 이현보의 넷째 아들이다. 1528년(중종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4년 문과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검열, 대교, 봉교를 역임하고, 병조 좌랑이 되었다. 1541년 11월 사헌부 지평에 승진되었고, 곧 병조 정랑ㆍ경기도 도사를 거쳐, 1542년 황해도 도사, 1543년에 부모봉양을 위해 영천 군수(永川郡守)를 자원하였다. 1549년(명종4) 삼척 부사, 1550년 청송 부사, 1554년 통훈대부에 오르면서 안동 대도호부사 등등의 20년간의 외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주-D002] 선친(先親) : 이중량의 선친인 이현보(李賢輔)를 말한다. 이현보는 그의 나이 42세 때인 1508년 9월에 부모봉양을 위하여 영천 군수(永川郡守)가 되었다.
[주-D003] 읍치(邑治) : 원문의 뇌봉(雷封)은 지방의 작은 고을의 수령을 뜻한다. 보통 사방 100리 정도 되는 고을이 현(縣)이 되는데, 천둥이 치면 그 소리가 100리쯤 진동한다 하여 현령(縣令)을 뇌봉이라고 하였다.
[주-D004] 청사(廳舍) : 원문의 황당(黃堂)은 태수(太守)가 거처하는 청사(廳舍)이다. 옛날에 태수 청사의 벽을 자황(雌黃)으로 바른 데서 연유하였다.
[주-D005] 우리 재상(宰相) :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를 가리킨다.
[주-D006] 작은 …… 시작했네 : 원문의 할계(割雞)는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도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것을 비유한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을 때, 조그마한 고을에서 예악(禮樂)의 정사를 펼치는 것을 보고는, 공자가 웃으면서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割雞焉用牛刀〕”라고 말했던 고사가 있다. 《論語 陽貨》
[주-D007] 두모(杜母) : 한(漢)나라 때의 어진 수령인 두시(杜詩)의 별칭이다. 두시가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덕정(德政)을 베풀자 남양 백성들이 “앞에는 소부가 있고 뒤에는 두모가 있다.〔前有召父 後有杜母〕”라고 칭송한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89 循吏傳 召信臣》 《後漢書 卷31 杜詩列傳》 여기서는 이현보를 말한다.
[주-D008] 궁중 향기 : 천향(天香)은 궁중(宮中)에서 사용하는 훈향(薰香)으로 어향(御香)이라고도 한다. 임금께서 이현보를 영천 군수로 임명하는 교지를 내렸기 때문에 교지에 궁중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주-D009] 아무 언덕 : 한유(韓愈)의 〈송양거원소윤서(送楊巨源少尹序)〉에 “지금 그대가 고향에 돌아가서는 나무를 가리켜 말하기를 ‘아무 나무는 우리 선인께서 심은 것이요, 아무 물, 아무 언덕은 내가 어렸을 때에 낚시질하며 놀던 곳이다.’라고 할 것이다.〔今之歸 指其樹曰 某樹 吾先人之所種也 某水某丘 吾童子時所釣遊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10] 지산촌(芝山村) : 경북 영천(永川)에 있는 지명이다.
[주-D011] 분천(汾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분천을 가리킨다.
[주-D012] 훌륭한 자손 : 원문의 보수(寶樹)는 훌륭한 자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이중량을 말한다. 진(晉)나라 때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지초(芝草)나 난초(蘭草) 또는 좋은 나무를 집 앞 계단이나 뜰에 심고자 하는 것처럼 그런 귀염을 받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語言》
[주-D013] 유년(幼年)의 꿈 : 원문의 봉상(蓬桑)은 상봉지지(桑蓬之志)로 유년 시절에 사방을 경륜하려는 큰 뜻을 품은 것을 말한다. 옛날에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뽕나무로 활을 만들고 갈대풀로 화살을 만들어〔桑弧蓬矢〕 천지 사방에 쏘았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禮記 內則》
[주-D014] 사주(史籀) : 주 선왕(周宣王) 때의 태사(太史)이다. 고문(古文)을 고쳐 대전(大篆)을 만든 사람이다. 그러므로 대전(大篆)을 일명 주문(籀文)이라고 한다. 또한 주 선왕을 칭송하는 글을 지어서 북처럼 생긴 돌에 새겼다고 한다.
[주-D015] 진나라 거울 : 진 시황(秦始皇) 때에 큰 거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거울은 물건의 본질을 밝혀 주는 것이므로 아무리 변형하여도 본질 그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 거울을 조마경(照魔鏡)이라 한다.
[주-D016] 봉산(蓬山) : 한림원(翰林院)ㆍ비서성(祕書省) 등 청환(淸宦)의 관서를 비유한다.
[주-D017] 벽수(璧水) : 벽옹에 둘린 물이니, 즉 태학을 가리킨다.
[주-D018] 화전(花甎) : 꽃무늬 벽돌이라는 뜻으로, 학사원(學士院)을 가리킨다. 당나라 때 학사가 근무하는 내각(內閣) 북청(北廳)의 앞 섬돌에 화전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19] 청전(靑錢) : 문장이 훌륭한 선비를 말한다. 《신당서(新唐書)》 권161 〈장천열전(張薦列傳)〉에 “장천(張薦)의 조부 장작(張鷟)은 자가 문성(文成)인데 여덟 차례나 제거(制擧)에서 갑제(甲制)가 되었고, 네 차례의 판책(判策)에서 참선(參選)하니 사람들이 ‘장작의 문장이 청동전(靑銅錢) 같아서 만선 만중(萬選萬中)한다.’ 하여 청전학사(靑錢學士)라 했다.” 하였다.
[주-D020] 옥순(玉筍) : 급제한 문생을 가리킨다. 당나라 이종민(李宗閔)이 시관(試官)이 되어 선발한 문생들 모두가 저명 인사였으므로 당시에 옥순이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新唐書 卷174 李宗閔列傳》
[주-D021] 현량(賢良) : 한 문제 때부터 시작된 과거 제도로, 책문을 통해 직언과 극간(極諫)을 잘하는 사람을 뽑았는데, 현량문학(賢良文學) 혹은 현량방정(賢良方正)이라고도 한다.
[주-D022] 사헌부 …… 올렸고 : 오부는 사헌부의 별칭이고, 백간(白簡)은 관원을 탄핵하기 위해 올리는 상소문을 말한다.
[주-D023] 지방 수령 : 원문의 좌부(左符)는 부절(符節)이다. 고대(古代)에 군수(郡守)에게 동(銅)으로 만든 부(符)를 주었는데, 두 쪽으로 쪼개어 오른 쪽은 임금이 지니고, 왼쪽 것은 군수에게 주었다.
[주-D024] 조정 반열 : 원문의 완항(鵷行)은 조정에 선 관리의 항렬(行列)을 말한다. 완(鵷)은 봉황새의 일종인 원추새로 높이 나는 새이기 때문에 조관(朝官)을 비유한다.
[주-D025] 술 : 원문의 호장(壺漿)은 술이나 차 따위의 음료를 호리병에 담은 것으로, 먼 길 온 사람을 위로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D026] 선성(宣城) : 이중량의 고향인 예안(禮安)의 옛 지명이다.
[주-D027] 요지(瑤池)의 술잔을 올리리라 : 요지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다는 신화 속의 못 이름인데, 선녀인 서왕모(西王母)가 주 목왕(周穆王)을 영접하여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고 술잔을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穆天子傳 卷3 古文》
[주-D028] 그대 …… 다하셨으니 : 이중량의 아버지 이현보가 70세가 넘은 노모를 정성껏 봉양했던 일을 말한다.
[주-D029] 석서(碩鼠) 시 : 《시경》 〈위풍 석서(碩鼠)〉 편을 말한다. 〈석서〉에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삼 년이나 서로 알고 지냈거늘, 나를 돌보아주지 않을진댄, 장차 너를 버리고 떠나서, 저 즐거운 땅으로 가버리련다.〔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라고 하였다.
[주-D030] 옛날에 …… 있으리 : 진(晉)나라 양호(羊祜)가 일찍이 도독형주제군사(都督荊州諸軍事)가 되어 양양(襄陽)에 머물렀는데, 고을 사람들이 그가 죽은 뒤에 생전에 노닐던 현산(峴山)에 비(碑)와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그 비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눈물을 흘렸으므로, 두예(杜預)가 이 비를 타루비(墮淚碑)라 칭하였다.
[주-D031] 장(臧)과 …… 것 : 《장자》 〈변무(騈拇)〉에 “장(臧)과 곡(穀)이 함께 양을 치다가 모두 양을 잃었다. 장에게 묻기를 ‘무슨 일을 하다가 양을 잃었느냐?’ 하자 ‘글을 읽었다.’ 하고, 곡에게 ‘무슨 일을 하였느냐?’ 하자 ‘장기를 두고 놀았다.’ 하였다.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았지만 양을 잃기는 마찬가지다.” 하였다.
[주-D032] 백구(白鷗)와 노닐려는 맹세 : 속세를 떠나 강호에 돌아가서 갈매기를 벗 삼아 은거하려는 맹세를 말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갈매기와 몹시 친하게 지냈는데, 갈매기를 잡을 마음을 가지고 바닷가로 나가니 갈매기들이 위에서 날면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마음을 툭 터놓고 상대를 대하거나, 세상을 피하여 은둔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列子 黃帝》
[주-D033] 백구(白駒)가 지나듯 :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비유한 것이다. 《장자》 〈지북유(知北遊)〉에 “사람이 천지간에 사는 동안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아서 잠깐일 뿐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라고 하였다.
[주-D034] 어느 …… 가랴 :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원문의 부미(負米)는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자신은 나물을 뜯어 먹으면서도, 어버이를 위해서는 백 리 밖까지 나가서 쌀을 구한 다음 먼 길을 짊어지고 와서〔爲親負米百里之外〕 쌀밥을 해 드렸다는 고사가 있다. 《孔子家語 卷2 致思》
[주-D035] 명주이불 : 원문의 황주(黃紬)는 누런 명주이불로 지방관을 말한다. 송 태조(宋太祖)가 일찍이 한 현령(縣令)에게 경계하기를 “황주 이불 속에 늦게까지 누워서 직무를 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한다.
[주-D036] 농두(隴頭) …… 위로해주게 : 남조(南朝) 송(宋)의 육개(陸凱)가 강남에 있을 때 교분이 두터웠던 범엽(范曄)에게 매화 한 가지를 부치면서 “매화를 꺾다 역사를 만났기에, 농두 사는 그대에게 부치오. 강남에는 아무것도 없어, 애오라지 한 가지 봄을 보낸다오.〔折梅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라는 시를 함께 부친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이공간을 육개에 견주고 자신을 범엽에 비유하면서, 이공간이 영천 군수로 가서 선정을 펼치다가 만약 서울로 가는 사람이 있으면 서울에 있는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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